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4
제14화
04. 천지를 가르는 검 (1)
손꼽아 기다리던 휴무일. 이른 시간임에도 서울역은 붐볐다. 하지만 내 목적지는 저곳이 아니었다.
“아니, 이것도 서울역이라면 서울역이지.”
구 서울역사는 세계탑이 생긴 뒤 다시금 본래의 역할을 찾았다. 세계탑과 오갈 수 있는 게이트가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복잡했던 서울역 인근이 더 붐비게 되었지만, 루브르 앞에 게이트가 설치된 프랑스나, 교통이 불편한 베이징 외곽에 게이트가 있는 중국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위치가 위치이니만큼 접근성이 압도적으로 좋아 타워즈닷컴에는 심심찮게 한국의 게이트를 찬양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엄마, 세계탑, 진짜 세계탑이야!”
엄마의 손을 쥔 아이가 서울역 우측의 붉은 벽돌 건물, 정확히는 그 위에 일렁이는 형상을 가리켰다.
끝을 모를 정도로 높게 뻗은 저 탑이 바로 세계탑. 뒤편이 훤히 비치는 신기루에 불과했지만, 위용이 대단했다.
“곧 진짜가 된대도 이상하지 않겠는데.”
처음 등장했던 당시 희뿌연 안개에 휩싸여 있던 세계탑은 어쩐지 전에 비해 또렷해진 것 같기도 했다.
“에이, 내 착각이겠지.”
뒤통수를 긁적인 나는 진짜 세계탑에 입장하기 위해 구 서울역사로 들어갔다.
***
“플레이어님! 정말로 감사해요!”
33층에 들어서자마자 샬롯이 나를 반겼다. 늘 품에 안고 있던 클로버 바구니는 온데간데없었다.
잘 해결되었구나!
“샬롯, 그동안 잘 지냈나요?”
샬롯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그 칼로스가 도와줬는데 어설프게 했을 리가 없지.
이만 떠나야겠다 싶어 작별 인사를 하려는데 샬롯이 내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어머니가 플레이어님을 꼭 뵙고 싶대요! 바쁘시지 않다면 저희 집에 오시지 않겠어요?”
“음……, 어쩌죠. 제가 지금 갈 곳이 있어서.”
“칼로스 아저씨도 저희 집에 있어요! 인사만이라도 하고 가세요!”
칼로스가 여기 있다고? 하마터면 허탕 칠 뻔했다.
“그렇다면 부탁할게요.”
“네, 저만 따라오세요.”
샬롯은 나를 안내하며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해 줬다. 무엇보다 놀라운 소식은 클로버 동산에 집을 지었다는 것이었다.
이 짧은 시간에 집을 새로 지었다는 걸 보니 칼로스가 무언가의 솜씨를 부린 모양이었다.
“원래는 저-기 뒷골목에 집이 있었거든요. 근데 칼로스 아저씨가 그런 곳에 살면 나을 병도 못 낫겠다면서 새로 집을 지어 주셨어요!”
스승님다운 말이었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클로버 동산에 가까워지자 집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초록 동산 사이에 고개를 내민 빨간 지붕 집은 로마네 마을에 있는 칼로스의 집과 닮아 있었다.
창밖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칼로스구나!
“스승님!”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자마자 칼로스에게 달려갔다.
아니, 잠깐. 이 사람 칼로스가 아니잖아?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낯설지만, 또 익숙한 남자가 나를 응시했다.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 몰랐다는 듯, 그의 눈에도 의문에 맺혀 있었다.
“길드장님?”
“스승님?”
황야의 길드장이자, 우리나라에서 한 손에 꼽히는 헌터 최권영.
홀연히 사라졌다는 최권영이 왜 여기에? 뿐만 아니라, 칼로스의 집에 있는 폼이 퍽 자연스러워 보였다.
“윤가호 헌터,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죠?”
“길드장님이야말로…….”
“뭐야,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왜 여기 있냐며 따지려던 찰나, 칼로스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칼로스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심지어 뒤로 두세 발짝 물러나기까지 했다.
아니, 스승님. 귀찮기야 하시겠지만 그럴 필욘 없잖아요.
내 뒤에 있던 샬롯이 톡 튀어나와 칼로스의 다리에 매달렸다. 칼로스가 샬롯의 복숭아 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나를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따뜻한 눈빛이었다.
“제가 플레이어님 데려왔어요!”
“아아- 샬롯 네가 데려왔냐? 왜?”
“엄마가 계속 궁금해하셨잖아요! 저희가 만날 수 있게 해 준 은인님이기도 하고요.”
“하필이면 지금…….”
칼로스가 이마를 짚었다. 그는 마지못해 나를 소파에 앉혔다.
너는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는. 스승님, 너무해요! 따위의 대화가 오갔다.
그 와중에도 최권영이 어찌나 나를 쳐다보는지. 집요한 시선에 슬금슬금 칼로스 쪽으로 붙었다. 최권영을 피할 이유는 없었지만, 아니 오히려 찾던 중이었지만 저렇게 구니 괜히 찜찜했다.
‘평소에는 나 같은 C급은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얼마 전 만난 견지운이 괴짜 중 괴짜라면 최권영은 반골 중의 반골이다.
김지화가 아니었다면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날뛰었을 것이라는 게 세간의 정론이었다.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나쁘게 말하면 남의 말은 귓등으로 들으며 제 흥미만 좇는 자가 최권영이었다.
그런 사람이 나를 왜?
“생각보다 일찍 왔군. 물건은 제대로 가져왔겠지?”
“확인해 보시죠.”
최권영이 칼로스에게로 관심을 옮기고서야 숨통이 트였다. 숨을 몰아쉬던 중, 샬롯이 무언가를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클로버 바구니였다. 잘 보관하고 있었구나. 샬롯이 바구니에서 다섯잎 클로버 하나를 꺼내 내 손바닥 위에 얹어 주었다.
“감사해요, 플레이어님.”
제33계층에서 기적을 뜻하는 다섯 잎 클로버.
샬롯이 어떤 마음으로 클로버를 모았는지 알기에 이 클로버를 고이 보관하리라 다짐했다.
이내 샬롯은 집 안쪽으로 쏙 들어가더니 비올레타를 데리고 나왔다.
샬롯과 꼭 닮은 연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내게 악수를 건넸다.
“샬롯이 매일같이 말하던 플레이어님을 드디어 뵙네요. 안녕하세요. 비올레타입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가호라고 불러주세요.”
비올레타가 나오자 칼로스가 눈에 띄게 이쪽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것이 평소의 그답지 않았다. 비올레타가 그런 칼로스를 보며 슬쩍 웃었다.
“편지를 전해 주셔서 감사해요. 좀처럼 용기가 나질 않아서 미루고만 있었거든요.”
“아닙니다. 고생은 제가 아니라 샬롯이 했죠.”
“겸손하셔라. 어머, 내 정신 좀 봐. 뭐라도 대접을…….”
“비올레타! 그 녀석은 내버려 두고 방에 들어가서 쉬어.”
“칼로스, 저 이제 괜찮다니까요.”
“아직 다 나은 게 아니라고 했잖아. 감사는 내가 충분히 표했으니 대접 같은 건 할 필요 없어. 얼른 들어가래도?”
비올레타가 아쉬운 듯 계속 서성이자 칼로스가 그의 등을 밀어 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칼로스의 말이 미덥지 않은지 비올레타가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말이 맞아요. 비올레타, 저는 이미 과분할 정도로 큰 보답을 받았습니다.”
내가 칼로스를 거들고 난 뒤에야 비올레타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진짜 감사해야 하는 건 내 쪽인데. 간단한 배달 퀘스트로 S급 특성을 얻지 않았는가.
내가 샬롯에게 보답을 해 줘야 할 판이었다.
비올레타는 칼로스의 독촉에 못 이겨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내 어머니의 주변을 맴돌던 샬롯은 비올레타의 치맛자락에 대롱대롱 매달려 어머니를 따라갔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칼로스가 다시금 앉혔다.
“정신 사나우니까 앉아 있어라.”
“아, 스승님!”
“이거나 먹던가.”
도라x몽의 친척도 아닐 텐데 칼로스는 어디선가 과자를 꺼내 내 무릎 위에 던졌다.
“아, 이거 내가 좋아하는 거.”
따질 것은 많았지만 일단 줬으니 맛이라도 볼까. 견과류가 오독오독 씹히는 것이 여전히 취향에 딱 들어맞았다.
내가 얌전히 앉아 과자를 먹기 시작하자 칼로스가 다시 최권영이 있는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미남이 나란히 선 것이 그림은 참 좋았다. 그림은 말이다.
“칼로스, 윤가호 헌터와 아는 사입니까?”
칼로스는 비딱하게 서서 손을 내밀었다. 노골적으로 무시당했음에도 최권영은 개의치 않았다. 창가에 기댄 최권영이 정체불명의 꾸러미를 칼로스에게 건넸다.
칼로스가 주머니 입구를 묶은 실을 풀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무언가의 약병 같은 것이었다. 다시 주머니를 닫은 칼로스가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너, 저 녀석이랑 무슨 사이냐?”
“제 부하 직원입니다.”
칼로스가 돌연 내게 성큼 다가와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프지 않도록 힘 조절을 한 것 같기는 하나, 갑자기 얻어맞은 나로서는 억울할 뿐이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왜 때려요!”
항변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입을 막기 위해 내 입에 쿠키를 밀어 넣은 칼로스가 나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너는 들어가도 저런 놈 밑에 들어가선.”
“으애어 우으…….”
“다 먹고 얘기해라.”
“보아하니 윤가호 헌터는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요.”
“그래, 네놈과는 아무 상관없이 알게 된 사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지? 내가 모르는 건 또 뭔데?’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서둘러 우적우적 쿠키를 씹어 삼켰다. 칼로스가 그런 나를 바라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다른 보상을 줄 생각이었다.”
“무리한 부탁이란 건 압니다. 그래도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야.”
최권영답지 않은 저자세였다.
뭐기에 저러는 거지? S급들의 무기에 대한 집착을 알려 주던 지화 님의 모습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장비 제작이라도 부탁한 걸까?
저렇게 부탁하는 걸 보면 S급? 아니, 어쩌면 SS급일지도 모른다.
“세계탑에 속한 우리는 소속된 계층을 벗어날 수 없어. 알고 있지?”
“필요한 재료는 모두 33층으로 조달해 드리겠다 했을 텐데요.”
“그것만으론 안 돼. 네가 요구한 물건을 제작하려면 최상급 재료들이 필요해. 그 정도 급수의 재료들은 까다롭기 마련이고. 대부분 드롭되는 즉시 특수한 가공을 해야 하지.”
두 사람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저기요, 두 분. 저한테도 상황 설명을 좀 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누가 좀 머릿속의 물음표를 해결해 줬으면 했다. 열렬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칼로스와 최권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곤란하군요. 최상급 재료라면 세계탑 곳곳에서 공수해야 겨우 구할 수 있을 텐데.”
“……방법이 없었는데, 생겼어. 너희 둘이 아는 사이일 줄이야.”
칼로스가 방법이라 말하며 턱 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내가 그 방법이라고?
검지로 나를 가리키자 칼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말이다. 가호.”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