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0)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0화
만술의 달인 (3)
“으음?”
눈을 뜨자, 눈부신 형광등이 시야를 괴롭혔다.
소독 향이 코끝을 자극하는 게…….
‘병원?’
아, 맞다.
나 던전 클리어했었지?
노인은 결국,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스테이지 클리어 메시지까지 받아냈으니 확실할 거다.
그 이후, 기억이 없다는 건.
의식을 잃었다는 건데.
“…….”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밝은 세상에 적응하고 있을 찰나.
“음?”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억지로 눈을 뜨니, 격식 있는 정장을 입은 아가씨가 팔짱을 낀 채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툭 말했다.
“정신 차리셨나 보군요.”
난 고개를 갸웃거리다 물었다.
“누구……세요? 어?”
그러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분명 기억에 있는 얼굴.
그리고 허리춤에 달린 황금색 명패.
기소율이잖아?
‘이야.’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저번 전투 복장을 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으니까.
그때는 터프한 여전사의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마치 냉철한 커리어 우먼의 느낌?
“일어나셨으니, 다시 인사드리죠. 저는 파랑 길드의 부 길드 마스터, 기소율. 세간에는 암제라는 이명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기소율이 덤덤히 읊조렸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렇긴 한데…….”
그녀가 여길 왜?
신속히 주변을 살폈다.
병실엔 오직 그녀와 나.
둘밖에 없었다.
뭐지?
설마 기연을 가로챘다는 이유로 쓱싹?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녀는 암살의 제왕.
이 자리에서 내 목을 딴다 해도, 증거 하나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초능력자다.
“솔직히 놀랐어요. 사실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던 보스였는데, 짐꾼 씨가 깨버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그것도 단박에.”
내 걱정과 무색하게 그녀의 태도는 여전히 정중했다.
하지만 나는 경계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그녀가 존댓말 하며 웃는 얼굴로 살인을 저지르는 미친 싸이코일 수도…….
“……근데 왜, 아까부터 자꾸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죠?”
기소율은 내 경계 어린 시선을 느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그녀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난 두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그냥, 대형 길드의 부 길드 마스터나 되시는 분께서 왜 혼자 절 찾아오셨는지 궁금해서요.”
“그야 물론, 저도 궁금하니까요.”
“예?”
“도대체 그 말도 안 되는 던전을 어떻게 클리어했는지. 또 클리어했다면 보상이 뭔지. 정말 재목으로 인정받았고 노인의 제자가 된 건지. 등등이요.”
“아…….”
그녀의 물음을 듣고 고민에 잠겼다.
사실 그녀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던전의 소유권은 분명 그녀에게 있었고.
난 기회를 한 번 제공받은 것뿐.
솔직히 그녀 처지에선, 어디서 굴러온 돌이 날로 기연을 스틸해 간 꼴이지 않던가!
‘다른 포악한 랭커였다면, 이미 모가지가 날아가 있었을 수도 있어.’
분노하지 않는 것만 해도.
기소율의 덕망이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 세상은 험난하다.
지독하니만큼 험난하다.
만약 초짜인 내가 엄청난 기연을 얻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누군가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그게 그냥 질투심에 미친 또라이든.
새싹을 잘라내려는 지하세계 집단이든.
항상 조심하며 다녀야 한다.
“흠, 짐꾼 씨? 무슨 생각을 그리하시나요?”
“아, 암제님, 대답하기 전에. 혹시…… 이번 던전 탐험 건에 관한 기사가 어떻게 쓰였는지부터 알 수 있을까요?”
내 물음에 그녀가 의외라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대충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 거 같군요. 그 부분에 대해선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일단 이번 던전은 파랑 길드 선발대가 무사히 클리어한 거로 보고했으니까요. 생존자들에게도 전부 비밀유지계약을 받아냈고요.”
“예?”
그 말은.
세간이 이번 던전의 클리어 대상자가 ‘나’라는 걸 모른다는 말?
아아, 나는 찐으로 감동했다.
이 얼마나 배려심 넘치는 행동이란 말인가!
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암제님.”
“보기보다 성숙하네요, 짐꾼 씨는. 다른 헌터들은 자신의 성과에 대해 전 세계에 과시하고 싶어서 안달인데.”
“과시보다는 안전이죠.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그렇다고 고마워할 필요도 없어요. 이건 파랑의 자존심과도 직결되는 문제니까요.”
“아?”
눈을 깜빡거리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랭커가 함께한 수색대에서 E급 용병, 그것도 짐꾼이 MVP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믿겠어요?”
“아아…….”
요지는 간단했다.
우리는 쪽팔리니까 입을 막겠다.
다만, 너도 괜히 나대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 이해해라.
아무튼, 난 땡큐다.
‘다만.’
고민되는 부분이 있었다.
기회를 한 번 줬다는 이유로.
내 전력에 대해 그녀에게 다 말해야 할 의무가 있을까?
그녀가 나한테 베푸는 것도.
여유를 가지는 것도.
전부 그녀가 강해서다.
하지만, 난 약하다.
누군가에게 전력을 노출할 만한 여유 따윈 없다.
“근데요, 암제님.”
“네, 말씀하세요. 짐꾼 씨.”
“제가 며칠간 누워 있었죠?”
“으음, 던전에 나온 지, 3일 차니까. 3일째겠네요.”
제길.
오래도 누워 있었네.
나는 난처한 듯,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솔직히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보상이 뭔지 파악도 못 해서…… 바로 대답 드리기 힘들 것 같네요.”
이건 진짜다.
진짜 눈뜨자마자 이어진 대화였으니까.
“음…… 그런가요?”
기소율의 눈매가 좁아졌다.
내가 회피할까 의심은 하지만, 이해는 한다는 눈빛이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정리해서 말씀드릴게요.”
“흠.”
“혹여 도망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세상 어느 헌터가 암제의 눈을 피할까요?”
“좋아요. 협조해 주신다고 하니 저야 고맙죠. 그럼 어느 정도 정리 끝나면 다시 찾아뵙도록 하죠.”
기소율은 쿨하게 인정한 채, 병실을 떠났다.
공간을 가득 채웠던 그녀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후우.”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젠장.
요즘 들어 삶이 참 스펙타클하다.
갑자기 나타난 오크에 이어, 3년 만에 각성, 랭커와의 만남.
거기에 이상한 던전까지.
게다가 여기서 잘못 판단했다간 파랑과 척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니면, 반대로.
파랑과 좋은 인연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뒤척일 찰나였다.
[클리어 보상을 확인하세요!]‘오, 맞다.’
기절하느라 아직 열지 못했던 메시지.
이제 그걸 확인할 시간이었다.
* * *
[보상이 도착합니다!] [축하합니다!] [기력 20이 영구적으로 증가합니다.] [스킬, ‘만술의 가르침’(S급)을 획득합니다.]“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기력 증가도 엄청난 보상이지만.
‘또 S급 딱지라니.’
남들은 일평생 하나 얻기도 힘든 등급의 스킬을.
짧은 시간 만에 벌써 두 개나 얻어버렸다.
[헌터 : 주동훈] [이명 : X] [기력 : 120/120] [고유 능력 : 저주받은 네크로맨서] [등급 : D] [효과]-당신은 죽은 영혼을 다루는 직업, 네크로맨서입니다. 무시무시한 악령과 독극물을 활용해 상대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단, 저주받았습니다.
-당신은 오직 스켈레톤만 소환할 수 있습니다.
[보유 스킬]-‘각성한 스켈레톤 소환’(D급)
-‘기억 재현’(S급)
-‘만술의 가르침’(S급)
‘미쳤다.’
이래서 고수들이 ‘던전, 던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하는 거구나.
이전보다 한층 채워진 상태창에.
나는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꼈다.
‘먼저, 기억 재현부터 볼까?’
[스킬 : 기억 재현] [등급 : S] [효과1 : 기력 50을 소모하여, 망자의 기억을 읽습니다.]도대체 이게 뭘까?
의아했다.
어찌 보면, 별 대단한 내용도 아닌데 높은 등급이라니.
게다가 분명 숨겨진 스킬이라 했다.
‘저주받은’ 영혼을 마주해야만 각성할 수 있는 히든 스킬.
궁금한 게 많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으니, 넘겨버렸다.
‘던전 깰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 좋지, 뭐.’
이번 던전도 노인의 기억을 볼 수 있었기에, 깰 수 있지 않았던가.
또 언젠가 써먹을 날이 올 거다.
‘다음은 만술의 가르침.’
나는 떨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다음 스킬을 차분히 확인했다.
[스킬 : 만술의 가르침] [등급 : S] [효과1 : 기력 20을 사용하여 이세계를 평정했던 절대자, ‘만술의 달인’을 60분간 소환합니다.] [효과2 : 소환된 ‘만술의 달인’은 해당 세계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제한된 시간 동안 그의 지식만을 전수 받을 수 있습니다.] [효과3 : 해당 스킬의 쿨타임은 24시간입니다.] [효과4 : 오직 스킬 사용자만이 ‘만술의 달인’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꿀꺽.
절로 침이 삼켜졌다.
‘이세계를 평정했던 절대자라니…….’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우리 스켈레톤들.
랭커마저 찜쪄먹는 일타 강사를 구한 거야?
“젠장, 아무래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거 같네.”
나는 덜렁덜렁 달린 링거를 단숨에 뽑아버렸다.
지금 수액 따위나 맞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빨리 확인해 보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으니까.
스윽, 스윽.
옆에 걸려 있는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문밖으로 나섰다.
“어어? 주동훈 환자님?”
당황한 간호사가 불렀지만, 나는 급했다.
“꺄악! 안 되는데, 아직 안정을 취하셔야 하는데……?”
“죄송해요. 급한 일이 있어서. 입원비는 제 이름 앞으로 달아주세요.”
가슴이 쿵쿵 뛰었다.
-실로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도다. 살아생전 엄청난 무골들임에 틀림없어. 내 여태껏 이런 자들을 원했건만, 왜 이제야. 쯧.
노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울렸다.
이게 자식 칭찬을 들은 부모의 기분일까?
녀석들을 빨리 훈련받게 하고 싶었다.
* * *
[스킬, ‘만술의 가르침’(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20을 사용합니다.] [‘만술의 달인’이 등장합니다.]항상 가던 공터에 도착한 내가 곧바로 스킬을 사용할 때였다.
따콩!
“으악!”
이마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얼마나 아픈지 눈물이 맺히고 하늘에 별이 보일 정도.
정신을 차리니,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고얀지고! 쯧, 내 모든 걸 계승하겠다 약속해 놓고. 뭐 하다가 이제 부른 것이더냐? 그렇게 게으름 피워서야 어디, 내 발가락 끝이라도 따라올 수 있겠느냐?”
“아니, 잠깐만요. 어르신……. 정신 차리자마자, 와서 부른 건데요……?”
억울했다.
아니, 잠깐.
그전에.
분명 노인은 이 세계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다 하지 않았나?
“역시 애송이로구나. 그렇게 표정이 다 읽혀서야. 쯧쯧. 네놈과 난 정신으로 이어져 있으니, 고통을 주는 데 문제가 있겠느냐? 없겠느냐?”
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왠지 굉장히 피곤한 꼰대 스타일일 것 같은데…….
“어쨌든, 불러냈으니. 곧바로 시작하자꾸나, 이 녀석아. 시간 없다.”
“아, 네넵.”
노인의 재촉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약속대로 뼈다귀들 소환하면 되는 거죠?”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예?”
“오늘은 교육에 앞서 뭘 배울지부터 정하자꾸나. 그 열 놈의 재능은 다 파악했지만, 문제는 네 녀석이거든.”
“……네? 그게 무슨?”
난 눈을 크게 떴다.
열 놈이라 하면.
스켈레톤들의 능력일 텐데.
설마 아직 각성하지 않은 녀석들의 재능까지 파악했다는 건가?
‘그리고 그전에.’
내가 왜 문제인데?
설마 이 노인.
나도 가르치려는 건 아니겠지?
노인이 툭 내뱉은 것은 그때였다.
“만술이 왜 만술인 줄 아느냐?”
“……?”
“내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재능을 익혀 얻은 이명이 만술(萬術)이다. 그런 내가 모든 기술을 전수해도 시원찮을 판에 고작 10가지 기술만 전수해야겠느냐?”
씨익.
노인이 기괴하게 웃었다.
나는 문득 불안해졌다.
섬뜩하게 불안했다.
“그럼 스켈레톤들한테 전수하면 되잖아요?”
“아서라, 그놈들의 재능은 오직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다. 다른 기술을 가르쳐 봐야 받아들이지도 못해.”
“그, 그럼?”
“뭘 그럼이냐! 당연히 네 녀석이 받아야지.”
“네? 하지만…… 어르신이 말씀하셨잖습니까? 제 재능은 쓰레기라고…….”
“시끄럽구나. 나와 약속한 이상, 네 녀석은 만술을 이어받아야 한다. 안되면 될 때까지. 걱정 마라. 쓰레기를 천재와 버금가게 하는 것도 하나의 술(術)이 될 수 있는 법이니. 마침 네놈에게 물리력도 행사할 수 있는 것 같으니 참 다행이로구나.”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