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77
76화 제1회 작명 대회(1)
처음 세계가 게임처럼 변하고 각성자들이 등장했을 때.
가장 먼저 레이더들의 입에서 전해지던 전설적인 클래스.
배틀메이지(Battle Mage).
마법사임에도 근접 전투 마법을 익혀 전위에서 적을 상대하며. 다양한 CC기로 적을 마비시키고,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지워나가는 직업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
당연한 일이었다.
레이더에게 스탯은 매우 귀중한 것이었으며, 레벨은 높아질수록 올리기 어려워졌으니까.
배틀메이지란 이들에게 망캐 취급을 받았다.
근력과 마법을 동시에 올리는 미친 짓은 레이더에게 쉽게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하면 한쪽으로 더 성장해 높은 경지를 볼 수 있지만, 두 쪽 다 스탯을 배분하기 시작하면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이곳은 던전과 필드. 그리고 마수가 창궐한 디스토피아.
이런 판국에 자신을 약화시킬 만한 선택을 할 이유는 없었다.
따라서 배틀메이지는 환상이 되었다.
이론적으로는 무투계와 마법계를 모두 아우르며 압도적인 강함을 뽐낼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배분할 수 있는 스탯이 넘쳐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
허나, 재현이 등장하면서. 그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그렇다는 건 민재현 군이 배틀메이지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은신》 스킬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고블린 30마리를 가볍게 처치한 것도 모자라, 이번엔 테마 던전을 클리어했다. 가능성은 있어.”
송지석의 말에 박경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민재현. 비밀이 많은 녀석이군.’
송지석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한 채, 조금 전 재현의 얼굴을 떠올렸다.
민재현. 그는 이 이름을 앞으로 자주 듣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던전 클리어 후. 재현은 재빨리 네버랜드의 입구를 벗어났다.
《은신》을 사용해 모습을 감춘 뒤, 《윈드 부스트》를 발동해 멀리 도망쳐 온 것이다.
‘뒤에 추적 마법이라도 걸리면 곤란하니까.’
―티알피의 천둥 걸음의 효과로 《윈드 부스트》의 효율이 급상승합니다!
재현은 떠오르는 시스템창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티알피의 천둥 걸음》 덕분에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는 않았다.
‘역시 S급 아이템답다.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달리는 속도가 거의 네 배 이상 뛰었어. 조금 더 적응한다면 열 배. 아니, 스무 배 이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단순히 아이템을 장착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기초 스팩의 상승을 노릴 수 있다니.
S급 아티팩트 하나가 수천억을 가볍게 호가하는 이유가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사람이 그렇게나 많을 줄이야. 하긴, 던전 브레이크 때랑 비슷하지.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에서 테마 던전이 생성되었으니 기자들도 잔뜩 달려들었을 테고.
뭐, 또 레이더 관리본부만 수습한다고 개고생 하겠구만.’
재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레이더 관리본부.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바로 던전의 발생을 미연에 감지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 유동인구가 많은 놀이공원에서. 밖으로 빠져나올 수도 없는 테마 던전이 생성되었으니….
아마 관할 본부는 거의 뒤집히다시피 했을 것이다.
“국민의 성화를 진정시키는 것도 협회의 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불합리한 구석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국민은 예기치 못한 던전의 발생을 모두 협회의 책임으로 돌렸다.
가장 만만하기도 하고, 근본적으로 던전의 발생 원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국가 교육 과정에 《마수학》이라는 기초 과정이 생기며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아직 많은 이들이 마수의 출몰을 국가의 과실로 돌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몬스터를 사냥하는 레이더는 찬양을 받고 있고.
“뭐, 나한테 중요한 건 아니지.”
어차피 재현의 목표는 명예 따위가 아니다.
“더 성장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어. 나는 약하다.”
물론. 같은 아카데미의 생도들이 듣는다면 기겁할만한 말이다.
하지만 재현은 진심으로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수르트의 티끌.
고작 티끌과 상대하며, 재현은 확실하게 밀렸다. 아니 패배했다.
그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제 두뇌와 서아현의 도움 덕분.
‘얕은수를 쓰지 않고도 그 정도는 가볍게 처치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상대를 찍어누르고, 감히 손댈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다행히 재현은 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
헬을 비롯한 반 에시르 세력의 능력.
그것들을 모두 전해 받고 찬찬히 성장해 나간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재현은 심호흡한 뒤, 다시금 다짐했다.
“《티알피의 천둥 걸음》은 시작일 뿐이다. 더 강해져야 해.”
어머니와 김유정.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약했던 자신을 청산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재현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었다.
* * *
“그래서. 모의 던전 당시 사건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런 말씀입니까?”
“네. 사건 청취 때문에 저를 부르신 건 이해하지만. 저도 아직 충격이 커서요.”
테마 던전 사건이 마무리된 직후.
재현은 김지연 교관의 호출로 그녀의 연구실에 방문했다.
그녀는 모의 던전 사건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위해 재현을 호출했다고 했다.
질문의 내용은 단순했다.
모의 던전 사건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지만 모두 순순히 대답해줄 수는 없었다.
아직 김지연 교관이 구자인의 파벌인지 아닌지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지금은 모른 체하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낫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더 묻는 건 무리겠어.’
결국. 김지연 교관은 석연찮은 구석이 있음에도 더 물을 수 없었다.
자신이 직접 모의 던전 안에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 그의 말에 토를 달 수는 없다.
던전 내부에서 벌어진 일은 결국 공략대만이 알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혹시나 뭔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연락해주세요.”
김지연은 순순히 물러났다. 재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수업 때 뵙겠습니다.”
재현은 인사를 건넨 뒤, 김지연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잠시 후.
호텔로 돌아온 재현을 반겨준 것은, 던전 모드를 해제한 스마트폰의 알람이었다. 수신한 문자가 무려 수십 통에 다다르고, 부재중 전화 역시 열 통은 넘는다.
발신인은 다양했다.
김유정과 어머니인 이선화. 그리고 의외로 서이나와 안호연까지.
‘……인싸의 삶이란.’
재현은 피식 웃고는 스마트폰을 내버려 둔 채 컴퓨터를 켰다.
얼마 전에 나이트 셰이드의 사체를 올려 두었었는데, 슬슬 팔릴 즈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등록하신 물품의 판매가 완료되었습니다.]“……파, 팔렸다!”
[경매 현황]물품
1. 나이트 셰이드의 사체 – 1억 7천만 원.
2. 나이트 셰이드의 코어 – 3억 1,500만 원.
3. 레이스의 낫×31 – 310만 원
4. 드라우그의 검×17 – 170만 원
“역시 레이더가 위험하긴 해도 돈은 잘 벌린단 말이야.”
무려 4억 8천만 원의 수입.
이 정도라면 서울에서 작은 전셋집 정도는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금액이다.
‘C급 던전 한 번에 이렇게 큰돈을 벌 수 있다니….’
물론 이는 재현이 홀로 던전을 공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은 여섯에서 열 두 명의 인원이 던전 공략에 나서는 편. 이로인해 수익도 N분의 일이 되면서 낮아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재현은 기본적으로 솔로 플레이를 지향한다.
타인에게 자신의 스킬을 보일 수도 없는 데다, 빠른 성장을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뭐, 파티를 맺으려 해도 아직 생도 신분인 그를 받아주는 곳이 있을 리 없지만.
“블랙 마켓 때문에 수수료를 30퍼센트나 떼이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수입 자체는 나쁘지 않아. 다른 사람 눈도 피할 수 있고.”
블랙 마켓은 판매자의 신원을 보장하는 대신 수입의 30퍼센트를 중계 수수료로 가져간다. 이는 본사를 스위스에 두고, 그 은행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
국가에서 블랙 마켓을 추적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국가라고 해도 해외에 있는 은행까지 일일이 수색하는 건 월권.
뭐, 내가 더러운 돈을 세탁하려고 계좌를 빌려서 장난을 친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이재상 역시 자신의 포션을 블랙 마켓에서 판매했었다.
물론 수익은 개미 눈물만큼도 나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너무 크지 않은 돈은 엄마한테 보내드리고 남은 건 투자에 써야겠네.”
재현은 당장 돈이 급하지는 않았다.
이미 연화 길드의 주식을 2퍼센트나 받은 데다, 계약을 갱신하며 매월 천만원이 넘는 급여를 일하지 않고도 지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니까.
아무래도 연화 측은 그를 다른 곳에 빼앗길 바엔, 차라리 매월 천만원의 돈을 지급하며 그를 묶어두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판단한 듯 했다.
물론 재현이 돈만 받고 쉴 성정은 결코 아니긴 하지만.
재현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번 테마 던전에서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던전. 플랜디어의 저택.
그곳 4층에서 재현은 민성오의 환영을 보았다.
아버지. 민성오는 대체 얼마나 강할까?
지금 당장 맞붙는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
‘……아니. 아직 한참 멀었어.’
현재 재현의 랭크는 B급에서도 상위권.
밀레스 아카데미의 신입 생도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성취다.
하지만 A급, 나아가 S급 레이더의 경지에는 발끝도 못 미치는 게 현실.
아무리 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 해도 세간의 강자들에게는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성취가 없었던 건 아니야. 나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진심으로 재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7년 동안 D급 무투계 레이더로서 전위에서 구르며,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지.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
허나, 그때는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다.
어차피 레이더의 성장은 스물이 되면 멈추어 버리니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합리화를 하고, 주저 앉아 하루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이제 불분명했던 안개가 걷히고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레이더로서 성장하는 것.
그것은 단지 레벨을 올리고, 더 좋은 장비를 착용하는 것이 아니다.
물러서지 않고 맞서는 것.
그게 레이더의 본질이다.
재현은 이번 테마 던전에서 이를 여실히 깨달았다.
재현은 싱긋 웃은 뒤, 다시 컴퓨터 화면에 집중했다.
“그럼.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지.”
잠시 후. 재현이 모니터에 띄운 창은 주식 관련 사이트였다.
“슬슬 시작해볼까?”
재현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회귀자의 특권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큰돈이 있다면, 자고로 굴려야 더 커지는 법이다.
재현은 곧바로 《갓템 샵》이라는 회사의 주식을 가진 돈 다 털어 매수했다.
지금은 저런 촌스러운 이름을 달고 있는 다 망해 가는 회사지만, 이후 대한민국에서 아이템 거래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회사인 《플렉스》로 성장하게 된다.
물론 현재는 끔찍한 불황을 겪고 있으나, 언젠가 성장하리라는 것만은 명백한 진실이다.
과거. TV에서 매일 그의 성공신화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들었으니까.
‘뭐, 그런 거 많잖아. 빈 골방에서부터 시작해 사업 몇 개를 말아먹고 다시 성공한, 그런 진부한 이야기. 이 사람이 딱 그 케이스지.’
플랙스의 대표 이문환은 그런 전형적인 패턴의 사람이었다.
‘후에 반드시 그 아이템만은 손에 넣어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에 《티알피의 천둥 걸음》을 얻으며 확실히 깨달았다.
S급 아이템 하나하나는 국가 전체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의 성능을 지니고 있다.
레이더의 강함을 배로 증가시켜 줄 수 있는 마스터피스 중 하나.
그게 바로 S급 아이템이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 재현이 얻어야 할 아이템이 경매로 등장한다.
또한 그 경매로 인해 몸집을 불리고 나아가기 시작하는 게 《플랙스》.
‘S급 아이템을 돈으로 구매할 수 있다면 무조건 사는 게 맞다.
…물론 돈이 있다면 말이지만.’
실제로 재현은 테마 던전을 클리어한 끝에, 겨우 S급 아이템을 손에 넣었다.
한데, 돈으로 그 정도 수위급 아이템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가 됐든 투자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게 이번 주식의 매수다.
후에 있을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갓템 샵》, 즉 플랙스의 주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후…… 그럼 사건은 일단락된 것 같고. 이젠 좀 쉴까.”
그렇지 않아도 던전 공략으로 몸이 너덜너덜해진 참이다.
지금 좀 쉬어 두어야 내일 수업도 제대로 들을 수 있을 테고.
기껏 해 봐야 이론이지만 부족한 수면이라도 보충해 두는게 좋을 것이다.
그렇게 재현이 씻고 나와 침대에 누우려던 바로 그 순간.
쾅! 쾅! 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재현은 괜스레 플랜디어 저택의 알프레드가 떠올라 잠시 움찔했지만, 곧 문을 열기 위해 현관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예상치 못한 인물이 재현의 눈에 들어왔다.
김유정, 서이나.
문앞의 김유정은 가늘게 눈을 뜬 채, 재현을 노려보았다.
곧 그녀가 재현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 너 이 개새…… 대체 어딜 싸돌아다닌 거야!? 아주머니한테 연락 안 된다고 전화 와서 내가 얼마나 둘러댔는지 알아?
그리고 너! 이나랑 그날 무슨 일 있었어? 이 착한 애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알았으니까. 제발 하나만 하지?”
재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그렇게 말했다.
아마 오늘도 편히 쉬긴 그른 것 같다.
그런 생각에 벌써부터 정신이 지쳐 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