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수겸이 비보를 들은 건 시신이 발견된 날의 저녁이었다.
똑똑.
수겸이 묵고 있는 방에는 분명 초인종이 설치되어 있건만, 찰리는 문을 두드렸다.
“수겸, 우리 왔어. 전할 말이 있어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찰리의 목소리였기에 수겸은 서스럼없이 문을 열었다.
몹시 지쳐 있는 얼굴의 둘.
“어서 들어와요. 무슨 일 있었어요? 표정이 안 좋은데요.”
찰리는 푹신한 소파 위에 몸을 던지다시피 하며 털썩 앉았고, 데이비드는 식탁 의자를 끌어다가 앉고 허리를 숙인 채 연거푸 마른 세수를 했다.
수겸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일이 제대로 터진 모양인데……?’
“오늘 사건이 발생했어요.”
데이비드의 목소리는 갈리지기까지 했다.
“사고가 아니고 사건이요?”
수겸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네. 사고 아니고 사건이요. 제일 걱정했던 일이 생겼어요. 마약 조직이 견제하기 시작했어요.”
“너무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 괜히 겁만 먹을 테니까.”
찰리가 수겸이 알아듣지 못하게 영어로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아니요. 내 생각엔 수겸도 지금의 상황을 알아야 해요. 그럴만한 자격은 충분하잖아요.”
“둘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내가 영어 실력이 부족할 뿐이지 귀머거리가 아니야. 사람 앞에 두고 그렇게 둘이 이야기하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수겸의 목소리에 은은한 짜증이 묻어 나왔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대충은 알아들어요. 정확하게 모를 뿐이지. 조심해주세요. 찰리, 지금 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선 숨기지 말아요.”
“미안하다, 수겸. 알겠다. 전부 말해줄게.”
찰리가 데이비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나서지 않고 듣고 있겠다는 신호였다.
“우선 지금까지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알아야 해요. 여기 필라델피아에 마약을 공급하는 건 KPG라고 불리는 마피아 조직이에요.”
“마피아라… 저한테는 낯선 단어네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수겸에겐 마피아는 현재는 쉽사리 와닿지 않는 단어였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요. 그들은 직접 마약을 만들기도 하고 외부에서 들여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유통까지 전부 맡고 있는 실정이죠.”
“그러면 전에 함께 본 마약굴을 만들고 관리하는 것도 KPG라고 하는 조직에서 하고 있나요? 뫼비우스를 만든 것도?”
“맞아요. 전부 수겸이 말한 대로 그들의 짓이 맞습니다. 사실 필라델피아는 예전부터 마약과의 전쟁을 했던 지역이에요. 미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은 예산을 들일 정도였죠.”
“그런데 지금은 미국 마약 범죄의 온상처럼 표현되고 있지 않나요?”
“이미지가 그렇게 만들어졌죠. 예전에 대대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KPG를 포함한 여러 조직을 선제공격하기도 했어요. 그 결과 시중에 유통되는 마약의 양이 이전과 비교해서 10%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보고서도 나왔죠.”
“그 정도면 작전 성공이라 보면 되겠네요. 그렇게 떨어졌으면 거의 씨가 마른 수준 같은데.”
“네, 성공이긴 했죠. 비록 유지하는 기간이 짧았지만 말이에요. 몇 개의 조직이 소멸 직전까지 타격을 받고 잔당을 흡수한 건 지금의 KPG였어요. 그리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데이비드는 시사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된 것처럼 과거 이야기를 계속해서 말했다.
“KPG는 지금처럼 신종 마약을 만들어서 조금씩 유통했어요. 거기에다가 줄어든 공급망에 맞춰서 아예 한곳에 집중 투하하기로 했죠.”
“그게 켄싱턴 에비뉴군요.”
수겸은 지난번에 봤던 거리를 떠올렸다.
“맞아요. 공짜 마약을 미끼로 전국에서 마약 중독자들을 끌어모았어요.”
“그런데 경찰이나 DEA 입장에서는 한 장소로 모아버리면 오히려 체포도 쉽고, 관리도 쉽지 않나요?”
“어떻게 보면 수겸 씨의 말도 맞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더 큰 그림을 봤어요. 아예 필라델피아의 이미지를 미국의 마약 수도로 만들어버릴 작정이었던 거죠.”
데이비드는 자세를 바꿔 다리를 꼬아 앉았다.
“하긴 신종 마약이 제일 먼저 유통되는 곳, 공짜 마약이 거리에 넘쳐나는 곳, 게다가 함께 약에 취할 중독자가 미국 어느 도시보다 많은 곳. 이 세 가지 요소를 모아 버린 셈이네요.”
“네. 당연히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생기는 법. 중독자들이 모이니 마약으로 먹고 사는 놈들도 모이기 마련이죠.”
“그렇게 해서 필라델피아라는 이름이 마약으로 더럽혀졌다.”
계속 듣고만 있던 찰리가 끼어들어 알맞게 정리 멘트를 했다.
“예전 상황은 이해했어요. 그래서 오늘 일을 벌인 것도 아까 말한 KPG라는 마피아들인가요?”
“맞아요. 아예 자기들이 한 짓이라고 흔적까지 남겨놨죠. 시체 위에다. 그들의 메세지는 분명해요.”
“그건 뻔하네요. 본인들이 세운 마약 왕국을 흔들지 말라는 거군요. 우리가 퍼뜨린 디톡시와 합성 시약이면 중독자들은 대폭 감소할 테니까.”
“그런데 이놈들은 너무 치졸한 선택을 했다. 우리 센터를 공격 못하니까 치료를 하려고 했던 사람들을 겁줬다.”
“찰리의 말 그대로예요. KPG가 죽인 사람의 사망 추정 시각은 전날 오후 11시경이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이미 치료를 하려고 센터로 오는 사람이 사라졌어요. 전날엔 그렇게 북적거렸는데 말이에요.”
데이비드는 수겸에게 설명을 하면서도 열이 뻗친 모양이었다.
“본보기로 사람을 해치고 밤사이에 부지런히 소문을 냈다는 말이죠? 이제는 우리가 결정을 할 때군요.”
“우선은 해왔던 대로 계속해야죠. 우리가 여기서 위축되어서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선다면 그놈들의 의도대로 행동하는 꼴이니까요.”
“아예 더 밀어붙이는 건 어때요? 아까 말씀하셨죠? KPG가 수세에 몰렸을 때 마약을 집중 투하해서 사람을 끌어당겼다고.”
“그랬죠?”
데이비드는 대답을 하면서도 수겸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찰리를 쳐다 보니 이 쪽도 별반 상황이 다르진 않았다.
수겸은 그런 둘을 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 우리도 합시다.”
“수겸!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는데?”
“집중 투하요.”
* * *
부웅―
부웅―
동이 틀 무렵 켄싱턴 에비뉴에 차량 한 대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오고 가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움직임이 없을 뿐.
여전히 석상처럼 굳어버린 사람들은 거리에 있었고, 바닥에 누우면 그곳이 내 집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은 듯 길거리에서 자고 있는 사람 역시 있었다.
정부에서 치료 센터를 세운 지 어느새 2주가 지났건만 상황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었다.
눈에 보인다고 해서 모두를 납치해서 치료를 한다던가 혹은 마약을 사유로 체포를 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이 거리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치료 센터에 아무도 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곳에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차갑게 내려앉은 밤공기처럼 거리 위를 떠돌고 있었다.
부웅― 끼익.
다시 한 번 차량이 요란하게 멈춰서고 뒷좌석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그 남자가 손에 들고 있는 건 작은 박스 하나.
한 손으로도 들 정도로 작은 크기였다.
탁.
남자는 가정집 현관문 앞에 박스를 놓고 곧바로 뒤돌아 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출발.
부웅―
보아하니 거리에 있는 모든 집을 들릴 생각인 듯 했다.
필라델피아에는 켄싱턴 에비뉴 말고도 몇 개의 마약 거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 같은 시각 정체 불명의 박스가 거리에 있는 집 뿐만 아니라 모든 건물에 놓여 있었다.
흡사 크리스마스 같았다.
12월 25일 하룻밤 사이 산타가 모든 집에 선물을 놓고 가듯 그렇게 박스 하나가 배달되었다.
* * *
“후아, 진짜 죽을 뻔했네. 방 안에만 박혀 있으니까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모르겠네. 미국이 뭐죠? 먹는 건가요?”
수겸은 침대에 드러누워 지난 일주일 하고도 3일동안 한 일을 떠올렸다.
“아, 떠올릴 것도 없네. 계속 연금술 노가다만 했으니까. 헤헤.”
약간은 실성한 것 같기도?
“수겸. 방금 연락왔다. 배송이 끝났다고. 그사이에 아무런 사고도 없어서 다행이야.”
찰리가 그런 수겸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어라? 생각보다 엄청 빨리 끝났네요.”
시계를 보니 이제 새벽 6시였다.
마피아들도 잠은 자는 모양이었다.
“준비를 많이 했으니까요. 각 구역을 나눠 사람을 배정하고, 각각의 사람이 이동할 루트까지 점검했습니다.”
아직도 데이비드의 손에는 필라델피아 전체가 그려져 있는 지도가 쥐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게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수겸이 그 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 효과가 있겠지?”
찰리는 부정적이라기보다는 의구심에 찬 말투로 물었다.
“당연하죠. 진짜 목숨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하면서 공장처럼 찍어냈는데요? 진짜 지옥의 합숙 훈련 같았어요. 다시 하라고 하면 내가 할 수 있을까?”
무려 3만 명이 복용할 수 있는 양을 만들어 낸 수겸이었다.
‘이게 다 합성 시약을 알게 된 덕분이야.’
미국에 오기 전 수겸의 실력이라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양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시약들을 전부 실험해야겠어. 무슨 꿀 조합이 나올지 모르니까.’
그런 의미에서 힐링 포션과 디톡시의 합성은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마치 건축계에서 말하는 열팽창계수가 같은 철근과 콘크리트의 만남과 같이.
‘중독 증상 치료도 하고 상처 치료까지 되는 조합인데다가 치료 효과까지 더 좋아지니까.’
눈을 감고 생각을 하던 수겸이 벌떡 일어나 창밖을 보고 있는 데이비드를 쳐다봤다.
“분명히 마약을 끊고 싶지만 두려움 때문에 치료 센터를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아예 집 앞까지 배송 서비스를 해주었으니 반응이 있겠죠.”
“일을 진행시키다 보니까 인터넷 쇼핑몰이 떠올랐습니다.”
창밖을 보던 데이비드가 수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맞아요. 제가 생각한 것도 그거예요. 한국엔 있거든요.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바로 다음 날 집 앞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얼마나 좋아요. 필요한 걸 문만 딱 열면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수겸이 생각한 건 이랬다.
마피아의 보복이 무서워서 치료를 망설인다면 그들이 모르게 하면 되지 않을까?
치료 센터는 상징으로서의 역할만 수행해도 충분했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만든 시약이 중독 치료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너희가 올 수 없다면 우리가 갈게.’
수겸이 작은 상자에 담아 보낸 메세지였다.
거리의 모든 집, 모든 건물에다가 보냈으니 누가 상자를 받았는지, 누가 그 안에 있는 치료제를 사용했는지 마피아가 알 수 없었다.
“예외는 없으니까.”
심지어 마피아가 관리하고 있는 마약굴이라는 걸 알면서도 똑같이 박스를 전달했다.
“절대 구분할 수 없겠죠. 거리 전체에 뿌려버렸으니까.”
데이비드는 수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