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3
42화 구자인 (2)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어쩔 수 없죠. 계약은 강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세 분의 의사에 맡기도록 하죠.”
구자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썩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다.
다른 생도라면 넙죽 받았을 만한 거물급 제안을 단칼에 거절당한 참이니까.
거기다 재현은 노골적으로 그를 적대시하며 딴지를 걸어오고 있는 상황.
“저도 아쉽지만 포기하겠습니다.”
“……저도 계약은 그만둘게요.”
이어진 두 사람의 대답에 구자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볼 만하게 바뀌었다. 사납고, 탐욕스러운 두 눈동자에서 불꽃이 튄다.
재현은 이 모든 상황을 예견했다는 듯 작게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때.
구자인이 표정을 바꾸고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안타까운 일이군요. 밀레스 아카데미 측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제안이었는데. 혹시 모르니 다시 생각할 기회를 드리죠.”
구자인의 말과 동시에, 일순 두뇌가 타는 듯한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현은 모든 상황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당신의 정신에 《???》가 잠입합니다.
―패시브 스킬 《헬의 가호》가 상태 이상에 완전히 저항합니다.
재현은 피식 웃었다.
‘이럴 줄 알았지.’
처음부터 재현은 노골적으로 구자인을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며 도발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구자인을 도발해 《세뇌》 스킬을 사용하도록 유도한 뒤, 그걸 베낄 요량이었던 것이다.
‘《세뇌》 스킬은 이후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패가 되어 줄 마법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다면 얻고 가는 게 맞아.’
지금 구자인은 그 시커먼 속내도 모른 채, 재현에게 계속 《세뇌》 마법을 걸고 있다.
재현의 정신을 조작해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작일 터.
하지만 무려 EX급 스킬인 《헬의 가호》는 모든 상태 이상에 저항한다.
아무리 《세뇌》가 고유 스킬의 막강한 위력을 가졌다 해도, 그건 결코 변함없었다.
재현은 동시에 주머니 속에서 카드 한 장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블랭크 카드 사용.’
―블랭크 카드를 한 장 소모합니다.
재현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빛을 머금은 카드가 주머니 속에서 적의 스킬을 분주히 베껴나가기 시작한다.
연산식을 분해하고, 역산한 뒤 다시 재정립하는 일련의 과정.
그리고 마침내.
―액티브 스킬 《세뇌》를 습득하였습니다.
[액티브 스킬]이름: 세뇌
랭크: 고유 스킬
자신보다 약한 상대의 정신을 타락시켜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다.
상호 합의가 이뤄져 주종관계를 맺게 될 경우 스킬이 《종속》으로 변경된다.
효과
1. 상대의 이지를 상실하게 만들어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
2. 《종속》으로 스킬이 변경될 경우, 종속 대상에게 제약을 걸어 명령에 따르게 할 수 있다.
청량한 메시지가 들려옴과 동시에 재현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의 볼일은 모두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희는 그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사흘 동안 아공간에서 지냈더니 좀 피곤해서요.”
재현이 먼저 밖으로 나가는 문을 향해 걷자, 두 사람도 꾸벅 고개를 숙인 뒤 그를 따라 일어섰다.
구자인은 어째서 자신의 《세뇌》 스킬이 통하지 않았는지 확인할 새도 없이, 멀어지는 재현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신입생 사냥에서 마법계로 1위를 찍은 것도 모자라, 내 고유 스킬에 저항했다고?’
하지만 곧 그는 다시 본래의 온화한 표정을 되찾았다.
‘……흥미로워. 민재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인재다.’
누군가 말한 적이 있다.
인간은 손에 가질 수 없는 것을 무엇보다 매력적으로 느낀다고.
그리고 현재 구자인에게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민재현.
아직 성인이 채 되지 않은, 풋내기 생도였다.
* * *
이사장실에서 나와 배정된 기숙사로 가는 길. 곳곳에 가로등이 깜빡이며 하루살이들이 모여드는 것이 보인다.
이 부근은 밀레스 학원 부지에서 거의 유일하게 휴식을 취할 만한 쉼터이자 공원.
이곳을 가로질러 밖으로 두 갈래로 나눠진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생도 기숙사가 나오게 된다.
재현은 앞서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에서 따라오는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김유정과 서이나.
둘은 재현의 안내를 받아 생도 기숙사의 위치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재현이 물었다.
“그런데 너흰 진짜 괜찮아?”
“엉? 뭐가?”
김유정이 고개를 치켜들며 반문했다. 재현은 덤덤히 이었다.
“구자인이 한 제안 말이야. 둘 다 거절했잖아. 그래도 괜찮겠어?”
“뭐, 그야…… 처음엔 좀 혹하긴 했는데. 네 말을 들어보니 다 맞는 것 같더라고.
구자인 이사장. 적당한 감언이설로 우릴 구워삶을 작정이었던 모양인데…… 솔직히 5년 동안 수익을 30퍼센트나 떼 간다는 게 말이 돼?”
김유정은 거의 화를 내며 말했다.
재현은 피식 웃었다.
뒤편의 서이나 역시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계약 조건은 확실히 문제가 많아 보였어. 나도 안 하는 게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해. 무엇보다…… 우리가 특혜를 받으면 다른 사람이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잖아. 그건 떳떳하지 못해.”
재현은 갑작스러운 정론에 조금 당황했다.
약한 자에게 한없이 옹졸해진 세상에서, 저런 선한 마음씨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재현은 그녀처럼 정의롭게 자신의 앞에 있는 것들을 부술 생각은 없었다.
사람은 저마다 방법이 있고, 재현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뭐든 해야 하니까.
재현은 서이나와 김유정을 번갈아 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면 다행이고. 나도 실은 너희가 그 제안 거절했으면 했거든.”
“다른 것도 다른 건데…… 구자인 이사장 뭔가 이상하지 않냐? 음침해 보이고…… 네가 제안을 거절한다고 말했을 때도 완전 표정이 구렸어.”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했어. 생각해 보면 입학식 첫날부터 아공간의 오류가 생긴 데다, 교관들은 그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으니까.”
‘……얘들 촉 되게 좋네.’
두 사람의 감이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서이나가 재현에게 물어왔다.
“혹시 말이야…… 재현이 넌 뭔가 알고 있는 거야? 구자인 이사장에 대해서.”
“어…… 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넌 신입생답지 않게 차분하잖아. 그래서 혹시 뭔가 알고 있나 해서…….”
“그러게. 야! 민재현. 너 뭐 알고 있는 거 있으면 알려 줘라!”
두 사람의 말에 재현은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서이나와 김유정에게 구자인에 대한 미래 정보를 풀어도 될까?
몇 분이나 생각해 봤지만 역시 그건 이르다는 판단이 섰다.
아직 두 사람은 밀레스 학원이 움직이는 분위기를 전혀 모르고 있다.
여기서 그들에게 이 학교가 위험한 곳이며 앞으로 사람이 죽어 간다고 말한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재현은 정면을 보며 덤덤히 말했다.
“응. 어쩌면. 근데 확실하진 않아서 지금 다 말해 주기는 좀 어려워.”
“그렇구나…….”
서이나는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재현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김유정이라면 몰라도 서이나와 알고 지낸 지는 고작 3일밖에 안 된 상황.
지금까지의 그녀의 행태로 볼 때 뒤통수를 칠 것 같진 않지만, 그렇게 따지면 회귀 전 정우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래 선해 보이는 이들이 돌변했을 때가 몇 배는 더 위험한 법이다.
‘일단은 내가 가진 미래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감추는 게 나아.’
하지만 재현은 한 가지만은 두 사람에게 확실히 주입하기로 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내 두 사람을 보며 입술을 뗐다.
“하지만. 두 사람 다 한 가지는 꼭 명심해. 여기서 아무도 믿지 마. 그게 이사장이든, 교관이든.”
“……그럼 재현이 너도?”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서이나는 호박색을 머금은 신비스러운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재현은 일부로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눈을 마주쳤다. 그가 피식 웃으며 대답하려던 때, 김유정이 말을 가로챘다.
“그래. 얘도 믿지 마. 일단 남자고, 사납게 생겼고, 전에 집에도 안 데려다주고 나 버리고 갔거든.”
“야. 갑자기 여기서 그 이야기가 왜 나와? 다 지난 일 가지고.”
“닥쳐! 그때 나 공황장애 와서 죽을 뻔했다니까?”
김유정이 발끈하며 말했다.
실제로 유성은을 만났던 날, 김유정은 적잖이 고생했다.
쏟아지는 인파 사이에서 끊임없이 휘청거리며 돌아다녔고,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요원해 보였다.
결국, 어머니가 자신을 데리러 오기 전까지 그녀는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다.
씩씩거리며 그의 얼굴을 노려보는데, 별안간 재현이 발을 멈추며 입을 뗐다.
“됐다. 이제 그만 들어가. 다 왔어.”
“어? 벌써 도착이야?”
김유정이 눈을 끔뻑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그들의 눈앞에는 밝은 전등과 함께 죽 늘어선 안내판이 보였다. 기숙사를 구분 짓는 거대한 공원 분수와 깨진 타일 몇 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티딩, 하는 소리와 함께 가로등이 점멸했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래. 너희도 가서 쉬어야지.”
재현이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뒤편에서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그럼, 여기서 갈라지겠네?”
서이나는 아쉬운 건지 섭섭한 건지 모를 눈을 한 채, 그렇게 말했다.
김유정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녀는 재현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야야. 왜 여기는 청춘 로맨스물인데? 나도 좀 껴 줘라.”
“여자 기숙사는 왼쪽. 남자 기숙사는 오른쪽이야.”
재현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두 사람의 등을 밀었다.
“그니까 빨리 들어가서 쉬라고.”
“칫, 알았어. 가면 되잖아.”
김유정이 툴툴거렸다.
서이나는 잠시 돌아서더니, 재현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린 가 볼게. 재현이 너도 푹 쉬어. 내일은 첫 수업이 있으니까.”
“그래. 그럼 내일 보자.”
* * *
두 사람에게 손 인사를 해 준 뒤, 재현 역시 오른편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약 5분쯤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니 본격적인 시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옅은 푸른빛을 띠는 장막을 두른 외곽. 회백색 건물과 기본 시설이 갖춰진 아파트형 기숙사는 재현이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오랜만이네. 여긴.’
역시 아카데미 측에서 지원해주는 기본 기숙사인 터라 시설 자체는 평범했다.
그나마 특출 난 구석이라고는 건물 전면을 두른 마나 방범 시스템 정도.
이를 제외하면 포인트로 얻을 수 있는 다른 아파트와 호텔 시설이 근본적으로 훨씬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실적을 낸 이들이 더 좋은 집을 얻는 것이 당연하다.
그게 구자인 이사장과 교관들의 의견이었으니까.
‘그래도 첫 번째 이벤트는 어떻게든 잘 넘겼네. 이제부터는 하루하루 집중해야 해.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다짐을 공고히 하며 생도 카드를 기숙사 ID 인식기에 댄 뒤, 문을 열었다.
한 걸음 내디디니 곰팡내가 섞인 복도와 함께 퀴퀴한 냄새의 물걸레가 죽 널린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대부분의 기간 이런 음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연차가 쌓이고 나서도 이 기숙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대부분 더 높은 등급의 레이더로 성장할 수 없게 된 쭉정이들이었고, 구자인과 밀레스는 그런 생도들을 대놓고 차별대우했다.
은연중에 낮은 등급의 레이더를 무시하는 기조들이 생도들 사이에서도 퍼져 있는 게 사실이고.
안으로 들어서 복도를 쭉 따라 걷자 재현이 배정된 방인 302호가 보인다.
문고리에 손을 얹은 뒤 카드를 대자 익숙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진짜 더럽게 오랜만이네…….”
드러난 내부를 본 재현이 감탄인지, 회한인지 모를 것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짐을 내려놓고 딱딱한 바닥 위에 앉았다.
새삼 지난 생에서의 이곳이 그에게 얼마나 지옥 같았는지 떠오르며, 온몸이 저릿하게 떨려왔다.
다시 돌아온 기숙사는 전혀 반갑지 않았다.
다만, 끔찍한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그를 담금질하고 단단하게 만들었을 뿐.
“내일은 방부터 알아봐야겠다. 언제까지 여기서 살 순 없으니까. 뭐, 포인트도 있으니 큰 걱정은 없겠지.”
무려 253만에 달하는 포인트,
어차피 쓰지 않고 마냥 아낀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집은 매일 생활한 뒤 돌아가야 하는 안식처.
여기에 포인트를 쓰지 않으면 다른 곳에 쓰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다행히 재현은 수업을 듣는 본관 건물과 가까이 위치한 호텔 몇 군데를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내일 수업은 뭐지?”
문득 첫 수업에 대해 궁금해진 재현이 팔짱을 낀 채 잠시 고민했다.
내일은 드디어 마법 생도로서 듣는 첫 수업이 있는 날.
확인해 보니, 과목명은 《마나 적응 기초Ⅰ》였다.
미리 공부를 좀 해 둘까 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일찍 쉬어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지난 3일간은 꽤 치열하게 싸웠으니까.
씻고 침대에 누우니 곧바로 잠이 쏟아졌다. 알람을 맞춰 둔 뒤, 재현은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첫 수업에 참여한 재현은 수업 내용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