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56
제256화
59. 스트로크 (4)
“견지운도 모자라 네놈까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글쎄요. 유추해 보시겠습니까?”
“그딴 대답을 듣자고 한 말이 아니잖아!”
최정록이 팔을 뻗자, 높게 치솟은 불길이 번져 나갔다. 정면을 향해 내달리는 불꽃은 점차 뱀의 형상을 띄더니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현재 스스로가 A급을 상회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최정록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온몸에 끓어 넘치는 힘은 그에게 이성을 앗아 가고, 만용을 불어넣었다.
‘이만하면 천하의 최권영도 당해 낼 수 없겠지?’
환경도 그를 도왔다. 이런 좁은 통로에서는 최권영 같은 레인저가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동료가 있는 만큼 조준에도 조심스러워질 테고. 나름의 계산을 마친 최정록이 째질 듯이 웃으며 제 뱀에게 명령했다.
“싹 다 먹어 치워!”
아가리를 쩍 벌린 뱀의 목구멍에 용암을 뭉쳐 만든 듯한 구체가 뭉치기 시작했다. 탁구공만 할 때부터 배수로를 후끈하게 덥히던 구체는 금방 커다랗게 변하여 적을 향해 쏘아졌다.
대비할 틈도 없이 들이닥친 습격이었다. 불길을 부추기며 날아가는 구체를 본 캐서린이 비명을 질렀다.
“안 돼!”
“너흰 이제 끝이다!”
그러나 정작 희비가 교차하는 외침 사이 서게 된 사내는 태연자약했다.
자포자기라도 한 것일까. 최권영은 팔짱을 낀 채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기를 겨누어 저항할 생각도 없는지, 총구도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방비하게 붉은 구체를 맞이하는 그를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려던 그때, 캐서린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분명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었던 것 같은데. 한차현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디에…….”
말문을 열기 무섭게 누군가 그의 귓가에 쉿, 하고 속삭였다. 그와 동시에 배수로에 때아닌 피리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딘가 구슬프면서도 이상하게 안심이 되는 곡조에 캐서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제 다 괜찮을 것만 같았다. 용기를 얻은 캐서린은 화마 앞에 선 낯선 사내의 인영을 피하지 않고 눈에 담았다.
시선을 느낀 최권영이 즐겁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저를 죽음으로 이끌 공격을 지척에 둔 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도핑까지 했다 해서 나름대로 기대했습니다만.”
“하, 끝까지 여유를 부리는구나! 죽어!”
악에 받친 최정록이 화력을 올렸다. 허공에 멈춘 구체가 더욱 커지더니, 멀리 떨어진 캐서린마저도 화상을 입을 듯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배수로 그 어디에도 최권영의 안전 구역은 없었다.
“제 오판이었습니다.”
최권영의 말이 신호라도 되었던 것일까. ‘오판’이라는 단어가 발음되기 무섭게 좁은 통로 가득히 커진 구체가 팍, 터지며 최권영을 덮쳤다.
그러나.
“이 정도로 하자품이었을 줄이야.”
최권영의 위로 쏟아지던 용암과 불꽃이 삽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배수로를 채우던 열기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서늘한 공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이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후, 직접 덤벼들려 했던 뱀이 조각조각 흩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물어 뜯기기라도 한 듯 흩어지는 불꽃 파편들의 단면이 울퉁불퉁했다.
정체불명의 피리 소리는 어느새 둔감한 최정록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커졌다.
“뭐, 뭐야!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이 소린 또 뭐고!”
“알고 싶으십니까?”
고개를 살짝 기울인 최권영이 그림처럼 웃었다. 최정록은 그것이 왜인지 제 목숨을 거두러 온 사신의 미소처럼 느껴졌다.
헌터답게 최정록의 직감은 맞아 들었다. 최권영이 딱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튕기자, 푸른 용이 은신을 벗어던졌다.
“저, 저 괴물……!”
“과찬이시군요.”
불꽃으로 이루어진 뱀을 할퀴고, 물어뜯고, 굴복시키는 용의 모습에 최정록은 전의를 완전히 잃었다. 가장 자신 있었던 마법이 이렇게 되었으니, 무엇을 해도 결과는 같으리라.
타고난 상성에서 비롯한 공포심까지 더해지니 그는 속절없이 덜덜 떨어 댔다. 거대한 물이 주는 공포는 그만큼 깊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해야 해.”
살기 위한 생존 본능 덕분일까. 궁지에 몰린 최정록은 금방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상성도 그렇고 아무래도 직접적인 대치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정공법만 있는 게 아니었다.
“네놈들 거기서 꼼짝도 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이 여자를……. 어?”
분명 바로 근처에 있었을 텐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발치에서 바르작거리던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기척조차도 감지할 수 없었다.
“절 찾으십니까?”
“……!”
캐서린은 난데없이 최권영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어느새 저기까지? 최정록이 당황하여 말문을 잃은 듯하니, 캐서린을 부축하고 있던 한차현이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평소와 달리 온기 한 점 없는 어조였다.
“알고 있다면 대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죠.”
“내가, 이렇게 할 줄 알고 있었다고?”
그럴 리 없었다. npc를 인질로 잡겠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방금 결정한 일이 아닌가. 대비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었다. 상황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게 틀림없다고 최정록은 굳게 믿었다.
그러나 한차현은 보란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니. 가까스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최정록이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어떻게…….”
“보고, 겪었으니까요.”
“뭐?”
“최정록 헌터와 하룻밤 사이에 몇 번을 마주했는데, 참 한결같으시더군요. 그런데도 경향성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죠.”
단어들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걸 보면 한국말은 맞는 것 같은데. 최정록은 도무지 저 희멀건 놈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상했던 일인지 한차현은 동요하지 않고, 무정한 낯으로 마도서를 펼쳤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할 일은 없단 말입니다.”
파라락, 바람 한 점 불지 않건만 책장들이 휘날리더니 그 사이에서 실들이 뻗어 나왔다. 올바른 길을 알리던 붉은 선들이 사냥감의 목덜미를 틀어쥐는 올가미가 되어 쇄도했다.
최정록은 자신이 불로도, 완력으로도 저 포박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어설픈 파훼를 포기하고 배수로 안쪽으로 냅다 달렸다. 수십 갈래로 나뉜 실들이 도주하는 그의 뒤를 추격했다.
“헉, 언제까지 쫓아올 생각이야?”
최정록은 이리저리 배수로를 달리며 실을 피했으나, 포위망은 멀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약물의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부작용만 아니었어도 바로……. X발. npc 새끼들 기술력은 왜 이렇게 후진 거야!”
이렇게 순식간에 입장이 뒤집히다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그가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으니.
탕! 탕! 그의 발치로 연달아 총탄이 날아왔다. 간발의 차이로 그를 피한 최정록이 기겁하여 걸음을 재촉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쏘인다는 생각에 바짝바짝 입술이 말랐다.
사방에서 덤벼드는 붉은 실과 좁은 통로를 울리는 총성이 최정록의 눈과 귀를 막고, 사고를 방해했다. 그가 몰이 사냥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막다른 길에 다다른 뒤였다.
“아.”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통로가 끝을 보이고, 쇠창살로 틀어막힌 벽이 나타났다. 쇠창살 따위 전부 녹여 길을 열면 그만이었지만…….
“저 뒤도 막다른 길이잖아.”
일견 하수가 흘러가기 위한 통로처럼 보이는 저곳에는 폭파 장치의 제어실이 숨겨져 있었다. 본래 목적했던 곳에 드디어 도착했음에도 최정록의 낯빛은 어두웠다.
“열쇠도, 피도 없는데 무슨 소용이야!”
저 잡놈들 때문에 그가 그렸던 모든 청사진이 어그러졌다. 저놈들 때문에!
쇠창살에 등을 붙인 최정록은 점차 가까워지는 발소리의 주인들을 노려보았다. 통로의 어둠 너머, 맹수 같은 두 쌍의 눈동자가 형형히 빛났다.
숨소리며, 시선이며, 심지어는 마음까지 흐트러진 그와 달리 상대들은 여유로웠다.
“이런. 벌써 지치셨습니까?”
“길드장 님, 불필요한 도발은 삼가는 편이…….”
“혈육을 닮았단 소리를 또 해야 할까요?”
“사양하겠습니다.”
최정록이 듣기엔 저 만담 같은 대화가 꼭 저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제기랄, 제기랄……!”
이런 결말을 맞으려 일을 벌인 게 아닌데. 이대로 끝이 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계약 사항을 위반했으니 거액의 배상금을 내는 건 당연한 일일 테고. 멋대로 임무를 망쳤으니 모종의 보복을 당할지도 몰랐다.
아니, 그 전에 이 자리에서 멀쩡히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제게 겨눠진 총구를 보며 최정록의 망상은 더 먼 곳으로 뻗어 나갔다.
“분명, 주, 죽임당할 거야!”
사실 이성적으로 보면, 최권영과 한차현은 그를 죽일 수 없었다. 오점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최권영은 길드를 운영하며 그 어떤 범법 행위도 저지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데런의 왕과 연락하며 쥐게 된 정보가 있으니 협상의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최정록은 약물의 부작용으로 멀쩡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총으로 날 쏘려는 거지? 그리고 이 배수로에 내 시체를 던질 테지!”
“네?”
“호오, 그것 참 흥미로운 상상력이로군요.”
“길드장 님!”
지적하는 듯한 호명에 최권영이 양손을 들었다.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겠다는 항복 신호였으나, 잔뜩 겁먹은 최정록에게는 그것이 꼭 사형 선고처럼 느껴졌다.
“으아악!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이렇게 끝날 리 없어……!”
뭉그러진 발음으로 외친 그의 손에는 어느새 여러 개의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