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72
제172화
41. Ping-pong (2)
“연락처를 알려드릴 테니 소모된 아이템 금액을 청구해 주십시오. 즉시 상환은 어렵겠지만…… 최대한 빨리 갚겠습니다.”
올가미에 걸린 짐승처럼 견지운의 눈치를 봤다. 포만도 수치를 보건대 A급 아이템 네다섯 개는 삼킨 게 분명했다.
아이템의 가격은 등급이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견지운이 희소성 있는 아이템만을 수집한다는 소문까지 고려하면……. 못 해도 수십, 아니 수백억 원 단위이리라.
‘소처럼 일해서 갚자.’
S급과 비견할 만한 연봉, 거기다 특수 임무에 따르는 성과급과 인챈트 비용까지. 수익이 급등한 만큼 갚지 못할 금액은 아니었다.
문제는 당장 돈이 없다는 거다. 전처럼 하루살이 같은 잔고는 아니었지만, 견지운에게 배상하기엔 턱도 없었다.
진열장을 가득 채운 재료 아이템의 절반은 공금 처리되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사비를 들여야만 했다. 최근에 해랑의 먹이용으로 아이템을 대량 매입하기도 했고.
‘거기다 얼마 전 충동구매까지…….’
나중 일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같은 가벼운 생각을 했더랬지. 지금 생각하니 한심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차라리 길드 창고를 털었다면 이 지경은 아니었을 텐데. 내가 S급 제작계임을 아는 길드 상부와 나 사이에는 갑을 관계가 분명했다. 여차하면 계약 내용을 수정하는 조건으로 유예를 요구할 수도 있고.
뭐, 그렇지만 푸념한다고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냥 저자세로 부탁하는 수밖에.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날 훑는 견지운에게 재차 호소했다.
“선뜻 신뢰하기 어렵다는 건 압니다. 필요하다면 계약서를 쓰셔도 좋습니다. 그러니 유예를…….”
“무슨 소릴 하나 했더니.”
“성실해서 귀엽지 않니?”
“음, 지화 당신 의견은 언제나 옳지. 귀엽고말고. 근데 난 안 귀여워?”
갑자기 화제가 왜 튄 거지? 두 S급이 눈을 껌벅이는 날 보며 뜻 모를 대화를 나누었다. 고장 난 것도 귀엽다며 재잘거리기에 얼른 끼어들었다.
“저, 그러니까…….”
“됐어, 됐어. 나 그렇게 쩨쩨한 사람 아니야. 중급 헌터들 벌이 어떤지 뻔히 아는데 그걸 다 갚으라고 하겠어?”
“그래요. 지운이가 멋대로 군 걸 윤가호 헌터가 책임질 필요는 없죠.”
그렇게 큰 금액인데 안 갚아도 된다고? 좋은 기회였지만, 넙죽 받아들이기엔 너무 과한 제안이었다. 후환이 있을 줄 누가 안단 말인가.
‘이걸 덥석 물어, 말아?’
고민하는 걸 알아차렸는지 김지화가 내 귀걸이에서 자신의 기계 팔로 관심을 옮긴 해랑을 매만지며 덧붙였다.
“속은 꼬여도, 뒤끝은 없으니까 걱정도 말고요.”
이것도 칭찬이랍시고 견지운이 실실댔다. 전에도 느꼈지만 정말 김지화 앞에서는 순한 양이 따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럴 상황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내심 두 사람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견지운이 각성한 날 만났단 인터뷰는 봤는데.’
기억을 더듬느라 말을 아꼈건만, 이를 다르게 해석한 견지운이 새로운 제안을 내밀었다.
“영 미심쩍은 눈치인데. 양치기 아가씨, 그럼 이런 건 어때?”
이쪽이 본론이구나. 범상치 않은 부탁일 듯해 경계를 세우자 견지운이 호탕하게 웃었다. 별거 아니라고 날 안심시키는데 도통 믿기지 않았다.
“질문 하나만 답해 줘.”
“……어떤 질문, 말입니까?”
“나 원.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간단한 질문이야. 아가씨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정보고.”
그런 사소한 걸로 빚을 없애 주겠다고? 되레 의심스러웠다. 김지화의 반응도 이상하고. 견지운을 보는 눈빛이 무슨 폭탄이라도 앞에 둔 듯했다.
‘거절하는 게 좋겠지.’
여러 번 저울질해봤지만, 역시 마음의 빚보단 물질적인 빚이 낫다. 차후 제작 스킬이 공표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고. 괜히 지금의 일을 들먹거리며 곤란하게 나올 줄 누가 안단 말인가.
정중히 사양의 말을 뱉으려던 찰나, 방 안의 모든 이들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 너머에서 갑자기 기척이 나타났다. 그와 거의 동시에 방문을 알리는 소리가 났다.
똑똑!
다소 신경질적인 노크였다. 성급한 방문자는 허락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 알아서 문을 열었다. 그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방문자는 문지방을 넘자마자 용건을 쏟아냈다.
“말씀하신 대로 얼굴 비췄습니다. 급한 용무가 있으니 전 이만……”
“한차현 헌터?”
“가호 씨?”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평소답지 않은 태도를 보아하니 견지운과 관계가 있는 듯한데.
나만큼이나 당황한 한차현이 안경테를 쓸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빠르게 평정을 되찾은 그가 말을 이었다.
“찾으셨나 보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아, 네. 견 길드장 님께서 데리고 계셨답니다.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랬군요. 경황이 없으셨을 테니 이해합니다.”
이상하게도 한차현은 내가 아닌 견지운을 보며 답했다. 시선도 어딘가 곱지 못했고. 나만 이를 느낀 건 아닐 텐데 견지운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그는 벌떡 일어나 한차현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이야, 둘이 아는 사이였어? 이런 금상첨화가.”
“무겁습니다.”
“아직도 마음은 그대로? 전에 말했던 대로 연봉은 얼마든 맞춰 줄 수 있는데. 대우도 나았으면 나았지, 섭섭지는 않을 거야. 지화 앞에서 좀 미안한 소리지만, 위저드한테 우리 길드만큼 좋은 곳이 없으니까.”
상도덕을 모르는 견지운은 길드 간부인 김지화 앞에서 뻔뻔스럽게 영입 제안을 했다. 틀린 말은 없다만. 적어도 위저드에게만큼은 백야만 한 곳이 없었다. 이를 모를 한차현이 아니건만, 그는 고민 한 번 하지 않고 제안을 쳐냈다.
“감사합니다만 여전히 사양하겠습니다.”
“왜? 뭐가 부족한데? 어?”
“그러게요.”
성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대답이었다. 표정이며 눈빛에도 지긋지긋함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이 사람한테 이런 면모도 있었구나.
기묘한 실랑이는 김지화의 중재로 이내 끝을 맺었다.
“한차현 헌터 의견도 존중해야지. 본인이 싫다지 않니.”
“그렇지만 이렇게 진귀한 싹을…….”
“지운아, 내가 화를 내야겠니?”
나긋나긋한 한 마디였으나 효과는 발군이었다. 지퍼라도 채운 듯 입을 다문 견지운이 김지화에게 달라붙은 채 아양을 떨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그의 반만 한 김지화의 무릎에 드러누울 기세였다.
어느새 내 옆에 앉은 한차현이 그 모습을 관람하며 좌우로 고갯짓했다. 짧은 사이 상당히 피로가 쌓인 듯 낯빛이 좋지 않았다. 신주를 상대할 때도 저렇진 않았는데. 절로 걱정이 되었다.
“괜찮으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니요. 그래도 자초한 일이니 감당해야죠.”
“자초라 하심은…….”
“이강토 헌터를 조일 고삐를 잘못 선택했다, 고 하시면 아시려나요?”
아. 이강토가 유독 한차현 말은 잘 듣더라니. 견지운과의 친분을 이용한 거였나. 오늘따라 안타까운 파티장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뭘요. 저만 이런 것도 아닌데요.”
“피곤하신 듯한데 탑에 가는 건 미루도록 할까요? 이래저래 시간도 지체됐고…….”
“아아.”
반색할 줄 알았건만. 대답을 망설이는 그의 낯에 은근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표정 관리도 평소만 못한 걸 보면 정말 피로한 듯한데도 말이다. 마음이 쓰여 결국 방금 한 제안을 번복했다.
“아니면 짧게나마 원래 계획대로 다녀올까요? 전 아무래도 좋습니다.”
속내를 들킨 게 머쓱한지, 볼을 매만지면서도 한차현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계획에 함께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정말 천생 학자인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란 걸 몰랐다면 오해했을지도.’
오늘의 약속이 맺어지게끔 한 메시지를 떠올렸다. 저 사람한테 개인적인 연락이 올 줄이야. 알림 팝업만 보았을 때는 깜짝 놀랐더랬다.
그러니까, 시발점은 단체 메신저 방의 근황 토크였다. 다음 임무까지 무얼 하고 지낼 것이냐며 차태양이 말문을 텄고, 신주가 강제로 모든 인원을 대화에 끌어들였다. 나 역시 신주의 성화에 못 이겨 여러 계층을 돌아다니며 마도공학과 제작의 기초를 공부할 계획이라고 털어놓았다.
한차현의 연락이 도착한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황야-한차현 : 가호 씨,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도 동행할 수 있을까요?]그는 이어 이전 임무들에서의 보인 내 활약들이 자신의 탐구심을 자극했음을 토로했다. 무례인 줄 알면서도 새로운 분야를 알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고. 거기까지 들었을 땐 나도 조금 주저했다. 내게 오는 이득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괜히 불편하기만 할 테고.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이어 한차현은 도움이 될 만한 장소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덧붙였다. 몰랐는데 이전부터 그는 종종 휴무 때 탑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렇다면야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타워즈닷컴에 올라온 정보와 소문들을 정리해 두긴 했으나, 후보군이 늘어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한차현이라면 날 귀찮게 하지도 않을 거고. 어려운 서적이 나올 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으리라.
그리하여 이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은 둘 다 몰랐지만.
‘키메라 간수를 못 한 내 잘못이니 누구한테 뭐라 할 수도 없고.’
불행하게도 소동의 여파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김지화와 노닥거리는 것 같더니만, 잠깐 사이 견지운은 나와 한차현에게 관심을 옮긴 듯했다. 그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우리 둘을 뜯어봤다. 그러곤 한다는 말이.
“그래서 양치기 양. 내 질문에 대답할 준비는 끝났나?”
란다.
애초에 난 거래를 수락한 적도 없는데 준비는 무슨. S급에 대한 편견대로 제멋대로인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그대로 내어놓을 순 없는 노릇.
“아가씨는 무슨 계열의 헌터지?”
애써 말을 고르고 있었는데 맥이 탁 풀렸다. 허락 없이 날아든 견지운의 질문이 허무하리만큼 간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질문입니까?”
“응. 문제라도?”
해맑은 긍정에 나야말로 되레 묻고 싶어졌다.
‘저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