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too many Talents RAW novel - chapter (101)
제106화
106화
협회 본관의 깊숙한 곳.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조사실처럼 철제 의자와 테이블을 제외하곤 아무 기구도 없는 삭막한 분위기의 방에 정현은 남식과 단둘이 들어왔다.
협회 입구까지 마중 나온 남식의 뒤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이곳이었는데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의 말로는 도청이나 정보 유출을 막을 안전장치가 완비되어 있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도대체 무슨 부탁이기에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곽채준 사건 의뢰받을 때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는데.’
물론 예린이라면 기밀이고 뭐고 살짝 편법을 쓴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분위기상 그보다 중요한 일인 것은 맞는 듯했다.
어쨌든 남식과 정현이 모두 자리에 앉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먼저 남식의 질문.
“헌터님, 혹시 레벨이 어떻게 되십니까?”
“4레벨이요.”
이제 곧 5레벨로 올라갈 거라지만 지금은 어찌 됐건 4레벨이었으니까.
그다지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정현의 이야기를 들은 남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입니다. 역시 정현 헌터님을 모신 보람이 있군요.”
‘뭐지? 시비 거는 건가?’
물론 남식에게 그럴 의도는 없겠지만 그만큼 의아한 반응이라는 뜻이었다.
4레벨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다음 남식이 내놓은 제안은 정현이 상상하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혹시, 다른 S등급 헌터와 사냥해 보고 싶은 생각 없으십니까?”
“예?”
갑자기 S등급 헌터라니.
좋고 싫고를 떠나 얼떨떨했다.
언젠가는 만날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사실 아직은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S등급에 대한 정보를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왠지 그들은 자신이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게이트에서 강력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을 것만 같았기에.
“뭐······ 저야 상관없습니다만. 그게 레벨이랑 무슨 상관이죠?”
“아, 실은 이게 이야기를 하자면 좀 복잡해서요.”
“들어 보죠.”
다른 것도 아니고 S등급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떤 내용이든 간에 한번 들어 보고는 싶었다.
‘이래서 이렇게 보안이 철저한 방으로 온 거구나.’
어쩐지 그냥 얘기 한번 나누는 것치고 너무 깊숙이 들어온다 싶었다.
“실은 한정현 헌터님보다 조금 이르게 협회에 들어온 S등급 마법 계열 헌터 한 분이 계십니다. 아직 레벨은 4고요.”
“S등급 4레벨이 4레벨 게이트에서 사냥을 한다고요?”
정현이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자신만 해도 5레벨 게이트, 혹은 조금 무리한다면 6레벨 게이트도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수준이었다.
추측건대, 아마 S등급은 정현보다 초반 폭발력이 더 대단할 것이고 그렇다면 안정적으로 6레벨 게이트 정도는 돌 것 같은데.
정현의 말뜻을 이해한다는 듯, 남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원래 S등급 4레벨이 되면 보통 6레벨 정도에서 사냥을 하죠. 그런데 이분이 조금······ 사정이 있어서요.”
“사정이라면 어떤······?”
정현이 침을 꿀꺽 넘어 삼키며 남식의 대답을 기다렸다.
혹시 특성이 정현처럼 초반에 약하다든지.
아니면 역시 일반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S등급만의 제한이 있다든지.
솔직히 일반인은 물론이고 같은 헌터들조차 무성한 소문으로밖에 접할 수 없는 이들인데 어떤 사정이 있대도 그리 놀랍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남식의 설명은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마친 정현조차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 그분이 겁이 좀 많으십니다.”
“······?”
“그래서 높은 레벨의 게이트에는 좀처럼 들어가려 하지 않으시는 지라.”
정현은 순간 자신이 뭘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겁이 많다고? S등급이?’
물론 겁이 많고 적고야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헌터들 가운데서도 겁이 많은 이들과 적은 이들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선호 게이트가 많아지는 선에서 갈리는 문제였다.
이를테면 정현도 사냥한 적 있었던 ‘말라붙은 망자의 회랑’이나 ‘저주받은 성’ 같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꺼리는 헌터들은 많았다.
그러나 헌터라면 기본적으로 몬스터를 잡는 행위 그 자체에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 또한 시스템의 조작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겁이 많다는 게 어떤 뜻이죠?”
“말 그대로입니다. 기본적으로 심성이 유약하셔서 몬스터를 죽이는 것도 꺼리시고요. 그리고 몬스터들이 위협을 가하는 것도 무서워 하십니다.”
‘나 참······.’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했다.
S등급이라면 몬스터와 헌터의 생태계에선 최상위 포식자 쪽 아닌가.
오히려 몬스터들이 S등급 헌터에게 겁을 내면 겁을 냈지 그 반대라니.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지만 그렇다고 고양이가 쥐를 두려워해서야 되겠나.
‘배가 부르셨구만.’
솔직히 정현으로서는 그리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는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헌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 왔으니까.
게이트와 몬스터가 나타나고 10년.
지금에 와서는 브레이크 관리도 잘 되고 민간인 피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도시 하나가 날아기는 일은 종종 일어났다.
지금 숨 쉬며 살아가는 인간들 가운데 몬스터에게 가족과 친구를 잃지 않아 본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도 겁에 질려 몬스터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S등급이라니.
‘그럴 거면 특성 나한테나 주지.’
정현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에게 S등급 특성이 하나만 있었다면 당장 6레벨 게이트도 쓸고 다녔을 테니 말이다.
한편, 정현의 이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식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협회에서는 이분께 이제까지 같은 S등급 헌터들과 동행하게 해 성장을 지원해 드리고 있었습니다만······ 마침 얼마 전에 그분께서 5레벨로 올라가셔서요. 그리고 앞으로는 자신의 페이스대로 사냥을 하고 싶다고 강력히 주장하셔서.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 파트너를 저에게 맡기고 싶다는 말씀이신가요?”
“정확합니다.”
남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한 정현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사실 예상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일 것까지도 없었다.
남식이 말하는 투가 딱 그랬으니까.
‘팔자에도 없는 보모 노릇이라니······.’
그렇다고 이 일이 마음에 든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자기 페이스대로 사냥을 하고 싶다는 그 S등급의 말이 십분 이해가 갔다.
자신의 실력에 한참 모자라는 게이트에서 갇혀 있다 보면 얼마나 갑갑할 것인가.
처음에야 놀이처럼 심심하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단 그분에 대한 정보부터 좀 알고 난 뒤에 결정하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S등급에 대한 정보는 직접적으로 연관된 분께만 제공해 드릴 수 있어서요. 헌터님께서 일을 맡아 주시겠다고 해야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뭐, 제가 딱히 할 이유가 없는 일이네요.”
정보는 못 주겠다, 그래도 일은 맡아 달라.
굳이 정현이 계속 이야기를 듣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족쇄가 되면 됐지 이득이 될 일은 없어 보였으니까.
그가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나려 하자, 남식이 다급히 손을 뻗으며 만류했다.
“정보는 드릴 수 없지만! 저희가 드릴 제안은 남아 있습니다!”
“제안이요?”
“아무려면, 저희가 헌터님께 아무 득도 되지 않을 부탁을 드릴 리가 없지 않습니까.”
“흠······.”
그러면 진작 그 얘기부터 할 것이지.
정현은 다시 자리에 앉아 남식을 쳐다보았다.
한번 패를 꺼내 놔 보라는 둣이.
“일단 처음 한 번만 사냥을 같이 해 보시고 그 뒤에 파트너 관계를 지속할지 결정해 주시면 됩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요.”
“그리고 만약 맡아 주신다면 그분과 함께하는 사냥 한 번당 수당 1억이 나갑니다. 그분의 레벨이 오른다면 추가로 10억. 그리고 1레벨당 사냥 수당도 5,000씩 추가됩니다.”
정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1억이라.
4레벨 게이트 한 번 돌고 1억이면 웬만한 5레벨 게이트를 도는 것보다 금전적인 측면에서는 나았다.
게다가 그 겁 많은 S등급도 명색이 S등급인데 몇 번 더 돌면 레벨업을 할 테고.
“물론 일정 기간당 정해진 횟수가 있겠죠?’
“한 달에 한 번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사냥이 있으실 경우 취소하실 수도 있고요.”
여기 까지만 들으면 나쁘진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이면 휴가 다녀오는 셈 치면 된다.
거기다 돈도 따박따박 나온다니.
오히려 같은 조건이라면 왜 원래 파트너가 거절을 한 건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뭐, S등급 헌터가 돈이 궁하지는 않을 테니 돈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다.
남식의 말을 들은 정현이 생각에 잠겼다.
‘한 번 더 튕겨 봐도 되려나.’
충분히 좋은 조건이긴 했지만 협회가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닐 것 같았다.
애초에 협회는 국가 기관이다.
사냥 한 번에 수당 얼마, 이런 건 차라리 길드 쪽에 더 어울리는 제안이었다.
단순히 돈에 관한 게 아니라 협회만이 줄 수 있는 다른 이점이 분명 있을 터.
오히려 돈보다는 그쪽이 정현으로서도 더 구미가 당겼다.
“제안은 좋지만 저도 돈이라면 이제 모자라지 않아서요.”
그리고 사실이기도 했다.
게다가 목전에 둔 레벨업만 마치면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될 터였다.
굳이 지금 당장 돈 더 벌겠다고 제약을 사서 얻을 필요는 없었다.
“역시 그렇습니까······.”
남식 역시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그는 이윽고 결심한 듯 진지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게이트 사무소를 하나 차리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협회에다 신청을 했으니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이다음에 나올 말이 진짜겠지.
“헌터님께서 파트너를 맡아 주신다면, 그분의 동의가 있다는 전제하에 함께 활동하시는 것을 허가해 드리겠습니다.”
“콜.”
정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S등급 헌터 키우기 시작이다.’
겁이 많다?
심성이 착하다?
그런 건 다 굴리기 니름이니까.
“물론 그분의 소속은 현재 협회로 계약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어디까지나 헌터님의 게이트 사무소에는 합법적인 업무에 한해 파견 형식으로-”
“아, 그 정도야 물론이죠. 어쨌든 그분이 동의하면 저와 함께 활동해도 된다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정현이 이렇게 화끈하게 받아 버릴 줄은 몰랐는지 남식이 다급하게 덧붙였다.
뭐, 그도 나름대로 윗선의 허가가 떨어진 범위 안에서 제시한 것일 테지만, 아무래도 협조적이지 않던 협상 상대가 이토록 단박에 응하면 왠지 손해 본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왠지 자기가 놓친 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비상하게 악용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렇지?’
물론 남식이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정현이 협회의 심기를 거슬러 가면서까지 일을 벌이지는 않을 테니까.
‘골칫덩이 임무형 게이트를 깨 준다면 협회에서도 오히려 반길 일이지.’
어쨌든 쓸 만한 사원이 하나 생겼다는 생각에 정현이 씨익 웃었다.
“그럼 우선 계약서부터 작성하고, 그분에 대한 정보를 들어 보도록 하죠. 아, 혹시 바로 만나 볼 수도 있나요?”
“네? 아, 예······ 마침 협회에 계시기는 합니다만.”
남식이 삐질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협상해 볼 걸 그랬다.
물론 아쉬움은 잠시였다.
어차피 S등급 상대로 협상은 늘 지고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괜히 그들의 심기를 거슬렀다가 외국으로 넘어가 버리기라도 하면 대참사였으니까.
남식은 서류 봉투에 들어 있던 몇 종류의 계약서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정현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다 예상 범위 안이었으면서.’
말로는 S등급이 갑이라느니 뭐니 해도 협회 역시 어떻게든 손해를 보지 않으려 노력하는 집단인 것이다.
물론 빠듯한 국가 재정 속에서 움직여야 하는 만큼 사조직인 길드가 잇속을 차리는 느낌과는 조금 다르겠으나.
남식이 내놓은 계약서는 지금까지 두 사람이 얘기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이름이······ 최지희?’
계약서에 적힌 이름은 최지희.
그 헌터와 함께 사냥을 하며 받는 수당은 물론이고 HJH 게이트 사무소에 파견을 나오는 조건까지 이미 세세하게 출력되어 있었다.
정현에게도 그리 불만족스러운 조건들은 아니었기에 몇 가지 세부적인 특약을 추가한 뒤 계약은 체결되었다.
“자, 그럼 이제 최지희 헌터님 한번 뵈러 가 보죠!”
사인을 마친 정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쾌활하게 말했다.
앞으로 HJH 게이트 사무소의 명예 사원이 될지도 모르는 S등급 헌터를 만나러 가는데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