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29
28화 공동 전선 (3)
조금 전, 재현이 물건을 고르던 백화점 인근의 상가 부근.
한창 물건을 고르는 중인 안석구와 안호연의 모습이 보인다.
“이거랑 이거. 그리고 저것도 같이 주십시오.”
“그렇게 많이 사야 해요?”
안석구가 물건을 이것저것 집어 들자 안호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근래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데 버는 돈을 죄다 자신의 밑에 쓰고 있으니 걱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안석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다 네 밑으로 들어가는 거다. 아깝다고 생각하면 안 돼. 어차피 이거 다 네가 곱절로 회수할 돈이다. 네가 S급 레이더가 되기만 하면 이 정도야 우습지.”
“그래도요. 저 때문에 아버지께서 힘드신 건…… 어머니도 지금 힘드시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다. 넌 걱정 말고 열심히 훈련이나 해.”
안석구는 그렇게 말했지만, 전혀 걱정하는 투가 아니었다.
안호연은 한숨을 내 쉬며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버지는 날 도구로 생각하고 계신다. S급 레이더가 되지 못하면 가차 없이 버려질 도구.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마음이 자꾸만 약해지는 걸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레이더로서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곧바로 온갖 훈련을 강요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안에 자신은 한 줄기 빛.
어머니 역시 안호연이 레이더로서의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기뻐하셨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레이더가 되려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기계처럼 훈련을 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
숭고한 목표나 가치 의식 따윈 이미 저버린 지 오래였다.
‘이제는 칭찬해 주는 사람들의 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게 됐으니.’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훈련하고 검을 부딪쳐야 이 생활이 끝나게 될까?
레이더로서 자신의 수명이 다하는 때까지 안호연은 이 삶을 벗어날 수 없을 터.
그렇다면 레이더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단순히 몬스터를 사냥하고 던전의 보물을 훔치는 자?
아니다. 모두 틀렸다.
레이더는 인간이 인간을 돕기 위한 직업이다.
어렵고 고난에 빠진 사람을 돕고, 목숨을 구해주는 숭고한 직업.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레이더를 목숨을 건 아이돌쯤으로 본다.
TV에 나와 웃고 떠들며, 돈벌이가 되지 않는 하급 던전엔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 발악하는 이들이 과연 진짜 레이더일까?
‘알고 있다. 지금 내 생각은 너무 어리다는 걸.’
안호연은 이해하고 있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돈 없이 굴러가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건 설령 몬스터가 이 세계를 장악해 버린 지금도 여전히 다를 바 없었다.
“아버지…… 잠시만 쉬다 오겠습니다. 어제 대련이 조금 피곤했나 봐요.”
“그래. 금방 끝내고 돌아가마. 역 근처에서 기다리거라.”
“알겠습니다.”
안석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아들에게 호통 치긴 했지만 어쨌든 밀레스 졸업을 앞둔 생도와의 결투.
피곤하지 않은 게 더 이상했다.
안호연은 남에게 하는 것처럼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자리를 벗어났다.
상가의 허름한 거리를 지나 안쪽으로 조금 접어들자 분수가 보였다.
‘예전에 엄마가 아프기 전에는 여기 자주 놀러 왔었지.’
물론 예전이라 함은 지금으로부터 꼬박 10년은 더 전이었다.
아직 어머니가 병상에 눕기 전.
당시 안호연은 아직 천방지축이었다.
“그땐 진짜 행복했었는데.”
그건 진심에서 저도 모르게 우러나온 말이었다.
과거에 자신은 이토록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저기 봐. 저 사람 안호연 아니야?”
“아~ 그 무투계 천재?”
“이런 곳에서 다 보네.”
찰칵거리는 카메라 소리에는 이미 적응했다지만, 이미 자신은 동물원의 원숭이.
그것보다도 더 못한 존재가 되었다.
선망의 대상이 아닌, 이용 가치로서 그는 평가받게 된 것이다.
‘앞으로 밀레스 아카데미에서 3년을 보내야 한다. 거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든 훈련이 기다리고 있겠지. ……이런 마음가짐으로 잘해 낼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며 한숨을 내 쉬던 그때.
“꺄아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제발 살려 주세요!”
“몬스터다! 몬스터가 나타났어!”
안호연의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마수. 도심 한복판에 마수가 나타났단 말인가?
설마.
‘던전 브레이크?’
던전 브레이크는 공략되지 않고 기간을 넘긴 던전이 폭발하는 것.
이렇게만 서술해 보면 심각성이 드러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던전은 그 안에 존재하는 몬스터를 바깥으로 토해낸다.
이 부근은 번화가.
일반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장소다.
‘국립 레이더들이 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자칫하면 이 일대의 일반인들은…… 당장 가 봐야 해.’
아버지 안석구였다면 분명 말렸을 것이다.
얻을 게 없는 싸움이며, 여기서 상처라도 입게 되면 며칠 앞둔 밀레스 아카데미의 입학식 이벤트에 참여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안호연은 피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받고 싶었다.
확인받고 싶었다.
지금 자신이 어째서 레이더가 되려 하는지.
자신의 다짐이 아직 어린 시절 그대로 유효한 것인지.
타닷! 타닷!
곧장 뜀박질하기를 2분여가량.
번화가와 이어진 후미진 골목에서, 그는 주변을 에워싼 수십 마리의 고블린과 조우했다.
녹색 피부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닌 수십 개의 붉은 눈동자가 일제히 안호연을 돌아봤다.
안호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동시에 저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불규칙한 말이 튀어나왔다.
“모, 몸이…… 안 움직여…….”
존재 가치를 확인받고 싶었다.
그래서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여기에 왔다.
그런데 정작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니,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안호연은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두렵다.’
그의 몸은 두려움에 젖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아카데미 생도와 대련을 해 왔지만, 실제로 몬스터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섭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상황.
하지만 여기까지는 당연히 예상할 수 없었던 그였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급 몬스터 정도라면 지금의 자신이라도 충분히 홀로 해결할 수 있다고, 저도 모르게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다.
꾸륵?
하지만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가 명백한 증거였다.
흠칫, 안호연이 몸을 떨었다.
그와 눈을 마주친 고블린 몇 마리가 그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공포에 질려 있던 다리.
안호연은 온몸을 떨며 어떻게든 움직이려 애썼다.
‘움직여! 제발…… 움직이라고!’
겁에 질려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을 향해.
손에 든 검을 휘둘러오는 고블린의 모습이 보였다.
안호연은 겨우 움직이는 데 성공했으나, 고작 다리를 뒤로 조금 빼는 데 그쳤다.
동시에 작은 탄식과 함께 허탈함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젠장.”
마침내 고블린이 시뻘겋게 물든 이를 드러내며 그를 공격하려던 그때.
퍼걱!
강렬하게 들려오는 타격음과 동시에 한 남자의 인영(人影)이 너울거리는 것이 보였다.
자신과 맞먹을 정도로 만만치 않게 잘생긴 선이 굵은 남자의 얼굴.
안호연의 동공이 커졌다.
자신을 구해준 소년.
자신보다 키가 반 뼘쯤 작고 유약해 보이는 그는 홀로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다.
* * *
‘저건 《전격의 사슬》?!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안호연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게 되면 마법계보다는 무투계 레이더가 우선적으로 배치된다.
마법계는 빠른 캐스팅이 어렵기 때문에 마수를 재빨리 처치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데다, 여럿이 모이지 않으면 그 위력이 격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저 남자는 대체 무엇인가?
그는 마법계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속도로 캐스팅을 하며 몬스터를 쓸어 버리고 있다.
고작 자신의 또래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년이 그런 일을 해낸 것이다.
‘물론 마법은 무투계보다 단순 위력만 봤을 때는 더 강하다. 하지만 캐스팅이 항상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발목을 잡지. 하지만 저 사람은…… 캐스팅 딜레이가 거의 없어.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촤르르르르!
소년, 즉 재현의 주위에 떠다니던 전기를 머금은 사슬이 주변의 몬스터를 차례로 터뜨려나갔다.
퍼엉, 하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머리가 연이어 터져 나간다.
일대를 가볍게 정리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약 1분가량.
재현이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안호연을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
“땡. 자 이제 얼음 땡 끝났으니까 너도 좀 도와라.”
“……당신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너 무투계 각성자지? 네 도움이 필요해.”
재현의 말에 안호연은 잠시 고민했다.
저렇게나 강한 소년에게 자신이 대체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어진 그의 대답은 안호연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대로 나 혼자 고블린들을 전부 처치하는 건 힘들어. 《도발》 스킬이 필요해.”
즉시 고개를 끄덕인 뒤 재현의 뒤에 선 안호연이 마력을 끌어모았다.
아무리 재현이 강하더라도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은 아니다.
만약 여기서 고블린 몇 마리만 놓치게 되면 일대는 즉시 피바람이 불게 되겠지.
그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자신에게 《도발》 스킬을 사용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 역시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막기 위한 것.
안호연은 재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요.”
―액티브 스킬 《도발의 함성》을 발동합니다.
―반경 50m의 몬스터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물리 / 마법 공격 피해가 30퍼센트 감소합니다.
스킬 발동과 함께 붉은빛의 기운이 안호연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재현은 스킬을 발동하는 안호연을 보며 피식 웃었다.
‘역시 안호연이다. 무투계 재능은 확실히 타고난 놈이야.’
안호연은 즉시 마력을 끌어올려 《도발의 함성》을 발동했다.
무려 50미터 반경의 몬스터를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스킬.
재현은 다가오는 적의 동선을 면밀히 살폈다.
“명심해. 이놈들을 절대 광장으로 보내선 안 된다.”
“네!”
안호연은 조금 전 겁에 질린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자신감에 찬 얼굴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여전히 다리를 떨고 있었지만, 자세는 꽤 볼만했다.
저게 재능이라는 거겠지.
재현은 새삼 이 세상이 얼마나 운빨로 돌아가는지 깨달았다.
가진 게 없는 이들은 더 빈곤해지고, 많이 가진 자들은 더더욱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게 된다.
이게 이그드라실이 솟아오른 뒤, 몬스터가 창궐한 인류의 삶.
그리고 자신은 그 운빨의 최고봉인 신의 주목을 받는 자였다.
“그럼 간다!”
재현의 목소리에 안호연이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방패를 꺼내 장착했다.
‘그래. 이게 바로 레이더. 내가 해야 할 일은 사람을 구하는 거다.’
안호연의 축 처진 얼굴이 처음으로 화사하게 빛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