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73
제73화
최희석은 기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도운이 “손님이 찾아왔군요”라고 말했기에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다.
손님이 찾아왔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주변 마나의 흐름을 파악해 봤고, 다수의 존재가 수정 공방을 포위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20년 동안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해 왔던 그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기척을 26살밖에 안 된 젊은 헌터가 먼저 알아서다.
앞서 걷는 도운을 따라나서며 생각했다.
기척을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난 걸까, 훌륭한 감지 스킬을 지닌 걸까.
전자든 후자든 이 정도로 기척을 숨기고 다가온 이들을 알아차렸다는 점에서 대단한 건 마찬가지였다.
“참.”
문 앞에 선 도운이 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며 최희석을 올려다본다.
“전 지켜 주실 필요 없습니다.”
“음? 아. 괜찮겠나?”
“네, 두 사람이나 지켜 주십시오.”
“두 사람? 설마 저도 포함된 거예요? 형님, 저는 괜찮습니다!”
도운은 반발하는 지상욱을 무시했다.
최희석은 그런 지상욱을 빠르게 훑었다.
지상욱은 운동이라곤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 보이는 비쩍 마른 몸의 소유자였다.
몸에서 B급 헌터 수준의 마나가 느껴지긴 했지만, 그에 비하면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함께 싸울 동료가 아니라 보호해야 할 약자였다.
“그렇게 하지.”
그는 백도운의 판단에 긍정하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홍수정과 지상욱을 꼭 지켜 주겠다고 다짐하는 듯했다.
지상욱이 실망하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을 본 도운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거침없이 초록색 문을 열었다.
최희석은 그 자신만만한 모습이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오…?”
바깥으로 나서자, 누군가가 감탄하는 소리를 흘렸다.
그 목소리는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서 들려왔다.
수정 공방을 포위하고 선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바로 눈앞에 보고 있는데도 기척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의지란 게 없는 인형들 같았고, 시체 같아 보이기도 했다.
마나가 느껴지고 있어 죽은 건 아니었다.
“이렇게 마중을 나와 주실 줄은 몰랐는데요.”
탄성을 흘렸던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검은 로브를 두른 남자는 가슴께에 버섯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그걸 보고 최희석이 중얼거렸다.
“크라우드….”
“오, 알아보시는 겁니까? 영광이군요, 최희석 님.”
“여긴 왜 온 거냐.”
“인사나 할까 하고 찾아왔습니다. 물론, 최희석 님이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그러고는 버섯은 최희석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후드를 눌러쓴 그의 시선이 도운에게 닿았다.
도운은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역시 나 때문이었구나?”
“반갑습니다. 백도운 씨.”
“너는 내가 반갑냐?”
“그럼요. 당신은 내게-”
“이정근? 설마 카니스가 크라우드와 동맹을 맺기로 한 건가.”
최희석이 한 남자를 발견하곤 말을 내뱉었다.
도운과 버섯이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봤다.
한 남자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서 있었다.
남자 또한 다른 이들처럼 기척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인형 같은 모습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이정근?”
“…….”
“아, 그는 지금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음?”
“제가 정신을 지배하고 있거든요.”
“뭣? 정신을?”
“네. 이렇게요.”
버섯이 손뼉을 쳤다.
최희석이 곧바로 앞으로 나서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공방을 나서기 전 도운에게 말했던 대로 홍수정과 지상욱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 준비가 무색하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방패를 들어 올렸던 최희석은 의문을 느끼며 방패를 내렸다.
버섯이 손뼉을 쳤던 건 그들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음을 직접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이정근을 제외한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웬 버섯이 자라나 있었다.
“…버섯?”
뒤에 있던 홍수정이 작게 중얼거렸다.
목소리에는 흥미로움이 가득해 당장이라도 그녀의 흥미를 끈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은 듯 보였다.
반면 최희석은 그 꼴들을 보며 흥미로움을 느끼기는커녕 눈을 찌푸렸다.
대처 저 해괴한 모습은 뭐란 말인가.
그런 의문이 속으로 절로 중얼거려졌다.
그런데,
“오, 귀여워. 정수리에 무언가 자라나는 게 저런 모습이구나?”
도운이 신난 목소리로 이상한 말을 했다.
***
갑자기 궁금해졌다.
정수리에 새싹이가 소환됐을 때 내 모습은 어땠을까.
머릿속에서 버섯을 새싹으로 대치해 본다.
음, 역시 우리 새싹이가 자라난 모습이 더 귀여울 것 같다.
“귀엽다니, 이 모습을 보고 그런 감상을 말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그래?”
“네. 흔히들 끔찍하다고 평하거든요.”
하긴, 저 버섯들은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기 위한 용도였다.
끔찍하다는 사람들의 평가가 더 옳은 평가일 것이다.
나도 따지고 보면 정수리 위의 버섯이 새싹이 같아서 반가움을 느꼈을 뿐이다.
그런 게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끔찍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역시 도운 씨입니다.”
후드에 가려진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쿡쿡 웃는 녀석의 가슴께에 달린 브로치가 달랑거린다.
버섯 모양의 황금색 브로치.
맹독을 다루던 녀석은 지네 인간이, 거대한 말벌을 부리던 녀석은 벌 인간이 되었다.
그럼 녀석은 버섯 인간이 되지 않을까.
버섯 인간.
상상은 잘되지 않았다.
한번 보고 싶긴 하네.
“자, 구경 한번 해 볼까요.”
녀석이 뒤로 물러나며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정신을 지배당하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최희석에게 이정근이라고 불렸던 남자였다.
“조심해! 녀석은 A급 헌터가 되자마자, 현상범이 된….”
뒤에서 말하던 최희석이 입을 다물었다.
잿빛의 마나가 모이더니 이정근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정근은 금세 머리가 세 개인 거대한 개 같은 모습이 됐다.
그러고는 “컹!”하고 짖어 댔다.
“허? 이정근이 변신 능력자라는 소린 못 들었는데?”
“아니, 아니에요! V 물질! 그걸 과다 복용한 게 틀림없어요!”
“나, 나도 저랬었나?”
세 사람이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으니 놀라는 건 당연했다.
따라서 행동이 가장 빨랐던 건 나였다.
침착하게 화면을 두드리고 있던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버섯 인간들은 무시했다.
그 녀석들은,
“부탁합니다!”
“음!”
최희석에게 전부 맡겼다.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헌터답게 금방 제정신을 차렸다.
검과 방패를 들어 올리고 두 사람을 지키면서 버섯 인간들을 제압해 나갔다.
“크허엉!”
개새끼가 울부짖었다.
이제 이 개새끼한테만 집중하면 되겠군.
시선을 앞으로 돌리자 세 개의 머리가 아가리를 한껏 벌렸다.
나를 사정없이 물어뜯으려는 것이다.
차례대로 하나씩 닫히는 아가리들을 피하며 다가간다. 따스한 손길을 쓴 검지로 가장 오른쪽 개 머리의 콧잔등을 후려친다.
“캥!”
녀석은 개소리를 내며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어째 행동하는 것이 정말 개 같다.
아니, 지상욱처럼 의식이 없을 테니 진짜 개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방어력은 제법인걸.
사실 머리를 터트릴 생각으로 후려친 거였는데.
오른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아르카.”
쾅!
손에서 아르카가 곧장 한가운데에 있는 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녀석은 이해하지 못할 개소리를 짖어 대더니 머리들을 모았다. 머리 세 개가 한자리에 모이자 실드 마법이 발동됐다.
전직 A급 헌터의 실드 마법은 새싹이가 던진 아르카를 막아냈다.
머리를 꿰뚫지 못한 아르카가 손으로 되돌아왔다.
“이야. 대단하다, 너?”
“크허엉!”
“…….”
그래, 짐승 새끼랑 무슨 대화냐.
아침 이슬을 먹이면 제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을 텐데, 새싹이가 준 한 방울은 이미 써 버렸다.
수중에 있었다고 해도 먹이지 않았을 거긴 하다.
최희석은 녀석을 현상범이라고 했으니까.
아르카에 마나를 불어 넣으면서 나를 향해 달려드는 이정근을 베었다.
휘둘러지면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칼날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해치지 않고 횡으로 그어졌다. 내 의지에 따라 오로지 거대한 개만을 베어 낸다.
정확하게 상체와 하체가 반으로 갈라진 개가 내 옆으로 툭툭 떨어졌다.
“캐, 캐앵….”
“징그러운 놈. 두 동강 났는데도 살아 있어?”
몸을 회복하는 스킬이 있었던 것 같다.
두 동강 난 몸이 도로 합쳐지기 위해서 꿈틀거리며 제 짝을 찾았다.
조금 보기 흉한 모습이어서 시선을 돌렸다.
최희석을 도와줄 요량이었다.
“오. 과연 헌터 랭킹 79위.”
도울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는 그 짧은 사이에 버섯 인간들을 전부 제압해 포박하고 있었다.
옆에선 지상욱이 그를 도왔고, 홍수정은 포박당하는 버섯 인간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고개를 공방 반대쪽으로 돌렸다.
뒤로 물러났던 크라우드 녀석을 보기 위해서다.
왜일까.
제 부하 놈들이 순삭당했는데도 웃고 있는 건.
녀석은 관객처럼 손뼉까지 쳐댔다. 당연히 이렇게 되리라는 걸 예상한 듯하다.
“과연 훌륭하십니다.”
“너 지금 뭐 하냐?”
영문을 알 수 없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태도를 보아하니 녀석의 목적은 나를 죽이는 게 아니었다.
대체 놈은 무슨 목적으로 날 찾아온 걸까.
“네?”
“장난치러 왔냐고.”
“아? 아아. 말 제대로 안 들었군요? 아까 말했잖습니까?”
말했었다고?
눈을 찌푸리자 녀석이 씩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인사나 하러 찾아온 거라고.”
“…….”
분명 그랬다.
“인사나 할까 하고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했었다.
아니, 그게 정말 인사만 하러 왔다는 소리일 줄은 몰랐지….
“난 당신이 마음에 듭니다, 도운 씨.”
“지랄. 언제 봤다고 내가 마음에 들어?”
“정말입니다. 계속 이렇게 해 주기를 바랄 정도예요. 앞으로도 힘내십시오. 아, 이 응원 진심입니다?”
놈은 나를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호탕하게 하하하 웃어대기까지 했다.
후우, 이거 왠지 이상한 놈한테 걸려든 거 같은데.
“썩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으니 된 것 같군요.”
“뭐, 이대로 갈 것처럼 말한다?”
“그럼요? 인사했으니 돌아가야죠.”
“나는 그러면 널 그냥 보내 주고?”
아르카를 놈에게 겨눴다.
푸른 칼날이 향하는데, 놈은 대수로워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안 보내 주시면 어떡할 건데요?”
“죽여야지. 내 퀘스트를 위해서.”
“퀘스트? 그게 뭡니까?”
“그건 네가 알 거 없고.”
“좀 가르쳐 주시지 야박하네요. 우리 사이끼리.”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그런 말을 해온다.
대체 우리가 어떤 사인데, 미친놈아.
이게 도희랑 태천이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하네.
“그럼 정말로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니, 나는 보내 줄 생각이-!”
놈의 발밑에서 하얀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이동 마법진이다.
순식간에 발동된 걸 보면 사전에 마법 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르카를 놈의 몸에 쑤셔 박기 위해서다.
하지만,
“다음에 또 봬요! 백도운 씨.”
놈은 해맑게 손을 흔들어 대다가 사라졌다.
주변을 돌아보면서 새싹이에게 물었다.
“새싹아, 혹시 기운 느껴져?”
[세계수 어린나무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전합니다.] [현재 혐오스러운 기운은 개한테서만 느껴지고 있다고 전합니다.]역시.
이동 마법까지 썼는데 근처에 있을 리 없지….
“쩝. 한 방 먹었네.”
“수고했네, 도운 군.”
최희석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내가 한 방 먹었다며 늘어지는 모습을 보고는 위로해 주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 정돈 아닌데.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부러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수고는요. 똥개 한 마리 상대한 게 전분데.”
“그 똥개 말인데, 원래대로 돌아오게 할 수 있겠나?”
그가 이정근을 가리키며 묻는다.
놈은 두 동강 났던 몸이 붙어 있었다.
전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엎드려 있었지만.
아무래도 정신 지배 상태가 유지되고 있어서 그런 듯하다.
다음 명령을 받지 않았으니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가만히 대기하는 것이다.
“할 수는 있는데, 그래 줘야 합니까?”
“음?”
“범죄자라면서요. 그냥 죽여 버리죠?”
그가 눈을 크게 떴다.
뭘 그렇게 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