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3
13화
보통 마트에서 한 가득 장을 본 것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수 있다.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 즉석 음식, 라면, 과자가 많이 들어 있다면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반대로 기저귀, 분유, 아이 장난감이 있다면 당연히 아이를 키우고 있구나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수겸이 양 손 가득 들고 온 물건들을 보면 도대체가 어떤 사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설마하니 그걸 보고 ‘오, 저 사람 연금술을 연습하는 사람인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수겸은 봉투를 뒤집어 물건들을 죄다 식탁 위에 쏟아 냈다.
접시, 거울, 놀이용 찰흙, 고무 공, 유리 장식품, 바늘.
수겸이 물건들을 고른 기준은 다양한 재질, 무게, 모양이었다.
“어제 해보니까 대충 알 것 같긴 한데 말이지.”
숟가락, 젓가락, 포크의 희생 덕분에 수겸은 형태 변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한 이미지와 집중력이었다.
어떤 모양으로 할 것인지 단순히 ‘떠올린다’ 라는 개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입체적으로 상, 하, 좌, 우 모든 면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것을 마나 전달 과정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고 해내야만 원하는 모양으로 바뀌었다.
수겸은 소시지 하나를 입에 물고 제일 처음 형태 변환을 해볼 물건을 골랐다.
“음∙∙∙ 처음에는 접시로 해볼까.”
수겸이 생각한 건 접시를 컵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미지 연상을 위해 집에 있는 컵을 한번 살펴 보고 똑같은 모양을 떠올렸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꽃무늬 접시가 꽃무늬 컵으로 바뀌는 기적.
“제가 그걸 해냈습니다.”
수겸은 새로 만든 컵 손잡이에 손가락을 끼우고 마시는 척 흉내를 내었다.
그 이후
둥근 거울을 네모난 거울로 바꾸고, 복잡한 무늬의 유리 장식품을 정사각형 모양으로 바꾸었다.
성공의 연속이었다.
그 중 실패한 건 고무 공으로 보트 만들기, 찰흙으로 탑 쌓기였다.
고무 보트는 수겸이 상상한 모양을 구현하려면 훨씬 더 많은 양의 고무가 필요했는지, 첫 순간엔 모양이 제대로 잡혔지만 이내 펑 하고 터져버렸다.
원하는 모양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답은 예스였지만, 그것이 얼마나 유지 했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다.
절대적인 양을 계산 못하면 물질이 버티질 못하고 터져버렸다.
또, 찰흙으로 쌓아 올린 탑은 짠 하고 나타나는 순간 바로 무너져 내렸다.
건축학적 지식이 없는 수겸으로서는 무게 하중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따위의 구조 설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후로 마트를 대여섯번쯤 오간 후에야 수겸은 형태 변환에 있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질 수 있었다.
수겸이 돈을 갈아 넣어서 배운 건 이랬다.
1. 연성술과 마찬가지로 무게와 면적에 따라 수겸이 느끼는 피로도가 달라진다는 것.
2. 기계 장치가 있는 것으로는 변환이 되지 않는 다는 것. 그건 아마 수겸의 무지로 인해 정확한 이미지 연상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3. 마지막으로 어딘가에 부착된 물건 중 일부만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마법진 위에 올려진 물건 전체에 대해서만 가능했지 그 중 일부에 대해서만 특정할 수는 없었다.
수겸은 형태 변환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지 고민했다.
‘이럴 땐 누구라도 같이 고민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순간 가슴이 답답해진 수겸은 어디로든 좀 나가서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향한 곳은 청량리에 있는 약재시장이다.
“지도 보면 이 근처이긴 한데. 쓰읍.”
휴대폰 지도를 보며 두리번거리기를 한참 마침내 수겸은 찾던 간판을 발견하고는 다리를 절뚝이며 씩씩하게 걸었다.
수겸은 고개를 들어 간판을 다시 쳐다보고는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찾으시는 약 있으세요?”
가게 안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수겸을 맞이했다.
“저∙∙∙∙∙∙∙. 안녕하세요?”
수겸의 목소리를 듣고 누군가 다급히 나왔다.
“어라! 이게 누구야? 잘 지냈어?”
등산 중 만났던 박동현이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한 표정으로 수겸을 꼭 안았다.
‘우리가 이렇게 친했던가?’
못본 사이에 박동현은 수겸에 대한 내적 친밀도가 더 올라간 모양이었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여기 앉아.”
박동현이 약초가 쌓인 평상을 손으로 두드리며 자리를 권했다.
“네. 감사합니다. 전에 부탁한 것도 어찌 되가나 궁금하기도 해서 한번 왔어요. 혹시 지금 바쁘시거나 그런 건 아니셨어요?”
“아니. 전혀. 안그래도 누가 놀러 안오나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지. 몸도 불편한데 전화해도 됐을텐데.”
“그래도 부탁드리는건데 대뜸 전화로만 여쭤보기가 죄송해서요.”
박동현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사이에 죄송할 게 어딨어.”
‘사장님. 저희 밤에 한번 본 사이에요. 잊으신 것 같지만.’
수겸은 속마음은 숨기고 그와 정 반대되는 대답을 했다.
“하하. 친한 사이라도 지킬 건 또 지켜야 관계가 오래 가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그 날 이후로 산을 못 갔네요.”
“그렇지? 어쩐지 등산 갈 적에 한번씩 살펴봐도 수겸씨가 없더라고. 요새 바빴어?”
“네. 편의점 때문에 밤에 시간 빼는게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한번씩은 나오라고. 같이 산 타면서 이야기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운동도 되고 얼마나 좋아.”
“저도 가고 싶네요. 그나저나 그 이후에 수액이 좀 쌓이긴 했던가요?”
수겸은 친목을 다지는 건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해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박동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안쪽으로 가서 수액이 담긴 물통 다섯병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이거야. 내가 진짜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살핀 놈들이니까 품질은 자신있어”
수겸은 마치 눈빛으로 통을 뚫어버리려는 듯 집중해서 쳐다봤다.
‘이전에 내가 고른 나무에서도 이렇게까지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진 않았는데.’
그러면서 괜히 물통을 열어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진짜로 좋네요. 사장님 감사합니다!”
“멀 이정도 가지고 그래. 혹시 또 필요한 약재 있어? 아마 거의 다 우리 가게에 있을거야.”
수겸은 박동현의 말에 이 참에 시약 제조를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태 변형도 이제 어느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도전해볼까. 어차피 실패해도 그 뿐이니까.’
그러면서 시약 제조 중 가장 처음에 나오는 상처 치료제에 대한 내용을 떠올렸다.
[상처 치료제]– 내상, 외상 전부에 쓰이는 만능 치료제. 술사의 실력에 따라 치료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 필요 재료 : C급 약초 배합물, 마나 수액
– C급 약초의 종류는 상관 없으나 상승 작용을 하는 약초끼리 조합을 할 경우 치료제의 효과가 더욱 증가한다.
‘C급 약초는 어떤거지?’
– C급 약초는 1년치 이상의 마나를 품은 약초이며, B급은 5년치, A급은 10년치, S급은 30년치의 마나를 품고 있는 약초를 뜻한다.
간단하게 내용을 찾은 후에 박동현을 향해 말을 걸려는 찰나 수겸은 박동현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발견했다.
“왜 그러세요?”
“아, 별건 아니고. 수겸씨 눈동자가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어디가 불편한가 해서 그 생각하고 있었어.”
수겸은 아차 싶었다.
이미 틀린 것 같았지만, 미친 놈으로 낙인 찍히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셨어요? 죄송해요. 제가 집중하느라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태연한 척 웃으며 말했다.
“그,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약재를 좀 찾아줄까?”
박동현이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사장님. 근데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함께 쓰면 상승작용을 하는 약재가 따로 있을까요?”
수겸의 질문에 다시 박동현은 자리에 앉아서 신이 나서 말했다.
아무래도 전문 분야라 그런 듯 했다.
“상승작용? 그럼 있지. 보통 흔히들 먹는 한약들 있지? 총명탕, 십전대보탕 같은 것들 말이야. 거기 들어가는 약재들이 서로 서로 효과를 더욱 이끌어 내주거든.”
수겸도 익숙하게 들어본 한약들이었다.
어렵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일이 되려니 이렇게 쉽게 풀린다.
‘마침 산에서 만난 사람이 약재상을 한다니. 먼가 잘 풀릴 것 같다.’
처음 시약 제조를 떠올렸을 때는 좋은 재료, 값비싼 재료를 써야 시약도 효과가 좋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돌로 금을 만들어도 금의 품질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 연금술 작용만 하면 충분하니까 굳이 값비싼 재료를 쓸 필요는 없겠다.’
“사장님. 혹시 나무들 보시는 것처럼 약재들도 어떤 게 더 좋은지 구분이 되세요?”
가능하면 박동현에게 품질 검사까지 맡기면 최상일 것 같아서 질문했다.
“그럼. 당연하지. 오히려 난 이쪽이 더 전문이라고.”
박동현은 가슴을 탕탕 치면서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을 했다.
“오! 그러면 총명탕에 들어가는 약재들로만 주시는데, 좋은 기운을 품고 있는 것들만 추려주세요. 값은 넉넉히 쳐드릴게요.”
“총명탕을 굳이 재료까지 가려가면 먹으려고? 에이. 수겸씨. 그건 아니야.”
“조카 주려고요. 얘가 예전엔 공부를 곧잘 하더니 요새는 집중력이 딸리는지 성적이 계속 떨어진다고 하더라구요. 삼촌 체면 세우려면 이럴 때 최고로 좋은 걸로 지어 줘야죠.”
“그건 그렇지. 괜히 어설프게 돈 쓸 바엔 안하는게 나으니까. 그러면 내가 수겸씨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가도록 최고로 지어 줄게.”
박동현은 반팔 티셔츠를 입었지만 소매를 걷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하하.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제가 운이 좋은가 봅니다.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고 말이에요.”
“운이 좋은 건 나지. 나도 수겸씨를 알게 되서 참 좋아.”
‘남들이 보면 최소 10년은 알아 온 사이 같겠다.’
수겸은 제법 가식적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박동현의 가게에서 나왔다.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약재상 사장님처럼 한 분야의 달인들은 전부 본인은 모르겠지만 마나를 느낄 수 있는 건 아닐까?’
수겸이 질문했지만, 리카르도가 넣어준 지식 백과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
“여기서 술 드시면 안되세요.”
“무슨 소리야? 너 뒤질래? 이거 편의점 물건 아냐?”
술에 찌든 손놈이 편의점 입구 옆에 놓인 파라솔 테이블에 앉아 진상을 부리고 있었다.
“이거야 당연히 저희거죠.”
수겸은 마음 속에 참을 인을 새기며 애써 존댓말로 답을 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여기 술도 내가 방금 편의점에서 샀고 이 파라솔은 편의점거고. 뭐가 문제야?”
“여기는 간단하게 컵라면이나 먹고, 과자나 먹으시라고 둔 거죠. 밤새도록 편하게 술 드시라고 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서 일어나세요.”
“너! 내가 술에 취해서 그러는거지? 너도 나 무시하냐? 어! 내가 아무리 차장 승진도 못했다지만, 너 같은 놈한테 무시당할만한 사람이 아니라 이거야!”
만취한 손님은 자기 몸이 이쪽, 저쪽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소리쳤다.
“손님이 차장이든 과장이든 저는 상관 없고요. 자꾸 이러시면 경찰 불러요?”
“이것 봐라? 너 이 새끼. 경찰을 부른다고?”
손님은 경찰이란 소리에 흥분했는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앉아 있던 의자를 꽉 붙잡았다.
수겸은 미래가 보인 듯 손을 들어 방어하는 자세를 취했다.
“어어∙∙∙!”
결국 손님은 예견된 미래처럼 의자를 들었다가 바닥으로 내리쳤다.
빠직
얼마나 세게 내리쳤는지 플라스틱으로 된 의자 다리가 댕강 부러져 버렸다.
“아이씨. 미쳤나 이게.”
결국 수겸도 참지 못하고 존칭을 포기하고 소리쳤다.
술 취한 손님에서 난동꾼으로 명칭이 바뀐 손님은 아직도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했다.
멀리서 경찰차가 오고 있었다.
그 사이 지나가는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동네에 사는 사람도 없는데 타이밍 좋네.’
난동꾼은 끌려가고 편의점에 남은 건 부서진 의자와 수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