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85
제185화
44. 본색 (2)
“어디서 건방지게!”
오해일은 날 죽일 듯이 노려보며 무대 바닥에 검을 박아 넣었다. 쿵! 굉음과 함께 나무 재질의 바닥이 크게 갈라졌다. 힘을 과시하기 위한 퍼포먼스라는 걸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몸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물러날 수 없었다. 벌건 자국이 남았을 목을 가볍게 문지른 뒤, 자세를 바로 세웠다.
“제게 행하신 무례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묻겠습니다. 지금은 그보다 더 긴급한 용무가 있으니까요.”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오해일이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로도 모자라 그는 제게 다가선 내가 못마땅한지 멱살이라도 잡을 듯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최 길드장도 어지간히 날 엿 먹이고 싶었나 보지? 그 콧대 높은 애송이가 스스로 그런 거짓말을 지어내고.”
“예?”
“판 깨졌으니까 애쓰지 말란 소리야, 아가씨.”
제기랄, 이런 데서 허비할 시간이 없는데. 내 급한 마음을 모르는 오해일은 무대를 제집 삼아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전부 귀담아듣기 힘들 정도로 저급한 말들이었다. 요약하자면, 위아래를 모르는 최권영이 제 명예를 위해 저를 모욕한다, 정도? 나는 그의 명에 따라 움직이는 하수인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관중 중 몇몇이 대단한 흉계라도 숨겨져 있는 것처럼 구는 오해일의 말에 감화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장의 논리보다는 최권영의 능력에 대한 신뢰 때문에 설득된 것에 가까워 보였지만 어느 쪽이든 내게는 부정적인 신호였다.
회장의 분위기가 내게 완전히 등을 돌리기 전에 저 헛소리를 끊어야 한다. 욕설 섞인 말을 끊고 다급히 소리쳤다.
“전부 궤변입니다! 최권영 길드장이 이런 위기 상황에 그런 짓을 할 것 같습니까?”
“하고도 남지. 그 녀석은 날 매우 싫어하니까.”
“아무런 근거 없는 소리입니다!”
몸의 방향을 틀어, 오해일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두려움, 호기심, 곤란함, 지루함……. 여러 감정이 섞인 시선들이 쏟아졌다. 지휘권을 잡은 오해일의 도움을 받는 건 어려워졌으니 이들을 아군으로 만들어야 했다.
“제 말이 맞다는 건 지금 당장 지붕에 올라만 가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거기 게이트가 있으니까요.”
“하, 아가씨.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쯤 하라니까! 이런 식으로 계속 사람들을 선동하면 마수를 밀반입한 게 아가씨와 최권영이라고…….”
“제발요. 제발 끝까지 들어 주십시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이제 곧 정말 범람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되면 책임질 수 있으십니까, 오해일 헌터!”
책임이라는 단어에 오해일이 입을 다물었다. 그래, 여기엔 쉽게 답하지 못하겠지. 관중들 역시 숨을 죽이고 귀추를 주목했다. 그들의 낯을 살피던 나는 적합한 이를 찾곤 곧바로 그를 호명했다.
“강설 헌터.”
“……네? 저요?”
모자 장수로 분장을 한 여자, 강설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영문을 몰라 눈을 껌벅였다. 저 사람은 날 모르지만, 난 그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었다.
이른바 올해 최고의 슈퍼 루키.
이름처럼 냉기 속성 각성자인 강설은 빼어난 실력과 사차원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다. 처음 둥지를 튼 활빈과 종신 계약을 맺었단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길드에서 탄식을 뱉었다지. 자신을 귀하게 여겨 준 길드에게 의리를 지켰단 말에 대중의 찬사도 쏟아졌다.
‘다시 생각해도 이만한 적격자가 없어.’
강설은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오해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헌터였다. 대형 길드 소속에, 오해일보다 등급도 높으니 후환을 걱정해 줄 필요도 없고.
잠시 고개를 좌우로 갸웃한 강설은 냅다 무대 위로 올라왔다. 토끼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와 유연한 몸짓이 토끼보다는 고양이를 닮았다.
“히어로 언니, 아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히어로 언니께서 왜 절 부르셨을까?”
“굳이 가까이 오실 것까지 없으셨습니다만.”
“초면인 사람이 아닌가, 해서. 근데 초면 맞네요. 이렇게 예쁜 눈을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윽, 부담스럽게 왜 이래. 강설이 코가 닿을 듯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뒤로 두어 발짝 물러나자 그가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천진하게 웃었다. 완전히 그의 페이스에 말리기 전, 얼른 용건을 꺼냈다.
“제가 도착하기 전까지 오해일 헌터께서 어떤 대응을 하셨는지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에,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죠! 솔직히 좀 귀찮긴 한데…….”
재차 부탁하자, 강설이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마지못해 수락의 말을 뱉었다. 그는 다소 산만한 손짓과 함께 회장 내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차근차근 묘사했다.
‘젠장, 역시…….’
혹시나 했는데. 오해일은 사람들을 회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통제했을 뿐. 제대로 된 일 처리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아, 한 게 있기는 하다. 쓸모없는 짓이긴 했지만.
“한 명씩 저기 저 방에 부르길래 뭔가 했거든요. 근데 이상한 질문만 하잖아. 마수를 데려왔으면 말을 하라나. 물론 전 아니지만, 진짜 범인이래도 저처럼 대답할걸?”
“……신고는 했습니까?”
“전 못 봤는데. 나 몰래 속닥속닥하셨을지도? 아닌가?”
“그러진 않았을 겁니다. 저희가 남긴 말을 전혀 귀 기울여 듣지 않으신 듯하니.”
이 근방을 담당하는 길드, 디자이어는 본부가 멀리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이현상 관리국에서도 도착하지 않았으니 알 만했다. 오해일은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고 그 어디에도 증원을 청하지 않았다.
‘당장 연락한 데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
의미 없는 실랑이로 이미 몇 분을 낭비했으니, 남은 건 고작해야 20분.
지원을 기다리기보다는 여기 있는 인원으로 승부를 보는 게 현실적이었다. 다행히 이곳엔 고위 헌터들이 적잖이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지휘권을 잡는다. 그리고 최권영을 구해 내자. 입술을 말아 물려다 그만두고 무대 아래의 헌터들에게 입을 열었다.
“각성자법에 따라, ‘범람’ 혹은 ‘범람’에 준하는 상황에서는 인근 각성자들의 협조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고작 15분의 잔여 시간만이 남은 이 저택의 게이트 역시 이에 포함되죠.”
부정적인 웅성거림이 시작되기 전, 손을 들어 청중들을 조용히 시켰다.
“걱정하시는 부분이 무엇인지는 압니다. S급도 넉다운 된 필드니까요. 하지만 아주 다행이게도 이 필드에는 저희에게 유리한 조건이 여럿 붙어 있습니다.”
공략과 동시에 모든 것이 되돌아간다는 것은 곧 리스크가 낮음을 의미한다. 여러 번 실패하고, 또 누군가 최권영처럼 사라지더라도 공략만 성공한다면 다 없는 일이 되는 거니까. 경험 많은 헌터들은 내 말을 금방 이해했다.
오해일의 지시를 답답해하던 이들도 꽤나 있었던 모양이었다. 몇몇 헌터들이 반색하며 둘씩 짝지어 공략에 자원했다.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곤, 이어 다른 이들에게 비각성자의 피난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내부에 누군가가 있으면, 범람의 위험이 많이 낮아지지만 만약에 대비하는 게 좋겠죠.”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전부 헌터계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자들. 동시에 이현상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기도 했다. 헌터들은 저들을 틀어막는 지휘자가 없어지니 되레 적극적으로 나서며 협조했다.
‘상황이 생각보다 호의적으로 돌아가고 있어.’
그래도 최악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
헌터들이 조를 짜는 틈을 타 핸드폰을 꺼냈다. 뒤이어 김지화와 견지운, 윤수호의 연락처를 찾아 메시지를 보내려던 중, 저 멀리 간 줄 알았던 강설이 달라붙었다.
“뭐야, 뭐야. 언니 어떻게 윤수호 헌터 연락처가 있어요? 나도 얼마 전에야 겨우 받았는데, 그거. 그 사람 엄청 말도 없고, 접근 불가! 이런 이미지 아닌가?”
“잘못 보셨습니다.”
“에, 아닌데. 분명 똑똑히 봤는데. 마지막 번호가 9로 끝났잖아요. 맞지 않나?”
이래서 고위 헌터들이란. 인기척이 느껴지자마자 바로 액정을 껐건만 언제 본 건지. 강설은 거듭되는 부정에도 내 팔을 잡고 흔들며 확답을 받고자 했다. 신주나 차태양과는 묘하게 다른 치근덕거림이었다.
집요한 건 물론이오, 어찌나 산만한지. 짧은 사이 혼이 쏙 빠지는 듯했다. 그리고 때를 노리던 오해일은 내가 혼미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잠깐! 다들 이대로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갈 생각인 건가?”
그는 나와 강설을 뒤로 밀치고, 무대 전면으로 나섰다. 계속 가만히 있을 것이지!
불길한 예감에 그를 말리려 했으나, 거칠게 들이 밀어진 검날이 나를 가로막았다.
“이 여자 말대로 범람은 사실이라 치지. 그건 게이트가 증명해 줄 테니. 하지만 그 이후의 말들은? 그것들에 대한 근거도 있나?”
“그건…….”
“없겠지. 참 교묘한 말솜씨였어. 필드 안에 들어가기 전까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겠지. 그만큼 잘 골라 늘어놓았더군.”
기세를 탄 오해일은 내 목 앞에서 검을 흔들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검이 닿을 듯 말 듯 살갗을 스쳤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보단 어떻게든 근거를 짜내야 한다는 강박에 입술이 말랐다.
“최권영 일만 해도 그렇지. 그 자식이랑 사랑싸움이나 하고 헤어진 걸 실종되었다고 주장하는 걸 수도 있지 않나. 어, 안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
“아가씨의 말도 딱 이런 수준의 증언 아닌가. 뜯어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헛소리지. 최권영도 탈출하지 못한 필드에서 혼자서 빠져나왔다니. 그거야 말로 어린 애도 안 속을 헛소리지!”
“자력으로 나온 게 아니라, 최권영 길드장께서 절 내보내 주신 겁니다. 도움을 청하라고요.”
“글쎄. 믿기 힘든데.”
자연스레 사람들의 눈길이 오해일에게서 내게로 옮겨왔다. 조금 전과 달리, 시선들에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증명을 요구하는 이들 앞에서 말문이 콱 막혔다.
이를 기회라 여긴 오해일이 청산유수로 떠들어 댔다. 이미 필드를 경험한 당신을 내버려 두고, 왜 따로 조를 편성해야 하냐는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꽤 많은 사람이 그에게 동조해 해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여자의 뭘 믿고 목숨을 내놓아야 하지?”
뭐라도 말해야 해. 이대로 가면 정말로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애써 굳은 혀를 움직이려던 순간, 오해일이 돌발행동에 나섰다. 나도, 강설도 말릴 새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목 언저리를 오가던 칼날이 위로 올라와 가면을 고정하는 툭, 실을 끊었다. 뒤이어 새까만 가면이 힘없이 낙하했다.
“어떤 낯짝으로 발칙한 거짓말을 했는지, 어디 한번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