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13)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13화
첫 마법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조심스럽게 눈알을 굴리는 아린.
따스한 커피와 우유를 내온 나는 그녀의 모습을 아빠 미소로 쳐다봤다.
‘진짜 정신 나간 놈들이긴 하구나.’
엘로이즈든, 패트릭이든.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갔다.
어떻게 저 귀여운 아이를 못살게 굴고, 괴롭힐 수 있을까?
이건 절대 내 소환수라 그런 게 아니다.
다 떼어 놓고, 외관상으로만 봐도.
섣불리 건들기 어려울 만큼 고귀하면서도 귀엽게 생겼으니까.
게다가 저 눈망울 좀 봐라.
혹여나 내가 앤드루 그 양아치한테 어떻게 될까 봐 걱정하는 눈빛.
‘아오, 귀여워.’
아린은 몸을 떨고 있었다.
입을 뻐끔거렸으며, 목울대를 울렁였다.
그러고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작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건 자살행위인데…….”
알고 있다.
원래 귀족들이란 게, 패배를 죽음보다 끔찍이 여기는 족속들 아니던가.
혹여 내가 앤드루 패트릭을 박살 낸다 해도.
가문의 다른 일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곳 던전에서 아린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나는 죽어도 그녀의 편이어야 한다.
그것이 목숨이 위태로운 일이라 해도.
“그래.”
덜크렁.
탁자에 커피잔을 내려놓은 내가 웃었다.
“내가 그렇게도 걱정되니?”
“당연한 거 아니에요?”
아린이 발끈하듯 반응했다.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어요. 왜 굳이 저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거신 건지. 제게 바라는 게 뭔지. 그때 처음 보았을 때처럼 왜 자꾸 제게 관심을 보이는 건지.”
“저번에도 말했잖아.”
후르릅!
나는 집어 든 커피를 목에 넘겼다.
“나는 네 담당 교수다, 아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고요!”
“그게 왜 말이 안 되나.”
어찌 보면.
아린의 과거는 ‘나’의 과거와도 비슷했다.
E급 헌터로서, 아무리 노력했음에도 일말의 성장조차 없었던 그 지옥 같은 시간.
그때, 기소율을 만났고 노인을 만났다.
나만의 기연.
아린이라고 그걸 못 만날 이유는 없는 거잖아?
비록, 이 세계가 그녀의 과거가 잔존하는 허상이라지만.
“세상에 말이 안 되는 건 없단다. 아니, 정확히는 말도 안 되는 것 천지지. 네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도, 이 넓은 세상에서 하필 우리 둘이 이곳에 앉아 있는 것도 사실 엄청난 우연이거든.”
“…….”
“사실, 나도 좀 걱정이 되긴 해.”
“교수님이요……?”
아린의 눈동자가 커졌다.
내가 싱긋 웃었다.
“그래. 사실, 내가 마법을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거든. 솔직히 앤드루인가? 그놈보다 못할걸?”
“……에, 예?”
* * *
아린은 황당했다.
결투는 마법으로만 싸워야 한다.
그런 교수가 마법을 잘하지 못해?
그럼 무슨 자신감으로 그 결투를 받아들인 거야?
동시에, 더 웃긴 말을 한다.
“그래서 말인데. 나 마법 좀 가르쳐 주라.”
“…….”
교수라는 사람이.
학생인, 그것도 최악의 낙제생인 자신에게 마법을 가르쳐 달란다.
‘역시.’
놀리는 거였다.
설마 앤드루가 포섭한 걸까?
왜 진짜 잔인한 사람들은.
더욱 큰 고통을 선사하기 위해 일말의 희망을 불어넣어준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이 역시 말도 안 되는 억측이긴 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어떻게 교수님을…….”
“넌 모르겠지만, 네 재능은 상상 이상이다, 아린.”
“……?”
“어쩌면 이곳 마탑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을 우습게 여길 정도로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게 무슨…….”
아린은 혼란스러웠다.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오늘 아침부터 있었던 일들이 그냥 꿈만 같았다.
교수님을 믿을 수도 없었지만.
믿지 않는 것도 싫었다.
이 교수님마저 거짓말이면, 정말 심적으로 힘들 것만 같았으니까.
‘후.’
속으로 한숨을 내쉰 아린의 시선이 연구실 주변을 스쳤다.
그러고 보니.
굳이 위험까지 무릅써 가며 교수님을 찾아왔던 이유는 단 하나.
이 사람이 「후원자」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어디 단서라도 있을까 싶어, 주변을 스캔하던 그녀의 눈망울이 커진 것은 그때였다.
‘어?’
풀어헤쳐 있는 가방, 각종 책, 그리고 기초 마법 재료…….
‘마법 재료……?’
그녀의 시선이 어느 한 방향에 고정됐다.
무언가 익숙한 마법 재료들.
‘저건.’
비슷했다.
아니, 아예 똑같았다.
매일 밀실 앞에 놓여 있는 그것들과.
‘조잡하게 엮인 끈과 묶여 있는 개수까지 그냥 판박이잖아.’
누가 봐도 [나 후원자니까 알아주세요~]라고 하듯 대놓고 늘어져 있었다.
게다가.
저기 구석 탁자 위 널브러져 있는 식기와 매콤한 향은?
아린이 멍하니 식기를 들여다봤다.
“…….”
100%였다.
매일 자신에게 가져다주던 희한하게 생긴 음식 중 하나.
생소한 무늬의 식기.
‘이 사람이야.’
계속해서 자신에게 관심 가지고 돌봐줬던 사람.
후원자.
두근!
왜일까.
뭐가 진실인지 알지 못함에도, 아린은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솔직히 예상은 했다.
태어나서 자신을 위해 따듯한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사람이 어찌 한날한시에 둘이나 나올 수 있겠는가.
“좋아요…….”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되었든.
이 사람이 원한다면 도와주고 싶었다.
당장, 일주일 후.
앤드루와의 결투가 열릴 테니까.
* * *
신임 교수 훈 오르첸 vs 앤드루 패트릭.
소문은 널리 널리 퍼졌다.
학생들에게도.
교수들에게도.
그리고 4대 가문에도.
“쯧쯧, 어쩌자고 그런 일을 저질렀담. 젊은 나이의 혈기는 이해하네만……. 명복을 빌겠네.”
“아니, 훈 교수님! 설마 미치신 거죠? 제가 그렇게 그 아이를 주의하라 일렀건만!”
주변 교수님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이런 식이었다.
나의 패배를…….
아니, 나의 죽음을 예상하는 느낌.
“끌끌, 네놈도 나처럼 거의 고인이 다 되었구나. 다들 이미 상 치르러 가는 표정들인데?”
‘그러겠죠, 뭐.’
나는 내가 벌인 결투의 의미를 실비아에게 다시 들었다.
결론은, 그냥.
나 혼자서 패트릭 가문 전체에 칼을 들이민 느낌이었다.
‘저번에 엘로이즈 쪽 가주도 되게 세 보이던데, 패트릭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잘하면 나중에 그쪽 가주랑도 싸울 수도 있겠는데요? 결투랍시고.’
사실, [있겠는데요]가 아니라 100%였다.
실비아가 말하길.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나?
“그나저나 이놈아.”
‘예?’
“이 세계 말이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저번에는 대도(大盜) 같은 놈만 보다 보니 약한 세상인 줄 알았다만, 생각보다 강자가 많아. 세계 랭킹 게시판도 없는데 말이다.”
‘아.’
그러네.
언뜻 느끼기에, 4대 가문의 가주들은 하이 랭커 급이었다.
그것도 지구의 마탑주, 소피아랑 비슷하거나 살짝 아래인 수준의?
‘하지만 세계 랭킹 게시판이 없어…….’
그 말은 셋 중 하나일 거다.
첫째.
이곳 세계의 기준이 아직 우주가 원하는 수준의 힘에 도달하지 못한 것.
그럴 수 있다.
아무리 소피아 급 힘이라지만, 그 수가 지구보다 현저히 적으니까.
둘째.
마탑 자체를 하나의 이레귤러(irregular)로 보는 거다.
마치 「숲과 바위」 세상의 거대마룡처럼 말이다.
사실, 전투력만 따지고 보면 거대마룡 하나가 여기 세상 하나쯤은 다 발라먹지 않을까?
과거 만술 노인의 세상도 그렇고.
셋째.
어느 정도 전투력이 도달한 세계만 게시판이 생긴다는 델라일라의 가설이 틀린 것일 수도 있었다.
델라일라도 우주 여행자일 뿐.
이 신비한 기현상을 주도하는 존재는 아니니까.
‘뭐.’
이 셋 말고.
또 다른 이유에서일 수도 있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인을 바라봤다.
‘만만치 않은 건 애초부터 각오했어요. 이 던전. S급인 데다가 측정 불가급 스테이지니까요.’
“그건 그렇지. 그러니, 어서 시작하거라. 아이가 기다리잖냐.”
‘예, 그래야지요.’
꿀꺽.
침을 삼킨 내가 위치한 곳은 바로 아린이가 숨어 있던 밀실.
「후원자」임을 밝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밀실에 직접 행차했고.
아린이는 내가 시킨 대로 등을 돌린 채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노인이 말했다.
“시키는 대로 하거라. 내부 혈도에 쌓여 누적된 노폐물들을 기운으로 태워내는 심법인데……. 태청공재만성대법처럼 효과가 좋은 건 아니다만, 갈피를 못 잡는 저 아이에게 길을 밝혀줄 게다.”
어차피 모든 술(術)은 하나로 귀결된다.
마법이나 무술이나 기운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똑같고.
그에 따라 심법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게 노인의 생각이었다.
스윽!
내가 아린의 등 뒤에 손을 대었다.
내 몸에 오버랩되듯, 노인 역시 함께 아린의 등 뒤에 손을 올렸다.
우우웅!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렸다.
* * *
“…….”
눈을 가린 아린의 심장이 뛰었다.
스윽!
눈을 감아 예민해진 등 뒤로 교수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마탑이 밉지? 세상이 밉지? 가문에 복수하고 싶지?] [먹어라.] [그리하면 내가 도와주겠다.]후원자.
신임 교수님은 쪽지에 썼던 말을 잊지 않았다.
도와주겠노라고.
어떻게든 마법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말도 안 돼.’
고작 이런 자세로 앉아 있고.
등 뒤에 손만 댄다고 쓸 수 없던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준다고?
지금껏 만나왔던 그 어떤 약팔이보다 더 신뢰가 안 가는 말이었다.
“…….”
하지만 왜일까.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상대는.
유일하게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건 사람이니까.
그게 거짓말이라도.
혹여나 잘 안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천천히 심호흡하거라.”
등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후우, 후우.”
긴장한 아린이 깊게 숨을 마시고 뱉었다.
“놀라지 말고 느껴지는 기운을 받아들여라. 앞으로 네가 친숙하게 느껴야 할 기운들이니.”
움찔!
아린의 몸이 살짝 떨렸다.
낯선 기운이 등 뒤로부터 유유히 밀려 들어왔기 때문.
‘이게 뭘까.’
온기 가득한 기운이 자신의 내부를 뒤덮었다.
그래.
이 기운은.
비슷했다.
자신이 항상 끌어올리려 했던 ‘마력’과.
‘마력’이 순수하다면, 이 기운은 ‘마력’보다는 좀 더 거칠었다.
까끌까끌했다.
쿠웅! 쿵!
“……으읏!”
아린의 입술에서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들어온 기운이 천천히 퍼지며 내부를 건들 때마다 통증이 있었기 때문.
“막혀 있는 길을 뚫는 거다. 처음 보는 거겠지만, 한 번만 믿어봐라.”
“…….”
아니.
처음 보는 방식은 아니다.
입을 꾹 다문 채, 고통을 참으며 아린은 생각했다.
‘책에서 본 적 있어.’
그녀는 서고 속에서 잡다한 수많은 책을 읽었다.
그중에는 이곳 마도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관한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분명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세계도 있다고 했었지…….’
보통 스승 되는 자가 제자의 능력을 상향시켜 줄 때 이용된다고 했었나?
솔직히 놀라웠다.
서고에 따르면, 꽤나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 했었으니까.
‘어디.’
뭐가 되었든.
마음대로 해보세요.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으니까요.
그는 자신의 밀실을 알았고.
언제든 자신을 해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때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믿는 것뿐.
“…….”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흘렀다.
내부에서 거미줄처럼 쪼개진 기운들은 오랜 시간 동안 몸 전체를 천천히 유영했고.
거기서 1시간이 더 흘렀을 때에야.
“끝났다. 이제 눈 떠도 좋다.”
뒤에서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후우우우!”
아린이 깊은숨을 내뱉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으며.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렸다.
“어디…… 한번 마법이란 거, 써 보거라.”
“……마법을 쓰라고요?”
이렇게 뜬금없이?
“그래, 뭐가 되었든. 이제 해봐.”
“……?”
신기한 기운이 몸을 한 바퀴 돈 건 알겠는데.
마법 한번 써본 적 없는 자신에게 마법을 쓰라니.
그게 무슨 말일까?
“제가 무슨 마법을…….”
웃긴 게, 천성이 마법사이긴 한가 보다.
한 번도 성공해 본 적 없던 마법이지만, 수천 번 넘게 시도해 봤던 그것.
「파이어 볼」의 술식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오르는 걸 보면.
아린은 본능적으로 손바닥을 내밀며, 속으로 술식을 외웠다.
우우웅!
몸 내부에서 마력이 끓어올랐고.
화르륵!
“……어?”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불줄기.
그녀의 손바닥 위에 생전 처음 보는 자신의 불줄기가 이글거리고 있었으니까.
“……마, 마법이 돼?”
진짜로?
심법의 효과일까.
아니면, 기운의 따스함으로 만술 노인이 말했던 심리적 요인이 풀리기라도 한 걸까.
그날 소녀, 엘로이즈 아린에게 기적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