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8
제8화
고개를 쳐들어 한 빌딩을 바라본다.
청담동에 있는 일대 그룹의 빌딩이다.
생필품부터 가전제품까지 침투하지 않은 사업이 없어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기업.
심지어 우찬성 회장의 아들은 A급 헌터로 활동 중이다.
그 아들을 서포트하기 위해서인지 3년 전 헌터 산업에도 뛰어들었다.
우려하는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젊은 기업 이미지까지 챙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웬 가면을 쓰고 있어요?”
이 대리의 목소리에 생각하던 것을 멈췄다.
당황스러운 얼굴을 한 이 대리는 내 옆으로 다가오다 멈춰 섰다.
가면 쓴 저 이상한 놈과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마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리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꼬운 마음이 들어 이 대리에게 어깨에 팔을 둘렀다.
“정체 숨기려고.”
“정체를요? 왜 숨겨야 하는데요? 아니, 그보다 그딴 거로 숨길 수 있을 거 같아요?”
“당연히 못 숨기겠지.”
“……?”
이 대리가 이해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정체를 숨기려는 대상을 잘못 짚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체를 숨기는 게 목적이지만 일대 그룹 사람들에게 정체를 숨기는 게 목적은 아니었다.
상대는 대기업이다.
가면 하나로 정체를 숨길 수 있을 리 없다.
내 동선을 조금만 찾아봐도 정체쯤 10분도 채 안 돼서 파악할 수 있을 거다.
가면을 쓴 건 제삼자의 눈을 속이고 싶어서다.
“내가 얼굴을 드러낸 채 일대 그룹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별일 없겠죠. 팀장님이 뭐라고.”
“…그래,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 다만 백도희의 오빠고 이태천의 친구일 뿐.”
“아.”
입에서 탄성이 나온다.
깨달은 거다.
백도희 오빠, 이태천 친구.
그게 어느 위치에 있는 인물인지를.
내가 백도운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겐 백운천 길드가 일대 그룹과 접촉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설령 길드를 탈퇴했을지라도.
“가면 쓴 이유 이해했어요.”
“그래. 그러니까 넌 날 백도운이 아니라 식물 채집 스킬 전문가로서 소개해.”
“네? 뭔 전문가요?”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소개비는 챙겨 줄게.”
“팀장님이 무슨 식물 채집 전문가라고-”
“자, 그만하고 들어가자.”
이 대리의 목에 팔을 두른 채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회전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정확하게는 가면 쓴 얼굴이지만.
사람들은 나와 이 대리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젊은 경비원 두 명이 진지한 얼굴로 천천히 다가왔다.
마치 눈앞의 상대를 제압하려는 것처럼.
아.
“…괜찮습니다. 장난치는 거예요.”
헤드락을 풀면서 이 대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 대리는 “흠흠!” 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두 경비원은 날 향해 걸어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가면을 쓰고 있는 탓에 의심을 거둘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나 같아도 그럴 거다.
가면을 써서 얼굴을 가린 사람을 누가 내버려 둘까.
“괜찮아요.”
이 대리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앞으로 나섰다.
목을 살짝 어루만지기는 했다.
내가 너무 세게 졸랐나?
“아무 문제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신분증과 길드증을 내민다.
각각 신분증과 길드증을 확인한 경비원들의 눈이 살짝 커졌다.
“백운천!”
소속을 확인하고 놀라는 걸 보면, 백운천의 대단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태천이와 도희가 2년 동안 무리하고 또 무리해서 일궈 낸 결과다.
내 여동생과 내 친구가 이렇게나 대단하다.
“네, 확인됐습니다. 그럼 문제없겠죠.”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경비원들이 이 대리에게 신분증과 길드증을 돌려줬다.
백운천 길드 소속이라는 것만으로 그들은 가면을 쓴 나를 내쫓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 거다.
떠나가는 경비원들을 바라보며 이 대리가 말했다.
“이어서.”
“응?”
“일 잘못되면 난 모르는 일이에요. 팀장님이 다 알아서 한다고 그랬어요. 무르기 없기.”
“알았다니까.”
결론을 낸 우리는 프론트 데스크를 향해 걸어갔다.
프론트 데스크 앞에 서자 안내 직원 중 한 명이 이 대리를 알아봤다.
그녀는 이 대리에게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머, 이성훈 대리님.”
뭐야, 뭐야. 나 촉 되게 좋아.
이 대리를 쳐다본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작은 목소리로,
“일로 몇 번 마주친 것뿐이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라고 말했다.
일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백운천이 일대 그룹 본사에 들어올 정도의 일을 한 적이 없는데.
이 대리가 화사한 미소에 보답하듯 활짝 웃으며 안내 직원에게 인사했다.
화사한 미소와 활짝 핀 웃음.
봄이네, 봄이야.
“안녕하세요, ‘김민주’ 씨.”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어요?”
“두 분 계시죠?”
“네, 정례 회의 중이세요.”
“그거 그만두셔야 할 것 같아요.”
“네?”
“회장님께서 부탁하신 일 때문에 왔습니다.”
“……!”
나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던 안내 직원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미소 대신 떠오른 날카로운 눈빛은 평범한 프론트 데스크 직원들의 눈빛이 아니었다.
나는 그 눈빛들을 본 적이 있다.
먹잇감은 눈앞에 둔 맹수의 눈빛.
사냥감을 눈앞에 둔 헌터의 눈빛이었다.
그녀들은 평범한 프론트 데스크 직원이 아니리라.
민주라고 불린 안내 직원이 시선을 이 대리에게서 나로 돌렸다.
“혹시….”
“네, 맞습니다.”
시선이 내게 도정된 안내 직원의 의문에 이 대리가 대답했다.
순간 안내 직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 대리에게 얼굴을 내밀며 다그치듯 묻는다.
“정말! 정말이에요? 거짓말 아니시죠?”
“…거짓말했다가 민주 씨한테 무슨 꼴을 당하려고요.”
이 대리는 몇 초간 멈칫하다니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 같은 건 그저 나의 착각일까.
“잠시, 잠시만요!”
안내 직원은 다급하게 스마트폰을 챙기고는 프론트 데스크를 비웠다.
데스크 직원으로서 지양해야 할 행동이었지만, 남은 직원 중에서 그녀를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뭐랄까,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들 있었다.
프론트 데스크를 떠나는 안내 직원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씩 웃었다.
“돈 때문이라며?”
“…시끄러워요.”
그리 말하는 이 대리의 얼굴은 새빨갰다.
아, 이걸 해체업팀 아저씨들에게 언제 말해 주지?
이 대리가 사랑에 빠졌다니!
***
우찬성 회장은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게나 찾던 사람이 왔는데도 정례 회의를 다 끝낸 후 우리를 만나기로 했다.
그런 연유로 나와 이 대리는 회장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향이 좋은 차를 마시며 그를 기다렸다.
“죄송합니다, 회장님께서 중요한 안건이 있으셔서….”
회장실엔 우리 둘만 있는 게 아니었다.
1층 로비에서 봤던 김민주라는 이름의 프론트 데스크 안내 직원이 맞은편에 있었다.
회장 비서가 아니라 그녀가 있다는 게 이상했지만, 이 대리가 만족하고 있었으므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금방 끝내고 오실 거예요. 기다리던 분께서 오셨으니까요.”
“…그렇습니까?”
“네! 아, 참.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도 될까요?”
“이름…?”
“아, 민주 씨. 그게….”
이런.
정체를 숨길 생각만 했지 대신 말할 이름은 생각해 두지 않았다.
금방 알아내긴 하겠지만, 가면까지 써 놓고선 바로 말하기에는 민망했다.
이 대리도 마찬가지였는지 옆에서 입을 여닫는다.
다행히 김민주가 뭔가를 깨달은 듯 자기 이마를 치며 말했다.
“아! 바보같이. 가면을 쓰신 분에게 멍청한 질문을 했네요. 죄송해요.”
다행히 김민주는 혼자 긍정하고 이해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휴, 다행이다.
나는 뺨을 긁을 수 없어 대신 가면을 긁적이며 고민했다.
허무맹랑하고 어처구니없을 만한 이름으로 좋은 게 뭐가 있을까.
벌컥!
회장실 문이 열린다.
우찬성 회장이다.
이 대리와 김민주가 벌떡 일어났지만, 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그리 말하며 들어오는 우 회장 뒤로 두 남녀가 따라 들어왔다.
남자는 우찬성 회장의 아들 ‘우연후’였고, 여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우 씨 부자 뒤를 뒤따라오며 문을 닫는 걸 보니 비서인 듯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우 회장이 상석에 앉았다.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근육으로 몸이 두꺼웠다.
몸통 크기만 따져 보면 A등급 헌터인 우연후보다도 컸다.
누군지 모르고 마주쳤다면 대기업 회장이 아니라 베테랑 헌터라고 여겼을 거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딱딱한 인사는 됐으니 앉게. 민주, 너도.”
“저, 저도요? 차 내오지 않아도 되나요?”
김민주가 당황스러워하며 되물었다.
그러나 우 회장은 이미 온 신경이 나를 향했다.
우연후가 그녀를 다시 자리에 앉혔고, 자신은 그녀의 옆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마지막으로 들어온 비서가 우연후 옆에 앉았다.
“그래, 자네군. 이 대리가 찾았다는 식물 채집 능력자가.”
“반갑습니다.”
“우찬성이라고 하네. 이쪽은 내 아들 우연후. 저쪽은 내 비서 ‘엄주아’.”
“…‘따듯한 손가락’입니다.”
다들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날 쳐다봤다.
뭐. 어쩌라고.
“그런가, 따듯한 손가락. 썩 괜찮은 이름이군.”
그런 상황에서도 우 회장의 목소리는 무게가 있고 점잖다.
목소리만큼 점잖게 정돈된 머리와 턱선을 따라 자란 수염은 하얗다.
우 회장이 하얀 수염을 문지르며 조심스레 물었다.
“만나자마자 미안하네만, 자넬 시험해 봐도 되겠나?”
“시험?”
“자네가 정말 우담화를 채집할 수 있을지.”
“좋습니다.”
“시원시원해서 좋군. 연후야.”
“네, 아버지.”
우연후가 정장 주머니에서 종이뭉치를 꺼내 하나를 골라 테이블에 펼쳤다.
종이엔 지정 장소에 있는 물건을 소환하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옆에 앉은 이 대리가 얕은 탄성을 흘렸다.
주머니 속으로 도로 들어가는 종이뭉치엔 전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한국 굴지의 기업 클라스인가.
우연후는 소환 마법진에 손을 뻗어 마나를 불어넣었다.
종이가 사라지면서 대신 다른 무언가가 소환됐다.
버섯이었다.
당연히 평범한 버섯은 아니었다.
이 대리가 몸을 반쯤 일으키며 경악했다.
나도 그럴 뻔했다.
“회장님, 이거 설마….”
“그래, 제대로 봤네.”
“‘설지초’…! A등급 영약이잖습니까!”
이 대리가 감탄을 중얼거린다.
설지초.
얼어붙어 쓰러진 거목에서만 자라는 버섯이다.
우담화만큼은 아니지만, 이 대리 말대로 A등급에 해당하는 뛰어난 영약이다.
“이걸 구했을 땐 뛸 듯이 기뻤는데….”
우 씨 부자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거다.
설지초는 절맥증 환자에게 쓸모가 없는 영약이었으니까.
아니, 쓸모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된다.
절맥증은 음기가 너무 강한 탓에 발생한 질병이다.
그런 질병 환자에게 음기의 영약인 설지초를 먹이면 어떻게 될까.
우 회장의 딸은 십중팔구 그 자리에서 얼어 죽을 거다.
“시험의 대가라고나 할까. 캐낸다면, 그건 자네 걸세.”
“좋습니다.”
A등급 영약을 준다는 말에 이 대리가 눈을 빛냈다.
내 건데 왜 지가 눈을 빛내고 지랄이야?
이놈 이거 민주 씨가 보고 있는데 이미지 관리 좀 하지.
그리 생각하며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어깨도 좀 두어 번 돌렸다.
시간을 끌 생각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A등급 영약을 캐려니 조금 긴장이 되는 게 사실이다.
주먹을 쥐며 우 회장을 바라봤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작을 알렸다.
“음, 시작하게.”
우 회장의 시작 선언과 동시에 쥐었던 주먹에서 검지를 펼쳤다.
혼자만 꼿꼿하게 선 오른 검지를 설지초에 갖다 댔다.
그러자 설지초가 얼어붙은 나무에서,
뿅!
하고 튀어나왔다.
“……?”
“……??”
사람들이 황당한 눈초리로 날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을 뒤로 한 채 생각했다.
이거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