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56
55화 모의 던전 실습 (5)
북유럽 신화 속 오딘은 곁에 후긴(Huginn: 감정, 생각)과 무닌(Muninn: 기억)이라는 두 마리의 까마귀를 두었다.
그는 두 마리 까마귀로 하여금 아홉 세계 곳곳의 온갖 지식을 수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에시르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를 통치했다.
노르니르 시스템이 말하는 오딘의 까마귀가 신화와 같은 존재라면, 에시르 최고 신인 오딘의 추종자라는 뜻.
즉, 다시 말해 재현의 적이었다.
재현은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구자인 이사장과 오딘의 까마귀.
즉 에시르 신좌(神坐) 사이에 뭔가 접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 * *
“모두 머리 숙여!”
재현의 다급한 외침에 파티원 전원이 일사불란하게 상체를 낮췄다.
후웅……! 쿠궁……!
바람을 찢어발기는 맹렬한 소리와 함께 곤봉이 땅에 부딪히며 지면을 진동시켰다.
드디어 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코볼트 로드는 실로 압도적인 위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일행은 재빨리 전투 대형을 갖춘 뒤, 전방을 봤다.
경황이 없는 와중.
가장 먼저 서이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떻게 재현이의 공격을 맞고 살아있는 거지? 저 코볼트 로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코볼트 로드는 기껏해야 D급 보스에 불과하다.
그런데 저 정도 위력의 공격을 받고도 멀쩡히 설 수 있다고?
더군다나 코볼트 류(類) 마수는 회복 능력은 갖추고 있어도 재생 스킬은 없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한편, 재현 역시 서이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저 코볼트 로드… 일반적인 코볼트 로드가 아니다. 체내에서 흘러나오는 무시무시한 마력에 재생 능력까지. 저건 이미 C 이상……. 나이트 셰이드보다도 훨씬 강한 상대일지 몰라.’
실로 끔찍한 상황이었다.
재현은 입술을 짓씹으며 파티원들의 상태를 살폈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다행히 대형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츳, 재현이 짧게 혀를 차며 땅에 박힌 곤봉을 빼내는 코볼트 로드를 보았다.
마수의 눈동자는 새빨갛게 붉었으며, 감정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초점 없는 동공이 간담을 서늘하게 할 뿐.
‘젠장…… 여기선 다른 방법이 없어.’
재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일행을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모두 내 말 잘 들어! 내가 저 녀석을 막는 동안 빨리 던전 입구로 되돌아가! 어서!”
“……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설마……! 지금 저 미친 보스몹을 혼자 잡겠다고? 그게 가능할 리 없잖아!”
“……혼자서는 너무 위험해.”
던전에 진입한 뒤 줄곧 말이 없던 서이나까지 그렇게 말했다.
재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져 버린 상황에 이를 갈며 주먹을 쥐었다.
이들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재현 혼자 코볼트 로드를 상대하는 편이 사상자가 적을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지, 여러 명이서 마수를 공략하는게 훨씬 더 쉽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들의 몸과 레벨은 재현과는 사뭇 달랐다.
엘리트 아카데미 생도라고는 해도 아직 초짜 수준. 아마 저런 공격에 맞는다면 서이나는 몰라도 나머지 둘은 즉사할지도 모른다.
‘젠장.’
거기다 쏟아져 나오고 있는 코볼트 역시 문제였다.
아무리 약한 적이라 해도 저렇게 많은 수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무리다.
크아아아아……!!
코볼트 로드는 곤봉을 세워 손에 쥔 채로 힘을 싣더니, 그대로 땅을 향해 내려찍었다.
쿠구구구구……!
동시에, 다시 한번 지면이 박살 나며 균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일행의 대형이 흐트러지며 코볼트의 공격이 빠르게 이어진다.
마치 사전에 움직임을 맞춰 놓은 듯 자연스러운 연계.
재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구자인은 설마 마수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고 있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의 상황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물론 지성을 지닌 마수는 존재한다. 하나, 이처럼 작전을 짜고 치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몬스터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아니, 결코 그럴 리 없다.
재현은 다시 한번 소리쳤다.
“빨리 도망가! 지금 너흰 한 대만 맞아도 즉사…….”
“……안 돼!”
쿠웅!
말을 채 끝맺지 못한 재현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일순 빠르게 거리를 좁혀 온 곤봉이 재현의 머리를 정확히 노려 왔던 것이다.
일행을 신경 쓰느라 빠르게 반응하지 못했던 그는, 때마침 끼어든 서이나가 펼친 방어 역장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재현은 숨을 고르며 서이나의 몸 상태를 살폈다.
역장에는 커다란 금이 쩍 갈라져 있었다. 척 보기에도 좋지 않은 상태.
그는 적에게 등을 보인 자신을 반성하며 곧바로 코볼트 로드를 보았다.
“미안해. 추한 꼴을 보였어.”
“……아냐. 하지만 아무리 너라도 저런 마수는 혼자 상대할 수 없어. 적어도 C급, 아니 B급에 준하는 것 같아.”
“맞아. 이나야. 지금의 나 혼자서는 확실히 힘들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고한 희생자를 늘리고 싶진 않아. 네 도움이 필요해.”
“……응.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서이나는 곧바로 뒤돌아 재현에게 전장을 맡긴 뒤, 나머지 둘을 향해 다가갔다.
《헤이스트》를 사용해 빠르게 그들과의 거리를 좁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너흰 던전 입구로 돌아가서 김지연 교관님을 불러 줘.”
“하, 하지만!”
박성우가 소리쳤다. 김진아 역시 거의 울상을 한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서이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런 적을 상대하면서 동료까지 지키는 건 불가능해.”
“……미안하다. 어떻게든 빨리 교관님을 불러올 테니까!”
“자, 잠깐만!”
박성우는 이를 악물었다.
다행히 판단은 빨랐다.
그가 곧장 김진아를 데리고 던전 밖을 향해 뛰기 시작한 것이다.
서이나는 둘이 바깥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볼 새도 없이 다시 재현의 곁에 붙었다.
* * *
“다행히 세호는 어떻게든 괜찮아진 것 같아. 숨 쉬는 것도 한결 나아졌어.”
“어.”
김유정은 안호연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녀는 불안한 얼굴을 한 채, 계속 3조의 던전의 입구를 주시하고 있었다.
안호연이 그녀에게 다시 물어왔다.
“재현이 때문에 그래?”
그 말에 김유정이 입을 꾹 다물었다. 몸을 잘게 떨던 그녀가 불안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어째서지? 던전에서 만나는 건 고작 해봐야 코볼트 로드잖아…! 민재현이랑 이나는 고작 그런 몬스터에게 죽을 정도로 약하지 않아! 그런데, 그런데 왜 아직도 던전에서 안 나오는 거야!”
김유정의 눈가에 핏발이 섰다.
격한 감정의 격류로 스스로를 통제하기 어려웠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심지어 조금 전, 김지연 교관은 3조가 들어간 던전만 마력 파장이 달라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안에서는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으나, 바깥에서는 들어가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다른 던전에 들어간 생도들이 모두 구조를 받고 살아 나온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임은 분명했다.
“진정해. 유정아. 일단은 둘을 믿고 기다리면…….”
안호연의 말은 그녀의 귓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특히 김유정에게 민재현은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특별한 친구.
이성을 유지하는 게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온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가던 그때.
파츠츳!
마력으로 둘러진 벽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3조 멤버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유정의 얼굴에 잠시 화색이 돌았다가, 다시 차가워졌다.
아니, 정확히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어두워져 있었다.
김유정은 두 사람의 눈앞까지 걸어간 다음 주먹을 꽉 쥐며 물었다.
“어째서 너희 둘만 던전에서 나온 거야?”
“그, 그게 둘은 아직 안에서 코볼트 로드와 싸우고 있…….”
두 사람이 거의 울먹이는 얼굴로 말했다.
아마 안에서 두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탓일 터였다.
김유정의 눈에 초점이 풀렸다.
“그러니까.”
그녀는 두 사람을 죽일 듯한 기세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왜 너희만 살아서 돌아왔냐고.”
던전에서 생사를 다투던 생도들의 시선이 일순, 두 사람의 얼굴에 꽂혔다.
* * *
쿠웅! 쿠웅! 쿠웅!
연달아 세 번이나 휘둘러오는 강력한 공격에 재현과 서이나는 고전하고 있었다.
곤봉을 자유자재로 다뤄가며 공격해 오는 코볼트 로드의 움직임은 가히 놀라웠다.
마치 활처럼 휘어 들어오는 공격과 묵직한 타격, 그리고 속도까지.
뭐 하나 떨어지는 게 없는 수준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이나 넌…….”
“…뒤에서 엄호해 달라는 말이지?”
“부탁할게.”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두 사람은 빠르게 대형을 맞춰 섰다.
재현은 공격해 오는 코볼트 로드의 움직임을 읽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흐읍!”
기합을 넣으며 땅을 차고. 다시금 녀석을 향해 몸을 쏘아낸다.
일순, 신형이 사라진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의 빠른 속도.
하지만 애석하게도. 마수가 휘둘러오는 곤봉 역시 살벌할 정도로 빨랐다.
카앙!
재현은 날아가는 도중에 마력을 집중해 방어 역장을 펼쳐 공격을 쳐냈다.
‘한 대, 한 대가 묵직하다. 나도 궤적을 바꿔 놓는 게 전부야.’
실로 무시무시한 근력이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저 몬스터는 명백히 코볼트 로드의 한계를 넘어선 괴물이다. 이미 등급은 C급을 상회하고 B급에 달하는 압도적인 수준.
구자인이 아무리 이것저것 가진 패가 많은 뒤가 구린 놈이라도 이건 선을 넘었다.
마수를 처치하는 레이더를 양성하는 집단에서, 마수를 이용해 생도를 공격하다니.
‘여기서는 나도 전력을 다해 싸우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길까 말까 한 압도적인 상대야. 다른 방법이 없어.’
재현은 온몸의 마력을 개방해 선의 형태로 방사했다.
가느다란 실이 주변 경계면을 푸르게 물들이며 구역을 조각냈다.
동시에, 땅과 천장에서 그가 만들어낸 여러 개의 사슬이 쏟아져 나왔다.
―액티브 스킬 《전격의 사슬》을 발동합니다.
촤르르르르!
사슬이 부딪치며 내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재현은 온몸에 전류를 둘렀다.
‘저건 코볼트 로드의 몸을 빌린, 그야말로 괴물이다. ……하지만 파훼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재현은 조금 전부터 그의 육체를 유심히 살펴보았고 한 가지 답을 얻었다.
‘코볼트 로드의 육체가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다. 아마 육체가 담아낼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저 압도적인 마력 때문이겠지. 거기다 저 녀석. 몸이 부서져도 끊임없이 재생하고 있어. 그렇다는 건.’
재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저놈에게 마력을 계속 주입하고 있는 배후가 따로 존재한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그 배후를 처치하게 되면 코볼트 로드의 재생 능력 역시 멈추게 되며, 끝내는 소멸하게 된다는 뜻.
크아아아아……!!
쏟아지는 사슬에 몸을 속박당하면서도 코볼트 로드는 끊임없이 저항했다.
도중에 사슬이 끊기고, 부서지는 것들이 바닥에 축 늘어지며 둔탁한 쇳소리를 냈다.
재현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주시하며 계속 마력을 운용했다.
“……오딘의 까마귀라.”
조금 전 시스템은 저 마수의 배후에 오딘의 까마귀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오딘. 에시르 세력과 반 에시르 세력.’
이제 조금 윤곽이 보이는 듯했다.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것투성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오딘의 눈엣가시고, 난 그 새낄 쳐 죽여야 한다는 거지.”
재현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는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코볼트 로드를 뒤로한 채, 잡몹들을 향해 공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전격의 사슬이 연약한 코볼트의 몸을 마구잡이로 꿰뚫으며 피를 흩뿌린다.
구태여 재현이 앞의 보스 몬스터가 아닌 일반 몬스터를 사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음 순간 들려온 청량한 메시지.
―코볼트를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1 올랐습니다.
―현재 레벨은 30입니다.
―새롭게 장착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습니다.
재현의 얼굴에 옅은 희열이 어렸다.
“장착해.”
―장비 아이템 《미스틸테인》을 장착합니다.
일전에 안호연과의 만남 이전 백화점에서 얻었던 미스틸테인.
장착 레벨이 부족해 장비하지 못했던 성장형 아이템.
그게 재현이 숨겨 둔 마지막 수였다.
“오딘의 까마귀…… 어디 숨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스틸테인》의 장착 효과로 사용자의 시야가 확장됩니다.
―적의 움직임을 보다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습니다.
―액티브 스킬 《마력 감지》를 획득하셨습니다.
재현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물들며, 동시에 시야가 탁 트였다.
“넌 확실히 내가 찢어 죽인다.”
그아아아아……!!
다음 순간이었다.
코볼트 로드가 모든 사슬을 끊어내고 재현을 향해 돌진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