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펑!
수면을 뚫고 바다 밑으로 떨어질 때 충격은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일단 쇠사슬부터 해결해야 한다.’
쇠사슬로 인해 가만히 있으면 속절없이 바다 밑바닥까지 끌려갈 테니까.
수겸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붙잡고 있던 발판을 더욱 꽉 안았다.
그렇다고 발판 덕분에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거라면.’
수겸은 입 안에 손가락을 넣었다.
여전히 입 안엔 찢어진 혀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손을 뺀다면 손가락에 묻은 피가 그대로 바닷물에 씻겨 나갈 것이리라.
수겸은 정신을 집중했다.
‘어차피 물로도 그릴 수 있는 마법진. 무엇이든 매개체가 있으면 될 뿐, 피로는 왜 못하겠어. 신경 써야 하는 건 마법진을 다 그리고 마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란 점. 그리는 동시에 바로 마나를 주입한다.’
수겸은 계속해서 떠올리고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던 형태 변환 마법진을 판자 위에다 그리기 시작했다.
수겸의 손가락이 지나간 뒤에 곧바로 마나로 인해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바다 밑으로 내려가고 있는 상황.
더 내려가면 쇠사슬이 없어져도 자력으로 위로 올라가기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수겸에게 시간이 많지 않았다.
‘더 빨리.’
수겸은 다급하게 손을 놀렸다.
그런데 그 순간 수겸은 깨달았다.
어느새 손에는 피가 묻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아니, 처음부터 피는 수겸의 마음처럼 판자에 제대로 묻어나오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그런데 어떻게?’
수겸은 숨이 가빠오는 상황에서도 생각이 깊어졌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그랬구나.’
수겸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에 옅게 미소 지었다.
‘애초에 마법진을 그린다는 건 마나가 내가 원하는 대로 흐르도록 유도하는 것일 뿐이야. 사실은 무엇으로 그리는지, 어디에다 그리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수겸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손을 움직였다.
‘단지 연금술을 시작하는 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장 쉬운 방법을 제안했을 뿐.’
한 번의 깨달음이 또 다른 깨달음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다 상관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바라는 것이 분명하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가능해!’
수겸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수포가 일어나고 그 뒤에 마나가 빛을 발했다.
자연스럽게 마법진이 완성되고 이내 마법진에서 폭발적으로 마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더욱 많은 마나를 불어넣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됐다.’
수겸은 허공에 그려진 마법진에 간신히 발을 움직여 쇠사슬을 가져다 댔다.
화아악!
마나가 뿜어져 나오고 수겸의 다리를 지금까지 감고 있던 쇠사슬은 겉에서부터 조금씩 먼지처럼 가루가 되기 시작했다.
바스스.
바닷속 해류에 따라 한때는 쇠사슬이었던 철가루들이 흩어지고, 마침내 수겸은 자유를 찾았다.
‘이제 한계다.’
수겸의 코에서 기포가 새어 나왔다.
수겸은 가벼워진 몸놀림으로 수면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열심히 발을 차고 올라가도 좀처럼 해수면과의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것 같았다.
‘제발.’
이제는 숨이 턱 끝까지 찬 상태.
파앗!
마침내 수겸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악.”
넘실거리는 파도에 입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왔지만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수겸은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바다에 떠서 올려다본 화물선은 마치 하늘 끝에라도 닿을 듯 너무나도 거대했다.
‘다시 올라가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겠지.’
처음 떨어졌을 때 위치보다 물살에 밀려 배로부터 거리는 더 멀어졌다.
달라붙기도 힘들지만 거기서 또 어떻게 올라갈 것인가.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해로 가라앉는 건 운이 좋게도 피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겸이 위기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그전에 수를 찾아야 하는데.’
심지어 체력도 서서히 빠지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순간까지 끓어오르던 복수심은 절망적인 상황에 닥치자 잠시 사그라들고, 생존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그때였다.
짝짝―
“와! 이런 상황은 생각도 못 했는데. 이게 연금술사의 능력이야?”
카메라로 아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잭이었다.
잭은 수겸이 떨어진 바로 그 장소에서 고개를 내밀어 수겸을 향해 박수를 치며 확성기에 대고 말했다.
‘카메라에 마이크까지 준비한 거야? 완전히 미친놈이네.’
“역시 재밌어. 하하. 좀 더 발버둥 쳐보라고! 흥이 나서 도저히 못 참겠어. 축포를 터뜨리자고!”
잭이 한참 박장대소를 하다가 손을 뒤로 내밀었다.
“어이! 너무 무서워하지 마. 내가 너무 재밌어서 그래.”
환한 미소와 함께 잭의 눈이 반달 모양이 되었다.
철컥.
잭이 부하에게서 건네받은 총에서 장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파티는 계속되어야지. 시작!”
탕!
잭이 총을 받아든 순간부터 노려보다가 총성과 동시에 물속으로 다시 잠수했다.
탕! 탕! 탕!
“와하하하. 역시 이래야 파티하는 맛이 나지. 안 그래?”
수겸을 맞추고 못 맞추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극.
잭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자극이었다.
그사이 수겸은 조금 더 배 쪽으로 헤엄쳤다.
‘배에 붙어서 발사각을 줄여야 해.’
수겸이 잠시 숨을 쉬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어서 나와. 흐흐. 그렇게 숨어만 있으면 재미가 없잖아! 내가 좀 더 할 맛이 나게 해줄까?”
잭은 잠시 총을 옆에 두고 말했다.
“켄싱턴에서 죽은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까? 아니면 네가 만든 약을 먹은 사람들을 앞으로 어떻게 죽일지 말을 해줄까?”
어린아이가 장난삼아 개미집에 물을 붓는 것 같이 잭에게 이건 그저 장난이었고, 재미를 위한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완전히 미쳤어.’
수겸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던 자신과 정반대였다.
‘그저 네놈만 즐거울 수 있다면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거냐. 네가 뭔데. 네가 뭐길래 그리도 쉽게 사람을 죽인다는 말을 내뱉을 수 있지?’
무수히 많은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시약을 만들던 날이 떠올랐다.
‘내가 블루버드 천 개를 만드는 것보다 너를 이 세상에서 없애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것 같다.’
수겸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하하. 어서 이리로 나오라고!”
타다다당.
잭은 그사이에 다시 총을 갈기기 시작하고, 수겸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내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야.’
바닷속에 들어간 수겸은 목걸이의 펜던트의 윗부분을 살짝 돌렸다.
그러자 펜던트는 겉표면과 속 알맹이로 분리가 되었다.
알맹이의 겉표면에는 미리 수겸이 새겨 놓은 마법진이 있었는데, 수겸이 엄지손가락을 댄 순간부터 빛나기 시작했다.
‘이거라면.’
안에 든 것은 부식제였다.
일전에 천강교 시체를 처리할 때 썼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아니, 같은데 다른 것이었다.
‘이건 훨씬 더 고농축으로 만들었으니까.’
남들은 모르게 숨기기 위해서라면 필연적으로 소량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수겸은 그것을 고농축으로 제작하는 방법을 찾아내 해결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다른 것은 이번엔 무생물에만 반응하도록 조금 전 마법진을 통해 설정했다는 점.
수겸이 딸깍하고 누르자 부식제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부식제는 물과 기름처럼 바닷물에 섞이지 않고 온전히 바닷물 안에서도 형태를 유지한 채 떠올랐다.
수겸은 부식제 액체 덩어리를 손으로 집어 그대로 배에 발랐다.
‘이제 곧 구멍이 나겠지. 그러면 끝이다.’
수겸의 생각대로 배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시점.
끼이익―
“무슨 일이야! 이게 무슨 소리지?”
배에서 나는 불길한 소리를 듣고 잭이 소리쳤다.
“배에 구멍이 났습니다! 가라앉고 있어요.”
상황을 알아본 부하가 잭에게 말했다.
“무슨 개같은 소리야. 멀쩡한 배가 왜 가라앉아.”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서 탈출해야 합니다.”
잭은 어이가 없었다.
“연금술사 놈은 어딨지? 빨리 찾아.”
잭은 긴박한 상황을 겪자 약 기운마저 빠진 듯 좀 전과는 다른 말투로 지시했다.
그사이 수겸은 배 끄트머리를 돌아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분명 배는 구멍이 난 방향으로 기울 거야.’
수겸은 조금씩 기울고 있는 배를 바라봤다.
배에 생긴 구멍은 밀고 들어오는 수압으로 인해 점점 더 커지고, 기우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상황이었다.
‘죽어 마땅한 놈이니까. 거기에 동조한 부하들도 마찬가지지.’
수겸은 애써 자신의 판단이 옳다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끼이익. 퍼엉!
배에서 작은 폭발음이 들렸다.
‘이제 끝인가.’
“감히 내 배를! 어딨어!”
돌연 잭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우웅.
선박에서 탈출한 잭이 모터보트를 타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 와중에 잭은 성질을 못 이겨 함께 탈출하자던 부하들을 모두 내팽개치고 홀로 수겸을 찾아왔다.
“거기 있었구나!”
잭은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하… 독한 놈.”
수겸은 목소리를 낼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진심으로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타앙!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아까 배 위에서 쏜 것은 거리가 있고, 물살 때문에 수겸이 계속해서 흔들려 잭의 사격 솜씨로는 맞추기 힘든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달랐다.
바로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크윽.”
수겸은 어깨를 부여잡았다.
잭은 보트를 몰아 수겸에게 다가갔다.
“내 배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잭이 물 위에 떠 있는 수겸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큭. 네가 한번 놀아보자며. 어때? 이것도 재밌었나?”
수겸은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놀아주는 것도 이제 끝이야.”
잭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총구를 수겸의 이마에 갖다 댔다.
잭의 입장에서는 방아쇠 한 번만 당기면 끝이 나는 상황, 그 순간 수겸의 눈이 빛났다.
휘익.
수겸은 신음을 내면서도 팔을 빠르게 움직여 총신을 붙잡고, 반대 손을 쭉 뻗어 잭의 옷깃을 잡았다.
스토니의 효과는 끝났지만, 근력 강화제의 효과는 아직 남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겸은 한 손으로는 총을 붙잡고, 다른 한 손만으로 잭을 바닷속으로 끌어당기는 데 성공했다.
“후욱.”
거친 숨을 내뱉은 수겸.
“크아악!”
물에 빠진 잭은 수겸에게 다가가기 위해 헤엄쳤지만 그사이 수겸은 보트 위로 올라서서 잭을 내려다봤다.
“이래도 재밌어?”
철컥.
수겸은 총을 집어 들고는 잭을 조준했다.
“…….”
잭은 독기 가득한 눈으로 수겸을 쳐다봤지만, 다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수겸은 그런 잭의 모습을 보고 이를 빠드득 갈았다.
“너도 똑같은 사람이면서, 너도 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면서.”
“그게 뭐 어때서? 크큭. 설마 인제 와서 내가 한 짓을 반성하냐고 묻는 건 아니겠지?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라면 집어치우라고.”
잭은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씨익 웃었다.
“넌 끝까지 당당하네.”
“당연하지.”
수겸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이내 소용없음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탕!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