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76
75화 티알피의 천둥 걸음
“그래도 내가 도와줄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네. 역시 로키의 선택이라 이건가?”
달빛이 사뿐히 내려앉은 네버랜드의 바이킹 위.
그곳엔 흥미로운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보인다.
헬라.
일전에 재현이 ‘플랜디어의 저택’을 공략할 때 들었던 고양이 소리의 주인이자, 헬의 분신.
덧붙이자면, 고양이의 모습으로 지상에 현현(顯現)한 반신의 존재였다.
“재미있어. 저 민재현이라는 소년…… 어쩌면 정말 우리의 숙원을 이뤄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그가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해가 가.”
물론 어디까지나 제대로 성장한 뒤의 일이지만,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지령을 받은 직후. 끊임없이 재현의 곁을 맴돈 그녀였다.
힘을 지닌 인간이 얼마나 빨리 도태되고 알량한 마음을 갖는지는,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허나, 재현은 전혀 그런 이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끊임없이 강해지기만을 원했다.
실제로 연화와 손을 잡은 현시점. 그는 아버지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길드에 보호 요청을 하고 적당히 풍족한 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다.
재현이 알기에 아버지 민성오는 어디까지나 A급 레이더에 불과한 수준.
S급 레이더인 유성은의 도움을 받는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냐앙.
그는 복수만을 위해 이토록 강함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그는 오히려.
“강해지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보이지. 안 그래요? 헬?”
[흥, 그래 봐야 아직 그릇에 불과한 녀석이야. 띄워 주지 마.]어딘가로부터 들려온 목소리. 그 주인은 다름 아닌 헬이었다.
지옥이라 불리는 헬헤임의 지배자이자, 로키의 딸.
재현에게 나이트 셰이드를 처치하는 퀘스트를 준 장본인이다.
덧붙이자면, 헬라에게 재현의 감시역을 맡긴 것 역시 그녀였다.
현재 자신은 헬헤임에서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분신인 헬라를 대신 보낸 것이다.
‘혹여나 에시르 신좌들이 헬이 자리를 비우게 된 걸 알게 되면 난리가 날 테니까. 대신 날 감시역으로 보낸 거겠지. 헬은 너무 단순해. 속이 뻔히 보인다니까.’
헬라는 작게 웃은 뒤, 생각을 이어갔다.
‘만약 탐욕스러운 에시르 신좌들이 예언의 ‘대적자’를 찾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야. 그러니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고양이 행세를 좀 더 하는 수밖에.’
―냐앙.
덤덤히 생각하는 헬라지만 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자칫하면 다시 영겁을 삼켜버린 전쟁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 전쟁이 운명이란 이름으로 예비되어 있다고는 해도.
지금은 너무 일렀다.
‘적어도 그릇이 완성되기까지만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해.’
헬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분신인 만큼 다는 아니라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대략이나마 파악할 수 있으니까.
헬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는 중이기도 했다.
그릇, 재현의 가능성에 흥분하고 있는 것이었다.
헬라는 짓궂게 미소 지은 뒤 재차 입술을 뗐다.
“헬, 그래놓고 당신이 제일 민재현 군의 소식을 궁금해하잖아요.”
헬라는 쿡쿡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헬은 쿨럭,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말이 없어졌다.
한편, 헬라의 시선은 아래로 향해있었다.
그곳에는 민재현과 서아현.
그리고 던전의 관리자인 브륀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일러.”
헬라는 재현을 보며 작게 읊조렸다.
분명 그는 강해지긴 했지만, 아직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대적자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해져야 한다.
오딘.
끝내는 그가 죽여야 할 에시르의 가장 드높은 존재의 이름.
냐양―.
헬라는 굳은 몸을 죽 늘어뜨리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두 번째 시련에 도전할 만큼, 재현은 강해지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 보는 게 좋겠지.”
그녀가 생각하기에, 재현은 충분히 기대해볼 만한 인재.
일단은 기회를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저만한 그릇은 다시 얻기 어려운 만큼, 좀 더 잘 성장시키고자 다짐하면서.
* * *
[장비 아이템]이름: 티알피의 천둥 걸음
등급: S
인간의 몸으로 빛의 하급 신까지 오른 티알피가 신었던 신발.
장착 시 근력과 민첩을 보정하며, 패시브 스킬 《빛의 걸음》을 습득한다.
효과
1. 근력 + 50 / 민첩 + 150
2. 패시브 스킬 《빛의 걸음》 습득
이름: 빛의 걸음
등급: S
속도 보정 관련 스킬의 효율이 극대화된다.
1. 속도 보정 스킬의 효율이 200퍼센트 상승한다.
재현은 내적 환호를 지르며 브륀에게서 받아든 아이템의 설명을 읽고 또 읽었다.
근력 50, 민첩을 무려 150이나 보정하는 아이템이라니.
다른 레이더가 알면 기겁할 만한 압도적인 수치다.
일반적으로 주요 스탯을 50 이상 상승시키는 아이템은 최소 수백억을 넘어가는 게 상식.
그런데 뭐?
민첩을 150이나 올려주는 아이템?
경매장에 올리기만 하면 뒤에 붙은 수많은 0의 향연을 볼 수 있을 터였다.
‘역시 S급 아이템의 위력은 장난이 아니라니까. 전 세계에서도 두 자릿수밖에 없다더니. 확실히 다른 거랑은 급이 달라.’
재현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티알피의 천둥 걸음》.
원하던 것은 손에 넣었다.
‘힘들긴 했지만 어떻게든 해냈네. 뜻밖의 수확도 있었고.’
그는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는 수르트의 티끌로부터 얻은 아이템을 보았다.
《수르트의 꺼지지 않는 불꽃》.
장비 아이템을 무려 극한까지 강화하며 화염 속성을 부여하는.
쉽게 말해, 사기 아이템이다.
재현이 자주 사용하던 장검 류에 사용해도 좋을 것이고, 다른 아이템도 괜찮다.
단검이나, 여차할 때 쓸 만한 창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고.
‘그래도 미스틸테인에 사용할 수는 없겠지. 근본적으로 나무니까.’
유일한 문제가 그것이었다.
미스틸테인은 무기로 분류가 되긴 하지만 일단은 팔찌의 형태를 하고 있다.
거기다 신화에 따르면 그것은 겨우살이의 나뭇가지를 꺾어 온 물건.
수르트의 불꽃을 저항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옳았다.
‘아무래도 적당한 때에 다른 무기도 하나 더 구해 둬야겠어.’
그것도 쓸 만한 녀석으로 구할 생각이었다.
무려 무기를 극한까지 강화하는 효과를 지닌 아이템.
이왕 얻게 된 거. 더 좋은 아이템에 사용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니까.
재현은 입가에 빙긋 미소를 두른 뒤 브륀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어쨌든 받은 게 있으니 홀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페스티벌을 재미있게 즐겨 주셨다니 정말 기쁩니다! 제가 더 감사하군요!”
브륀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말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재현은 간단히 대답한 후 서아현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흠칫 놀라며 자신이 받은 아이템을 뒤로 감추었다.
뭐, 저게 보통의 레이더이긴 하다.
자신이 얻은 아이템은 철저하게 숨기는 게 무조건 이득이니까.
그러나.
“《종속》.”
“……제가 얻은 아이템은 《로스크바의 인장》입니다. 근력을 50 상승시켜 주며 《용기》 스킬을 얻게 해 주는 아이템이에요.”
재현은 그녀가 자신에게 패를 만드는 것을 허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타인의 정보를 알 수 있다면야, 얼마든지 이용해주는 게 당연하니까.
재현은 《용기》라는 스킬의 효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서아현은 포기하고 순순히 설명해 주었다. 물론 벌레 씹은 얼굴이긴 했지만.
스킬의 설명은 간단했다.
혼란 상태에 완벽히 저항하며. 동시에, 근력과 민첩을 상승시켜 주는 스킬.
‘내가 베낄 이유는 없는 스킬이네.’
재현은 이미 《헬의 가호》의 효과로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는 상태였다. 그로서는 베낄 이유가 없는 스킬인 셈이다.
하지만. 《사고 가속》은 다르다.
‘《사고 가속》은 누가 뭐라 해도 강력한 고유 스킬이다. 베낄까?’
진심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조금 전, 페스티벌에서 봤던 것처럼 위력은 두말할 것도 없는 스킬이다.
잠시 고민하던 재현은 고개를 저었다.
‘좀 더 고민해도 늦지 않아.’
합당한 결론이었다.
재현으로서는 당장 그녀의 스킬을 급하게 복사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종속의 효과 덕분에 언제든 그녀를 불러낼 방법이 있다.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재현은 생각을 마친 뒤, 무너져 내리는 던전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브륀은 돌연, 짓고 있던 웃음을 완전히 지우며 재현에게 다가왔다.
브륀이 작게 속삭였다.
“대적자의 운명을 타고난 아이여. 그럼 다시 뵙길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무, 뭐?”
재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대체 브륀이 ‘대적자’라는 말을 어떻게 아는 거지?
재현은 뭔가 더 묻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다시금 빛이 어린다.
두 눈동자에, 팔과 다리에. 스며든 빛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시야에 담긴 불타는 놀이공원 네버랜드와 쓰러진 수르트의 티끌 잔해까지.
잠시 후, 두 사람은 빛에 먹혔다.
처음 던전에 갇혔을 때처럼. 아주 찬란한 빛이었다.
* * *
“더, 던전이 열린다! 모두 무기 들고 대기해!”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모두 집중해!”
테마 던전 밖의 레이더들은 일사불란하게 한 곳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네버랜드.
결코 공략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던전이 클리어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무기를 쥔 이들은 혹여나 있을 던전 브레이크를 대비하기 위한 것.
“의료팀은 어떻게 됐지?”
“모두 스무 명 대기하고 있습니다. 전부 저명한 교수 밑에서 배운 힐러들입니다.”
송지석의 말에 박경훈이 재빨리 원하는 답을 내놓았다.
그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던전의 부서지는 결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정말 해내다니…… 이게 꿈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박경훈이 맞장구를 쳤다.
잠시 후.
던전의 결계가 모두 해제되고, 얇고 푸른 막이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파편처럼 가늘게 깨어진 결계의 조각들이 빛에 닿아 산화되어 간다.
“저, 저기 생존자가 나옵니다!”
“모두 두 사람입니다!”
“두 발로 걷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둘 다 무사한 듯싶습니다!”
여러 목소리가 어지럽게 던전 밖을 울렸다.
박경훈과 송지석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나 그곳을 향해 뛰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 이 막돼먹은 던전을 박살 내고 멀쩡히 걸어 나오는 거지?
박경훈의 말이 맞다면 아마 민재현.
그가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오고 있을 터였다.
“당장 비켜! 생존자와 밟아야 하는 절차가 있으니!”
고참 레이더인 송지석의 말에 다른 이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박경훈 역시 앞의 사람들을 밀치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 그들의 시야에 두 사람의 얼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민재현과 서아현.
두 사람은 군데군데 얕은 상처가 있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아주 멀쩡한 상태였다.
“이럴 수가…….”
송지석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작게 읊조렸다.
정말 해냈다.
저 어린 두 사람이 현직 레이더도 클리어를 장담할 수 없는 테마던전을 클리어하다니.
“준비해! 바로 접촉한다.”
“앗! 알겠습니다!”
박경훈에게 지시한 뒤 빠르게 재현을 향해 뛰었다.
옆에 있는 서아현 역시 잡아야 하지만, 재현 쪽이 더 시급하다.
게다가 재현은 수많은 인파가 부담스러운지 자리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
“잡아! 자리를 피한다!”
“앗! 예!”
그렇게 추격전 아닌 추격전이 시작되고.
잠시 후.
헐떡거리는 송지석과 박경훈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뭐, 뭐가 이렇게 빨라?!”
“저…… 선배님. 민재현 군이 사라졌습니다!”
박경훈이 말하지 않아도 그 역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앞에 있던 재현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무래도 암살계열 스킬을 사용해 모습을 감춘 듯합니다.”
“《은신》인가? 하지만 고작 생도 신분으로 어떻게 그런 고급 스킬을!”
《은신》은 현직 레이더라 해도 얻기 어려운 스킬이었다.
당연하지만 활용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은신》 스킬이 붙은 아이템은 무려 10억을 훌쩍 넘어간다.
그런데.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생도인 재현이 그런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혹시 암살자 계열의 스킬을 익힌 레이더가 아닐까요?”
확실히 그렇다면 돈을 들여 장비를 구하지 않고도 《은신》을 사용할 수 있다.
무투계 중에서도 암살계열에 속하는 레이더는 《은신》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연화의 매니저로, A급 레이더인 박성재 정도.
허나, 송지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닐 거다. 전에 네가 말했지. 고블린 30마리를 홀로 처치한 놈이라고.”
“그랬었죠. 거기다 마법계였고.”
박경훈이 생각이 났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송지석이 이었다.
“그렇다면 민재현은 절대 암살계열이 아니다. 암살계열은 무투계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케이스.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면 그 아인 대체 뭘까요? 전위에서 전투를 한다고 들었는데…….”
박경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송지석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박경훈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재현이 사라진 곳을 잠시 바라보았다.
“배틀메이지.”
“네?”
“그 녀석, 배틀메이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