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up a black panther and became a duchess RAW novel - chapter 102
물론 흥분해서도 있겠지만, 에밀리나는 조금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얼마나 인정하기 싫었으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클라인 영애라고 했겠어.’
아무리 이성을 잃었어도, 본인이 조금이라도 윗사람으로 받아들였다면 중간에 말을 고치기라도 했을 거다.
이미 에밀리나와 키르젠의 결혼은 리오네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런 만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면 절대 저런 실수는 나오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헤더 영애는 말을 이어가면서도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 체이스 후작 부인이 중간에 말을 자르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모를 눈치였다.
그 증거로 헤더 영애는 이제야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곤 아연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귀부인과 영애들은 그게 더욱 불쾌한지 못마땅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헤더 영애가 다급한 심정으로 말을 주웠다.
“죄송합니다, 후작 부인. 공작부인께선…….”
“후우. 아직도 사태파악이 되질 않나 보군요. 사과할 사람은 내가 아니지 않나요?”
헤더 영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죽어도 에밀리나한테 사과하고 싶지 않다는 눈치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
하지만 몰려든 시선에 울며 겨자 먹기로 겨우겨우 사과를 뱉었다.
“송…… 구합니다, 공작 부인. 무례를 용서해주세요.”
흐음. 에밀리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서 헤더 영애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저 사과에 진정성이 느껴지진 않지만, 여기서 한 사람만 몰아세우기도 그림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를 용서하느냐고 묻느냐면, 그건 아니었다.
그냥, 남이 깔아준 판에서 헤더 영애를 몰아붙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도.
‘지금껏 당한 일이 있는데 너무 너그러운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지.’
에밀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헤더 영애에게 말했다.
“사과는 받도록 할게요. 앞으로는 주의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매번 이렇게 실수를 저지르면 헤더 영애의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어요.”
이미 절벽으로 떨어진 모양새지만.
에밀리나는 속으로 생각을 숨기고서 헤더 영애의 반응을 살폈다.
당연히 그녀는 분한 얼굴로 에밀리나를 쏘아보고 싶었지만, 입술을 깨물며 ‘주의할게요.’라고 순응했다.
에밀리나도 그 이상 헤더 영애를 자극하진 않았다.
사실 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처음 모임에 왔을 때면 몰라도, 일이 이 지경까지 된 이상 그녀는 이제 고립된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불편한 시선으로 헤더 영애의 주위에 앉은 귀부인과 영애들은 그녀에게서 거리를 두려는 것처럼 더 이상 시선조차 던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자니 모임이 파하기 전까진 저 상태로 의자에 붙박여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뭐, 그래도. 자업자득이려나.’
에밀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헤더 영애한테 관심을 완전히 꺼버렸다.
정확히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직된 분위기에 라젤라 백작 부인이 분위기를 풀고자 유연하게 대화를 이끌었던 탓이다.
체이스 후작 부인도 더는 별말 하지 않고서 그 흐름에 합류하였다.
주제는 뭐…… 동대륙 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그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했다.
동대륙에 대해 자세히 안다면 그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귀부인들이 있었고, 어떤 장신구가 유행인지 물어보는 영애들도 있었다.
대화가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에밀리나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드러내며 대화를 거는 이들이 많아졌다.
동대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빌미로 그녀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민감한 주제인 만큼 헤더 상단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들 암묵적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상단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당장 동대륙 사업을 주도하고 독점하고 있는 건 헤더 상단일 텐데, 헤더 영애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 것이다.
말을 거는 이조차 없으니 헤더 영애는 어깨를 움츠리고서 멍하니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었다.
에밀리나는 ‘중앙 귀족에게 찍히면 저렇게 되는 건가.’라고 실없는 생각을 이어갔다.
그리고 저들의 속내를 한번 가늠해보았다.
태도를 싹 바꾼 이유에 대해서 에밀리나를 무시한 일도 있겠지만, 조만간 동대륙 사업의 주도권이 디트리오 공작가로 바뀌겠구나 하는 계산적인 속내도 깔려있을 터였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에밀리나는 이 모임이 파하는 대로 동대륙 사업을 다시 알아볼 생각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에밀리나는 저들이 그 사실을 눈치채고 곧장 태도를 바꾼 것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직은 헤더 상단이 그 실세를 쥐고 있는데도 말이지…….’
하기야. 저들로선 아쉬울 것이 전혀 없었다.
아무리 헤더 상단이 지금 동대륙 상품으로 잘 나가고 있더라도, 겨우 그것만 쥐고 있는 상단이었다.
자작가의 힘이야 그것뿐이니 저들은 원한다면 얼마든지 동대륙 상품을 구할 수 있었다.
헤더 상단에서 중앙 귀족을 상대로 파업을 하다간 시장에서 매장되는 건 한순간이니 거부할 수도 없을 터였다.
결론은 헤더 영애는 이 바닥에서 철저히 을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에밀리나가 동대륙 사업을 쥐게 된다면 판도가 많이 달라질 터였다.
권력을 쥐고 있는 공작가에서 잘 나가는 사업을 가지고 휘두르면 아무리 그들이라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에밀리나 개인적으로 신분제 사회가 그리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권력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렇게 명확하니 참 기분이 이상했다.
자신의 손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이유로 저들에게 음흉한 호감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뭐. 굳이 척을 져 피곤한 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 그것 하나만큼은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에밀리나가 그렇게 생각하며 간간이 말을 받아주고 있을 때였다.
어떤 귀부인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을 꺼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사냥제에 동대륙 사절단이 온다는 소문이 있어요.”
“아아. 그 소식이라면 저도 들었어요. 조만간 방문한다지요?”
“시기가 사냥제와 겹치다 보니 그들과 함께 가겠군요.”
동대륙 사절단 이야기에 가문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귀부인과 영애들이 눈을 빛냈다.
처음 소식을 들은 이들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속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동대륙 사절단이라고 하면, 그들과 안면을 터놓음으로써 교류를 할 수 있는 것이니까.
물론 거기에 에밀리나도 있었다.
‘와, 이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애초에 원작에서 동대륙에 관한 이야기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보니 이건 제법 흥미가 있었다.
그들이 왜 리오네프까지 찾아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미 원작이 틀어졌으니 아예 불가능한 가능성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음. 아닌가? 그 가능성을 내가 열어버린 건가?’
나비효과라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이 동대륙 사업을 구상하지 않았더라면, 동대륙과 교류할 일은 없었을 터였다.
아니. 있더라도 몇 년이 더 걸리지 않았을까.
그녀가 사업을 구상할 적만 해도 이 나라 사람들은 또 다른 대륙이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고서와 대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사실을 알았겠지만.
‘그들이 뭐 어디 흔한가.’
어쨌든 동대륙 사업을 헤더 상단에서 빼앗아 오려면 이번 사절단과의 만남이 기회가 될 수 있는 건 사실이었다.
에밀리나는 뜻밖의 정보에 머리를 굴리며 계획을 세울 때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이번 가든파티 모임에 기대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었는데 조금은 인식을 바꿔도 괜찮겠다 싶었다.
괜히 중앙 모임이 아닌지, 교류하는 정보의 질이 일반 사교 모임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여러 번 말하지만 에밀리나는 이번 가든파티가 좋았다고는 빈말로라도 할 수 없었다.
특히 체이스 영애의 꿍꿍이로 인해 거의 최악의 모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분위기가 흘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오히려 이번 모임을 계기로 더더욱 세리카와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졌다.
에밀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좋은 정보 하나 건진 것을 위안 삼기로 했다.
그때였다.
동대륙 사절단 이야기를 꺼낸 귀부인이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또 하나의 정보를 던졌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에요. 그들의 방문이 트로비나 영애와 관련 있다고 들었어요.”
“트로비나라면…….”
“남부에 있는 백작가죠.”
“아아, 거기요…… 그런데 너무 뜬금없는 거 아니에요? 둘 사이에 무슨 접점이 있다고…….”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무슨 교류가 있었으니 그런 말이 도는 것이겠죠?”
처음 말을 꺼낸 귀부인이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한 영애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그거라면 제가 알 것 같아요. 일전에 트로비나 영애와 만나 본 적이 있거든요.”
“오, 그것참 반가운 소식이네요.”
“아니에요. 저도 그때 이후로 소식만 들은 터라, 이게 정확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판단은 우리가 해 보도록 할게요.”
“그렇다면야.”
트로비나 영애의 소식을 입에 담은 영애가 조금 안도하는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평소 트로비나 영애는 동대륙 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유학을 두고 백작 부부 내외가 무척 반대를 했었나 봐요. 그래서 유학길에 오르지 못한 거로 알고 있었죠.”
“흐음. 이상하네요. 그렇담 사절단의 소문은 설명이 안 되는데…….”
곁에 있던 귀부인이 의문이라는 듯 중얼거렸다.
주위에 있던 다른 귀부인과 영애들도 그 말에 동의하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한 영애가 이야기를 꺼낸 영애의 말에서 이상함을 눈치채곤 물음을 던졌다.
“잠깐만요, 영애. 알고 있었다는 말은 지금은 다르게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요?”
“네, 맞아요. 정확히 보셨어요.”
이야기를 꺼낸 영애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최근에 아버지께서 그녀의 소식을 알려 주셨거든요. 결국 반대를 무릅쓰고 동대륙으로 떠났다고요.”
“저런…….”
트로비나 영애의 이야기에 다들 숙연한 표정으로 탄식을 흘렸다.
직접적으로 말을 꺼낸 것은 아니지만, 흐름이나 뉘앙스로 보아 트로비나 영애는 가출한 것으로 보였으니까.
실제로 말을 꺼낸 영애도 그리 들었기에 언급은 안 했어도 다들 눈치껏 알아들으리라 생각하며 말을 아낀 것이었다.
그래서 안타까운 표정과 숙연한 분위기가 흐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에밀리나만이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곱씹었다.
‘트로비나 영애라면, 클로이밖에 없잖아?!’
에밀리나는 갑작스럽게 접한 여주의 소식에 황당한 기분이 되었다.
사실 지금껏 여주의 소식이 하나쯤은 들려왔어야 정상이었는데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다.
이미 원작이 틀어졌을 때부터 눈치챘지만, 이야기의 수준이 엇나가도 너무도 엇나갔다.
‘그럼 키르젠이랑 클로이가 만나는 사건은 아예 사라져 버린 건가?’
트로비나 영애의 소식을 들려준 영애의 말에 따르면 여주인 클로이는 완전히 동대륙으로 떠나 버린 것 같았다.
그녀의 모국인 리오네프로 돌아오긴커녕 그곳에 정착할 생각인지 대국의 왕자와 교제한다는 말까지 들려왔다.
그래서 트로비나 가문에 소식을 전할 겸 사절단이 함께 방문한 것이라고.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사절단 대표를 만나 봐야 알겠지만 에밀리나는 연이어 들려온 소식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사실 충격이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전개인 터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너무 당황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남은 시간 동안 적당히 맞장구만 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니 어느새 가든파티의 주요 행사가 다가왔다.
참석 전부터 에밀리나를 몹시 곤란하게 만들었던 자수 놓기였다.
그러나 곤란했던 시간만큼 의외로 행사는 평화롭게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