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70)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70화
상부상조
협회장 최태승.
그의 분위기가 지금까지와 달리,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실, 최근…… 러시아의 지원 요청이 있었습니다.”
“러시아요?”
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쪽은 우리와 동맹 관계도 아닌데 굳이?
“후, 최근 그쪽이 던전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이나 북한 등 공산국가는 동맹국들의 수준이 빈약하잖습니까? 러시아도 중립이다 뭐다 각만 재고 있구요.”
“뭐, 그렇긴 하죠.”
“그나마 러시아가 세계 15위 헌터국이라 어떻게든 버텨온 거 같은데…… 후, 이게…… 생각보다 그쪽 내부 마피아들의 갈등이 거센가 봅니다.”
“흠, 마피아라…….”
고개를 젖힌 내가 목덜미를 주물럭거렸다.
마피아면 떠오르는 게.
블라디미르밖에 없긴 한데.
예전에도 많았던 마피아들이, 헌터 세상이 된 이후로 더 활개 치고 다닌다는 말을 듣긴 했다.
녀석도 그런 마피아를 때려잡기 위해 헌터밥을 먹기 시작했다지.
“그런데요.”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그걸 우리나라가 꼭 도와줘야 할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지원이 필요한 수많은 국가가 있다.
대한민국이야 헌터 강국이라 체감이 덜하다지만, 많은 나라의 사정이 심각하다 들었다.
던전은 계속 늘어나고.
그걸 처리할 헌터가 부족한 상황인데.
혹여, 던전 안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 던전 브레이크(Dungeon Break) 현상이라도 벌어진다면?
‘흐음.’
내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야말로 생난리가 벌어질 거다.
재해(災害).
마치 과거 E급 헌터 당시에 마주했던 오크처럼, 저항할 수 없는 수준의 재앙이 민간을 덮칠 테니까.
“아프리카나 카타르, 엘살바도르 등등 도와줄 나라는 많잖아요. 러시아면 그래도 랭커들 꽤 보유하고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아, 그게.”
내 물음에 눈을 감은 최태승이 침음을 흘렸다.
무언가 굉장히 켕기는 표정.
“솔직하게 말씀해 보시죠.”
“사실 무시해도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하필, 자국민 헌터 중 몇몇이 자율적 지원을 나간 상황입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록 깜깜무소식이에요. 협회도 난감합니다. 해당 헌터 가족들이 계속해서 민원을 넣고 있는 실정이라.”
“…….”
그런 거였군.
역시 협회도 공무직이라는 건가?
공무원에게 민원의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희라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렇겠네요.”
S급 던전을 안전하게 클리어하려면 최소 랭커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헌터 경쟁사회에서 랭커는 무조건 갑(甲)이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협회는 을(乙)이고.
을이 갑을 마음대로 보낼 수 없으니, 내게 이렇게 부탁도 하는 거겠지.
“게다가 가족들이 기사까지 올려가며 민심을 자극하고 있는지라, 상당히 골치 아픈 상황이죠. 후우……. 러 측에서도 최소한 정보라도 알려주면 좋겠는데, 사정은 거기도 마찬가집니다. 던전이 클리어된 것도 아니고, 들어간 정찰대들은 나오지도 않고 있으니, 더더욱 미칠 노릇이고요.”
“흐음, 그래요?”
뿌득, 뿌득!
내가 손가락 마디를 꺾었다.
“어쨌든, 쉽게 말해서. 거기, 상당히 위험한 곳이라는 거네요?”
내 직설적인 물음에 잠깐 멈칫하던 협회장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쿨하게 인정했다.
“……예, 맞습니다.”
“흠.”
고민됐다.
사실, S급 던전은 굉장히 희귀하다.
때문에 많은 랭커나 길드에서 먼저 선점하려 노력한다.
어려운 던전일수록, 그 보상이 달콤하기 때문.
이번에 자율적으로 지원한 헌터도 그런 부류 중 하나겠지.
‘그래서.’
딱히 안타까운 마음은 없었다.
누가 떠밀어 간 것도 아니고, 본인 욕심에 들어간 걸 누굴 탓하랴.
원래 인생이란 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니던가.
나 역시 지금까지 클리어해왔던 던전에 항상 목숨을 걸었다.
그게 바로 헌터의 웃픈 숙명.
‘하지만.’
이번엔 뭔가 냄새가 났다.
구린 냄새.
아무도 살아 나온 자가 없다는 건 둘째 치고.
러시아 랭커들이 S급 던전을 가만히 내버려 둔다?
‘재밌어 보이는데.’
문득, 소름이 돋았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쫄았을 법한 상황에.
이런 감정이 든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너무 큰 세상을 본 거지.’
델라일라를 통해 드넓은 우주를 잠깐이나마 구경했다.
그에 비하면, 이런 던전 하나쯤은 너무도 하찮다.
“주동훈 씨에게 강요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그저 이제 대한민국에 넷뿐인 하이 랭커시니…….”
하이 랭커는 100위 안 랭커들을 칭하는 말.
“그저 한번 물어본 것뿐입니다. 켕기시면 시원하게 거절하셔도 좋습니다.”
“아뇨, 아뇨.”
내가 고개를 저었다.
“가는 거야 좋습니다. 부담도 없고요.”
어차피 내가 던전을 빼는 스타일은 아니니.
S급 던전 정도는 우습게 찜쪄먹을 ‘델라일라의 시련’도 최고 기록으로 거뜬히 통과했었고.
“단.”
내가 씩 웃었다.
“저도 조건 하나만 걸어도 되겠습니까?”
능력이 있다고 막 도와주면.
사람들을 그걸 호구(虎口)라 부른다.
“조건…… 말입니까? 예, 물론입니다!”
최태승이 벌떡 일어섰다.
마치 찔러만 봤는데, 진짜 도와준다고 말할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한국 협회가 할 수 있는 선이라면 무조건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협회장이 당장에라도 대가리를 박을 기세로 일어서자, 내가 황급히 그를 진정시켰다.
“아니, 아니. 일단 진정 좀 하시고요.”
“아, 예, 예……! 그래야지요.”
“혹시, 고대 마법의 파편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고대 마법의 파편이요?”
그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쳇.’
역시 글렀나?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매개체 ‘마법 낙제생의 일기’(S급)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재료.
나는 이걸 찾기 위해 협회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협회의 동맹은 끈끈하지.’
세계 협회를 중심으로 각국이 정보를 긴밀하게 연결하고 있다.
또한 그 헌터들의 정보를 관리하는 부서가 있기에, 분명히 큰 도움이 될 터.
“혹시, 세계 협회의 힘을 빌려, 이거에 대한 힌트나 흔적이라도 좀 조사해 볼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필요한 거라.”
상부상조(相扶相助).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다.
한쪽만 도움을 주는 게 아닌, 양쪽 모두가 도움이 되는 이상적인 관계.
“맡겨만 주십시오, 주동훈 씨.”
협회장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오는 게 있으면 당연히 가는 게 있어야 도리 아니겠습니까? 이번 건만 도와주신다면, 제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알아보겠습니다.”
* * *
하루가 흘렀다.
협회장을 돌려보낸 나는 뼈다귀들과 함께 간단히 몸을 풀었다.
물론, 새로운 아공간 ‘무릉도원’의 광활지 외곽에서.
“주군. 엘드린은 오지 않는 겁니까?”
후웅! 툭!
창을 내려둔 태양이가 물어왔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원정에 엘드린은 빠진다.”
도시가 완성될 때까지, 엘드린의 병력은 드미르를 돕게 할 생각이었다.
숲을 정리하는 데 엘프만 한 종족이 없기도 하고.
이제 엘드린 하나 정도는 빠져도 될 만큼 여유로워지기도 했다.
왜냐.
카덴과 다나가 있으니까.
“마스터.”
쿠웅!
카덴이 다가와 방패를 바닥에 내리찍으며 무릎을 굽혔다.
그는 어느새부턴가 호칭을 ‘은인’에서 ‘마스터’로 바꾼 상태였다.
– 크하하, 주인! 내가 저들에게 일러뒀네! ‘은인’은 개뿔! 모름지기 이곳 세상은 수하에게 ‘주군’이나 ‘주인’, 혹은 ‘마스터’라는 호칭으로 불리길 좋아한다더군! 주인이 좋아할 거라 하니까 곧바로 적용하겠다 하더군!
드미르가 따로 교육했다나?
“…….”
뭐, 호칭이야 상관없긴 하지만.
스켈레톤끼리도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신선할 따름이었다.
“그래.”
내가 답하자, 카덴이 고개를 들었다.
“저는 혁명을 통해 군대를 이끌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맡겨주시면, 수하들에게 진형을 교육하고 싶습니다.”
“오, 그래?”
맞네.
카덴 전직이 총사령관이었지?
그것도 빈약한 평민군으로 정예 천년 제국을 무너뜨린 최상위급 총사령관.
“그럼 앞으로 네가 참모다. 태양이 옆에서 잘 도와줘.”
“명 받들겠습니다!”
벌떡!
카덴이 일어서자, 쿠웅! 주변 다른 뼈사들이 방패를 내리찍는다.
와우.
벌써 저런 거까지 훈련한 거야?
“다나.”
“예, 마스터시여!”
내가 부르자, 다나 역시 달려와 자세를 낮췄다.
“다나도 카덴의 옆에서 잘 도와줘.”
“저희 신도는 오직 마스터의 군대를 위해 기도할 것이옵니다.”
다나의 다짐.
카덴도 다나도.
굉장히 든든했다.
“끌끌, 이런 식의 훈련은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노인이 흡족하게 웃었다.
“스케일도 커지고, 모름지기 각자 한 세계의 절대자로서 자신만의 능력이 있으니 마음에 든다.”
“그렇죠?”
“그러하니.”
노인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저 뼈다구들은 제쳐두고, 오직 네 만술(萬術)을 위해서만 전력을 다해 지도하겠노라.”
“좋습니다.”
이번 시련에서 확실히 느꼈다.
뼈다귀들의 성취도 중요하나, 내 힘 역시 중요하다는 걸.
스킬이 막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뿐더러.
결국 내 몸을 지키는 건, 수하들이 아닌 내 실력이다.
“아, 우선. 그전에 잠시만요.”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기 전.
훙! 훙훙!
나는 허공에 주먹질하는 한 뼈다귀를 바라봤다.
‘뼈팔이.’
[이름 : 뼈다귀8] [기력 : 600/600] [고유 능력 : 스켈레톤 로드] [클래스 : 무투가] [등급 : S] [힘 : 60] [민첩 : 60] [체력 : 60] [마력 : 60] [기술 : 60] [보유 스킬]-‘상급 격투술’(Lv.1)
-‘스켈레톤 소환’(Lv.Max)
녀석의 클래스는 예상대로 ‘무투가’였다.
스켈레톤 로드여서인지, 스탯은 고르게 60으로 균등 배분되어 있었고.
스킬은 기본적인 것, 단 두 개뿐이었다.
“네 본체는 또 어떠한 한을 가지고 있을진 모르겠다만…….”
녀석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일단, 열심히 하고 있거라. 나중에 꼭 풀어줄 테니.”
삐걱!
훙! 후우웅! 훙!
녀석이 혼자 수련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오케이.”
이제 되었다.
태양이와 카덴의 주도 하, 스켈레톤들의 훈련이 시작되었고.
“이제 네놈도 시작해야지?”
노인이 창을 들었다.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간은 딱 하루.’
정비만 마치고 곧바로 러시아로 뜰 예정이었다.
협회 측에서는 일주일이라는 기간을 줬지만.
그래도 누군가 고립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데, 빨리 가봐야지.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화르륵!
내 손에서 신살(神殺) 창이 붉게 타올랐다.
“그래. 이놈아. 오늘은 창술부터 점검해 보자꾸나!”
또다시.
지옥 훈련의 시작이었다.
* * *
블라디미르 로디긴.
러시아 마피아에게 가족을 잃고, 마피아 소탕만이 생의 목표가 된 남자.
공간 술사(Spacian)라는 이명이 생기고, 단박에 무려 랭킹 601위에 안착한 헌터.
“…….”
그는 멍한 눈으로 눈앞의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드득!
이가 갈렸다.
피가 끓었다.
– 인마들아! 이 형님이 왔도다!
– 다들 TV 봤어? 내 랭킹 봤냐고!
– 내가 해낸다고 했지?
시원시원하게 웃으며, 본거지에 공간술을 사용해 들어온 갱단의 두목.
그가 맞이한 광경은 비참하고 끔찍한 학살의 현장이었다.
“이게, 무슨.”
누가 저질렀는지는 말해 입 아팠다.
평소 자신들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던 마피아들이겠지.
“……이 튀겨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이……!”
또 다.
또였다.
마피아에게 가족을 잃은 후, 간신히 숨겨왔던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다.
애써 밝은 척했던.
항상 시원시원하게 웃었던 마피아 두목의 입가가 비틀어졌다.
“또…… 내 가족을 건드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분노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저기 떨어져 있는 팔은 자신이 가장 아꼈던 동생의 것이었고.
저기 입가에 피가 굳은 채 죽어 있는 시신은 자신을 잘 따르던 부하 중 하나였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블라디미르가 입술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분명 떠나기 전에, 공간술을 이용해 은신처로 숨겨두고 왔다.
인적이 드문 숲 지하에, 애초에 입구 자체를 만들어 놓지 않은 은신처.
절대 새어 나갈 수가 없는 정보였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지 않은 이상.’
그의 눈빛이 냉혹하게 가라앉았다.
간신히 슬픔의 감정을 몰아낸 블라디미르는 천천히 시신의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