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54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54화
154
페리사는 진심이었다.
결코, 술에 절어있는 메이린과 실비아를 호구 잡으려던 것이 아니라(사실 잡긴 했지만), 적어도 받은 돈값은 한다는 생각으로 진심을 다했다.
그녀는 일단 약초학과에서 숙취해소제와 술 깨는 약을 구해와 둘에게 먹였다.
—둘 다 그 상태로 소개팅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뇽! 일단 이거 마시고, 술부터 깨라뇽!
—고, 고마워 선배.
—우웁…… 토, 토할 거 같…….
그다음으로는 이 종강 파티의 가장 핫플레이스인 동양풍 전각의 특실을 빌렸다.
그렇게 기본적인 준비(?)가 끝나고, 실비아와 메이린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어, 어떤 남자가 올까요?”
“그래도 페리사 선배가 진심인 거 같으니까…… 괜찮은 놈이지 않을까?”
—손님이 오셨습니다.
종업원의 말을 뒤로 미닫이문이 열린다.
멀끔하게 생긴 두 남자가 있었다.
“실비아 양, 그리고 메이린 양…… 맞으신가요?”
둘은 요조숙녀처럼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호호, 안녕하세요.”
서로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는지, 남자들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페리사 선배한테 소개받고 온 세리온즈입니다.”
“마찬가지로, 마레입니다.”
* * *
세리온즈와 마레는 둘 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가문도 이름 있는 백작가, 후작가였고, 심지어 후계 문제도 없는 외동이었다. 그럼에도 귀족답지 않게 배려심이 깊었고, 친절하게 사람을 대할 줄 알았다.
거기에 외모도 나름 멀끔한 편이었는데…….
“왜…… 오징어로 보이는 거지?”
화장실의 세면대서 손을 씻으며 실비아가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메이린이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분명 둘 다 나쁘지 않게 생겼는데…… 왜 오징어처럼 느껴질까요.”
“………….”
“………….”
서로 말은 많았지만, 이유는 알고 있었다.
—류리크 아스트레이.
파티에 올 때 봤던 그 모습. 평소와 다른 화려한 계통의 정장에 초췌하던 인상을 지워낸 화장.
사실 옷이 바뀌고, 옅은 화장이 더한 정도지만 그 파괴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단적으로 말해,
“존나 잘생겼었지.”
“그러니까요.”
“……어, 어? 아, 그러니까 아까 걔네가 아니라 그 류리크 씨가 말이야!”
“그, 그렇죠! 저도 그렇게 알아들었어요!”
서로들 당황해서 변명하듯 말을 더듬었고……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대체 뭐 하는 걸까.”
“그러게요.”
결국, 둘은 세리온즈와 마레에게 심심한 이별(?)을 고했다.
30분도 되지 않아 파투 난 것을 알게 된 페리사는 얼척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너희들 제정신거냐뇽?!”
“………….”
“세리온즈랑 마레가 얼마나 착한 호구…… 아니, 착한 녀석들인지 아냐뇽!”
“………….”
“명망 있는 귀족이면서 그렇게 착하고 배려심 깊은 남자 어디 없다뇽!”
성내는 페리사를 보며 실비아는 머리를 긁적인다.
“아니, 뭐랄까…… 좀 우리 취향이 아니었어.”
“뭐, 뭐라고뇽?”
“우리는 좀…… 나쁜 남자? 그런 쪽이 취향이거든.”
이건 또 뭔…… 페리사가 짜게 식은 표정으로 둘을 흘긴다.
한편, 그런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한 메이린은 오히려 한술 더 뜨듯 말을 덧붙인다.
“맞아요. 아까 그 남자들은 둘 다 너무 착해빠져서 좀, 이성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달까요?”
“왠지 요루아 친구들을 보는 거 같았지.”
“아, 맞아요! 저도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아니, 이 아가씨들아. 요루아는 중학생이잖아. 세리온즈랑 마레가 어딜 봐서 중학생급으로 보인다는 거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페리사는 프로였다.
“알겠다뇽. 받은 돈이 있으니까, 서비스는 제대로 하겠다뇽……!”
신용으로 먹고사는 상인으로서 대가를 받은 만큼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
페리사는 독지(篤摯)한 눈빛으로 말한다.
“그래서…… 너희 취향이 어떤지 말해 보라뇽.”
판을 깔아주자 실비아는 턱을 쓸며 입을 연다.
“으음, 취향이라…… 아무래도 그런 거 있잖아? 좀 시니컬하고, 차갑고, 사람 막 대하는 거.”
“뇽? 그건 그냥 개자식…….”
“맞아요! 그거예요! 그거!”
메이린도 뭔가 딱 꽂히는 게 있었는지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인다.
“나를 막 대하는데, 뭔가 끌리게 되고 사람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그런 거죠!”
“너희들 혹시 변태…….”
“맞네! 그거였어! 분명 객관적으로 보면 개새끼인데, 끌릴 수밖에 없는? 그런 거지!”
“그쵸! 그쵸! 그런 거죠! 막상 사라지면 괜히 아쉽고, 도리어 내가 안달 나서 애원하게 되는?”
글렀다.
이 두 여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페리사는 그녀들이 말하는 이상의 모습이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거 완전 류리크 아닌가?’
그녀가 직접 본 바로도.
그녀가 입수한 정보로도.
류리크의 인간상과 맞아떨어졌다.
‘그러면 둘 다 그냥 류리크한테 얼쩡거리기나 하지 왜…….’
그 순간, 페리사의 머릿속에 사진 하나가 떠올랐다.
—샤프란이여, 뜨겁게 사랑하라!
‘아, 맞다. 류리크랑 레베카가 오늘 키스했었지?’
대충 이 두 사람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곧 동정으로 바뀌었다.
좋아하는 남자한테는 의문의 1패를 당하고(?) 결국 돈까지 내면서 다른 남자를 찾는 여자라니!
“오케이, 아세라리온의 명예를 걸고…… 진심으로 해주겠다뇽!”
* * *
“너희들…… 진짜로 미친거냐뇽.”
15분 뒤, 페리사는 조금 전 자신이 새겼던 각오가 꺾이는 것을 느꼈다.
방금까지 있던 동정심 + 아세라리온의 명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눈에는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한편 반대편에 앉은 채 실비아와 메이린은 괜히 빈 물잔을 만지작거렸다.
“이 망나니 같은 여자들아! 너희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자리에서 쌍욕을 날리는 거냐뇽?!”
“그, 그게…….”
“내가 그거 수습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뇽?! 이게 소개팅이긴 하지만, 상대가 제국의 대귀족이라는 걸 잊어버린 거냐뇨오오옹!!”
샤프란 학생이지만 동시에, 제국의 드높은 귀족이기도 하다. 헌데 이 둘은 그들을 상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퍼부었다.
“아, 아니…… 그 자식들이 먼저 사람 깔보고 그러잖아!”
“이런 씨아아앙! 너희들이 나쁜 남자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지 않냐뇨오오옹!!”
저것들이 돈을 낸 고객만 아니었으면, 그리고 의문의 실연(?)을 당한 게 아니었으면 당장 머리털 뽑아서 쫓아냈을 텐데!
페리사는 빠득빠득 이를 갈았다.
“너희들 이거…… 이거! 절대로 추가 요금이다뇽! 진짜로!”
“돈이라면 더 낼 수 있지만, 진짜 좀 괜찮은 남자로 소개시켜 달라고.”
“뭐, 뭐라고뇨오오옹?!”
“아니. 내가 말했던 건, 나쁜 남자지, 싸가지 없는 놈은 아니었다고.”
저건 고객이다.
저 미친년은 고객이다.
저 빌어먹을 년은 고객이다.
페리사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그리 중얼거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그러면 자세히 말해보라뇽. 그 나쁜 남자의 조건이 뭔지! 자세하게!”
“으음. 일단은 그렇지. 좀 멋져야지.”
“…………?”
“나쁜 짓도 멋진 놈이 해야 멋있는 거지, 찌질한 놈이 나쁜 짓 하면 그건 그냥 개자식이잖아?”
뭔가 알 것도 같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페리사는 진지하게 둘의 말을 경청했다.
“일단 선 넘는 인신공격은 안 했으면 좋겠고, 외모뿐 아니라 능력이 잘났으면 좋겠어.”
“맞아요. 괜히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잘나야 한다는 거죠!”
“거만하지만 그래도 능력은 있는? 그런 느낌이지!”
“또 상대방 할 말 없게 만드는 것도 중요해요!”
“맞아! 맞아! 뭔가 억울해 죽겠는데, 막상 할 말은 없는 거지!”
“크으, 그 묘한 패배감과 굴욕감!”
……이것들 진짜로 머리가 이상해진 거 같은데.
페리사는 이젠 동정을 넘어 애잔한 무언가를 보는 눈으로 둘을 바라본다.
“후우, 알겠다뇽. 그 조건에 최대한 부합하는 상대를 찾아보겠다뇽.”
* * *
—꺼지라뇽! 너, 너희는 돈도 필요 없다뇽! 그냥 사라지라뇨오오오오오옹!!
—뭐, 뭐! 왜 그래?!
—너희들 이게 몇 번째인지 아냐뇨오옹?! 이미 적자다뇽!
—아세라리온의 명예는 어디 간 건데?!
—아, 그딴 거 이제 모르겠고! 너희들의 그 변태 같은 취향 듣는 것도 질렸다뇽! 그러니까 그냥! 꺼지라뇨요오오옹!
파티의 저녁이 무르익은 시간, 실랑이를 벌이는 세 명의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한참 전부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미안해요오오, 신시아. 못 볼 꼴을 보였네요오오.”
“………….”
“바바야가한테 소문 듣고 기대했을 텐데…… 걔는 원래 이상한 소리 많이 하잖아요오오.”
샤르미넨이 작게 탄식했다.
나름 신시아가 실비아에 대해 기대를 하고 온 모양인데, 이건 뭐…… 안쓰럽다는 수준을 넘어 약간 비참하게까지 느껴지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신시아의 반응은 달랐다.
“아니! 무슨 소리야, 샤르미넨! 저 나이에 저런 건 당연한 일이징!”
“…………?”
“사랑하는 소녀의 마음! 나는 오히려 그런 게 없었으면 실망했을 거라공!”
우리도 한때는 풋풋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소녀였잖아? 이럴 때는 선배로서 도와줘야지.
신시아는 그리 말하며 씩씩하게 팔을 걷어붙이며 드높은 전각에서 뛰어내렸다.
짧은 순간, 전이마법을 연속으로 구현하며 안전하게 지상에 착지한다.
—맡겨만 두시라고!
자신감을 가득 품은 신시아는 경쾌한 걸음으로, 소주를 병째로 들이켜고 있는 실비아들에게 다가선다.
—젠장! 인생 뭐 있냐! 이 더러운 인생!
—마시고 죽자고요! 으헤헤헤…!
가엾고 딱한 자로다, 신시아는 가볍게 혀를 찬 뒤 배에 힘을 주며 말한다.
“거기의 여자들이여! 그 몰골은 마치 클럽에서 사냥에 실패한 채, 돌아가는 새벽녘의 패배자와 같구나!”
병나발을 불며 벤치에 널브러져 있던 실비아와 메이린이 흐느적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
“…………?”
“너희들의 그 처참한 모습을 보다 못해 이 몸이 나왔다!”
둘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누구…… 세요?”
“잠깐 놀러 온 중등 아카데미 학생 같은데, 그냥 가라. 언니들 그럴 기분 아니…… 우욱. 올라올 거 같아.”
언뜻 듣기에 무례한 발언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데미지 받지 않은 상태로 도리어 히죽 웃었다.
“너희들 솔직히 말해, 소개팅엔 별로 관심도 없었지? 남자를 만나러 온 게 아니니까.”
“아니, 그러니까 꼬맹아. 언니들은…….”
“이미 마음에 둔 상대가 따로 있으니까.”
우뚝, 실비아의 몸이 굳었다.
정곡을 찔렀음을 확신한 신시아는 파하하, 웃으면서 말을 잇는다.
“이해해. 다~ 알지! 알아! 이미 마음속의 임이 저기 있는데, 다른 남자가 눈에 차겠어?”
“………….”
“누굴 만나든 죄다 오징어로 보였지?”
“그, 그걸 어떻게……!”
“그 마음! 약해도 너무 나약해!”
신시아가 호통쳤다.
“너희가 그런 식으로 해서 남자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겠어?! 친절하던 신전 오빠가 여자친구 생겼더니 질투하는 여동생도 아니고 말이야!”
이 대목 즈음이면 이상함을 느낄 법도 하건만, 메이린도 실비아도 이미 술로 반쯤 정신줄을 놓은 상황이었다.
둘은 그나마 유지하던 아슬아슬한 이성의 끈을 잃은 채, 갑자기 신시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훗. 그건 말이지…….”
그 뒤로 신시아는 30분에 걸쳐 어떻게 해야 남자를 손에 넣을 수 있는지 강연을 했다.
그다음에는 ‘기분이다!’ 외치면서 셋이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고.
—우헤헤헤! 이제부터 류리크 씨는 내 거다아아아!
—류리크 씨는 나쁜 남자아아! 존나게 나쁜 남자아아아!
—으캬캬캭! 마셔라! 소녀들이여! 소녀의 사랑은 술과 함께 성장하는 거다아아아!
모두 사이좋게 필름이 끊겼다.
* * *
다음 날, 아스트레이의 소저택.
“우, 으음…… 으으음…….”
실비아가 잠꼬대를 하며 몸을 뒤척거렸다.
설핏 뜬 눈에 환한 햇살이 느껴졌다.
“우, 으…… 아침…… 인가?”
순간 학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방학이라는 걸 깨달았다.
“………….”
약간의 잠을 더 보충하니 머리가 개운해졌다.
실비아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근데…… 내가 어떻게 저택에서 일어난 거지?’
기억이 온전치 않았다.
분명 메이린이랑 질펀하게 술을 마시고, 페리사에게 남자들을 소개받은 것까진 기억하는데.
‘으음…… 뭔가…….’
일단 사지 멀쩡하니 그건 다행이지만, 묘한 찜찜함이 있었다.
실비아는 일단 메이린을 찾아가기로 했다.
“메이린 씨이이…… 있어?”
하지만 평소 메이린이 머물던 손님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메이린 씨의 짐은 있는데…… 으음?’
일찍 일어나서, 먼저 어디 간 건가.
실비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로비로 나왔다.
그즈음, 자신의 주머니에 뭔가 이상한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뭐지?”
거기엔 명함이 있었다.
—마녀 배달부 퀵키, 대표이사 신시아.
“…………?”
왜 이런 게 주머니에 있는 걸까.
머리를 굴려보지만,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대체 어제 뭔 일이…… 있었지?’
꺼진 잿더미에서 불씨를 찾듯, 실비아는 어렵사리 기억을 되짚는다. 그때였다.
“실비아 양.”
“아, 리아 님. 좋은 아침…… 아니, 점심이야.”
“숙취는 괜찮습니까.”
“어…… 응. 괜찮은 거 같아.”
근데 속이 더부룩해서 점심은 패스할게, 실비아가 덧붙였다.
아직 기억도 온전치 않고, 몸 상태도 온전하진 않기에 류리크의 약초 차라도 마시면서 쉴 생각이었다.
그런데 리아가 꽤나 날카로운 태도로 그녀에게 말한다.
“다행이군요. 지금 당장 무장을 갖추고, 접객실로 오세요.”
“으응? 무장……?”
“지팡이든, 아티팩트든 가진 모든 걸 준비해야 할 겁니다.”
아침부터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리아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실비아는 퍽 겁이 나기 시작했다.
“뭐, 뭔데. 전쟁이라도 났어?”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 같은 일이 다가오고 있지요.”
리아가 말한다.
“류아라 아스트레이 님께서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