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56
제56화
14. 폭풍우 치는 밤 (4)
“쥐새끼 같은 놈들. 얼른 찾아내!”
마스트를 향해 가던 중, 걸어 두었던 갈고리를 풀자 몸이 허공에 붕 떴다. 응집을 걸어 크기를 불린 화살을 갑판에 쏘았다.
콰광!
내가 넘어온 줄 모르던 선원들이 혼비백산 흩어졌다. 하지만 혼란도 잠시, 적이 있음을 알리는 고둥 소리가 울리자 선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맞춰 주위를 경계했다.
커다란 발광 마도구가 내뿜는 빛이 밤하늘 이곳저곳을 비췄다.
착지 전, 한 번 더 시위를 당겼다. 타깃은 절벽 인근을 향해 대포를 겨누는 포병들. 빗줄기를 가르고 날아간 화살이 포병의 어깨에 명중했다.
“릴리즈!”
[5번 슬롯, ‘연쇄’의 특수효과가 발동합니다!]명중한 화살이 사내의 어깨를 꿰뚫고,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근처에 있는 포병 셋을 연달아 공격했다. 위치가 들키기 전, 인적 드문 갑판 구석으로 이동했다.
“아직 멀었나.”
절벽 쪽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바람이 거세져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물어뜯었다. 5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메모라이징해 둔 식의 절반이 동났다.
“윤수호, 빨리 좀 와라.”
근래 들어 처음으로 윤수호가 기다려졌다.
마나포션을 들이켜곤 빈 병을 바닥에 버렸다. 다른 것보다도 마나 소모량이 문제였다. 스킬을 남발하다 보니 마나가 순식간에 바닥을 보였다. 마음 같아선 포션을 링거처럼 꽂고 다니고 싶었다.
“차오르는 달을 사용하기도 애매하고…….”
마법적 소양이라곤 없는 뱃사람들의 마력은 한 줌 남짓.
스킬을 사용하는데 드는 마나가 더 커서 이런 상황에선 비효율적이었다. 그 시간에 포션을 마시는 게 나았다. 거기다 보조용으로 쓸 만한 아이템은 크라켄에게 모두 사용한 지 오래.
‘뭐,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불행 중 다행으로 폭풍우 속에서 암초를 피하느라 시선이 분산되었다. 툭하면 배가 기우는 탓에 마도구의 조준도 엉망이었다.
험한 날씨가 아니었다면 진작 어디 한 군데에 구멍이 났을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움직여 볼까.”
하늘을 향해 산개의 식이 걸린 화살을 발사하자, 내가 올라탄 함선 좌측에 있는 배 위에 마법진이 떠올랐다. 손가락을 튕기자 우수수 화살이 떨어졌다.
“끝까지 이대로만 해 보자.”
이동하려는 찰나, 모퉁이를 돌던 선원이 나를 발견했다.
“……!”
사내가 목소리를 높이기 전 빠르게 접근해 입을 틀어막았다. 뒷목을 강하게 내리쳐 기절시킨 선원을 구석에 밀어 두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쪽도 플레이어. 평범한 npc 하나 정도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문제지만 말이다.
“일단은 버텨 봐야지.”
끼긱-
근처에 있는 돛대로 올라탄 그때,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선원들이 무언가를 끌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저건 뭐지?”
이윽고 선실에서 나온 모자 쓴 남자가 물체 위에 덮인 젖은 천을 걷어냈다. 무기보다는 예술품에 가까운 외양의 유리 대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력을 주입해라!”
“비스크 님, 하지만…….”
“크게 한 방 먹여 주면 녀석들도 백기를 들겠지. 굼벵이 같은 놈들! 빨리빨리 움직여!”
남자가 유리 대포의 뚜껑을 열자 그 옆에 서 있던 다른 선원이 자루를 열어 대포 안에 부었다.
옅은 진동음과 함께 대포 안에 붉은색 빛이 차올랐다.
“암만 봐도 마석 같은데……. 저렇게나 들이붓는다고?”
마나를 아끼기 위해 꺼 두었던 탐색자의 눈을 발동시켰다. 역시나 마석이 맞았다. 뚜껑이 겨우 닫힐 정도로 가득히 마석을 밀어 넣은 선원이 절벽 쪽으로 대포를 돌렸다.
“제정신이 아니야.”
저런 걸 쐈다간 절벽 쪽은 물론이요, 바닷속에 들어간 아이들까지 죄 다칠 것이다. 선원들도 같은 생각인지 미적거리며 발사를 미뤘다.
“뭘 그렇게 꾸물거리는 거야?”
“비스크 님, 정말 쏴도 됩니까?”
모자 쓴 사내, 비스크가 질문을 한 선원의 정강이를 후려 찼다. 선원이 정강이를 부여잡으며 몸을 수그리자 기다렸다는 듯 비스크가 그의 얼굴을 발로 밟았다.
“내 말에 토를 달다니. 버러지 같은 놈들이 어디서!”
“윽, 고, 고르곤 님께서 절대로 상품에 흠을 내지 말라고…….”
“네 상관은 고르곤이 아니라 나야. 이몸이라고!”
비스크가 사내를 구타하는 동안 대포의 구조를 파악했다. 간단한 식 여러 개를 겹친 단순한 형태였지만 그만큼 힘이 응집되어 위력만큼은 강력한 마도구였다.
피떡이 되도록 얻어맞고 있는 선원에게 관심이 쏠린 틈을 타 저 마도구를 망가뜨려야겠다. 눈 쪽의 마나로드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탐색자의 눈이 시전자의 의지를 읽고 바른 자리를 가리켰다. 대포를 구성하고 있는 술식의 한 부분이 검붉은색으로 빛났다.
“1번 슬롯, 응집을 적용.”
[스킬 ‘인챈트(S)’가 활성화됩니다.– 1번 슬롯 : 응집 (잔여횟수 0)]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손 위에 나타났다. 있는 힘껏 시위를 당기며 고개를 흔들어 눈을 가리는 앞머리를 털어 냈다.
“저기, 저기를 보십시오!”
화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발견한 선원이 비명같이 외쳤다.
“늦었어!”
“다들 피해라!”
선원의 외침과 동시에 화살이 날아갔다.
“겨우 화살 하나잖아! 뭘 겁먹고 있어?”
턱을 치켜든 비스크가 코웃음 쳤다. 하지만 이내 그는 비명을 지르며 대포로부터 멀어졌다.
소환했을 때부터 제법 큰 크기이던 화살은 바람을 가르고 날아갈수록 몸집을 키웠다. 갑판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에는 고래를 잡는 작살 정도로 커졌다.
대포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혼비백산 도망갔다. 미처 멀리 가지 못한 이들은 바닥에 넙죽 엎드려 이어질 폭발을 대비했다.
“……뭐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났잖아!”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포신에 명중한 화살은 칭! 유리끼리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더니 스르르 녹듯 사라졌다.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던 사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육안으로는 대포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단지 대포 안에 맺혀 있던 빛이 꺼졌을 뿐이다.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도망갔던 비스크가 허리에 손을 얹고 큰소리를 쳐 댔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하지만 탐색자의 눈에는 선연히 보였다. 조금 전의 한 발로 회로의 중심부가 파괴되었다. 이제 저 대포는 작동하지 못한다.
입꼬리를 비죽 끌어 올렸다.
“뭐야, 이거 왜 이래!”
대포의 이상을 눈치챈 비스크가 주먹으로 포신을 두들겼다.
‘그런다고 한들 회로가 고장 난 마도구가 작동할 리가 없지.’
타이밍 좋게 입수가 끝났다는 윤수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도 이만 가 볼까.”
조금이나마 빠르게 윤수호와 만나기 위해 절벽과 가장 가까운 돛대로 갈고리를 걸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나를 정확하게 노리고 쏟아진 빛에 눈을 찡그렸다. 손 그늘을 만들어 아래쪽을 살폈다.
조명 마도구가 배 위에 세워진 돛대마다 한 대씩 배치되어 그 위를 비추고 있었다.
“감히 유리포를 망가뜨려? 이게 얼마짜리인데……. 내 필히 네놈을 고기밥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일동 발사!”
방금 공격으로 돛대를 이용해 이동한다는 게 들통 난 모양이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지휘관에 임명될 만큼의 머리는 있나 보네.”
그다음부터는 운에 맡긴 곡예의 연속이었다.
내가 탄 배는 물론이거니와, 그 옆의 함선에서까지 나를 노리고 총을 발사해 댔다. 3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다.
“준비 다 됐다며.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포션을 마실 틈도 없었다. 공중제비를 돌며 갈고리를 발사했다. 원래 목표로 했던 돛대 쪽으로 몸이 당겨졌다.
여기서 한 번만 더 넘어가면 아슬아슬하게 차태양이 있는 절벽에 닿는다. 마냥 기다리는 것보단 내가 이동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이동만 하면…….’
돛대 근처에서 갈고리를 풀고 절벽을 향해 갈고리를 던졌다.
“윽!”
“명중했습니다!”
거의 다 됐다고 안심한 순간, 총탄 한 발이 팔뚝에 박혔다.
간만의 큰 부상에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지독한 작열감이 함께 드는 것으로 보아, 화속성 술식이 깃든 총탄 같았다.
살을 찢는 통증에 집중이 끊겨 스킬이 취소되고, 나는 그대로 검은 바다를 향해 낙하했다.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에도 저 멀리서 나를 향해 날아오는 윤수호가 보였다. 얼핏 보기에도 잔뜩 화가 난 것 같았다.
“윤가호!”
“너무 늦었잖아.”
바다에 빠지기 직전, 물로 만들어진 푸른 꼬리가 나를 받아냈다.
그리고 머릿속을 울리는 근엄한 음성.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기도 전에 나는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늦어서 미안하구나.
오래, 아주 오래도록 요람에서 인내하던 바다정령이 마침내 그 몸을 일으켰다.
용오름을 거느리고 나타난 아스트로의 주변으로 병정들이 열 맞춰 도열했다.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색의 병정들이 폭풍우 속에서 별처럼 빛났다.
어두운 하늘 위에 시립한 병정들이 일제히 함선을 향해 돌진했다. 혜성 꼬리 같은 푸른 궤적이 짙은 밤을 갈랐다.
– 비로소 너희를 단죄하노라.
공중으로 튀어 오른 바다정령이 바다 깊은 곳으로부터 힘을 끌어왔다. 함선들이 위치한 곳을 중심으로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저, 저건…….”
“복수자, 복수자의 재림인가!”
“아니야! 복수자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어!”
미친 듯이 기우뚱거리는 배 위에 선 선원들이 아우성쳤다. 신의 자비를 비는 소리를 들은 바다정령이 자조했다.
–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이깟 놈 때문에…….
바다정령이 눈을 감았다.
수 겹의 마법진이 그의 주위를 둘렀다. 이윽고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바다정령이 팔을 휘둘렀다. 바다정령의 영창을 따라 생겨난 수십, 수백의 병장기들이 갑판 위의 선원들을 도륙했다.
거센 빗줄기를 사이로 피보라가 일었다. 베어도, 베어도 물로 만들어진 무기들은, 병사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절망에 빠진 뱃사람들이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 오만한 뭍사람들아, 이곳은 우리의 요람이요, 원천이니.
뭍사람들은 뒤늦게 떠올렸다.
자신들이 왜 어린아이들을 납치했는지를. 왜 인질을 잡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잊고 있었던 공포와 경외가 그들을 덮쳤다.
바다는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었다.
– 영영 끝이다.
중얼거린 바다정령이 무심하게 뒤를 돌았다.
기다렸다는 듯 일어난 파도가 범선을 통째로 삼켰다. 바다정령의 주변을 맴돌던 용오름이 그 뒤를 따라 내달렸다.
몇몇 선원들은 끝까지 허우적대며 살아 보고자 했으나, 분노한 바다가 길을 막았다. 수면 아래 갇힌 선원들이 하나둘 가라앉았다.
– 메디나……. 이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바다정령은 파도 소리만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곧 끝나지 않을 것처럼 몰아치던 폭풍우가 점점 잦아들었다. 동이 틀 무렵에는 무안하게 뜬 해와 빈 수평선만이 남았을 뿐이다.
1년 중 가장 짧은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