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72
제72화
“어서 와요.”
“늦어서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제주도에 있었다면서요. 오히려 바로 와 줘서 고마운걸요.”
밤늦게 수정 공방에 도착했다.
지상욱과 함께 홍수정을 따라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들어가니, 작업실에 웬 남자가 있었다.
한 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A급 헌터 최희석.
아르카와 솔방울을 챙기러 서울 월드컵경기장에 갔을 때 마주쳤던 아저씨다.
저 사람이 여기엔 왜 있는 거지?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자 그가 다가왔다.
2m가 넘는 그가 다가오자 시야가 꽉 찼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다시 보니 반갑군.”
“그러게요. 반갑습니다.”
“그쪽은?”
“아, 여긴-”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상욱이라고 합니다! 현재 B급 헌터입니다!”
뒤에 따라오던 지상욱이 상체를 푹 숙여 인사했다.
최희석은 그 모습을 보곤 허허 웃었다.
녀석에게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반갑네, 난 최희석이라고 하네.”
“영, 영광입니다!”
지상욱이 두 손을 옷에 슥슥 닦고 공손하게 그의 손을 맞잡았다.
대체 이 예의 바른 청년은 누구란 말인가.
어이가 없어서 지상욱을 쳐다봤다.
최희석을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은 선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최희석의 팬인 모양이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최희석은 20년째 헌터 일을 하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그것도 가늘고 길게 헌터 자격증만 유지해 온 게 아니라 굵고 길게 협회 소속 헌터로서 몬스터 토벌 및 부상자 구출 등 여러 퀘스트를 해결해 온 헌터다.
나나 지상욱은 최희석이 활약하는 걸 보고 자란 세대였다.
난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아, 무슨 사이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앞으로 중요한 얘기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네! 전 도운 형님의 의동생입니다!”
의동생? 누구 마음대로 의동생이야?
지상욱과 의형제 같은 거 맺은 적 없었다.
굳이 관계를 정리하자면 나와 저 녀석은 은인 사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걸 정정하려고 했는데, 둘의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지상욱과 최희석은 마치 팬미팅을 하는 듯 화기애애했다.
부드러운 기운을 깨뜨리는 게 미안할 정도로 순수한 스타와 팬의 만남이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제가 불렀어요.”
홍수정은 둘의 훈훈한 분위기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았다.
분위기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바이올렛 바이올런스 연구 결과 때문에요.”
“흠?”
바이올렛 바이올런스.
역시 그녀가 날 찾은 건 그것 때문이었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내가 연구를 부탁한 포션의 결과가 나왔는데 왜 최희석을 부른 걸까.
그런 내 생각이 표정에 드러난 걸까?
홍수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사과를 해 왔다.
“미리 허락받지 않아서 미안해요. 사안이 워낙 중요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별로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저 최희석이 이곳에 있는 게 궁금할 뿐이다.
사과를 받지 않고 대화를 끌고 나가기로 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요?”
“우선, 연구 결과를 말씀드리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물어보세요.”
“도운 씨, 혹시 ‘바이올렛 파우더’라고 알아요?”
바이올렛 파우더?
직역하면 보라색 가루인데, 처음 듣는 것이다.
“아뇨, 처음 듣습니다. 그게 뭡니까?”
“그건-”
홍수정이 대답하려는 찰나 옆에 있던 지상욱이 입을 열었다.
“능력자용 마약입니다, 형님.”
“알아?”
“네, ‘바바’ 구매할 때 세트로 함께 팔던 겁니다.”
“바바?”
“바이올렌 바이올런스요. 바이올렛 파우더도 줄여서 ‘브이피’라고 더 부릅니다.”
바바, 브이피.
뭐 이렇게 통일성이 없어.
바바는 한글로 앞글자를 따놓고선 왜 브이피는 영어로 앞글자를 딴 거야?
그나저나 능력자용 마약이라고?
눈을 게슴츠레 뜨고 지상욱을 쳐다봤다.
“너 진짜 약쟁이였냐?”
“예? 아닙니다! 저 마약 안 합니다!”
“정말이야? 어쩐지 시험의 탑에서 약쟁이라고 부르니 화를 냈던 게 미심쩍은데?”
“아, 형님! 정말입니다!”
손을 휘젓는 지상욱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거짓에 제 발 저린 흔들림은 아니다.
나와 최희석을 번갈아 가며 쳐다봐서다.
“그땐 그냥 성질이 뻗쳤던 거고요! 형님의 그 약 올리는 표정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우상인 최희석이 있어 더 당황한 거 같다.
팬으로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거겠지.
녀석은 나만 설득하는 게 아니라 최희석도 설득하려고 애썼다.
“마약 구매하기 싫어서 훨씬 비싼 데도 저렴한 세트로 안 사고 단품으로 구매했습니다!”
“정말인가?”
“네!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지상욱은 울상이 되어서는 나와 최희석을 바라본다.
저 얼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정말인 것 같다.
저게 연기다?
그럼 지상욱은 직업 잘못 고른 거다.
헌터가 될 게 아니라 오스카를 가기 위해 배우가 돼야 했었다.
최희석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허허 웃기만 했다.
“아무튼.”
홍수정이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시선을 자신에게로 모으기 위해서였다.
나를 포함한 세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이동했다.
“최희석 헌터는 저한테 바이올렛 파우더 연구 의뢰를 맡겼어요.”
“정확하겐 협회 의뢰지. 난 전달을 부탁받았을 뿐이고.”
“협회가 직접 의뢰했다고요? 보통 마약이 아니군요?”
“그래, 도운 군 예상이 맞아. 그 마약은 복용한 자의 공격성을 끌어올려 문제가 되고 있어.”
능력자용 마약이다.
능력자는 대부분 헌터들이고.
그런 헌터들의 공격성이 올라갔다?
“…끔찍한데.”
어떤 사고가 있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헌터가 툭 때린 행동도 일반인들에겐 치명적인 공격 행위가 된다.
그런데 공격성이 올라가 힘 조절을 못 했다면….
“그런 게 왜 뉴스에 나오지 않은 겁니까?”
“요새 누구 덕분에 한국이 시끌시끌하거든.”
“누구요?”
세 명은 대답하지 않고 날 바라본다.
나 때문이구나….
“바이올렛 파우더는 사실 평범한 능력자용 마약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그럼….”
“딱 하나. 처음 보는 물질이 있었지만요. 그것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마침 제 수중에 바이올렛 바이올런스가 들어왔어요.”
“아.”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루 이틀 정도 더 걸릴 거라던 연구가 빨리 끝난 이유를 알았다.
“그 물질, 바이올렛 바이올런스에도 있었군요?”
“네, 바로 그게 두 분을 함께 모신 이유예요.”
나와 최희석을 한자리에 모은 이유를 이해했다.
최희석도 날 부른 이유를 몰랐었는지,
“이름만 비슷한 건 줄 알았더니, 그 두 가지가 같은 것이었군.”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바이올렛 파우더.
바이올렛 바이올런스.
그의 말마따나 두 개는 이름이 비슷했다.
지상욱은 그걸 한 세트로 함께 판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브이피의 출처는 분명 바바처럼 크라우드일 거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아냈습니까?”
“네. 그 ‘V 물질’은 복용했을 경우 배출되지 않고 머리와 심장쯤에 점점 쌓이게 돼요. 쌓이고 나서는 해독도 되지 않고요.”
“그게 쌓이면 어떻게 되지?”
최희석의 질문에 홍수정은 침을 삼켰다.
그다음 말이 무엇일지 예상이 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몸이 점점 변하고, 정신적 장애도 앓게 돼요. 마치, 몬스터처럼요.”
“정리하자면, 많이 복용하면 몬스터처럼 변하게 된다는 건가?”
“네.”
그녀의 말에 나는 바로 지상욱을 쳐다봤다.
녀석도 눈이 주먹만 해져서는 나를 마주 봤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 분명하다.
“혀, 형님….”
“그래, 아무래도 네 몸이 변한 게 그 V 물질 때문인 것 같다.”
“무슨 소리예요?”
홍수정이 물었다.
최희석도 궁금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엄지를 들어 지상욱을 가리켰다.
“이 녀석이 바바 과다 복용으로 몸이 변했었습니다.”
“네? 뭐라고요!”
두 사람은 깜짝 놀라서 지상욱을 바라봤다.
최희석은 다시 확인해 볼 요량으로 “정말인가?”라고 물었다.
지상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몸이 블랙 만티코어처럼 변했었습니다.”
“정말요? 얼마만큼 변했어요? 몸 전체가요?”
홍수정이 꼬치꼬치 캐물었다.
자기가 연구한 물질에 의한 작용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네, 네. 몸 전체가 변했습니다.”
“허어, 정말로 몸이 변했단 거군?”
“네, 그렇습니다.”
“으아, 잠시만요!”
홍수정이 지상욱에게 다가갔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서 폭발한 거다.
그녀는 아이템들을 감정하듯 지상욱을 살펴봤다.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냄새를 맡고, 만져 보는 등 난리를 쳐댔다는 거다.
세계수 재료들에 그랬던 것처럼 핥고 빨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1분 정도 감정을 했을까?
그녀가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변했었다고요? 평범한데요?”
“아, 그게….”
지상욱이 대답을 하려다 말고 날 쳐다봤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아도 되겠냐고 묻는 거다.
고개를 끄덕여서 된다고 했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녀석은 바로 두 사람에게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도운 형님이 되돌려 주셨습니다.”
“네? 도운 씨가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떻게요?”
“자, 수정 양. 좀 진정하게.”
“아, 죄송해요.”
“상욱 군.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네!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두 사람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지상욱을 쳐다봤다.
한라산 게이트에서 녀석의 모습은 영락없이 몬스터였다.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자신을 제외한 존재들을 먹잇감으로 봤었다.
세계수의 아침 이슬을 먹이기 전까지는 대화도 통하지 않았다.
그저 먹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몬스터 한 마리에 불과했다.
“…크라우드 놈들. 사람을 괴물로 바꾸는 게 목적인가? 어째서?”
도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놈들의 목적이 ‘세상 전복’이라고 말했었다.
왜 정복이 아니라 전복이라고 하나 궁금했는데, 이젠 이유를 알 것 같다.
사람을 몬스터처럼 만드는 것은 확실히 정복보다는 전복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았다.
응?
잠깐만. 그럼 도희랑 태천은 놈들의 목적을 알고 있다는 건가?
왜 이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던 걸까.
흠, 생각해 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그 둘이니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
주변이 조용하다.
설명이 벌써 끝난 건가?
최희석이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날 보고 있다.
다른 두 명은 영문을 몰라서 최희석을 봤다가 나를 봤다.
“뭡니까?”
“방금 뭐라고 했나?”
방금?
내가 뭐라고 했더라?
“아. 사람을 괴물로 바꾸는 게 목적-”
“아니, 그 앞에.”
“크라우드 놈들?”
“그래, 그거!”
최희석이 손가락 하나를 내민다.
마치 크라우드 라는 단어를 콕 집는 듯했다.
“그게 왜요?”
“크라우드가 전 세계 수배된 테러 조직인 거 아나?”
“네, 알고 말한 겁니다.”
“허, 저것들의 출처가 그놈들이라고?”
“몰랐습니까?”
“몰랐네, 중간 판매업자들은 좀 알았지만.”
그리 말하는 그의 얼굴에선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그가 몰랐다는 건 헌터 협회에서도 출처를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일에 대해서 협회가 소속 헌터 중 최고인 그에게 말해 주지 않았을 리 없으니까.
“그럼 협회는 이 일에 관해-”
[세계수 어린나무가 혐오스러운 기운을 느꼈습니다.]“응?”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지상욱을 봤다.
녀석은 “왜 그러세요, 형님?”하고 묻는 듯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혐오스러운 기운의 주인은 녀석이 아니었다.
하긴, 지상욱이었다면 새싹이는 기운이 아니라 시선이 느껴진다고 했을 거다.
날 보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손님이 찾아왔군요.”
크라우드가 근처에 있다는 뜻이다.
왜 왔는지까지는 모르겠다.
나를 노리고 온 것 같긴 하지만, 이곳엔 헌터 랭킹 79위인 최희석도 있었다.
놈들은 우리 둘 중 누굴 노리고 있을까.
“손님이요? 오늘 찾아올 사람 없는데요?”
“그런 손님을 말한 게 아닌 것 같군.”
“네?”
“불청객이 찾아온 거지. 안 그런가?”
최희석은 마법 주머니에서 장비들을 꺼내 착용했다.
과연, 그에게서 79위 헌터의 기세가 느껴졌다.
마치 옆에 태천이가 있는 것처럼 든든하다.
“마중하러 가 볼까요?”
아무리 불청객이라고 해도, 객은 객이다.
그렇다면 마중하러 나가 줘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