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47
제247화
57. 에피고넨 (4)
“수리한다니. 그 말씀은 저 천장화가 현재 온전치 못하단 뜻인가요?”
“아, 예.”
시간 마법과 관련한 질문이 먼저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고든과 나 사이 오간 대화를 들은 한차현은 곧장 그림의 상태를 물어왔다. 뭐, 이 사람답다면 다운 반응이었다.
“총독부, 아니 예술의 전당이 부서질 뻔했다는 것은 한차현 헌터도 알고 계시지요?”
“네, 물론이죠. 제가 가호 씨께 해 드린 이야기인데.”
“말씀해 주신 대로 철거 작업은 급하게 중단되었습니다. 찰나의 아름다움 때문에요. 하지만 그때는 이미 건물 일부가 파괴된 뒤였다고 합니다.”
손을 들어 서쪽 끄트머리의 천장을 가리켰다. 일순간 숨을 멎게 하는 이 아름답고 찬란한 회로의 유일한 흠이 있는 부분이었다.
나와는 다르나, 또 비슷한 방면에서 예민한 감각을 지닌 한차현은 금방 이상을 알아차렸다.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기 위해 한쪽 눈을 찡그리고 있던 그가 중얼거렸다.
“뭔가, 일그러진 듯한데.”
“바로 보셨습니다.”
“가까이 보아야 확실해지겠지만…… 복원된 것이로군요.”
오, 이렇게 빨리 정답이 나오다니. 솔직히 여기서부터는 내가 다 말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차였다.
‘하기야 전공이 고고학인 사람이니까.’
시간을 통해 쌓인 경험들이 단서가 되어 주었나 보지. 어쩌면 앞으로 벌어질 일에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이것 참 마음이 아프네요. 저만 빼놓고 오붓하게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다니.”
“빼놓다니요. 이제 막 화두를 던진 참이었습니다.”
“오붓하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으시는군요?”
“동료 간에 오붓한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내가 잠시간 한차현의 경력을 떠올리는 사이, 앞서 나갔던 최권영이 돌아왔다. 하여간 귀 한번 밝다니까. 그렇지 않아도 부를 생각이었지만.
“애먼 사람한테 심술부리지 마십쇼.”
“이런.”
무어라 변명하기 전에 얼른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폭군 같은 상사의 가슴팍에 손을 대고 죽 밀었다. 힘을 주어 봤자 당해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대충 그런 척을 한 것뿐이었는데. 최권영은 예상과 달리 순순히 뒷걸음질을 쳤다.
‘또 무슨 수작질이야?’
이해하려고 들면 안 되는 인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내 모습이 퍽 웃겼나 보지. 최권영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양손을 들었다.
“제가 뭘 했다고 그런 눈으로 보시는지. 이렇게 무해하지 않습니까.”
“……다 길드장 님의 업보입니다.”
“매정하셔라. 설마하니 제가 생명의 은인께 파렴치한 짓을 하려고요.”
“능히 그럴 만한 분이죠.”
“바로 보셨습니다.”
아, 성격하고는. 굳이 내가 방금 한 대사를 돌려주는 것을 좀 보라. 더 상대해 봤자 이 능구렁이 같은 놈을 내가 이길 순 없었다.
긴 한숨과 함께 손을 떼고, 한차현에게로 몸을 돌렸다. 유치한 언쟁을 보았을 텐데도 시종일관 침착한 낯을 마주하니 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는 그대로 최권영에게 등을 보인 채 하던 설명을 마저 이어 나갔다.
“두 분께는 보이지 않겠지만, 저 부근의 회로가 완전히 부서져 있습니다.”
부서진 건물을 총독부로 사용할 수 있게끔 재건하며 데런 정부는 천장화를 복원했다. 이 작업에 참여한 이들 모두가 중앙예술대학에서 수학한 인재였던 만큼 줄리엣의 그림은 금방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니까, 겉모습만 말이다.
“그림에 내재한 마법은 지금까지도 수리되지 않았습니다. 전체 규모를 따지면 미미한 정도입니다만.”
“제법 중요한 부분인가 보죠?”
“예, 마법의 구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어서요.”
대답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문제의 부분을 바라보았다. 무너진 회로 위, 오밀조밀 어깨를 붙이고 선 집들 사이 익숙한 빛깔이 보였다.
‘의도한 거겠지, 분명.’
너른 천장에 펼쳐진 회로의 중추. 그곳에는 봄날의 새싹 같은 외벽을 가진 작은 집이 있었다. 꽃들이 만개한 후원에서는 녹색 눈을 한 고양이 한 마리가 노닐고 있었다.
끝내 돌아가지 못한 줄리엣의 보금자리이자, 아틀리에였다.
“요약하자면, 복원이 온전치 못하다. 이런 말이군요.”
자신이 이해한 바가 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최권영은 대답할 새도 없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제 좀 관심이 가네요.”
“저, 무슨 뜻이신지.”
“이 계층, 아니 발트하임 말입니다. 본래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거든요. 몇백 년이나 누적된 노하우를 가지고도 갓 움튼 기술에 짓밟히다니. 지루할 정도로 무력하지 않습니까?”
반응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걸 아는데.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다.
언뜻 듣기에 최권영의 말에는 틀린 부분이 없었다. 속국이나 다를 바 없는 데런과의 전쟁에서 발트하임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니까. 그러나 이는 모두 하나의 변수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패배 뒤에도 가장 강력한 한 수를 숨겨 다음을 기약하다니. 이쯤은 되어야 다음이 궁금해지죠.”
지나치게 몰입한 거지.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최권영에게 대들었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그럴 뻔했다. 왜냐하면.
“하, 이건 모두…….”
“모두 플레이어들 때문에, 저희들 때문에 기인한 일 아닌가요?”
생각지 못하게 끼어든 한차현이 내가 하려던 말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나와 눈을 맞췄다.
‘어, 갑자기 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 답이 있었다. 그는 내게 자신이 나의 마음을 잘 대변했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건, 맞는데…….’
왜라는 질문은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계속 이대로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얼떨떨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것을 확인한 뒤에야 말을 이었다. 다소 격앙되었던 나와는 상반되는, 조곤조곤하나 단호한 어조였다.
“적어도 저희 셋 중에서는 제가 이곳에 대해 가장 잘 알리라 생각됩니다.”
“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군요.”
“그런 제가 보기에도 발트하임은 무력하게 무너졌습니다. 두 도시 국가의 국력 차를 고려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본래라면 말입니다.”
한차현은 플레이어의 개입이 이 계층의 명운을 얼마나 뒤흔들어 놨는지를 명료하게 설명했다. 그 최권영조차 지적할 틈 없이 완벽한 논리로.
“발트하임을 함락시킬 때, 새미기픈의 지분이 얼마나 높은지는 당시의 전황이 기록된 책 한 권만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추천도…….”
“아뇨, 사양하겠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알겠으니.”
“조악한 설명에도 이해해 주셨다니 다행입니다.”
“조악보다는 애틋이 알맞은 수식어가 아닐까요?”
애틋? 그건 또 뭔 소리야?
순식간에 대화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나와 달리 한차현은 최권영의 저의를 알아들은 듯했다. 그는 은은한 미소를 걸친 채 답했다.
“뭐, 둘 다라고 해 두지요.”
와중에 내 말버릇은 왜 따라 하는 건데.
나는 상황을 어림짐작하던 것을 빠르게 포기했다. 눈치 빠른 인간들끼리 주고받는 핑퐁에는 함부로 끼어드는 게 아니었다.
‘어설픈 대사를 던져 봤자 바보 소리나 듣지.’
그럴 바엔 내가 주도하여 화제를 바꾸는 것이 나았다.
“눈싸움 다 하셨으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묘한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하는 두 사람 사이에 다시 끼어들었다. 최권영과 한차현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동시에 두 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원하신다면 기꺼이.”
“음, 좋아요.”
분명 원하던 결과를 얻었는데. 영 개운치가 못했다.
‘봐주겠다는 식의 태도잖아.’
어느 쪽이고 쉽지 않은 인간들이었다, 정말. 죄 없는 앞머리를 헤집으며 언짢음을 가라앉혔다. 그러자 최권영이 나를 달래듯, 새로운 화제에 불을 지폈다.
“저희 중 가장 조예가 있는 윤가호 헌터가 보기엔 어떻습니까? 저 복원 말이에요.”
“사실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마법에 조예가 없는 데런은 몰라도, 수리공들은 분명 알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한 복원에 구멍이 있음을. 다만 그 의도를 짐작하는 것은 내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아예 손을 뗀 건지, 고의로 공백을 남긴 건지 저것만 보고 어떻게 알겠어.’
그러나 나는 일단 최권영의 의견에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뭐, 맥락을 보자면 길드장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겠지요.”
동의를 받아 기쁘다는 듯, 최권영이 입꼬리를 올렸다.
입을 다물고 있으니 제법 그럴듯한 미남으로 보였으나 나는 무심히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나지막하게 들리는 웃음소리도 무시했다.
“전 지금부터 찰나의 아름다움, 혹은 지나간 마법의 시간이라 불리는 저 그림을 온전히 복원하려 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돌릴 겁니다.”
두 번째 외면을 즐거이 여기던 최권영이 조용해졌다. 내내 나를 응시하던 한차현의 눈동자 또한 진지한 빛을 띠었다. 그만큼 이것은 무거운 화제였다.
“계층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마법은 전성기의 김지화 헌터도 하지 못했을 텐데요. 하물며 시공간에 개입하다니. 실현 가능한 일이긴 합니까?”
“누차 말씀드렸지만,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아, 설명이 너무 부족했나. 정색하여 말하는 두 남자에게 고개를 저으며, 황급히 첨언했다.
“생각하시는 그런 일을 벌이려는 게 아닙니다.”
“그럼?”
“시간을 돌리는 건 맞는데요. 아주 일부분만, 그러니까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돌릴 겁니다.”
최권영이 지적했듯, 계층 전체의 시간을 건드리는 것은 S급이 아니라 L급 특성을 가져와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도시 지하에 설치된 폭파 장치만을 목표로 한다면? 그렇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언제고 도시를 파괴할 수 있는 잔악한 장치가 설치되기 전으로. 딱 그만큼만, 그 부분만 시간을 돌리자. 그건 불가능이 아니라 어려운 목표일 뿐이었다.
“그 정도로 세세하게 조정하려면, 고생깨나 해야겠죠. 하지만 시간이 들 뿐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제야 한차현과 최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것도 남들이 듣기에는 말도 안 되는 목표였다. 그러니 납득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여태껏 이루어 온 성과가, 나의 행보가 그들을 설득한 모양이었다.
‘조금은 자신감을 가져도 되려나?’
실없는 생각을 하다, 문득 내가 잊고 있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두 분은 어쩌다 여기 오셨습니까?”
지하 배수로와 총독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장소가 아닌가. 진작 물어본다는 것을 여태 깜박했다.
설명의 바톤을 이어받은 것은 한차현이었다. 그는 내가 알아듣기 쉽도록, 그러나 너무 길지 않게 적당히 상황을 설명했다.
“본인이 얼마나 활약했는지는 쏙 빼놓았군.”
최권영이 사족을 붙이기도 했지만, 그는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희는 유일한 단서인 지나간 마법의 시간을 찾아 이곳까지 온 겁니다. ……썩 답이 보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실마리를 잘못 해석한 모양이라며 덧붙인 한차현이 안경테를 쓸었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은데 나름대로 그와 긴 여정을 보낸 내게는 보였다. 그가 얼마나 난처해하고 있는지가.
‘이런 표정은 이 사람한테 어울리지 않아.’
공교롭다고 해야 하나. 내게는 그를 평소대로 돌려놓을 비책이 있었다. 음, 조금 전에 생겼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글쎄요. 있는 것 같은데.”
서두 없이 던진 말에 의문을 표하는 두 남자를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는 그들보다 먼저 도착해 발견한 무언가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찾으시던 답, 여기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