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매일 아침, 아니 아침인지 점심인지 저녁인지도 모를 어느 순간.
마커스가 그날 처음으로 정신이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그 이유는.
“내일이라도 당장 저 다리 병신들처럼 될지도 모르니까. 오늘 하루를 즐겨야지. 흐흐.”
오늘 하루가 평소와 같다면 싸구려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늘 만나던 패밀리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다시 마약굴로 찾아오는 것의 반복이었을 것이다.
평소와 같다면 말이다.
데구르르.
마커스가 무심코 문을 열자 웬 박스 하나가 문에 밀려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이게 뭐지?”
박스를 열어 보니, 안에는 붉은색 액체가 들어 있는 주사기가 여럿 있었다.
어떻게 보면 피 같기도 한 액체는 사람의 눈길을 잡아끄는 묘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유혹당한 듯 마커스는 주사기 하나를 들어 아주 자세히 들여다봤다.
“뭐지? 신종 약? 뫼비우스 나온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새로운 약을 개발해서 테스트해 보는 건가?”
마커스는 광기를 살짝 머금은 눈빛을 한 채 히죽 웃었다.
아침인지, 점심인지, 저녁인지는 몰라도 깨어나자마자 아주 재밌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눈대중으로 세어보니 마침 지금 약 기운에 취해 쓰러져 있는 놈들과 숫자도 얼추 비슷했다.
해 봐야 한, 두 명 정도만 빼면 될 것 같았다.
“이 좋은 걸 나 혼자 해볼 수는 없지.”
마커스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마약굴 내부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쭉 돌았다.
물론 옆구리에는 박스를 낀 채로.
공기마저 바뀐 것 같았다.
마커스의 주사 처방을 받은 사람 중에서 여전히 잠에 빠져 깨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신을 차리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지막으로 마커스가 고무줄의 끝부분을 입으로 물며 팔에 묶었다.
이것도 전문가라는 단어가 성립할지 모르겠지만, 마커스는 전문가답게 자신의 팔에 주사를 놓는 것에 전혀 거리낌 없었다.
“어, 어?”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처럼 항상 몽롱했던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마커스! 너 무슨 주사를 놓은 거야?”
이제 다들 깨달았다.
짧게는 며칠 만에, 길게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몸 안에서 약 기운이 빠져나갔다는 것을.
장내는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시발! 망할 마커스. 내가 가진 마지막 약이었는데, 그걸 날려버렸잖아! 네가 책임지고 돈 내놔.”
“너무 화만 내지 말라고, 제시.”
“무슨 개소리야?”
“생각해보라고. 마커스는 우리한테 선물을 준 거야!”
“시발. 돌려 말하지 말고 본론만 말해.”
“이제 기억도 안 나지? 마약을 처음 했을 때의 황홀함을. 그때의 자극은 오로지 처음 마약을 했을 때만 느낄 수 있지. 안 그래?”
“마약… 누구 약 가지고 있는 새끼 없어? 무슨 종류든 상관없으니까 어서 달라고.”
제시의 마커스에 대한 분노는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제시와 같이 또다시 마약을 찾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난 다시 시작할 거야.”
몇 번이고 끊으려고 했지만 금단 현상을 이기는 과정은 너무 길었고 고통스러웠던 사람은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약을 끊으면 다시 찾아오라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누군가는 잃어버린 생의 의지를 되찾고, 누군가는 잃어버린 첫 순간의 흥분을 되찾았다.
전자는 수겸이 의도한 대로 흐른 것이지만, 후자는 전혀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사실 그랬다.
단순히 중독 증상을 없애 준다고 해서 모두가 마약을 다시 찾지 않게 될 것인가?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계속 약에 취해만 있다가 수겸의 합성 시약을 잠깐 깨어났을 때
오히려 그 순간이 꿈만 같게 느껴졌다.
꿈꾸듯 잠깐 지나간 순간.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뜨니 이미 눈앞에 누군가 마약을 들이밀고 있었다.
악마는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 수겸이 계획했던 이번 작전은 실패인가?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무엇을 얻었는가?
“적어도 다시는 예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좌절은 하지 않겠지.”
2주 동안의 작업을 마치고 숙소 정리를 마친 수겸이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혼잣말을 했다.
이제는 곧 한국으로 돌아갈 때였다.
애초에 미국에서 요청한 건 마약 중독에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마약 조직 소탕이 아니었으니까 이제는 더 이상 할 것도 없겠지. 시약은 테스트까지 마쳤으니 한국에서 만들어서 보내도 충분할 테니까.”
이제 일주일 뒤, 수겸은 한국으로 돌아간다.
* * *
한편 칼리아는 찰리 일행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찰리, 오늘 일정은 끝났나요?”
“나는 끝났고, 너는 아직이지.”
찰리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뭐라고요?”
아침 일찍부터 나와 세 번째 치료 센터 오픈을 위해 하루종일 일한 칼리아였다.
안 그래도 이렇게 성실하게 ‘노동’을 해본 것도 오랜만이라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거기다가 자기는 온종일 물건을 나르고, 정리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에 반해 저 둘은 지켜만 보다가 지시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샌드위치를 먹는 것까지 얼마나 얄미웠는데.
“칼리아. 당신만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서 그래요. 우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오늘도 운전대를 잡은 데이비드가 뒤는 돌아보지 않고 타이르듯 칼리아에게 말했다.
“그게 뭔데요?”
한 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칼리아가 답했다.
“켄싱턴 에비뉴 분위기를 좀 살펴줬으면 해요. 어쩐지 우리는 아무리 사복을 입어도 경계를 하던 눈치더라구요.”
“그거야 당신들이 살쾡이 눈을 하고 다니니까 그렇지!”
칼리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 선글라스도 꼈는데요?”
“그게 더 문제야! 아니지 그냥 당신들은 몸짓 하나하나에 정부 요원 티가 너무 많이 난다고. 항상 뭔가를 찾는 눈빛, 경계하는 눈빛. 우리는 평소에 어떤 것도 찾지 않아. 그냥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걷는다고.”
칼리아는 평소에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했던지 문제점을 곧바로 집어냈다.
“의도를 가지고 걷는 사람은 당신들 같은 부류뿐이야. 멍청이들 같으니라고!”
“어이, 진정해.”
찰리가 칼리아의 어깨를 탁 잡으며 제지했다.
“크흠. 하여튼 뭘 살피라고요?”
칼리아는 다시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 얌전한 말투로 돌아와 물었다.
“우리가 합성 시약을 배포한 지 3일이 지난 건 알고 있지?”
“물론이죠.”
“그곳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동향 파악이 필요해. 그냥 겉으로 보이는 모습 말고 진짜 모습 말이야.”
“X발?”
다시 칼리아가 1분 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선 넘지 말라고.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참다못한 찰리의 목소리가 칼리아의 톤에 맞춰 높아졌다.
“아니, 생각해보라고. 방금 너희가 나한테 무슨 부탁을 한 건지 말이야.”
“칼리아,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봐요.”
“내게 켄싱턴 에비뉴는 홈그라운드라고. 모두가 날 알지. 나도 역시나 모두를 알고.”
“그런데요?”
“이래도 모르겠다고? 네 어깨 위에 달린 건 장식이냐?”
칼리아는 마약의 후유증인지 몰라도 순간순간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했다.
“칼리아!”
이번엔 데이비드가 소리쳤다.
“쏘리, 쏘리. 이미 내가 너희들이랑 같이 다니는 걸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잘도 날 받아주겠다. 다른 동네야 날 모를 수 있으니까 다녔지만, 켄싱턴만은 안돼.”
“우리가 가서 마약 공급상을 잡아 오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분위기만 좀 알아봐달라는 건데 그것도 어렵나?”
찰리의 목소리라 차츰 더 무거워졌다.
“나도 정말 곤란하다고.”
“약쟁이를 구제해주었더니 결국은 예상하던 결론이군. 힘들다, 나는 못 한다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포기해버리겠지. 안 그래?”
“찰리… 칼리아가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도와줬는데 그래. 그건 좀 심했어.”
데이비드가 나름 이성적으로 상황 중재해보려 했다.
“날 그런 구제불능들이랑 한 묶음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나도 이제 새사람이 되었어. 마약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흥. 누가 약쟁이 말을 믿을까봐?”
찰리의 눈빛은 벌레를 보는 눈빛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수겸에게 고마운 마음에 참아 왔는데 더는 저런 새끼랑은 도저히 같이 못 하겠어.”
“칼리아! 한 번만 더 참아요. 모두가 힘들어서 그래요. 우리 다 알잖아요.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
“내가 그걸 알아서 지금까지 참았다고.”
“데이비드, 그만 말해. 의미 없는 이야기는 시간 낭비일 뿐이야.”
“그래.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나도 동의한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시간 낭비라는 점. 데이비드, 차 좀 세워 줘요.”
데이비드는 잠시 망설이다가 브레이크를 서서히 밟아 속도를 줄였다.
이윽고 차가 완전히 멈춰 서자, 칼리아가 차 문을 격하게 열어젖혔다.
“너도 역시 그저 그런 약쟁이가 맞았어. 지금 네 꼬라지를 보라고. 결국은 그냥 네가 힘들다고 도망치는 것밖에 더 되겠어? 그러고는 조만간 또 약에 취해 아무렇게나 길거리에 누워 있겠지. 너한테는 길바닥이 침대 매트리스나 똑같게 느껴지려나? 그거 가성비 하나 좋네.”
밖으로 나가려는 칼리아의 등을 보며 찰리가 연신 폭언을 퍼부었다.
칼리아가 차에서 내리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무언가 말을 하려다 이내 입을 꾹 닫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하아.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데이비드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
닫혀 버린 문을 보는 찰리는 말이 없었다.
불과 한 시간 전 아니, 10분 전까지만 해도 찰리 역시 칼리아가 이제부터는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마음이었는데 말을 하다 보니 상황이 이상해졌다.
생각 없이 나와버린 말은 칼이 되어 서로의 상처를 후벼팠다.
마음을 조금씩 주고 있던 찰리는 칼리아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고, 차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칼리아는 버림받은 것 같았다.
어느 누구도 가해자가 아니었고,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버린 듯 했다.
실상은 둘 모두가 가해자였음에도.
“찰리, 지금이라도 내려서 잡을까요?”
“…아니야. 내버려 둬. 지금 이야기해봐야 대화가 되겠어?”
찰리가 창밖으로 칼리아를 쳐다보는 사이 데이비드는 다시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반면, 칼리아는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하, 어디로 가야 하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찰리의 날 선 말들이 다시 떠오르기도 했고, 중간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데이비드의 얼굴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칼리아의 검사 결과지를 보고 내 일처럼 기뻐해 주던 수겸의 얼굴이 생각났다.
길거리에서 보낸 지 벌써 5년이었다.
그 사이에 자신을 이토록 생각해주던 사람이 있던가.
칼리아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 방향의 끝에는 조금 전까지 죽기보다도 가기 싫었던 켄싱턴 에비뉴가 있었다.
칼리아가 마음을 굳히고 길을 걸었다.
“뭐, 죽기야 하겠어? X나게 튀면 그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