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a Mobile From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62
270화.
부르르릉.
경훈과 여성 각성자가 탄 차가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도로는 예상외로 한산했다. 그러고 보니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경훈의 표정을 보고 각성자가 입을 열었다.
“알고 있겠지만, 괴물들 때문에 기름값이 많이 올랐어요. 나 같은 각성자들이야 벌 곳이 많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살기가 만만찮죠.”
여성의 말에 경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2005년이면 대격변 전이었던가…….”
“무슨 말이에요?”
“아닙니다. 그보다 제가 뭐라 부르면 됩니까?”
“마리아예요.”
경훈이 운전하는 여성을 다시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외국인 같지는 않았다.
“한국인이에요. 원래 이름은 따로 있는데 뭐 다들 마리아로 부르고 있어요.”
마리아가 경훈을 힐끗 바라보았다. 경훈의 이름을 알려달라는 것 같았다.
“경훈입니다.”
어차피 밝혀도 상관이 없는 곳이었다.
“그럼 경훈씨.”
마리아가 운전하면서 경훈에게 한손을 내밀었다.
“그 가슴에 달린 신분증은 주세요.”
“아.”
경훈이 가운 앞에 매단 신분증을 건네주었다.
그녀가 신분증을 확인했다.
“설마……. 죽인 것은 아니겠죠?”
“기절만 시켰습니다.”
“휴, 다행이네요. 사람이 죽었으면 수습이고 뭐고 불가능했을 거예요. 저도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지도….”
마리아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신분증을 집어넣었다.
이제 슬슬 물어볼 때가 된 것 같았다. 경훈이 입을 열었다.
“왜 절 빼내 주신 거죠?”
그녀가 힐끗 경훈을 바라보았다.
“근데, 뭐 하는 곳인 줄은 알고 있어요?”
마리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제가 전투 각성자는 아니더라도 다른 각성자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건 꽤나 잘 봐요.”
마리아가 손가락으로 경훈을 가리켰다.
“그런데, 당신은 어느 정도 실력인지 지금도 파악이 안 돼요.”
“거기다, 마나로 사람의 인지를 약화하는 각성자면 도대체 어느 정도 등급의 각성자여야 할까요?”
역시, 마나를 이용한 인지 감소 기술은 제대로된 각성자에게는 역효과였다.
마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한바탕하려고 했죠?”
“….”
경훈은 침묵으로 대답을 했다.
“역시……. 엄청 무서운 표정이었다니까요.”
아무래도 경훈의 표정은 특정 사람들에게 파악이 잘되는 모양이었다.
“그때, 도운 건 가늠도 안 되는 각성자를 막아서다가 죽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뭐, 회사에 매여있지만, 솔직히 회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요. 그런 회사를 위해 목숨을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니까요.”
한바탕 투덜거리던 그녀는 경훈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자기가 어디에 잠입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니……. 왜 거기 들어갔는지 물어보면 대답해 줄 수 있나요?”
경훈은 고개를 저었다.
대군주의 폭주에 휘말려, 차원과 시간 이동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마리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로 중요한 질문이 아닌 모양이었다.
경훈으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대답이었지만, 그 부분은 넘어가기로 했다.
경훈이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은 왜 돕는 겁니까?”
그런 이유라면 건물 밖으로 내보내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차로 안내할 이유가 없었다.
여성이 경훈을 돌아보았다.
“얼굴에 난 상처가 안쓰러워서?”
그녀의 말에 경훈이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오른쪽 눈 아래에 화상 흔적이 남아 있었다. 손과 팔에도 상처가 보였다.
아쉽게도 포션을 너무 늦게 마신 모양이었다. 치료는 되었지만, 상처가 남아버렸다.
“설마, 얼굴에 난 상처도 몰랐다는 건 아니겠죠?”
화상을 살피는 경훈의 모습에 마리아는 질겁한 표정이 되었다.
‘고등급 각성자들은 미치광이가 많다던데. 설마 기억 상실증 각성자인가?’
경훈이 고개를 저었다. 이정도 남아 있을 줄은 몰랐지만, 상처가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 뭐……. 그 이유가 아니라면 이상하게 가깝게 느껴져서일까요?”
마리아는 말을 하다가 피식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훈은 웃지 않았다. 그도 그녀와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날, 도플갱어를 보았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를 보면 푸근하고 안락했다. 분명 도플갱어 말고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오랜 시간 보아왔던 사람 같았다.
마리아가 고개를 저어 쓸데없는 생각을 날려버렸다.
“뭐, 어쨌거나 각성자 센터까지만 안내하면 끝이에요. 난 돌아가서 뒤처리해야 해요.”
각성자 센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과거, 며칠에 걸쳐 고생하며 갔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였다.
마리아가 4층 건물 앞에 차를 댔다.
경훈이 차에서 내리자, 마리아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부탁하면 한 번쯤 도와줘요.”
역시, 그냥 도와준 것은 아니었다.
“그러죠.”
경훈도 기꺼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 밖으로 빼내 준 것보다 각성자 센터까지 오면서 들은 정보가 경훈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다행히 이 세상은 그가 알고 있었던 세상과 다르지 않았다.
부우우웅.
차가 떠나갔고, 경훈은 한참 떠나가는 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4층 건물을 바라보았다.
[각성자 센터 서울 지부]대로에 굴러다녔던 표지판이 건물 앞에 제대로 서 있었다.
건물도 당연히 멀쩡했다. 건물을 감쌌던 넝쿨도 보이지 않았다.
경훈은 로비로 들어갔다.
오래전 보았던 황량했던 로비 양쪽의 민원실은 지금 무척이나 번잡했다.
“반응이 없습니다. 각성자가 아닙니다.”
“한 번만 더 하게 해주쇼. 분명 각성했었다니까?”
“안됩니다. 돌아가세요.”
“이게 답니까? 보상금이 너무 적은데?”
“세금을 빼고 제대로 드렸습니다.”
“세금 때문이라고? 맙소사, 거의 반을 빼갔잖아? 도대체 나라가 해준 게 뭔데!”
“아니, 양수리에 나온 괴물은 언제 처리해줄 겁니까! 통제가 벌써 몇 주째입니까? 농사 망친 건 둘째치고 집에 돌아가게 해줘야 하잖습니까!”
“일이 너무 밀려 있어요. 급하시면 길드 쪽에 직접 말해보세요.”
“아니, 그 치들에게 줄 돈이 있으면 여기 올리가 없잖습니까. 제발 좀 부탁합니다.”
양쪽 민원실에서 쏟아져나오는 소리가 그의 귀를 울렸다.
“그럼 어디에 물어봐야 하나….”
다행히 로비 안쪽에 안내 데스크가 있었다.
지루해 보이는 안내원이 경훈을 맞이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각성자를 찾고 싶은데요.”
“파티 매칭 때문인가요? 각성자를 찾으시려면 오른쪽 민원실 [각성자 민원]쪽 창구로 가보세요. 각성자 카드는 가지고 오셨죠?”
“각성자 카드요?”
“각성자 카드가 없으면 확인이 안 됩니다만….”
각성자 정보는 각성자만 확인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설마, 각성자도 아니면서 각성자를 찾으려고 했던 건가요?”
안내원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경훈을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각성자가 문제가 아니었다.
경훈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가지고 있던 신분증도 쓸모없었고, 서류를 위조해줄 진샤웨이도, 이브도 없었다.
“[각성자 검사]는 왼쪽 민원실이었죠?”
하지만, 다행히 조금 전 마리아에게서 좋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경훈을 바라보는 안내원을 뒤로하고, 경훈은 각성자 검사를 하는 곳으로 향했다.
민원실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연구소와 다르게 무장을 한 경찰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각성자 검사] 창구 앞은 길게 줄이 이어져 있었다.아직, 휴대폰으로 검사하는 기술은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반응이 없습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각성자가 아닙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푸르게 빛나는 마나석에 차례로 손을 올렸고, 마나석 뒤에 앉아 있는 공무원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결과를 불러주었다.
경훈이 한쪽에 비치된 서류를 작성하면서 들어보니, 줄 선 사람 대부분이 각성자 인정을 받지 못했다.
본인이 각성자라고 생각했으니 찾아온 것일 테지만, 전부 상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 축하합니다. 각성자 확인이 되었습니다.”
중간에 마나석의 색을 바꾸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지만, 경훈이 검사할 때까지 두 명이 나왔을 뿐이었다.
“F급입니다. 옆 창구로 가서 등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설명은 각성자 등록 창구에서 해주실 겁니다.”
각성자를 상대할 때는 공무원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지만, 잠깐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경훈 차례가 되었다.
“다음 분. 서류 주세요.”
경훈이 서류를 건네주었고, 공무원은 서류를 보고 눈썹을 모았다.
“귀화 각성자 신청?”
공무원이 경훈을 노려보았다. 경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문제가 있나요?”
“….아뇨.”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여성이 고개를 저었다. 대신 그녀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철컥.
지루한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던 경찰들이 조종간을 움직였다. 안전에서 연발로.
그들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고 경훈을 노려보았다.
이해할 수 있는 조치였지만, 경훈은 씁쓸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각성자들이 나타난 이후, 다른 나라의 각성자들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세계 여러나라가 경쟁적으로 시행한 제도로, 경훈이 살던 세계에도 있었던 제도였다.
이쪽 세상의 한국도 다른 나라처럼 시행하고 있었지만, 형식적인 제도에 불과했다.
“각성자들이 한국에 귀화할 이유가 없죠. 차라리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게 훨씬 좋을걸요.”
경훈은 마리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각성자 센터로 오면서 그녀에게 들었던 많은 정보 중에 [귀화 각성자 신청]이 제일 유용했다.
마리아도 경훈의 질문에 그의 정체를 오해한 것 같았다.
어쨌거나 신분을 증명할 수 없는 경훈에게는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한국인이 한국으로 귀화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지만, 그냥 다른 차원으로 귀화한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귀화 신청을 하려면 일정 등급은 넘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겠죠? 단순 각성자라면 불법체류자로 당장 체포될 수 있습니다.”
총을 치켜든 경찰들을 보니, 체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체포할 것 같았다.
“알고 있습니다.”
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무원은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고, 민원실에 있는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경훈 쪽을 바라보았다.
서류를 확인한 공무원이 입을 열었다.
“마나석에 손을 올리고 마나를 주입하세요. 부여되는 마나에 따라 색이 바뀝니다. 두 단계만 넘으면 귀화가 인정될 거에요.”
경훈이 손을 올리자, 공무원도 눈을 반짝이며 마나석을 지켜보았고, 민원실에 있는 사람 모두가 마나석을 바라보았다.
마나량에 따라 색이 변하는 마나석으로 등급을 확인하다니.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나름 참신해 보였다.
경훈은 마나석에 손을 올리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전처럼 쉽게 뽑아 올릴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나는 그의 의지를 따라주었다.
경훈의 머리카락이 흔들렸고, 앞에 앉은 공무원은 경훈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수 있었다.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경훈을 바라보는 사이,
그는 마나석에 힘껏 마나를 불어넣었다.
아직 차원을 열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세상에 뛰어들 때, 차원의 틈에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었다.
쉽게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했다. 도움을 받으려면 자신이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거기다, 대격변이 얼마 남지 않은 세상이었다.
이브도 없고, 가지고 있는 세력도 없었다. 가치를 보여주려면 숨어 있을 수는 없었다.
뭔가 해보기 위해서도,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자신을 드러내야 했다.
화아아아악!
마나석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나석의 색이 마구 바뀌어 나갔다.
푸른색에서 흰색으로 그리고, 또 다른 색으로….
여러 차례 색이 변하던 마나석은 결국 분홍색이 되었다.
우우우우우웅.
민원실 전체에 분홍빛이 감돌았다.
분홍빛으로 물든 공무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맙소사. A……. A급입니다.”
“헉!”
“정말이야?”
“말도 안 돼!”
공무원의 말과 함께 곳곳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등급이었다.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경훈이 씩 웃었다.
“이정도면 문제없겠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