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305
305화 늑대의 시대
어느 무더운 여름날, 갑작스럽게 종말은 시작되었다.
골육상쟁(骨肉相爭)과 불륜이 만연하는 시대.
즉 ‘늑대의 시대’가 열리며 천지가 개벽하고, 피를 원하는 수많은 자들이 지천으로 깔렸다.
펜리르의 아들. 스콜과 하티가 태양과 달을 집어삼키려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렸다. 곧 지상에는 ‘영원한 어둠’이 찾아오고, 본격적으로 재앙이 도래할 것이다.
세 마리의 수탉.
그리고 헬헤임의 입구를 지키는 개 가름이 울부짖는다.
그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라그나로크.
그것은 기나긴 겨울의 시작이었고, 종언과 종말이었다.
허나, 그 순간.
땅거미가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어느 때보다 찬연한 빛이 발화(發火)했다.
굉연한 비명과 함께 아홉 세계의 적요가 깨어진다.
대적자.
1만 년 전, 어느 세 자매가 점지했던 가장 나약한 자가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예언의 세 번째 구절이 아홉 세계 곳곳에 선명히 울려 퍼진다.
[대적자는 뜻대로 나아갈 것이며, 그 끝에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세 번째 구절. 그 마지막에는 작게 다음과 같이 덧붙여져 있었다.
[실은 이미 모든 것을 쥐고 있으리라는 것을, 그는 결코 알지 못하겠지만.]* * *
[다음 뉴스입니다. 밀레스 아카데미 전역을 뒤덮었던 발키리와의 전쟁에 관한 소식입니다. 지난 6개월간,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 결과. 에시르를 포함한 신의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게이트의 출몰과 마수의 등장. 그리고 레이더라는 초월적 인류 역시 그들로부터 파생되었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예. 아무래도 두 사건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듯합니다.
다만, 어째서 지금까지 10여 년을 움직이지 않던 신들이 움직인 것인지. 또, 예언의 대적자라 부르는 민재현 생도를 공격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애석하게도, 3년간의 긴 겨울. 핌불베르트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여름에 갑작스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 또 6개월간 이것이 지속되었다는 게 그 이유겠죠.
라그나로크. 신화 속 신들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또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 지구의 한 지점이라면, 적어도 수억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희망인 민재현 레이더와 발키리의 대척점에 서 있는 신과 거인의 등장, 그리고 그들이 인간을 도울지가 중요해졌습니다.
앞으로의 상황은 과연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일까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역시 이렇게 된 건가.”
재현은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을 귀에서 빼며 잠시 중얼거렸다. 그는 이동 중에 세계 레이더 뉴스를 듣는 중이었다.
최근 정세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데… 생각보다 일이 꽤 커진 듯했다.
온갖 메이저 언론과 방송사에서 자신과 에시르 신에 관한 이야기만 다루고 있으니, 재현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 전 세계에 나랑 시그룬이 싸우는 장면이 싹 다 생중계돼 버렸으니까.”
근래 세계는 그야말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조금 전 당황한 듯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재현의 귓가에 아직도 선명할 정도니, 구태여 더 설명할 것도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기본적으로 에시르 신들의 정체.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변은 인류의 새로운 분기였다.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지금이 아주 중요하다.
재현이 이를 모르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 해도, 지금처럼 지나치게 위험성을 떠들어대며 세계 전반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이유는 없었다.
‘이해가 안 된다.’
저들은 대체 왜 시민들을 겁주고 있는 거지?
재현은 세계 레이더 연합의 의도를 섣불리 파악할 수 없었다.
그저 겁에 질려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실은 그들이 더 잘 알 터인데.
그럼에도 TV에서는 앵무새처럼 같은 소리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재현은 짜증이 나서 스마트폰을 완전히 꺼버렸다.
어차피 한동안은 시련을 치러야 한다. 구태여 켜둘 이유는 없었다.
“그나저나 벌써 6개월이나 지났다니… 그때는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재현이 태연하게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말했다.
대화 상대는 명확했다.
헬라. 그녀는 바로 옆에서 나란히 붙어 따라오고 있었다.
과연 시련의 안내자답게 이번에도 동행하게 된 것이다.
그릉!
파피도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재현의 뒤를 아장아장 따라오고 있었다. 이제 녀석도 꽤 자라서 몸무게가 거의 10kg 초반까지 나가게 되었다.
일반인이라면 이제는 양팔로 껴안고 데리고 다니기 힘든 수준이겠지.
사실, 제 발로 걷기도 좋아하는 녀석이니 걸어오게 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물론 김유정의 품에 안겨 있을 때만은 그 경우가 달랐지만.
‘이상하게 김유정만 옆에 있으면 애가 칭얼거리면서 애교를 부려대니까.’
“…흥.”
헬라는 재현의 옆얼굴을 보더니,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재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잠시 상념에 잠겼다.
병실에서의 6개월.
새삼스럽지만, 꽤 길다고 말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동안 그는 병실에 누워만 있지 않았고.
재현은 자신이 힘을 되찾기까지, 우선순위에서 잠시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순서대로 처리했다.
우선 첫 번째는 오딘의 까마귀 처치였다.
후긴과 무닌을 제외한 나머지 까마귀 하나를 미드가르드에서 찾아내 해치웠다. 격도 약간이지만 끌어올릴 수 있었다.
신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으나, 당장 격이 부족한 재현에게 나쁜 정도는 아니었기에 만족하기로 했다.
당시도, 지금도 재현은 절박했다.
조금이라도 득이 된다면 뭐든 해야 한다. 자신이 지닌 새로운 힘의 통제를 위해서라면 최대한 발버둥 치는 게 중요했던 것이다.
다음은 재현의 힘의 컨트롤을 위한 수련과 몸의 정상화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으나, 한 차례 몸을 혹사한 그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일종의 재활 기간이 필요했기에, 이는 필연적인 일이었다.
덕분에 지금 재현의 몸 상태는 거의 최상이었다.
…딱 한 가지.
신격의 금제만 빼면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한편, 그의 표정에 헬라의 미간이 잠시 움찔하며 구겨졌다.
그녀의 고운 입술이 웬일로 옅은 선홍색을 띠고 있다.
고양이의 모습으로 계속 폴리모프하는 데는 꽤 마력을 소모하기에, 정체를 아예 숨기자는 이야기가 나왔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을 숨기는 데는 사람 사이가 최고다.
라는 시시한 결론도 나왔다.
이러한 연유로.
헬라는 생애 처음으로 자유롭게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잔뜩 흥분한 김유정과 서이나가 자신의 화장품을 빌려주고, 옷을 입혔더랬지.
그때 표정은 그야말로 볼만했다.
어색해서 죽으려던 것을 보며 재현은 계속 웃기만 했으니까.
여하튼, 그런 과정을 겪은 덕분에. 옆의 소녀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재현의 여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헬라는 못내 그게 불편한 기색이었다.
그녀가 약간 짜증이 섞인 어투로 말했다.
“…남의 일인 것처럼 태평하게도 말씀하시네요. 당신이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 걱정 끼치는 건 이제 그만하지 그래요?”
“걱정 마세요. 저도 그렇게 무모하게 싸우는 건 거기서 그만하고 싶으니까. 그땐 어쩔 수 없었다는 거 다 아시면서.”
재현이 능글맞게 말하자, 헬라는 재현의 발을 콱 밟아주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아냈다.
재현은 그녀의 분노를 아는지 모르는지 느긋한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네 번째 시련을 주관하는 자… 그런 대단한 존재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줄은 몰랐네요.”
재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는 헬라와 함께 바닷길 어귀를 걷고 있었다. 그들은 네 번째 시련을 치르기 위해 막 부산에 도착한 참이었다.
이곳이라면 네 번째 시련을 주관하는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헬라는 가볍게 뒷짐을 지며 고개를 저었다. 눈은 반쯤 감은 채였다.
아무리 인지 오류의 마법을 사용했다지만, 역시 예쁜 얼굴이라 주변에서 흘깃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헬라는 태연히 이었다.
“꼭 이곳에서만 그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의 영역은 미드가르드의 바다 전역이죠. 어디에서든 그를 불러낼 수 있어요.
물론… 약간의 조건이 필요하긴 하지만.”
헬라의 말에는 어딘가 음흉함이 스며있었기에, 재현은 팔꿈치로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찔러주었다.
또 이번에는 무슨 귀찮은 시련을 던져주고 극복하라고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앗! 진짜!”
헬라가 발끈했다. 하지만 재현은 여전히 능글거렸다.
“죄송해요. 팔이 미끄러졌습니다.”
“하….”
그렇게 한참을 걸어 바닷가에 도착한 그가 부두에 도착할 즈음.
지이이이잉…!
어딘가로부터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귓가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성별조차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적자… 이곳으로… 바다의 길을 열어 이곳으로 오거라…!] [네 번째 시련은 이곳에 준비되어 있으니까.]의문의 목소리는 그렇게 말해왔다.
재현은 피식 미소 지었다.
‘두 번째 시련의 대유적 때와 마찬가지다. 특정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길이 열리지 않는 구조로 만들어 둔 거지.’
재현이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발 앞에 거대한 물보라가 생겨났다.
쿠구구구구!
그것은 거의 천둥소리와 맞먹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바다 심처로부터 마력이 맥동하며 푸르게 퍼져 나온다. 이어 물결은 서로 부딪혀 소음을 만들어낸다.
솨아아아아!
“바다의 길을 열어라… 라. 뭔가 또 수수께끼 같은 게 오긴 했는데.”
재현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헬라는 쌤통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주억였다. 심지어는 재현에게 보란 듯이 턱까지 약간 들며 약 올리기까지 했다.
“그래요! 여기는 아무리 당신이라도 쉽게 지나갈 수 없을걸요. 시련이라는 거. 지금까지는 이것저것 편법이 먹혔지만….”
허나 재현은 전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바다 위를 향해 서서히 걸었다.
그가 중얼거리며 마력을 가볍게 개방했다.
“바다의 길… 그럼 역시 이 녀석이 효과가 있겠지.”
재현이 미소 지었다.
헬라의 고운 미간이 다시금 구겨졌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전개로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티팩트 《바다의 정수》를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경지가 높습니다! 수속성 마력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재현이 미소 지었다.
조금 전 마력 감지로 일대를 수색한 결과, 아래에 네 번째 시련을 주관하는 ‘그’에게로 향하는 아공간이 있다는 건 이미 파악해 두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꽤 오래 소모되는 게 문제였다. 동료들도 어서 돌아오라는 말을 했고….
재현도 시련에 이제 오랜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이 가진 최선의 수를 꺼냈다.
그것은 바로 바다의 정수.
과거 주원으로부터 빼앗은 것이었다.
촤촤촤촤!!
물이 점성을 지닌 것처럼 서로 엉겨 붙으며 가벽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어 재현은 그야말로 모세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바다가 자신을 위해 열리고, 그 아래 숨겨두었던 신성한 제단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것은 일종의 전송 포털 같은 거겠지.
재현은 알기 쉽게 설계된 시스템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당신은 볼 때마다 더 뻔뻔스러워져서 이제 화도 안 나요.”
“그럼 웃어요. 잘생긴 얼굴 보면 웃어야지. 왜 화를 내고 그래요?”
재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헬라와 함께 바다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는 곧 제단에 도착했고, 이어 익숙한 시스템 음이 들려왔다.
―…대적자임을 증명해 주십….
“피 한 방울이면 되지? 자, 빨리 먹고 아공간으로 안내해. 나도 바쁜 사람이니까.”
재현이 제작한 마나 블레이드로 가볍게 피를 먹였다. 제단이 그에 반응하며, 다시 시스템 음이 귓가에 잔잔히 울려 퍼진다.
과거 우르드의 거울을 사용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대적자 인식 완료.
―대적자를 네 번째 시련 《미드가르드 뱀의 시련》으로 안내합니다.
그 순간, 눈을 감았다 뜨는 찰나가 재현에게 선명히 느껴졌고. 어느새 다시 물이 차올라 재현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재현은 바다의 정수를 사용해 금세 해수면에 도달했다.
이어.
솨아아아.
소리와 함께 무언가 바다 위로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재현은 그게 물기둥이 아님을 직감했고, 그 크기가 범상치 않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또 무슨 무식하게 커다란….’
[드디어 이곳에 도달했구나. 대적자여.]이어 다른 이들의 것보다 훨씬 간교하게 들려오는 뱀의 언어가, 재현의 귓가에 사람의 말로 치환되어 들려왔다.
바다 한가운데 서 있던 풍경이 한순간 뒤바뀌더니, 어느새 평지로 전환되었다.
아무래도 네 번째 시련의 주관자는 꽤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인 듯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자신을 배려해서 장소까지 옮겨주는 것을 보면.
[이쪽이 아직 반은 인간인 네가 이야기하기에 더 좋겠지. 우선 내 소개를 하겠다.]요르문간드가 혀를 날름거리며 이었다.
[나는 요르문간드. 미드가르드의 뱀이며, 빌어먹을 로키 자식의 자식 중 하나지.]재현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뭐? 자식의 자식 중 하나…?
그 말에, 그는 초면에서 저질러선 안 된다는 생각도 않고 저도 모르게 저질러버렸다.
“…그거 개그입니까?”
[…아니다.]재현의 말에 요르문간드가 심히 당황한 듯 몸을 비비 꼬며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신화 속 최강자 중 하나로 묘사되는 뱀인 요르문간드가… 이런 썰렁한 개그나 일삼는 녀석이라고?
심지어 미미르 때와는 또 다른 결의 개그였다는 게 문제였다.
‘그 아저씨는 창피함을 몰라서 꽤 들어줄 만하기라도 했지… 이건 뭐 자기가 해놓고 부끄러워하면 어쩌자는 거야….’
재현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 속 네 번째 시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헬라의 어깨가 갑작스레 떨려왔다.
뭐지?
“헬라, 왜 그렇게 떨고 있….”
“아, 크흡. 아 죄송합니다. 간만에 듣는 개그여서 저도 모르게.”
“…당신 취향이 약간 독특하네요. 저런 개 같은 개그를….”
[오오! 개 같은 개그?! 훌륭하다! 당장 내 유머집 33호에 기록하도록 하지.]요르문간드가 기뻐했다.
재현은 이제 환장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