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a Mobile From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57
165화.
강아지가 로봇의 카메라 위에 매달려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낑. 낑.
로봇은 머리를 움직이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저 몬스터는 셰인을 인형으로 생각하는 것일까요?]“상황으로 봐서는 그런 것 같은데……”
쇼파에 기대어 있는 인형은 얼마나 치댔는지, 헝겊이 반들거렸다.
경훈이 쇼파로 다가가 인형을 살펴보았다.
인형에 달린 라벨에는 ‘made in Korea’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 만든 인형이네.”
[설마, 셰인 제작 기념 인형일까요?]이브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때와 달리, 셰인은 강아지를 상대하느라,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못 했다.
경훈은 로봇과 놀고 있는 강아지를 보며 턱을 긁적였다.
“이걸 어쩐다.”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저 동물은 평범한 강아지가 아니었다.
날개가 튀어나오고, 거대하게 변하기도 하는 몬스터였다.
경훈은 로젤리아가 길들인 몬스터 외에는 인간을 적대하지 않은 몬스터를 본적이 없었다.
지금은 로봇과 친해 보였지만, 언제 본성을 드러낼지 알 수 없었다.
멍. 멍.
경훈이 눈살을 찌푸리자, 결국 카메라 위에 올라탄 강아지가 경훈을 향해 짖었다.
“거기다, 인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이브의 말에 경훈은 혀를 찼다.
이브가 계속 말을 이었다.
[좀 두고 보시는 게 어떨까요. 셰인과 친한 것을 보니 잘하면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평상시하고는 다른 조언인데?”
[음…. 주인님의 말씀처럼 감이 더 맞을 때도 있습니다. 느낌이 좋습니다.]느낌이 좋은 게 아니라, 귀엽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지만, 경훈도 그녀의 의견에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경훈은 탁자에 놓인 사진을 주워들었다. 색이 바랜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사진 안에는 젊은 부부와 4, 5살 정도의 어린아이, 그리고 아이가 껴안고 있는 강아지가 찍혀 있었다.
바로 이 거실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지금과 달리, 책장에는 책이 꽃혀 있었고, 생활용품들도 곳곳에 보였다.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옷도 낡아 있고, 남자의 수염도 거칠군요. 식량 사정도 안 좋았던 모양입니다.]부부는 모두 무척이나 말라 있었다.
뒤쪽에 보이는 창밖의 모습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도시가 이렇게 변한 뒤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강아지는 지금 로봇과 놀고 있는 강아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 사진을 찍고 바로 돌연변이 괴물로 변한 걸까? 아니면 저 모습도 변신한 모습 중의 하나인가?”
아쉽게도 사진 하나만 가지고는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었다.
멍.
경훈이 사진을 보자, 강아지는 다시 짖었다. 그리고, 셰인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하는 것 같은데….”
경훈이 황당한 얼굴으로 셰인을 바라보았다.
“설마, 강아지의 말을 알아듣는 겁니까?”
“아니, 알아듣는 건 아닌데. 그런 느낌이 들어.”
셰인도 따로 표현할 방법이 없는 모양이었다.
뭐, 주인을 놀리는 AI도 있고, 변신하는 강아지도 있는 세상인데, 강아지와 소통하는 로봇이 있다 한들 뭐가 문제랴.
경훈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탁자에 사진을 내려놓았다.
강아지가 만족한 얼굴로 카메라에 머리를 기댔다. 셰인의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전 집안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머리 위에 올라간 강아지가 이제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셰인은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에 손을 까닥였다.
경훈은 조각상이 되어버린 셰인을 놔두고 집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른 방도 거실처럼 정리되어 있었다.
남겨 놓은 것들도 있었지만, 중요한 물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 방에도 텅 비어 있었고, 부부 침실도 침대와 가구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서재도 마찬가지였다.
서재도 텅 비어 있었다. 단지 책상 위에 종이 두 장만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짐을 싸서 떠난 듯하군요.
경훈이 책상에 놓인 종이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케치북을 찢은 것 같은 종이에는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과 글이 적혀 있었다.
삐뚤빼뚤 그려진 강아지와 아이 사이에 하트가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영어로 쓰여진 글이 남아 있었다.
[이따가 올께. 기달려. 사랑해.]-거실에서 본 사진의 아이일까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경훈도 사진에서 본 아이가 바로 떠올랐다.
경훈은 다른 종이를 집어 올렸다. 손으로 쓴 것이 아니라 인쇄된 공문이었다.
*
[L.A City 철수에 관한 안내문]1. 함정에는 인간밖에는 탑승할 수 없다.
2. 일 인당 규정 무게 이상은 지참할 수 없다.
3. 탑승 시 오염 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불응 시 탑승이 거부된다.
….
* 탑승 시간은 무조건 지켜야 합니다. 본 함대는 미합중국의 마지막 유산입니다. 시간을 지체하거나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자는 탑승이 거부되는 것을 물론, 즉결 처형도 가능합니다.
미국 City 연합 함대.
*
– 미 해군이 남아 있었던 걸까요?
“글쎄? 어쨌거나 이름은 전과 달라져 있네.”
몇 척이나, 얼마나 남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미국은 다른 나라와 달랐다.
그 당시에도 바다에 괴물이 있었을 텐데, 미국은 함대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남아 있을까요?
“알아봐야지.”
그보다, 이 공문으로 시티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도 모두 죽은 게 아니라 다행이야.”
어디로 갔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적어도 희망은 남아 있었다.
-애완동물들이 왜 시티에 가득한지도 알 것 같습니다.
시티에 살던 사람들은 애완동물들을 버려두고 배에 올라탄 것이다.
하지만, 경훈은 눈썹을 찡그렸다.
“그런데 괴물 숫자가 너무 많지 않아? 설마 남겨 놓은 펫들이 모두 괴물로 변한 걸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숫자가 많아졌는데?”
아직도 의문이 많이 남아 있었다.
경훈은 수색하는 김에 건물의 다른 층들도 확인해보았다.
건물 안은 깨끗했다.
지하 식량 창고와 몇몇 냉장고가 털렸었지만, 모두 강아지가 뜯어 먹은 흔적만 남아 있었다.
다른 괴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그 강아지가 이 건물의 주인이었던 걸까?”
-첫 건물은 고양이 변형 몬스터, 두 번째 건물은 햄스터 변형 몬스터들이 장악한 것으로 보아, 이 건물은 베일리가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귀여운 강아지 모습을 생각하면, 영 어울리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 이유밖에 없었다.
“그럼, 이곳에 공간 좌표를 만들어야겠어.”
이브도 경훈의 말에 동의했다.
경훈과 이브가 좌표를 만들기 위해 서울에 다녀오는 동안, 셰인은 거실에 서서 강아지의 받침대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셰인의 머리 위에 누운 베일리는 정말 오랜만에 다시 꿈을 꾸었다.
*
털썩.
로봇 인형이 쇼파에 던져졌다.
“싫어! 안 갈래!”
아이가 강아지를 안고 엄마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안타까운 얼굴로 아이를 구슬렸다.
“가야 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우리 아기는 착한 아이잖아.”
“베일리는 안가잖아! 그럼 나도 안 가!”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강아지를 꼭 껴안았다. 상황을 모르는 강아지는 아이의 볼을 핥았다.
“다른 집고양이하고 강아지들이 아픈 거 봤지? 사람들도 아파질까 봐 데려갈 수 없어요.”
엄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베일리는 걱정 안 해도 돼요, 열 밤만 자면 돌아올 거야.”
“정말이야?”
엄마는 차마 대답 못 하고 고개를 돌렸다. 대신 남편이 거실로 들어오며 대답했다.
“그래. 열 밤만 자면 돌아올 거야. 먹을 것도 가득 남겨 놓았고, 심심하지 말라고 로봇도 남겨 놓기로 했잖니. 그럼, 편지도 남겨 놓을래?”
“사진도! 베일리하고 나하고 한 장씩!”
아이는 강아지를 내려놓고, 탁자로 달려갔다. 그녀는 사진 두 장을 들고 와 강아지에게 보여주었다.
얼마 전에 찍은 사진들이었다. 아직 짐을 정리하기 전에 찍은 사진들. 아이는 사진 한 장을 강아지 앞에 놓고 한 장은 주머니 속에 집어 넣었다.
“금방갔다가 올께. 기다려.”
멍!
아이의 말에 강아지가 기쁘게 짖었고, 아이 부모는 그 모습을 슬픈 얼굴로 바라보았다.
부모 뒤쪽으로 보이는 먼 항구에는 배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상선과 여객선과 구축함과 항공모함까지. 이리저리 부서진 흔적이 많은 배였지만, 강아지에게는 무척이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
시간이 지났다.
경훈은 서울을 다녀왔고, 셰인은 강아지를 쇼파에 내려놓고, 옆을 계속 지켰다.
“흠, 이제 앞으로 진로가 문제네요.”
“창에 쓰인 마나석을 찾던가, 떠난 사람들을 쫓아가야 하는지 정해야 하는 건가?”
“둘 다 막막해요. 몬스터마다 확인하기도 어렵고,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고.”
“흠. 결국, 차근차근 수색해 봐야 하는 건가.”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강아지는 잠에서 깼다.
멍.
베일리는 눈을 껌벅이며 자신이 깬 것을 알려주었다.
[흠. 흠. 강아지가 깼습니다.]다른 목소리도 들려왔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강아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베일리는 로봇의 무릎에서 뛰어내렸다.
친구와 낯선 인간. 그리고 목소리만 들리는 인간이 거실 안에 모여 있었다.
베일리는 기뻤다.
주인이 오지 않았지만, 대신 친구가 찾아왔다.
오랜 시간 기다려왔다. 이제 주인이 친구를 보냈으니, 이제 주인을 찾아갈 때였다.
멍!
강아지는 다다다 문으로 달려나가 로봇을 향해 짖었다.
“따라오라는데?”
셰인의 말에 경훈이 실눈을 뜨고 로봇을 바라보았다.
로봇은 카메라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행이 뒤따르자, 강아지는 복도를 내달렸다. 그리고, 열린 엘리베이터 문으로 뛰어들었다.
놀란 셰인과 경훈이 달려왔지만, 베일리는 위를 보며 짖을 뿐이었다.
멍! 멍!
베일리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어깨에서 돋아난 날개가 한가롭게 퍼덕거렸다.
경훈과 셰인도 엘리베이터 통로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벽을 박차고, 로봇은 팔에 달린 로프를 이용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1층에 도착한 일행은 강아지를 따라 거리로 나섰다.
강아지는 시티의 반대편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거리는 아직도 조용했다. 이제는 언뜻언뜻 보이는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커다란 쇼핑센터로 보이는 건물 앞에 도착하니, 엄청난 살기가 일행을 맞이했다.
경훈의 눈에는 건물 위로 마나가 꿈뜰 거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으르르릉.
베일리도 건물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적어도 대장급.”
뿜어져 나오는 마나를 보니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설마, 이 건물 안에 있는 괴물을 처리해 달라고 부른 거냐?”
경훈이 강아지를 보며 물어보았지만, 강아지는 건물을 보며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경훈이 셰인을 바라보았다. 셰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말을 한다고 알아들을 리가 없잖아.”
아무래도 쌍방 통행은 안되는 모양이었다.
경훈은 난감했다. 만나는 괴물마다 다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적어도 이유를 알아야 작전을 짤 텐데.
강아지는 건물을 보고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경훈의 귀에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치칙. 칙. 뉴욕 city 방송입니다. 생존자들은 뉴욕 city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작게 이어지는 방송은 쇼핑센터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멍.
강아지는 방송을 듣고 꼬리를 흔들었다.
*
[..뉴욕 city 방송입니다.]뚝.
크지 않은 손가락이 스위치를 내리자 음성이 멈추었다.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낡은 라디오 무전기와 연결된 카세트에서 테이프를 꺼냈다.
테이프도 낡아서 언제 끊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테이프를 책상 서랍에 넣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뉴욕 앞바다는 언제나 그대로였다.
멀리, 기울어진 여신상이 반쯤 바다에 잠겨있었고, 그녀를 이곳까지 데려온 항공모함과 다른 배들이 항구에 가라앉아 있었다.
소녀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해를 보고 시간을 가늠했다.
“사냥할 시간이네.”
그녀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녀는 마지막으로 책상 위에 놓인 사진을 쓰다듬고는 밖으로 나갔다.
사진 속에 있는 젊은 부부와 어린 아기.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가 방을 나서는 소녀를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