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71
제71화
두 사람이 어두운 복도를 걷는다.
안내인과 안내받는 사람다운 침묵이 깔려 있다.
앞서 걷던 남자가 뒤를 흘깃 돌아본다.
검은 로브로 온몸을 가린 사람은 조용히 따라왔고, 처음 오는 곳일 텐데도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남자의 시선이 가슴께로 내려간다.
가슴께에는 버섯 모양의 황금 브로치가 달려 있다.
황금 브로치.
그것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테러 조직 크라우드의 간부임을 증명하는 물건이다.
“궁금한 거라도 있습니까?”
대뜸 질문을 던져 왔다.
뒤를 흘깃흘깃 돌아보던 남자는 얼굴을 붉혔다. 훔쳐보는 것을 들킨 게 퍽 민망해서다.
남자는 변명하듯 말했다.
“미안합니다. 그 크라우드의 멤버가 우리 보스를 만나러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가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는 했습니다. 우리 보스, 괴물처럼 강하긴 하니까.”
“괴물처럼, 입니까?”
“네. 정말, 괴물처럼….”
말끝을 흐리며 몸을 부르르 떤다.
머리가 아니라 몸에 각인된 공포 때문이었다.
그걸 보고 버섯은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었다.
남자는 그 웃음을 보지 못했다.
곧 남자의 안내가 거대한 문에 막혀 끝이 났다.
“안쪽에서 보스와 간부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안내 수고했습니다.”
버섯이 고개를 숙인다.
남자는 어색하게 웃고는 문 앞을 떠났다. 안내인인 남자는 자격이 없어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혼자 남은 버섯은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
두 개의 문은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열렸다.
안쪽에서 문을 연 것이다.
덩치 좋은 남자 두 명이 각각 한쪽 문을 붙든 채로 고개를 숙였다.
버섯은 남자들의 인사를 받아 주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거대한 문에 어울릴 만큼 컸고, 그 크기처럼 많은 사람이 버섯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공격을 대비하는 것처럼.
“…….”
버섯은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갔고, 그를 위해 준비된 듯한 소파에 앉았다.
맞은편 소파에는 세 남녀가 앉아 있었다.
한 남자가 가운데에 앉아 있고, 두 여자가 양옆에서 남자의 품에 안겨 있다.
뒤쪽 세계의 길드 ‘카니스’의 보스 ‘이정근’이었다.
이정근은 버섯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양옆에 있는 여자의 입술만 번갈아 가며 탐했다.
30초, 1분, 5분이 지나가도록.
그러다가 이정근이 두 여자를 안았던 팔을 거뒀다.
“재미없게.”
“다 했습니까? ‘미친개’ 이정근 씨.”
버섯은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묻는다.
이정근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래, 크라우드시라고?”
“네.”
“뭐 때문에 날 찾아오셨을까? 요즘 천칭 놈들이랑 놀고 있던데. 그것 때문에 오셨나?”
“아, 그건 아니고요. 다른 일 때문에 왔습니다. 백도운을-”
“좋아, 맡도록 하지.”
“네…?”
선뜻 하겠다는 말이 나와 버섯은 입을 다물었다.
5분 동안 여자의 입술을 물고 빠는 꼴을 태연히 쳐다보던 그가 당황한 것이다.
이정근이 마음에 든다는 듯 씩 웃었다.
“그 크라우드가 내게 일을 맡긴다는데, 당연히 해 드려야지.”
“시원시원해서 좋네요.”
“단.”
그럼 그렇지.
버섯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 뭐죠?”
“그쪽이 진짜 크라우드라면 말이야.”
“네?”
조건을 듣고 난 버섯은 되묻고 말았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진짜 크라우드에게 ‘크라우드라면’이라는 조건을 붙인다는 게 무슨 장난질인가 싶었다.
앞으로 상체를 내밀었던 이정근이 다시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나도 이쪽에서 잔뼈가 굵은 몸이다. 크라우드와도 몇 번 마주쳐 봤지.”
“그래서요?”
“놈들에게선 하나 같이 냄새가 났다. 아주, 아주 위험한 냄새가.”
“냄새라니. 역시 ‘개’답군요.”
그것은 비아냥이었다.
미친개라는 별명을 가진 그를 비웃는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 벽에 서 있던 카니스들이 눈에서 불을 뿜었다.
버섯을 죽일 듯이 꼬나보는 그들은 보스가 명령을 내리면 당장 달려들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보스에게 아주 충직한 개떼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킥, 키키킥.”
이정근의 웃음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
그제야 카니스들의 눈에서 사나운 불이 사라졌다.
“그래, 내가 개인 건 맞지.”
“쉽게 인정할 줄은 몰랐네요.”
“개가 어때서? 난 그 별명이 마음에 들어.”
“…….”
“아무튼, 나는 네가 정말 크라우드인지 의심스럽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바이올렛 파우더’를 드렸을 텐데요.”
“요긴하게 썼지.”
그러면서 이정근은 여자들을 돌아봤다.
양옆의 여자들은 침을 질질 흘린 모습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동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것이다.
“역시 너무 많이 먹였나?”
“그걸 일반인에게 먹인 겁니까? 능력자용 마약인데요.”
“먹였다니?”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남자 몇 명이 다가와 여자들을 치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말을 이었다.
“누가 보면 억지로 먹인 줄 알겠네. 지들이 달라고 애원해서 준 거야.”
이정근은 히쭉 웃는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빈 봉투를 꺼낸다.
“다 써 놓고 이런 말 하긴 미안하지만, 이건 증거가 되지 않아.”
툭.
바이올렛 파우더가 담겨 있었을 빈 봉투가 떨어졌다.
“바이올렛 파우더는 지하 매장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잖아?”
“후우, 좋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내가 크라우드라는 걸 믿어 줄 거죠?”
“증거를 보여야지. 내가 믿어 의심치 않을 증거.”
그러더니 이정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잿빛의 마나가 그에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그의 부하들이 힘들어할 정도로 많은 양의 마나가 응집하기 시작했다.
곧 이정근의 몸이 뿌드득거리며 변해 머리가 세 개인 거대한 개의 모습이 되었다.
신화에서 나오는 지옥의 문지기와 같은 모습이었다.
“도망칠 거라면 지금뿐이다. 쫓지는 않아 주지.”
“거짓말도 잘하시네요. 사냥개가 사냥감을 쫓지 않겠다고?”
믿을 수 없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버섯은 웃음을 참지 않으며 일어났다.
“차라리 개가 똥을 끊지.”
“흐흐, 똑똑하군 그래.”
“사냥개 주제에.”
그가 한 발 앞으로 내디딘다.
그러자 주변에 서 있던 이정근의 부하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정근이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부하들이 맥없이 쓰러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감히 그 힘을 준 주인에게 대들어?”
“뭐?”
“이정근. ‘권속의 권속이 된 자’여. 내게 복종해라.”
“대체 무슨….”
이정근은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했다.
멍한 두 눈은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했다.
“앉아.”
명령이 떨어지자 이정근이 곧바로 네 다리를 굽혔다.
훈련이 잘된 커다란 개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버섯은 웃음을 터뜨렸다.
“기다려라, 백도운!”
***
누가 내 얘기를 하나.
아까부터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러워?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알림 창을 쳐다봤다.
[이번에 세계수의 뿌리로 얻게 된 마나는 총 22만1020입니다.] [첫 번째 결실까지 앞으로 90% 남았습니다.]이놈의 결실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
눌러 봐도 설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려오는 동안 세계수의 뿌리로 다른 레드 만티코어를 사냥해 봤지만 메시지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기는 했다.
캐릭터 창에 결실 저장고 칸이 생긴 것이다.
[결실 저장고 – 10% 이상]이런 식으로.
마나를 얻으면 결실 저장고가 오르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레드 만티코어를 사냥했을 때는 오르지 않았다.
종류에 따라 오르기도 하고 오르지 않기도 하는 걸까?
“아니, 그러니까, 괴물이 되셨다고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헌터 협회 직원과 지상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라산 게이트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서다.
협회 직원은 퇴근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못하고 있어 짜증이 난 것 같았다.
“네, 그렇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어요.”
“저야말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곳에서 만났던 열한 명의 헌터에게는 비밀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부탁을 들어주었다.
딱 한 명, 똑 부러지게 생긴 한 헌터만 “협회에는 보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협회에까지 숨길 생각은 없어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협회가 이 일에 관해 미리 알아야 앞으로 혼란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
비밀을 지켜 달라는 건 방금 일을 무분별하게 퍼뜨리지만 말아 달라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협회에 와 있었다.
“지상욱 헌터님. 그 말씀을 저보고 믿으라는 거예요?”
“정말입니다!”
“후우, 박 씨 아저씨한테 말 들었어요.”
“네?”
“요즘 몰골이 말이 아니라고 걱정 많이 하시던데,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좀 쉬세요.”
“아니….”
지상욱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 외모는 말라비틀어졌지만, 완벽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괴물처럼 변했었다는 증거는 없었다.
증거가 없었으니 설득할 수도 없었다.
정신 착란 같은 걸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게 더 믿기 쉬우리라.
협회 직원도 그래서 “좀 쉬세요”라고 말한 것일 터.
이럴 줄 알았으면 게이트에 있던 다른 헌터들과 함께 올 걸 그랬나.
차라리 블랙 만티코어 같은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으면 설득하기 쉬웠을 텐데.
“자, 그만 돌아가세요. 꼭 쉬시고요.”
그러자 지상욱이 날 쳐다본다.
팔자로 늘어진 눈썹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형님….”
얜 또 갑자기 왜 나한테 형님이라고 한담.
날 쳐다보는 녀석에게 어깨만 으쓱여 보인다.
내게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증거가 있어야 설득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바이올렛 바이올런스 얘길 꺼내도 이해시키긴 어려울 거다.
증명되지 않았으니까.
포션 전문가도 아닌 내가 말해 봐야 설득력도 없을 것이고.
그러니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는 문제에나 대비해야겠다.
스마트폰을 협회 직원 앞으로 내밀었다.
“……?”
“지상욱 헌터가 괴물로 변했고 백도운 헌터가 그걸 되돌려 주었다. 우린 분명 헌터 협회 제주 지부, 어, ‘최은아’ 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니, 뭐 이런 걸 갖고 녹음을….”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후우, 네, 네. 분명하게 전해 들었습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찌푸린 얼굴에선 귀찮음이 덕지덕지 묻어나 있었다.
됐다.
이제 왜 사전에 보고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변명할 거리가 생겼다.
스마트폰 화면을 전환했다.
다시 어린나무 상태의 새싹이가 떠올랐다.
귀여우면서도 늠름한 모습이다.
“어, 어? 그냥 갑니까?”
“그럼? 안 가냐?”
“하지만….”
“믿지 않는데 계속 설득하려고 해 봤자 헛수고야. 해야 할 거 해 줬으면 된 거지.”
그러고 나서 협회 건물을 빠져나갔다.
지상욱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날 따라 나왔다.
혼자 남아 봐야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고 판단했겠지.
“형님 앞으로 어떡하실 겁니까?”
“…….”
백도운, 백도운 하며 이름 부르던 놈은 대체 어딜 간 걸까.
빤히 쳐다보자 지상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는다.
“흑돼지 어떻습니까? 제주도 하면 흑돼지 아닙니까.”
“맛있긴 하겠네.”
“그럼-”
“가야 할 곳 있어서 안 돼.”
“그렇습니까? 아, 혹시 ‘이시형’ 찾아가시려고요?”
이시형.
그건 시탑TV 제작자의 이름이었다.
지상욱은 이름, 사는 곳, 주 활동지 등등 전부 다 대답했다.
괴물의 몸에서 원래대로 되돌려 준 은인이니 당연하다.
물론,
“제가 알아서 처리해 드리겠다니깐요?”
그런 말도 덧붙였었다.
나 귀찮지 않게 알아서 잘하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알아서 하겠거니 싶었다.
지금부터 가려는 곳은 병원이었다.
“병원? 거긴 왜 가시는 겁니까?”
“왜 가긴, 너 때문에 가지.”
“저요?”
“그래, 네 몸 상태 제대로 확인해 봐야지.”
“아.”
물론,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괴물의 몸에서 인간의 몸으로 되돌리는데 사용한 것은 다름 아닌 세계수의 마나였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라는 마음으로 진료를 받게 하려는 거다.
그때 스마트폰을 쥔 손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유재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금 어디야? 수정이가 공방으로 당장 와 달래.]공방으로 와 달라….
그 이유가 바이올렛 바이올런스 때문일 것 같은 기분은 왜일까?
지상욱을 쳐다봤다.
“목적지 바꿔야겠다.”
“네, 전 상관없습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서울.”
당장 와 달라니 가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