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18)
아란발론 왕국의 국보 (3)
적막이 흘렀다.
“…….”
누군가는 치료를 받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지만.
분명 모두가 듣고 있었다.
– 왜 문양을 나간 건 저 제임스라는 무투간데, 저 병사들은 우리만 공격했을까?
– 게다가 저기 제임스 봐. 저기만 멀쩡하잖아? 마치 아무 공격도 받지 않은 것처럼.
블라디미르 로디긴의 날카로운 의문.
그리고.
[팀원들은 언제든 ‘보물’ 하나를 골라 거대성을 탈출할 수 있습니다.] [탈출한 팀원은 테마2 ‘합격’입니다.]보란 듯이 나타난 출구.
아니 출구라기보다는 유혹이지.
아주 노골적인 유혹.
“으음.”
나는 목이 턱 막혔다.
가슴 역시 목에 끼인 가래만큼이나 답답했다.
‘명분이 없잖아?’
저들을 붙잡을 명분이 없었다.
내가 뽑아줘서?
아니면, 내가 팀장이니까?
그것도 일시적인 의리일 뿐.
저들이 그럴 의무도 없을뿐더러, 그럴 거라고 막연하게 기대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문득 누군가를 쳐다봤다.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아직도 케인 등에 업혀 눈을 슬며시 뜨고 있는 여자, 올리비아를.
‘적어도 쟤는.’
쟤는 밖으로 나갈 가능성이 99% 이상이다.
아니, 100%라 해도 되지 않을까?
후웅!
그때였다.
“지금부터.”
심판창이 문 앞쪽으로 나서며 창을 늘어뜨렸다.
저벅, 저벅.
그는 천천히 걸어 나가더니, 문양 가장 끄트머리에 우뚝 섰다.
넓은 등과 힘이 가득 들어간 팔뚝이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허가 없이 이 선을 넘어가는 자가 있다면.”
심판창이 입술을 열었다.
“내 창으로 심판하도록 하겠다. 죽을 자신이 있다면 넘어가도록.”
와우.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저렇게까지 도와준다고?
아마 부팀장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원래 사람이 그런 사람이겠지.
살인, 배신 등의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
나는 속으로 심판창에게 감사를 표했다.
“저도 동감해요.”
올레나 역시 지팡이를 들고 나섰다.
“훈은 초반에 떨어질 법한 우리를 팀으로 받아줬어요. 도의를 아는 헌터라면, 이런 상황에서 나 몰라라 하지 않겠죠.”
타악!
심판창 쪽으로 향한 그녀가 위풍당당하게 지팡이를 바닥에 찍었다.
“으음. 그게 옥스퍼드의 긍지인가?”
블라디미르 로디긴이 재밌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왼손.
정확히는 지팡이를 들지 않은 손으로.
“뭐, 일리는 있어. 솔직히 그것보단 난 팀장의 능력을 높이 사거든. 나 혼자 저기 나가 합격한다고 해서 다음 테마에 합격한다는 보장은 없잖아?”
“맞다. 길잡이학 제2 법칙에 따르면, 던전에서 거는 말도 안 되는 유혹은 대개 함정이거든. 혹시 알아? 저 출구가 합격이 아니라 지옥 속일지. 나도 훈과 함께할 거다.”
로디긴이 동의하자, 카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헌터들도 차례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대세들이 다 넘어온 상황에 혼자 튀기는 싫었겠지.
심판창의 기세가 위협적이기도 했고.
‘…….’
일단은.
1단계는 무사히 넘겼다.
물론, 방심할 수는 없다.
누군가 하나라도 튀어 나가는 순간, 저 아란발론 병사들의 석궁 폭격이 시작될 테니까.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심판창이 서 있는 방향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대충 치료도 끝난 것 같으니, 천천히 움직여서 보물을 찾아볼까요? 국보란 게 있다면, 최대한 빨리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흠, 저 많은 걸 다?”
로디긴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단은 ‘국보’가 뭔지 잘 모르니까요. 진짜 찾는다기보다는 일단 힌트를 얻는다는 접근 방식으로 이해하면 편할 겁니다.”
“좋군, 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가 지팡이로 엉덩이의 먼지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그렇게 기묘한 행군이 시작했다.
모두가 나를 중심으로 쭐레쭐레 따라왔다.
나는 우선 입구와 가장 먼 쪽을 향했다.
괜히 입구 가까이 가면, 올리비아 쟤가 획 돌아서 뛰쳐나갈 수도 있으니까.
“이야아, 확실히 거대성은 거대성인 갑네? 굉장히 넓어.”
로디긴이 기지개를 켰다.
“참, 신기하단 말이지. 이런 건축물은 어떻게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야. 저 봐. 기둥도 없고 천장도 안 보이잖아.”
“그러니까요. 이런 걸 건축물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우주 같아요. 저 반짝거리는 보물들이 별 같고요.”
묘이 하나가 미소 지으며 말하자.
“별은 무슨.”
로디긴이 피식 웃었다.
“감수성 풍부한 아가씨구만? 난 올리비아 저년이 언제 튀어 나갈까 노심초사하며 걷고 있는데 말이야.”
“…….”
다들 알게 모르게 올리비아를 의식했다.
웃긴 게.
그녀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기절한 척, 눈을 감고 있을 뿐.
‘와, 이쯤 되면.’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케인을 재평가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아직까지 저렇게 업고 다닐 수 있는 거지?
혹시 성인군자?
아니면 부처?
어쨌든, 꽤 먼 거리를 이동했을 때야.
우리는 반짝이는 보물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보물 전시대 #314에 도착합니다.] [보물을 확인하세요.]전시된 보물은 하나의 화려한 검이었다.
곳곳에 보석이 박혀 있는 누가 봐도 귀족들만 썼을 법한 값 비싸 보이는 검.
과연, 이게 국보일까?
“제가 먼저 확인해 볼게요.”
나는 검의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이템 : 고대 아란발론 황실의 검] [등급 : S] [종류 : 검] [설명 : 고대 아란발론 왕국 산하의 드워프가 왕실 기사들을 위해 제작한 검입니다.] [효과1 : 기력 100 증가.] [효과2 : 스킬 쿨타임 10% 감소.] [효과3 : 스킬 위력 150% 증가.] [효과4 : 힘 30 증가.]“오.”
처음부터 S급이라니.
능력치 또한 꽤 준수하지 않은가?
[해당 보물은 ‘고대 아란발론 황실의 검’(S급)입니다.] [해당 보물은 ‘국보’가 아닙니다.]나는 상태창의 정보를 팀원들에게도 공유했다.
그들 역시 나처럼 놀란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이런 보물이 사방에 널려 있다고?”
“그게 말이 돼?”
“이거 보물창고 아니야? 여기 있는 거 다 털어서 나가면 우리 다 떼부자 되는 거 아니냐고!”
“기연은 기연이로군.”
“아공간 가방 제한만 없었어도 여기 있는 거 싹 다 털어갈 텐데 말이야.”
팀원들이 활발히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맞는 말이긴 한데.
불안했다.
‘경험상 무언가를 얻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거든.’
내가 만술 노인을 얻게 된 이후로, 날마다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단. 받으세요.”
나는 일단, 검을 카푸에게 넘겼다.
“챙기고 다음 천천히 돌아보시죠.”
보물의 배분은 일단, 생존하고 나서.
그 이후에 생각해 봐도 늦지 않다.
우리는 계속해서 보물 탐방을 시작했다.
보물의 종류는 다양했다.
[해당 보물은 ‘여왕의 활’(S급)입니다.] [해당 보물은 ‘국보’가 아닙니다.] [해당 보물은 ‘사파이어 30㎏’입니다.] [해당 보물은 ‘국보’가 아닙니다.] [해당 보물은 ‘엘릭서’(S급)입니다.] [해당 보물은 ‘국보’가 아닙니다.]…….
무기는 기본이요.
특이한 포션부터, 다양한 생김새의 보석까지.
각자 세 개 이상씩 주렁주렁 들고 다닐 만큼 많은 양의 보물들을 획득할 찰나였다.
“케인! 뛰어!”
그 순간, 올리비아가 케인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후웅!
“어딜 튀려 하는가.”
심판창이 번개 같은 속도로 반응했다.
공간술사 로디긴도.
올레나도.
각자 예상하였다는 듯 나섰다.
‘그럼 그렇지.’
나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태양아, 엘드린.’
그래서 문양 끝에 태양이와 엘드린을 배치해 두기도 했었고.
“아직 덜 처맞았나 보군.”
“맡겨주세요, 주인님.”
태양이와 엘드린 역시 각자 무기를 뽑아 들고 막아섰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이 벌어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초.
완벽한 대비요, 정확한 반응속도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럴 줄 알았다.
케인의 몸이 점차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전까지는.
“음?”
나는 눈을 부릅떴다.
“무, 무슨?”
“무슨 이런 힘이?”
후우웅!
그의 몸에서 엄청난 압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작 S급 헌터라기엔, 지나치게 많은 양의 힘이.
그 힘이 얼마나 막대한지.
심판창도, 태양창도, 엘드린도 멈칫할 정도였다.
“서, 설마?”
올레나가 경악한 것은 그때였다.
그녀가 외쳤다.
“자폭의 술? 옥스퍼드에서도 ‘사용 금지’ 취급할 만큼 위험한 주문서를 어떻게……!”
“그게 뭔데요?”
내가 물었다.
“피해자의 목숨을 담보로 그가 가진 모든 기력을 폭발시키는 사악한 술법이에요! 마력의 흐름을 보아하니, 올리비아가 전개한 것 같은데!”
“허.”
나는 탄식했다.
그딴 사기 술법이 다 있다고?
그럼 그냥 술법 걸어버린 다음에 터뜨리면 세계 최강이겠네?
내 생각을 읽었는지, 올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무조건 피시전자와 시전자의 완전한 합치가 이루어져야 발현하는 술법이에요. 바보가 아니라면, 저런 술법에 동의할 수는 없겠죠. 충성 계약이나 노예 계약이 아니라면 말이에요.”
“그럼 설마…….”
노예 계약이라도 맺었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유난히 케인이 올리비아 앞에서는 힘을 못 쓰긴 했다.
그냥 성인군자이거나, 엄청나게 좋아해서 그런 호구인 줄만 알았는데.
‘그냥 몸이 저당 잡힌 거였던 거냐?’
쿠구구구구!
“으읏.”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케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점점 더 증폭되고 있었기 때문.
“여러분, 미안하게 됐습니다. 악감정은 없었어요.”
그리고 케인이 말하는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흡사 귀에 마이크를 대고 폭탄을 터뜨린 것처럼 엄청난 폭음이 고막을 때려 울렸다.
엄청난 압력에 몸이 절로 둥- 떠올랐고.
‘미친.’
그것보다 더 문제인 건.
각자 문양 끝에 있었던 터라 모두가 문양 밖으로 튕겨 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될 것 같더라니.’
이건 재해였다.
대비할 수 없는.
마치 경제학의 ‘체계적 위험’과 같은 거였다.
설마 케인이 자기 목숨까지 버려가며 올리비아를 도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끼이익!
동시에 들려오는 칠판 긁는 소리.
“씨발…….”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주변에 있는 모든 아란발론 병사의 석상들이.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게 느껴졌으니까.
처처처철컥……!
연달아 들리는 석궁 장전 소리가 이렇게 무섭게 들려도 되는 걸까?
“젠장! 다들 들어와!”
로디긴이 외쳤다.
“다들 복귀해서 방어진을 구축하라! 뭉쳐야 산다!”
심판창 역시 일갈했다.
데굴데굴.
나 역시 바닥에 몸을 구른 채, 다시 중심을 잡았다.
문양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최대한 일행들의 중앙으로 움직여 줘야 했다.
“…….”
그런 내 시야에, 정신없이 도망치는 올리비아가 보인다.
빌어먹을.
상관없었다.
쟤 혼자 ‘합격’해서 테마3에 가 있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나 역시 이곳에서 살아남을 거거든?’
그러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기필코 갚아줄 테니, 기다려라.
나는 눈에 힘을 주었다.
다행히 다른 팀원들은 모두 원형 안으로 들어왔다.
“어?”
아니, 들어온 줄 알았다.
“제임스?”
올레나가 전방을 바라보며, 멍하니 읊조렸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무투가, ‘제임스’가 남은 보물들을 한가득 들고 출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제임스, 이 미친! 뭐 하는 거야! 일로 안 와?”
카푸가 어이없다는 듯 외쳤지만, 제임스는 듣지도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카푸는 이내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
하.
나는 피식 웃었다.
웃긴 게 아니라,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거다.
다들 가지가지 하는구나, 정말.
뭐, 그래도.
처음부터 예상하긴 했었잖아?
심적으로 큰 타격은 없다.
“일단! 다들 집중합시다!”
내가 외쳤다.
슈슈슝!
일단 저 멀리서 날아오는.
지옥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