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37
제237화
55. 컬러링 (3)
내가 이 까다로운 고양이의 성미를 맞춘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훌쩍이는 아이를 안아 들 것. 이 정답을 내놓기까지 두어 번 더 얻어맞은 볼을 문질렀다. 아프진 않았지만,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미묘한 기분이었다.
“그냥 말로 해 주시면 안 되는 겁니까?”
할 수 없는 것인지, 하기 싫은 것인지 그것만 귀띔해 줘도 참 좋으련만. 야옹-. 새침하게 운 고양이가 팩 고개를 돌렸다.
그로도 모자라 무정한 고든은 나를 두고 총총 계단 위로 뛰어갔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 계단 위로 안개도, 구름도 아닌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대충 훑어보니 일종의 결계인 듯했다. 무엇이 매개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변 풍경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쩔쩔매는 모습을 즐기는 건가.’
그렇다고 한들 별수 있나. 선택지는 계단을 올라가는 것, 하나뿐이었다.
“아, 같이 가요! 기다려…….”
“저어……, 언니.”
“네?”
내 품에 안긴 이래, 작게 뒤척이기만 하던 아이가 옷깃을 잡아당기며 날 불렀다. 얼굴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되물음에도 화들짝 놀라기에 할 수 있는 한 온화하게 웃었다.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있긴 한데 그 전에……. 왜 저한테 존댓말 하세요? 언니는 어른이잖아요.”
아이에게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딱딱한 말투였나. 잠시간 고민했지만 그런 의도로 한 질문이 아니란 결론이 났다. 존댓말 자체가 낯선 눈치였으니까.
말을 고르던 중, 문득 방금 공장에서 본 아이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고함과 손찌검, 혹사가 일상인 환경. 이 아이도 그렇게 자란 건가?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만도 했다.
나의 침묵이 길어지자 불안해하는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내 손이 올려지자 몸을 움츠렸던 아이가 천천히 긴장을 푸는 것이 느껴졌다.
“당신을 존중하니까요. 이유는 그것뿐입니다.”
“존중이 뭐예요?”
“음, 너무 어려운 말이었나요. 그러니까, 풀어 말하자면 저와 당신이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 함부로 대해선 안 되겠죠? 스스로가 귀하듯, 다른 사람도 그런 거니까요.”
워낙 말주변이 없는 터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이는 내가 무엇을 설명하고자 했는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납득은 못 하는 듯했지만.
“제가 귀해요?”
“네, 그럼요. 그렇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하지만 전 몸도 굼뜨고, 일도 못 하고, 힘도 약한데…….”
자신의 단점을 늘어놓는 아이의 모습 위로, 매사에 움츠러들었던 내 옛 모습이 겹쳐 보였다. 타인의 평가에 나를 맞추고, 한계를 결정짓던 시절의 모습이.
“그게 당신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
“설령 그렇다고 해도 세상에 무가치한 이는 없습니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존중받아야 해요. 사람은 필요에 따라 끼웠다 버리는 기계 부품 같은 게 아니잖아요.”
아이는 쉬이 답하지 못했다. 이해한다. 이런 말 한마디로 그간 쌓인 경험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다만, 이 말이 아이의 마음에 고여 언젠가는 작은 응원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이쯤에서 분위기를 환기해 볼까.’
마냥 불편하지만은 않은 침묵 사이로 계단을 오르다 가볍게 툭 물었다.
“계속 당신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어색하고, 이상한데. 이름을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 이름요?”
이름으로 불린 지가 오래되어 뭔가 낯설다며 아이가 입을 어물댔다. 물론 나는 그를 독려하려 했으나 성격 급한 불청객이 끼어들었으니.
야옹! 위쪽의 계단참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울음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모로 들어도 저건 재촉하는 소리였다.
“네, 갑니다, 가요! 정말이지. 성격 급한 고양이, 아니 수사관이라니까요. 안 그래요?”
“그, 그런 것도 같아요.”
“나머지 이야기는 올라가서 합시다. 이름, 꼭 다시 물어볼 테니까 잊지 마시고요.”
“네!”
내심 말하고 싶었는지, 네라고 답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애매한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얼굴을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떨어지지 않게 꽉 잡으세요.”
꽉 잡힌 소매 너머로 아이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이런 것까지 재현하다니. 새삼스럽지만 대단한 마법이었다.
‘나중에 고든에게 원리를 물어봐야지.’
혼자 올라갈 때는 그렇게 길게 느껴지더니.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등반하니 순식간에 꼭대기 부근에 도착했다. 계단참에 엎드려 졸던 고든이 우리를 발견하곤 느릿하게 일어났다.
“그렇게 재촉하더니만. 그새를 못 참고 자고 있었습니까?”
취사선택에 능한 고든은 이번에도 역시 답하지 않았다. 뭐,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만.
“잡설은 이쯤 하죠. 그래서 저희를 왜 여기로 부르신 겁니까?”
기다렸던 말이라는 듯, 기다란 꼬리가 살랑 흔들렸다. 그 뒤로 방금까지는 없던 블랙홀 같은 통로가 보였다. 중앙예술대학으로 갔을 때 이용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이미 한 번 겪은 바가 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통로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잠시 후.
“아니, 뭐가 미달이라는 거야?”
통로와 나를 가로막듯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노려봤다.
[특수 필드, 인연의 끈(C)에 입장합니다.] [조건 미달! 필드 입장 조건을 만족한 뒤, 다시 시도해 주세요.]씩씩대며 머리를 헤집는 나는 알 바가 아니라는 듯, 통로 안쪽에 주저앉은 고든은 태연했다.
“저기요, 고든? 경감님? 왜 저만 못 들어가는 겁니까?”
“나비야, 응? 대답해야지.”
고든은 이번에도 묵묵부답. 괜히 그 옆에 선 아이만 안절부절못했다. 그에게 괜찮다고 눈웃음지으면서도 속이 아주 답답했다.
혹시나 하고 들어가 보라고 했더니만, 나와 달리 아이는 문지방 넘듯 쉽게 통로로 진입했다. 고든 역시도 마찬가지. npc와 플레이어라는 차이 때문이라기엔 뭔가 석연찮았다. 이미 한 차례 비슷한 일을 무사히 넘겼으니까.
“아까는 이런 사족이 달리지 않았잖아. 뭐가 달라졌기에 갑자기 까다롭게 구는 거야?”
아마 이번에도 내게 발트하임의 과거, 내지는 뒷이야기를 보여 주려는 것 같은데. 목적도, 안내자도 같은 상황에서 갑자기 조건이 생기니 당혹스러웠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게 아니었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는 것을 깜박했다.
“한차현 헌터가 없잖아.”
야옹-. 그걸 이제야 알아챘냐고 문책하는 듯한 울음이 확신을 심어 주었다. 이해하고 나니 당연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오히려 조건도 없이 문을 열었던 그때가 비정상적이었던 거지.’
다시 생각해도 치트 키 같은 능력이었다. 한차현의 스킬은 규칙을 비틀고, 어긋난 순리로 세계를 이끈다. 그것이 없으니 당연히 많은 것이 달라져야 했다.
자, 그렇다면 나는 뭘 해야 이 특수 필드에 입장할 수 있을까?
솔직히 좀 막막했다. 아무런 힌트도 없었으니까. 고든도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이고. 이제는 제대로 자세를 잡고 앞발을 삭삭 핥는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일 때는 열성적인 수사관이더니만, 고양이가 되니 고집불통 게으름뱅이가 되어 버렸다.
“책임감이 그렇게 투철하던 사람이.”
답답한 마음에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곱씹어 생각하다 보니 내 관점이 틀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겉모습이 변한다고 성정까지 변할 리 없잖아.”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누구보다 가까이서 그를 보았다. 고든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업무를, 소명을 내팽개칠 이가 아니었다. 거기에 눌려 죽었으면 죽었지, 외면하진 않으리라.
줄리엣 루와 함께하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한 이가 아닌가.
관점이 바뀌니, 그렇게 막연하던 답이 성큼 다가왔다.
“내버려 둔 게 아니라, 이미 줄 수 있는 힌트를 다 준 거라면?”
말을 뱉은 순간, 그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처음 만난 중대 범죄 수사과의 사무실, 사별한 연인의 집을 지키던 미리엄, 한마음으로 대화한 공원과 중앙예술대학, 도로시의 집…….
그사이, 내게 답이 될 말이 있었다.
“……아, 그래! 그때 분명 그런 말을 했었지!”
나는 이윽고 기억 속에서 단서를 건져 냈다. 나와 미리엄, 그리고 고든이 괴담에 관해 이야기하던 때 들은 이야기. 그게 답이라는데 내 활도 걸 수 있었다.
‘어떤 노래를 부르면 아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든다고 했어.’
곡명은 ‘늙은 화가의 노래’. 고든이 직접 내 앞에서 한 소절을 부르기까지 했는데. 왜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었는지. 괴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이 노래야말로 필드가 요구하는 조건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해낸 것은 좋았다. 하지만 곧 나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으니.
“그 노래 가사가 어떻게 됐더라…….”
칠하고, 칠하리. 이 여섯 글자는 알겠는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어도 그 앞의 구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이 퍽 가엾어 보였는지, 내내 그루밍에 바쁘던 고든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도와주실 겁니까?”
– 답답해서 지켜볼 수가 없군. 자네가 내 부하 직원이었다면 이 정도로 넘어가지 않았을 거야!
“유감스럽게 전 플레이어라. ……잠깐만. 당신, 말할 수 있었던 겁니까?”
– 유감스럽게도 그렇다네.
머릿속에 울리는 웃음소리가 어찌나 얄미운지.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고양이의 모습까지 곱지 않게 보였다.
‘이 사람 정말……. 그런 거면 내 뺨은 왜 때린 건데!’
따지고 들 틈 없이 그가 먼저 말을 이었다.
– 선창할 테니 따라 하게.
나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발트하임의 노동요를 들려주었다. 이 계층에서 가장 많은 이에게, 오랫동안 불려진 노래였다.
따뜻한 음색과 멜로디에 잠시 멍해졌던 나는 이내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그를 따라 불렀다.
“지난한 세월에 붓은 꺾였다네. 그러나 칠하고 칠하리. 마음이 닿는 곳에 붓이 닿으니. 그렇게 칠하고 칠하리. 붓끝의 그림은 우리네 인생이라네.”
내가 들어도 썩 좋은 솜씨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가 손뼉을 치며 동조하니. 노래를 따라 부르는 내내 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소절이 끝나는 순간.
[특수 필드, 인연의 끈(C)에 입장합니다.]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