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붉은 달의 고원(3)
아스가르드.
세계의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 있는 이곳에는.
과거부터 어두운 이면이 존재했다.
슬럼가.
각자의 세계에서 버림받고,
전쟁으로 자신의 가족을 잃은 자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으니까.
이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은 아스가르드에서 주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오딘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비록 너희가 전쟁에서 패배했다고는 하나, 내 신경 써 너희가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겠다.]오딘은 첫 번째 종말 이후, 살아남은 존재들에게 그렇게 선언했다.
오딘이 죽도록 미웠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죽어버린 가족이 눈에 밟힌다고 해도, 결국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 다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오딘의 발언 직후, 아스가르드를 제외한 여덟 세계에서 수많은 자들의 이민이 이어졌다. 그것은 거대한 행렬이라고 봐도 좋았다.
수많은 종족이 한데 모여, 매일같이 아스가르드의 휘황찬란한 도시로 향했다.
하지만 이는 함정이었다.
[어째서 저들을 우리 아스가르드에 두려는 것입니까?]어느 날, 물어온 후긴의 말에 오딘은 조소하며 답했다.
[그들이 더는 내 권위에 도전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다. 내부에서 분열시키기 위해서지.]그때 이미 오딘은 다음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세계를 분열시키고 동족 간 혐오를 부추겼다.
아스가르드의 제안으로 이곳에 오게 된 이들과 남아서 터전을 지키려 하는 자. 두 개의 그룹으로 생존자들은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둘 사이는 어긋나게 되었다.
분열.
이를 위해 그는 난민을 받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희생시킨 자들의 유가족이 이곳에서 살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눈에서 이들이 벗어나지 못하도록. 반란을 저지르지 못하게끔 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나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오딘과 후긴. 두 존재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슬럼가의 어느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던 내게 들려온 목소리.
그것이 전해 온 진실에 나는 진심으로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사람들은 오래 지나지 않아 오딘에게 속아 넘어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 대항할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아스 신족들과의 전쟁에서 이미 모든 걸 잃었던 사람들이었다.
죽음을 담보하고 나설 용기를 지닌 자들의 시체는 이미 산을 이루었다.
이곳 슬럼가에 남은 자들은 그저, 약해빠져 도태된 이들뿐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그룬.
티르의 마수 군대에 찢겨 죽은 내 어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이었다. 나는 지옥 같은 슬럼가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요행도 어느 순간, 끝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내가 막 스물을 넘겼을 즈음이었다.
“너는… 아름답구나. 이런 곳에서 썩기는 아깝겠어.”
어느 날 나를 찾아온 티르의 말이었다.
나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분노에 휩싸인 채 그를 보았다.
티르. 내 어미를 죽인 자.
그래,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전쟁은 산처럼 많은 시체를 쌓고,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중 하나였다.
그게 우리 어머니였을 뿐이고, 나는 전쟁고아가 되었을 뿐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내 분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저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나는 이곳에서 죽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검을 뽑으려던 때였다.
“멈추거라.”
그날 나는 처음으로 프레이야 님을 보았다.
아름다운 얼굴.
하지만 그 안에는 더욱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다.
“티르… 오딘이 널 찾더군. 가보지 않으면 곤란해질 텐데. 여기서 이럴 시간이 있나?”
티르가 미간을 구겼지만,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텅 빈 슬럼가의 거리에서 프레이야 님은 물었다.
“티르. 그에게 너의 가족을 잃었느냐.”
“네.”
나는 홀린 듯 대답했고, 프레이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었다.
“복수하고 싶으냐.”
“…네.”
“아스가르드는 거대하다. 너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설령, 그렇다고 해도 복수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발키리가 되어라. 나는 강한 자는 필요 없다.
내게 충성해라. 곁에 끝까지 남는다면, 나는 네게 아스가르드의 멸망을 보여줄 것이다.”
프레이야 님의 말에는 어째서인지 강한 비극의 향이 묻어났다.
나는 알았다. 그녀 역시 나와 비슷한 일을 겪고 이곳에 왔다는 것을.
그리고 나와 비교도 되지 않을 비극 속에서도 두 눈의 생기를 잃지 않았다는 것을.
“따르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발키리가 되기로 했다.
또한, 결심했다. 더는 가족을 잃지 않기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때로 괴물이 되겠다고.
* * *
“거기서… 멈춰라!”
추혼검이 궤적을 그리며 재현을 향해 쏘아진다.
그것의 위력은 척 보기에도 전보다 강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재현이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쾅!
재현은 손을 수평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공격을 쉽게 막아냈다.
다시 돋아난 검은 날개를 지닌 발키리. 그녀가 폭연 속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재현은 피하지 않았다.
촤앗!
사슬을 컨트롤해서 다시 한번 그녀의 날개를 완전히 찢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오연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너의 것을 지키지 못하는 기분은 어떻지? 괴롭나?”
“너도 이런 감정을 느꼈겠군.”
시그룬은 놀랍게도 자신의 말을 처음으로 긍정했다.
재현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녀의 말에 약간 놀라긴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을 처치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어떤가?
자신이 겪는 고통을 공감하고, 또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을 위해 일어나고 있다.
재현은 자신이 기억하는 악(惡)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가를 생각했다.
이 비극에 한없이 가까운 이야기는 대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슬과 시그룬의 검이 부딪힌다.
그곳에서는 마력의 불꽃이 튀었다.
카앙, 하는 소음이 쏟아졌고. 쉴 새 없이 시그룬은 자신의 검을 맞대고 있었다.
프레이야… 프레이야….
자신을 거두어 준 사람.
시그룬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다다른 순간,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거란 생각을 했다.
재현의 사슬이 자신의 검보다 훨씬 빠르게 자신을 파고들고 있었다.
재현은 검과 연속된 마법을 이용해 적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지금까지 신격과 함께 쌓아 올렸던 S급, 고유 스킬들. 뿐만 아니라 니드호그의 송곳니의 힘이 극한까지 발휘된다.
이미 시그룬은 재현의 단검에 베여 맹독 상태에까지 빠져 있었다.
이어 사슬이 자신의 몸 어딘가를 꿰뚫고 들어오는 감각이 선명히 느껴졌다.
푸욱!
“나는 네게 최악의 죄를 저질렀다. 내가 그 고통을 겪었음에도.”
시그룬은 피 가래를 토해내며 자신의 복부를 보았다.
푹, 무언가 찔러오는 듯한 아찔한 감각 속에서 그녀가 흔들리는 시야로 재현을 올려다보았다.
“명령이라는 이야기로 나는 너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았다.”
“그래.”
“이제 알았다. 증오가 또 다른 증오로 점철될 때… 존재는 망가진다는 것을.”
“조금만 일찍 깨달았다면 나도 너를 죽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젠 의미 없는 이야기지.”
재현의 말. 그것은 어째서였을까.
시그룬에게 한없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녀의 숨이 완전히 끊어졌다.
마지막으로 시그룬은 쥔 검을 바닥에 꽂은 채 꼿꼿이 선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가 중얼거린 마지막 이야기. 그것은 재현의 뇌리에 선명히 남았다.
“프레이야 님…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무엇일까.
시그룬. 그녀를 움직이게 하고, 검을 쥐게 한 것은 대체 무엇이기에.
지금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내 소중한 것을 빼앗은 걸까.
전쟁. 거기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다가온다.
더럽고, 저열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겪기 시작한 전쟁의 비참함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보았다면, 훨씬 좋은 인연을 쌓을 수 있는 이들이. 내 검에, 손에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
그게 전쟁이었다.
하지만… 재현은 이제 그런 것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자신의 몸은 완전히 폭주상태였다.
시그룬은 처치했고, 필드도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돌아간다 해도, 그곳에는 김유정이 없다.
자신의 오랜 친구가. 이젠 없다.
이번에도 지키지 못했다.
그것을 알게 되자 온몸에 힘이 빠졌다.
파스스스!
필드가 무너져 내린다. 뒤편에 꽂혀 있던 사슬에 묶인 거대한 검도, 고원도 모두 사라졌다.
그 순간 재현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온몸에 마력을 두르고, 강제로 폭주시켜 엉망이 된 몸을 돌봐야 한다. 새크리파이스를 사용해 몸을 치유하고, 마력을 순환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는다.
알고 있었음에도, 재현은 더는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잃게 된다면, 거기서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차라리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 처음부터 불공평한 거였잖아.
남들은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었는데, 내겐 두 번이나 기회가 주어졌잖아.
그걸 살리지 못하고 또 내 사람을 죽게 한 건 온전히 내 잘못이잖아.
못난 건 처음부터 나였잖아.
비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재현을 끊임없이 가라앉게 한다.
재현의 눈은 여전히 역안 그대로였고, 도드라진 혈관이 터지며 핏줄기가 쉴 새 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끝이야.’
잠시 후. 새하얀 빛이 부서지며 하늘이 드러난다.
TV의 중계 화면 역시 돌아오고, 그곳에 재현의 모습이 드러난다. 재현은 흔들리는 시야 속,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머금고 말았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비관이었다.
이걸 위해서 싸우고, 서로를 망가뜨리고 다시 돌아온 건가.
만약 그렇다면…
“더는 할 자신이 없어.”
나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재현이 그대로 무너질 때였다.
“재현아!”
“안 돼! 정신 차려!”
“…일어나야 해!”
“일단 이 포션부터…!”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것은 익숙하고도 따뜻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중 하나가 빠져 있다는 것은 재현을 여기서 그만하라 말하고 있었다.
“고마웠어.”
재현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주변이 시끄러웠음에도 아주 선명히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것은 적어도 십 년은 넘게 들어왔던, 조금 전에 막 잃었다고 생각했던 이의 것이었다.
“민재현… 안 돼. 잘못했어. 내가 다시 안 그럴 테니까….”
그곳에는 김유정이 있었다.
“다시 돌아와.”
그녀의 말에 재현은 재빨리 마력을 둘러 시야를 원래대로 돌렸다.
환청일까?
그래도 좋았다. 재현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그녀의 손목을 당겨 끌어안았다.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이어 재현의 눈에서 서서히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마침내 돌아올 곳을 되찾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