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9
제9화
03. 하늘에서 S급들이 떨어져 (1)
“사방천지에 넋이야, 넋이로구나!”
양손에 푸른 불을 피운 차태양이 춤추듯 사뿐 팔을 뻗었다. 차태양의 손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푸른 선이 그어졌다. 식견이 짧은 내가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영창까지 동반되는 광역스킬이니 정말 어마어마한 것일 텐데…….
주문과 노래의 경계에 선 문장을 내뱉으며 한 바퀴 빙글 돈 차태양이 손으로 커다란 원을 그렸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치마가 꽃잎처럼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인도하는 대로 약수 삼천리에 가셨다더라.”
딸랑!
도깨비는 가만있건만 어디선가 방울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어두운 하늘에 푸른 휘광이 맴돌고 진한 꽃냄새가 언데드의 악취를 덮었다.
동시에 미친 듯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나요, 사나소사. 극락을 바라보시고 연화대로만 다 사날까요!”
차태양의 외침과 함께 그가 그린 원진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양이 떠올랐다.
완성된 진 앞에 선 차태양이 합장하자 오색 빛 감도는 안개가 온실 주위를 감쌌다.
텅-! 터덩!
그리고 하늘에서 네 개의 거대한 문이 떨어졌다.
기묘한 광택이 도는 문은 절 앞의 일주문과 닮았으나, 도깨비 문양이 새겨진 문짝이 달려 있었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나타난 것임을 알면서도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위압감이 대단했다.
매우 집중한 듯 두 눈을 꾹 감은 차태양이 인을 맺었다.
“귀문개방!”
거대한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열린 문 건너편에는 끝이 없는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끼에엑!
심상치 않음을 느낀 언데드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하지만 삿된 것을 삼키는 상서로운 문은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마수들은 자석에 끌린 것처럼 문 안쪽으로 잡아당겨졌다.
끝없이, 끝없이.
공터를 메우고 있던 삿된 것들이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고는 한 줌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이 기이한 광경에 우리는 모두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영원히 서 있을 것만 같던 문은 마침내 마지막 한 마리가 삼켜진 뒤, 소리 없이 닫혔다. 그리곤 언제 나타났냐는 듯 홀연히 사라졌다.
이것이 S급 스킬. 하늘을 가르고 이적을 일으키는 힘.
일행들은 뒤늦게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스킬을 종료시킨 차태양이 줄 끊어진 인형처럼 툭 쓰러졌다. 서영운이 황급히 차태양을 받아 들었다. 넋이 나간 조성현은 헛웃음만 지었다.
‘같은 A급이니 충격이 더 크겠지.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호들갑 떨며 차태양 위로 뛰어오른 도깨비를 제외한 모두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종소리가 침묵을 갈랐다.
댕- 댕-
[메인퀘스트, ‘사자와 춤을(B+)’이 완료되었습니다.] [클리어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저택 위에 매달린 작은 종이 흔들리고 있었다.
제19계층의 클리어를 알리는 소명의 종이었다.
평생 들을 수 없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종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끝났, 군요.”
서영운이 어울리지 않게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품에 안긴 차태양이 환하게 웃었다.
나는 뒤늦게 오른 전율에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예, 저희가 해냈습니다. 저희가, 해냈어요.”
메인퀘스트를 클리어 했다.
다들 하나같이 볼품없는 모양새였지만, 아까와는 달리 두 눈이 성취와 기쁨으로 빛났다.
왜 그리들 소명의 종을 처음 들은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완전 미친 거 아니야?”
“태양아, 너 진짜 최고였어! 가족들이 보면 깜짝 놀랄 거야!”
“있죠, 저 배고픈데 빨리 나가요.”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번거롭게 돌아가지 말자며 조성현이 유리 온실의 천장을 발로 밟아 깼다. 서영운이 그를 흘겨보았지만 조성현은 본체만체하며 싱글거렸다.
“현장 실습에서 이런 걸 겪은 애는 저밖에 없을 거예요.”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습니다만……. 좀처럼 할 수 없는 경험이긴 하죠.”
긴장이 풀린 일행들은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게이트로 걸어갔다.
‘아, 돌아가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뜨끈뜨끈한 치킨에 맥주 한 캔을 걸쳐야지. 그리고 죽은 듯이 자자. 보고는……. 모르겠다.’
몸이 축축 늘어졌다.
[필드 ‘마법사의 정원(C)’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게이트로 들어가려는 찰나, 커다란 인영이 튀어나왔다.
뭐야, 이제야 증원 온 거야?
게이트에서 걸어 나온 사내가 시원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야, 다들 너덜너덜하네. 미안, 좀 늦었지?”
“당신은?”
“하하, 그렇게 열렬하게 보면 부끄러운데 말이야.”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체구가 좋은 헌터들 사이에서도 손에 꼽히는 거구. 각성의 영향으로 물든 자안. 발목까지 떨어지는 케이프. 결정적으로 눈과 같은 색의 마석이 박힌 깃털 장식 스태프.
확실했다.
천연덕스럽게 대꾸한 사내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김 서방은 누구야?”
“이야, 방울이 말을 하네? 만져 봐도 되니?”
태연하게 도깨비와 만담을 나누는 저 사내는 견지운.
대한민국 최고의 위저드이자, 길드 ‘이 밤의 끝을 잡고’, 일명 백야의 길드장. 이런 곳에 증원으로 올 사람이 아니었다.
‘몸이 다섯 개라도 모자랄 사람이 왜 이런데?’
서영운과는 안면이 있는 듯 견지운은 호탕하게 웃으며 서영운의 어깨를 팡팡 두들겼다.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조성현은 이내 두 눈을 빛내며 견지운을 관찰했다.
좀처럼 만나 보기 드문 사람이기는 하지. TV로 볼 때는 몰랐는데 근처에 오기만 해도 몸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그 기세가 대단했다.
“음, 왜 퀘스트 창이 안 뜨지?”
“방금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참입니다.”
견지운이 믿기지 않는지 눈썹을 까딱였다.
서영운이 상황을 설명하려다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내 스킬에 대해 언급해도 되냐는 거겠지.
나는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우리 길드에도 알리지 않은 일인데 타 길드 사람에게 말할 순 없었다.
견지운이 이쪽을 바라보았다가 싱겁게 웃었다. 노력이 가상하니, 모른 척해 준다는 것 같았다.
서영운이 차분히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평소 말이 짧은 그답지 않게 매끄러운 설명이었다. 중간중간 도깨비가 끼어들어 차태양의 활약상을 강조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우리를 보는 견지운의 눈이 흥미로 빛났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시선이 따갑다고 느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하나같이 괴짜 같은 S급들 사이에서도 유난스럽기로 통하는 견지운이기에 슬쩍 그의 눈을 피했다.
다행히 그의 시선은 나를 휙 스쳐 차태양에게 고정되었다.
“와 보길 잘했네. 재밌는 일이 벌어졌잖아?”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전멸할 뻔했습니다.”
“나로선 조금 아쉽지만 말이야.”
견지운이 간단히 바깥 상황을 설명했다. 증원이 늦어진 것은 이현상국 직원의 실수 때문이었다. 게이트를 관찰하던 직원이 그만 깜빡 졸았다나 뭐라나.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제정신이 아니군요.”
순간 꼭지가 돌았다. 깜빡 졸았다고? C급 필드에 A급이 세 명이나 배정되었다지만 방심하는데도 정도가 있었다. 덕분에 이쪽은 저승 구경할 뻔했는데.
어이없어하는 우리를 보며 견지운이 낄낄댔다.
“휘유, 무서워라. 그치만 참아 줘. 나한테 화내 봤자 소용없다고.”
지나가던 길에 직원의 상사가 들렀고, 그때서야 이현상국의 직원들이 이상을 알아차렸단다. 황급히 주변에 있는 헌터들에게 긴급 신호를 보냈는데…….
“거기에 응한 게 바로 나지.”
“견지운 길드장님께서 오실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아아, 마침 19층에 필요한 아이템이 있어서 말이야. 겸사겸사.”
최전선에서 공략팀을 운용하는 그에게 필요한 아이템? 그것도 19층에서? 암흑 속성 아이템인가. 흑마법과 관련된 계층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차태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견지운이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화 안달에 등 떠밀린 게 제일 크지. 네가 지화가 자랑하던 그 아가씨 맞지?”
“어, 마녀 언니랑 친하세요?”
“그럼. 아, 내가 이렇게 말했단 건 비밀이다.”
지화라면 김지화? 마녀 언니라는 말에서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역시 지화 님이었구나.
이명 종말의 마녀, 황야의 전 길드장 김지화. 지금은 은퇴했지만, 우리나라 헌터사에 길이 남을 헌터였다.
“네가 조금이라도 다치면 나를 다져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그럴 일은 없겠네.”
“파티원들이 많이 지친 상태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나가서 계속해도 될까요?”
“음, 그래. 다들 고생 많았어.”
거절하면 어쩌지 했는데 생각보다 상식적인 사람인지 견지운은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고생을 유독 강조해 발음하며 나를 바라봤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씁쓸한 생각을 하며 게이트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