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370
370화 탈환전(2)
다렌이 무기를 찾아가라 말한 것은, 꼭두새벽이었다.
아직 동료들이 잠에서 다 깨지도 않았을 무렵.
드워프 왕국의 어귀. 훈련장에서 검과 마법을 가다듬고 있던 재현에게 그가 직접 찾아왔다.
재현이 피식 웃었다. 아직 아침 해가 떠오르지 않은 시점이었다.
“왕인데도 다렌, 당신은 엉덩이가 꽤 가벼운 모양이네.”
“…그거 인간들끼리 그냥 하는 인사인가? 만약 드워프의 짧은 다리를 모욕하는 거라면 나도 참고 있진 않….”
“아니니까 진정해. 흑발바닥도 그러더니 당신도 그러네.”
재현은 혹시 드워프들이 짧은 다리에 열등감이라도 갖고 있나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다른 종족들. 특히 엘프와 같은 이들은 처음부터 길쭉하고, 예쁘게 생겼다.
반면, 드워프는 미적으로 그리 아름답다 하기 어려운 생김새를 갖춘 편.
아무래도 열등감이 생길 수도 있긴 하겠다 싶었다.
다른 종족 앞에서는 더더욱.
뭐 재현은 정작 외관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편이었지만.
“어쨌든, 그건 그렇고. 완성됐다. 네가 말했던 검… 각인을 새겼지.”
“구체적으로 어떤 각인을 새겼지?”
“파괴의 각인이다.”
파괴의 각인.
이름부터 살벌한 각인이었다. 재현은 자세히 물으려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어차피 다렌이 제대로 설명하려 자세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한마디 더 할 필요는 없겠지.
“파괴의 각인은 말 그대로 파괴를 위한 각인이다. 이 검에 가장 잘 맞는 힘이지. 각인술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무기에 가장 어울리는 거라 생각했다.”
재현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무기는 최악의 상황에서만 꺼내 사용해야 한다.
꼭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검.
세 번의 소원을 이뤄준 뒤에는 사용자를 죽여버리고 마는 검이 아닌가.
그런 것을 상시에 꺼내 쓸 수는 없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 검을 꺼내야 할 타이밍은 도대체 언제인가?
그것은 바로 이 모든 리스크를 짊어질 만큼 위험한 상황이다.
결국, 티르빙의 가치는 파괴와 그 위력에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앞의 대장장이의 왕은 그것을 한눈에 꿰뚫어 보고 그 한계를 해제해 준 것이고 말이다.
“왜? 감탄했나?”
“자랑은. 그 파괴 각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나 해 주지.”
끊임없이 젠체해대기에 결국 직접 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아이템의 정확한 설명은 제작자에게 듣는 것.
그다음이 이를 수리하거나 강화한 자에게 듣는 것이니까.
“파괴의 각인은 검으로 상대를 베어냈을 때, 자신의 마력을 검에 주입해 상대를 끊임없이 파괴하는 각인이다.
네가 의뢰를 맡긴 검은 ‘레이피어’. 찌르기에 특화된 검이니, 넓은 범위를 커버하기 어려울 거라 판단했지.”
“그래서 ‘파괴의 각인’의 효과를 이용해 주변에도 그 힘이 번지도록 만들었다? 적을 견제하고 허점을 찌르기 위해서?”
“그런 셈이지.”
재현은 순수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확히 아이템의 가장 효율적인 사용법을 꿰뚫고 있었다. 참된 대장장이의 모습이랄까.
재현은 검을 손에 쥔 뒤,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장비 아이템]이름: 마검(魔劍) 티르빙
등급: 신화
스탯: +900(현재 동화율에 따른 공격력)
신화 속 최고로 꼽히는 마검 중 하나다.
일단 칼집에서 뽑히게 되면 반드시 한 존재를 죽여야만 다시 납도 할 수 있다.
3번의 소원을 들어주지만, 그 후에는 반드시 주인을 파멸시킨다.
*검과의 동화율이 상승할수록 마검의 최대 공격력을 끌어낼 수 있다.
*사용자의 정신이 불안정할 경우 검에게 자아를 잡아 먹힐 수 있다.
[각인 정보]《파괴의 각인》이 새겨져 있습니다. 공격력이 더욱 상승하며, 타격 부위에 사용자의 마력을 흘려 넣어 그 주변부까지 충격을 입힙니다.
티르빙은 과거에 비해 공격력 역시 굉장히 상승해 있었다. 거의 1.5배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그 수치가 올라가 있어, 잘못 본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각인 정보라는 창도 따로 생겨 있었다. 그곳에는 파괴의 각인이 새겨져 있다는 정보와 함께, 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재현은 크게 내색하지 않으려 했으나, 그 구간에서는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다렌이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실력은 확실하네.”
두 사람의 대화는 그것을 끝으로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후 흐르는 정적. 그것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그것과 같았다. 전운이 몰려오며 조용히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때.
기이할 정도로 차가운 그 순간의 감정이 스쳐 간다.
“우리 드워프에게, 또 나에게 전쟁은 여전히 두렵다.”
다렌의 말에 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였다.
재현은 전쟁을 알았다. 그게 설령 지옥 속에서 본 편린이라 해도, 그는 전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피가 물든 비는 세상을 잠식하듯 그 기세를 확장하고….
이후 상처 입은 자들의 끝에, 가장 상처 입지 않은 자가 우뚝 서게 된다.
그것이 재현이 아는 전쟁이었다.
다렌이 잠시 굳어진 채 뒷짐을 지고 있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둡군.”
그곳에는 태양이 없었다.
드워프들은 다크 엘프들의 공격 때문에 세력이 축소되었으니까.
지하에 틀어박혀 그들의 공격을 매시간 걱정해야 하는 그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으니까.
때문에 그에게 ‘어둡다’라는 말은 더욱 가슴 깊이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크 엘프들의 강함을 이겨낼 수 없었기에.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있기에.
다렌은 눅눅한 땅. 어둠이 가득한 공동에서라도 그들을 이끌어 왔던 것이었다. 재현도 아마 알고 있겠지.
대적자, 다른 이도 아닌 소문의 대적자니까.
“이길 수 있겠냐.”
왕치고는 매우 경박한 어투였다.
재현은 생각했다. 아마 저게 가식을 지운 진짜 그의 말투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죽지 않는 한.”
“반드시 해낼 거라고 지껄이는 새끼들보다는 낫군.”
재현은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노력하겠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 말에 퍽 흡족한 기색이 된 다렌이 이었다.
“네가 해낸다면, 아마 오딘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거다. 우리들의 거처도 발각돼 공격당하게 될 테고…
어쩌면 다시 아스가르드를 위한 무기를 만들라고 겁박할지도 모르겠군.”
씁쓸한 얼굴로 다렌은 이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 동족들은 모두 자결함으로써 도움이 되겠다, 그게 최선일 테니까.”
무거운 이야기였다.
드워프들의 단체 자결.
확실히 결과만 놓고 본다면, 에시르가 다른 신화급 무구를 가질 수 없게 하는 것이니 전쟁의 승산을 조금이나마 높여 줄 테지만….
그것은 옳지 않았다.
재현은 알고 있었음에도 위로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전쟁에서 나약한 드워프가 살아남을 확률은 희박하니까.
한없이 낮은 확률에 기댈 바에는 남은 이들의 삶에 기여하기 위해 죽을 생각이다.
다렌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기에, 재현은 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오딘의 손에 드워프들의 각인술과 야장(冶匠)으로서의 기술이 넘어가게 되면, 다시 지옥이 재현되고 말 것이다.
아마 헬헤임에 자리가 없어져 한참이나 사람들이 방황하게 되겠지. 무덤을 찾지 못한 영혼이 정처 없이 떠돌다 바다에 잠기고 말 것이다.
그도 안다.
그래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재현은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최소한 싸우다가 죽는 게 나을 거다.”
재현은 이어 말했다.
“그게 너희가 가장 덜 비참해지는 방법이니까. 그리고 걱정하지 마라. 나는 아직 죽어줄 생각이 없거든.
다시 보기로 약속한 사람도 있고.”
그는 엘프들의 왕국에서 만났던 라스. 그리고 살려낸 루이나를 잠시 생각했다. 국왕 아인델도, 그리고 살아남지 못했던 기사들도.
재현은 그날을 잊지 않는다.
실은 그 무엇도 잊지 않았다.
* * *
“그럼 출발하자.”
재현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따라붙은 한 남자를 보았다. 작은 체구의 땅딸보. 익숙한 얼굴이었다.
“흑발바닥. 정말 너도 갈 수 있겠어? 가서 뒈져도 모른다? 나는 안 도와줘?”
“흥, 신경 꺼라! 나도 어떻게든 살아 돌아올 방법이… 있긴 할 거다.”
요컨대,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다.
흑발바닥은 재현과 나인의 동료들이 나서자 함께 따라가겠다고 떼를 썼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재현도 안 된다고 말렸다.
그럼에도 그가 동행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다크 엘프들의 남은 여덟 왕의 거처를 표시한 지도. 이를 가진 게 그뿐이었고, 흑발바닥이 자신을 데려가 주지 않으면 지도를 내주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왕인 다렌에게 말을 꺼내 보았으나, 그에게도 지도가 없으니 흑발바닥을 설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자신은 대장장이지 전투에 나서는 전사가 아니라고 말을 하는데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덕분에 재현은 짐(?)을 하나 데리고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죽여야 할 왕은 무려 여덟.
뭐, 그러한 연유로 팀을 나누긴 했지만.
어떻게든 실력 위주로 잘 분배했으니까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작전은 기억하지? 1팀은 나랑 유정이랑 모자란 발바닥, 그리고 소율 선배.
2팀은 이나랑 호연이, 그리고 재상이 형, 헬라. 됐죠?”
“…응. 알아들었어.”
서이나가 가장 먼저 약간 침울한 목소리로 답해왔다.
재현은 어째선지 이유를 알 것 같았으나 애써 무시했다.
안호연과 다른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부터는 팀을 나누지 않으면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재현의 1팀은 역시 가장 위험하다 여겨지는 1~3번째 위치의 왕들을 처치할 예정이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4~8번째 왕을 해치우기로 했다.
이는 4왕의 실력이 해방 2단계에 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내린 결정이다.
요컨대 빠른 토벌 성공을 위한 분업인 셈이다.
“가자!”
김유정은 약간 신이 난 어투였다.
하긴, 최근 재현과 거의 떨어져 있었으니. 오랜만에 함께 하는 게 좋을 터였다. 재현을 좋아하는 그녀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고.
덕분에 중간에 낀 길잡이. 권소율만 눈치를 보게 됐다.
‘왜 하필 이 팀에 껴서… 눈치 보이게.’
재현과 김유정, 서이나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가장 먼저 눈치챈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다. 근데 이런 곳에 끼어 있어야 한다고?
굳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사흘은 뭘 먹어도 체할 게 분명했다.
젠장, 소화제나 좀 사둘걸.
권소율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이재상의 옆구리를 찔렀다.
“…혹시 소화제 대용으로 만든 포션… 있냐?”
“응? 없는데….”
‘정말 넌 이럴 때 도움이 된 적이 없구나.’
권소율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천장에서 뭔가 쿵―하고 내려앉았다. 재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체 뭐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떨어진 것이 위험하다 판단해 주먹으로 쳐냈다.
“크헉!”
비명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뭐야?”
재현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다크 엘프 한 마리가 죽어가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옆의 흑발바닥이 벌벌 떨며 말했다.
“…이다….”
“뭐?”
재현이 되묻자, 그가 오들오들하며 재차 이었다.
“이놈이… 다크 엘프들의 제8왕이라고…… 미친놈아.”
“…….”
잠시 공동에 정적이 흘렀다.
재현이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 저, 생각보다 많이 약하네. 순위가 낮아서 그런가 봐.”
그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