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161
160화 야외 합숙(3)
밀레스 아카데미가 이미 폐허가 된 대구에 자리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것저것 여러 이유를 붙이며 학자들과 레이더 전문가들이 설명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폐쇄 도시 대구의 지역 수복을 위해서였다.
대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게이트’가 열리며 수많은 마수들이 창궐한 도시다.
이그드라실의 출몰 후 가장 먼저 빼앗겨 버린 낙후된 지역. 이곳을 재건하기 위한 일종의 사전 준비가, 바로 밀레스 아카데미의 야외합숙인 것이다.
근처의 마수를 소탕하고 주요 거점들을 회복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
재현은 입고 있던 갑주를 단단히 동여매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구의 게이트 참사 당시는 정말 끔찍했다고 들었다.’
과거 십수 년 전.
재현은 대구의 비극이 일어났던 당시의 상황을 꽤 자세히 알고 있었다.
아직 그가 제대로 걸음마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어머니인 이선화가 대구 출신이었기에 당시의 일을 전해들을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사건이 일어났던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운을 뗐다.
[그건 정말 아비규환이었어.]조금 머리가 자란 이후. 재현은 어머니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밀레스 입학 이후 자연스레 대구 사건 당시 과거 기록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때 봤던 자료가 아직도 두 눈에 선연했기 때문이었다.
사건 당시의 기록 대부분은 소실돼 이제는 찾아볼 수 없으나, 부지 내 박물관에 사진 몇 장 정도는 남아 있다.
과거 재현이 봤던 사진 속 풍경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새빨갛게 불타는 도시.
도로에 쓰러져 울부짖고 있는 사람들과 마수의 붉은 눈동자.
죽어가는 이들의 텅 빈 동공까지.
‘정말 끔찍했지.’
재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근래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밀레스 아카데미의 교본에도 사건 당시의 현장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해당 부분의 전문은 다음과 같았다.
[과거, 수십 년 전.] [중앙로를 기반으로 한 마수들의 세력은 금세 야합(夜合)해 대구 전역을 집어삼켰다.] [무수히 타오르는 불길 속 마수들은 무자비하게 살상을 거듭했으며, 인간들은 마치 개미처럼 짓이겨졌다.] [이 과정에서 무려 수만에 이르는 대구 주민이 사망, 혹은 부상을 입고 대피했다.이때, 절망의 끝에 선 인류에 특별한 힘을 가진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각성자 주원이었다.]
‘주원…… 전 세계적으로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최초의 각성자.’
대한민국 최초의 S급 레이더 이재신과도 함께 활동했다고 알려진 전설적인 존재.
재현은 주원이라는 이름을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한때는 동경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만큼 그는 실력이 있는 레이더였으니까.
허나, 주원은 수년 전 갑작스레 모습을 감췄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으나, 아마 마수와 싸우다 죽었을 거라고. 언론은 그렇게 떠들어댔다.
재현은 잠시 생각하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왔다.
머릿속에서 갈래가 뻗어져 나오며 내용이 계속 이어진다.
[주원은 에시르 시스템을 얻어 각성자가 되었고 마수와 맞섰다. 그는 수많은 몬스터를 물리치며 신화를 쌓기 시작했으며, 그의 노력에 감화된 사람들이 비로소 일어나기 시작했다.] [신비스러운 힘. ‘에시르 시스템’을 얻은 주원을 비롯한 각성자들은 세력을 확장하던 마수를 어느 한 지점에서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이때 지켜낸 지역이 바로 지금의 밀레스 아카데미가 자리한 곳이다.] [쉽게 말해, 밀레스 아카데미는 선배 레이더들의 시체들로 쌓아 올린 거대한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뭐, 전쟁이 벌어졌는데 무덤이 아닌 땅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재현은 내용을 생각하며 허리춤에 찬 눈속임용 단검을 휙 돌렸다.
‘처음 밀레스 아카데미가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지원금을 전달한 도시도 대구였지. 밀레스가 이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직접적으로 생도들이 부담을 떠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사정. 아직 학생인 아카데미 생도에게 야외합숙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행사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위험도가 낮은 것도 사실이고.
허나, 방심은 금물이다.
‘정말 위험한 건 야외합숙 이벤트 자체가 아니니까.’
재현의 입술이 비틀리며 조소가 새어 나온다.
미미하게 감지되는 강대한 마력이. 저 안 깊숙한 곳으로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헤임달. 아스가르드의 문지기가 너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부숴주지.’
재현의 입가에 조소가 머물다 흩어진다. 지난 일주일간, 그 역시 꽤나 강해졌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아스가르드의 천장을.’
재현은 차분히 내려앉은 눈으로 폐허가 된 대구시를 내려다보았다.
지금부터 이어질 일주일은 그 어느 때보다 시간이 더디게 흐를 것이다.
재현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 *
폐쇄 도시의 심층부. 파괴된 건물 옥상.
망루에 앉은 하얀 신 헤임달과 까마귀 후긴의 모습이 보인다.
예언의 대적자의 처분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모인 둘. 허나 한쪽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더 편하게 처리할 방법이 있었을 텐데. 굳이 일을 귀찮게 끌고 오셨군요.”
먼저 입을 뗀 것은 후긴이었다.
헤임달이 호탕하게 웃으며 받아쳤다.
“이건 잠깐의 유흥일 뿐이다. 그래…… 마치 식전주 같은 거지.”
“상대는 예언의 대적자입니다.”
“하하, 후긴.”
시종일관 웃던 헤임달이 돌연, 말을 멈추며 살기 어린 눈으로 후긴을 바라보았다.
“너는 새파란 인간 애송이가 감히 아스가르드의 문지기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으면 이 헤임달이 못 미더운 건가?”
“오딘께서 직접 지시하신 일입니다.”
후긴은 전혀 물러서지 않은 채 그렇게 이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헤임달이 표정을 푼 뒤 허리춤에 매 두었던 술을 꺼냈다.
“한잔하겠나?”
“업무 중에는 마시지 않는 주의라.”
“재미없게 구는군.”
헤임달이 마개를 딴 술을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켠 뒤,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술병을 바닥에 휙 내던졌다.
어찌나 높은지 떨어지는 소리마저 살벌했다.
헤임달이 옷소매로 입가를 훔치며 말했다.
“걱정 마라. 예언의 대적자에 대한 대비는 모두 해 두었으니.”
“그 말씀은?”
헤임달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었다.
“그래. 《미래 예지》를 사용했다.”
후긴의 눈가가 저도 모르게 좁혀졌다.
《미래 예지》.
헤임달을 아스가르드의 정상권에 올려준 권능. 평소 이를 사용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던 그였기에, 한낱 인간을 상대로 힘을 발휘했다는 것은 후긴으로서도 충분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일주일 뒤. 아카데미의 야외합숙이 시작되더군. 아마 그때 대적자의 동료들이 이곳으로 잔뜩 몰려오게 되겠지. 기대되지 않나? 투명하게 빛나는 미소를 더럽히고, 짓밟는 것이?”
헤임달은 서늘한 표정으로 이었다.
“걱정 마라. 모든 것은 나, 헤임달의 계획대로 흘러갈 테니.”
허나, 후긴은 헤임달의 자신에도 그의 산통을 깰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그건 어렵겠군요.”
“……뭣이?”
“예언의 대적자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헤임달은 후긴의 말에, 즉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마력을 펼쳐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폐허 대구에 부채꼴처럼 퍼져나간 마력의 레이더가, 이윽고 아주 익숙한 마력을 지닌 존재 하나를 발견했다.
예언의 대적자.
“예언의 대적자…… 그래. 내가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미래를 바꾸었단 말인가? 재미있군. 재미있어!”
헤임달이 광소를 터뜨렸다. 그의 웃음이 이어질 때마다, 마력으로 지면이 흔들리며 상층의 건물까지 송두리째 무너져내린다.
그가 고개를 들어 후긴을 보며 이었다.
“내 계획은 여전하다. 아직 힘이 다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녀석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데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기대하겠습니다.”
후긴이 고개를 숙이며 이었다.
“위대하신 오딘을 위하여.”
그 말과 함께, 그림자 속으로 파묻혀 후긴이 자취를 감추었다.
* * *
폐쇄 도시의 전경은 처음 입학식이 있던 날과 거의 같았다.
약간 어둡고, 습했으며, 비가 내릴 모양인지 물안개가 가득 끼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이건 좋지 않은데.’
재현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일그러졌다. 지금처럼 시야의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는, 평소처럼 넓은 지형을 모두 사용하며 전투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도시의 잔해가 깔린 필드에서의 전투는 쉽지 않다. 회귀 전, 재현은 이곳에서 몇 번이나 생사의 위기를 겪으며 겨우 살아 돌아왔었다.
아무래도 필드에서 진행되는 야외합숙이니만큼 변수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다지 반길만한 일은 아니었다.
‘뭐, 이런 상황에 맞춘 훈련도 모두 끝내뒀으니 별문제는 없겠지만.’
재현은 포장이 부서진 도로를 걸으며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곳곳에 무너져 내린 아파트와 상가, 가정집 등 과거 번화했던 대구의 일면이 겹쳐 보였다.
그야말로 살풍경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곳 폐쇄 도시의 초입에는 교관들의 노고로 아직 마수가 등장하지 않지만, 이후부터는 갖은 몬스터들의 공격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거듭된 전투로 지친 일행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몬스터의 공격은 매서울 것이고, 재현과 동료들은 이를 딛고 야외 합숙을 치러야만 하겠지.
심지어 헤임달의 개입과 갖은 변수까지 생각해 가면서.
재현은 새삼 자신이 직면한 문제가 얼마나 난해한지 깨달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밀레스 아카데미 내부랑은 역시 분위기가 다르네. 주변에 멀쩡한 건물이 하나도 없으니.”
돌연, 김유정이 폐허가 된 역을 걸으며 중얼거렸다.
옆에서 나란히 걷던 서이나가 두리번거리며 말을 받았다.
“……응. 아무래도 아카데미 내부랑은 완전히 다른 것 같아.
하물며 대기 중 마나 농도도 그렇고.”
“확실히. ‘필드화’된 지역은 발을 딛는 느낌부터 완전 다르긴 하지.”
안호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필드화.
이는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마수가 쏟아져 해당 지역이 점거당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던전을 막지 못하면서 마수가 창궐한 지역.
재현은 필드화가 진행된 몇몇 지역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선 지금 딛고 있는 대구를 비롯해 공주, 백령도 등 국내 지역부터, 프라하, 리버풀, 런던 등 세계 각지의 유명 도시까지.
이곳들은 모두 초기 게이트의 등장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폐쇄지역이 돼 버렸다.
허나 필드화가 진행된 지역이 위험한 이유가 단지 마수의 창궐에만 국한되어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필드화가 진행된 지역은 땅과 대기부터 서서히 곪기 시작한다. 마력이 지나칠 정도로 가득 찬 나머지, 점점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돼 가지.
덕분에 정부도 이런 필드화가 진행된 지역을 수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필드화가 진행된 지역은 일반 사람들은 발을 디딜 수조차 없다. 마나 중독으로 대부분이 죽어 나가기에, 다시 도시를 되찾는다고 해도 살 수 있는 이들은 각성자뿐이다.
요컨대, 효율이 나쁘다는 뜻이다.
각성자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아주 미비한 정도. 이들을 위해 거대한 도시 하나를 통째로 되찾는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런 수고스러움과 낭비가 없었다.
지금 대구의 경우야 최초의 게이트가 열린 지역이고, 내부에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이 많을 거라는 판단 하에 수색이 이뤄지고 있는 거지만.
‘거기다 밀레스 아카데미가 붙어 있는 것도 한몫하고 말이야.’
실제로, 필드화가 진행된 다른 지역의 경우는 아예 수복을 시작도 않고 있다.
재현이 일행을 보며 말했다.
“그래. 너희 말대로 여기는 다른 곳보다 몇 배는 위험해. 던전보다 더 마수의 등급도 높은 데다, 뻥 뚫려 있어서 게이트 밖으로 도망칠 수도 없으니까.”
던전이야, 폐쇄형 던전이 아니고서야 밖으로 빠져나오면 살 수는 있다. 브레이크가 터지지 않는 한, 이후 던전 리벤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필드는 죽음의 땅이다. 여기서 도망칠 곳이라고는 부서진 건물과 허허벌판뿐이다.
밀레스 아카데미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지만 이런 곳에 생도들을 밀어 넣은 것이다.
새삼 재현은 자신이 재학 중인 학교가 사관학교이며, 인간 병기를 양성하는 집단이라는 것을 되새겼다.
“가가가가, 갑자기 마, 마수가 튀어나오지는 않겠지…….”
이재상이 벌벌 떨며 말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꼭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우뚝 서 있는 미어캣 같았다.
손은 언제든 위급 상황에 포션을 꺼내주기 위해 가방 안에 들어가 있다. 평소보다 다섯 배쯤 경직된 채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조심하는 게 무조건 안전하죠. 물론 우리가 수색하는 지역은 심층지보다 얕아서 나오는 마수의 등급이 낮겠지만…….
절대 방심은 금물이에요. 너희도 알지?”
재현은 주변의 잔해를 살펴보며 일행에게 주의를 주었다.
‘몬스터의 흔적을 찾고, 인근에서 출몰하는 녀석들을 익혀 두어야 한다. 이후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할 테니까.
하지만.’
그 전에, 가장 중요한 순서가 있었다.
“일단 야영할 곳부터 찾자.”
재현의 말에, 동료들이 일사불란하게 근처를 수색한다. 사전에 합의했던 대로 재현과 멀리 떨어지지 않으면서 인근의 조사를 시작한 것이었다.
이재상의 경우는 따로 개인행동을 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재상이 형은 전투 능력이 제로에 가까우니까.’
잠시 후.
김유정이 쓸 만한 건물을 발견한 것인지, 밝은 표정으로 손짓했다.
“엇, 저기 어때? 건물이 아직 뼈대가 멀쩡한 게 괜찮아 보이는데?”
잠시 주변을 수색하다 보니 금세 쓸 만한 회백색 건물을 찾았다. 본래 제약회사였는지, 바닥에 갖은 약품들이 질서 없이 어질러져 있다.
“확실히 괜찮은 것 같네. 저기로 하자.”
재현의 말에 동료들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말은 않지만, 꽤 지쳤을 것이다. 합숙이 시작된 것은 오후 2시경. 지금은 7시이니, 피로가 누적된 탓이겠지.
재현으로서도 오래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당장 오늘 저녁부터 주변 청소를 시작해야 하니, 어서 텐트를 쳐두어야 한다.
움직이려면 지금이 최적이겠지.
재현이 생각하는데, 안호연이 앞장서며 말했다.
“텐트 설치는 내가 할게. 너희는 주변의 수색을 부탁해.”
“후. 그래 부탁한다.”
재현의 대답과 함께 나머지 일행이 고개를 끄덕인다. 김유정은 안호연을 돕겠다고 나서며 생존키트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을 꺼내 죽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때, 잠시 숨을 돌리던 재현이 내내 말이 없던 권소율을 향해 물었다.
“어때요? 추적은. 스킬은 제대로 발동하고 있어요?”
재현의 말에, 굳어있던 권소율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너…… 정말 그 몬스터를 잡으러 갈 생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