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19)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19화
기억의 편린
엘로이즈 아린.
명가(名家) 엘로이즈 가문의 막내이자.
추후 성인이 되어 4대 마탑주에 오른 희대의 천재 마법사.
‘아아, 나는.’
그래.
붉은 머리, 새하얀 피부의 앙상한 소녀는 분명 마탑주였다.
그것도 역대 최악이라 불릴 만큼 극악무도했던 마탑주.
‘근데…….’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이지?
“으아아아!”
“무, 무너진다! 다들 피해! 관중석이 무너져!”
“미, 미친! 4대 가문 마법사들은 뭐 하는 거야? 이건 또 무슨 상황이고?!”
“몰라, 일단 도망쳐!”
여기는 20층의 경기장 아니었나?
귀족들이 결투할 때 사용하곤 하던 곳인데.
쿠구구구!
그 경기장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크, 크윽. 쿨럭!”
물로 만들어진 창에 가슴이 뚫린 남자.
정확히는 폐가 뚫린 상태로 입가에 피를 흘리는 남자는 또 무엇이던가.
저벅, 저벅.
아린이 허리를 곧게 펴고 경기장을 걸었다.
야윈 몸이었지만, 그 걸음걸이에는 분명 힘이 실려 있었다.
한 세계를 지배했던 절대자만이 지닐 수 있는 기세.
마탑주의 걸음이었다.
“……크윽!”
“이, 무슨……?! 어찌 아린이에게서 저런 마력이……!”
“마, 마치 마탑주를 보는 것 같다! 아니, 분명 그 이상이야!”
“가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아린의 주변으로 휘몰아치는 막대한 마력에.
4대 가문의 마법사들이 당황한 낯빛으로 지팡이를 들었다.
‘저들은.’
아린은 그런 그들을 감정 없이 바라보았다.
‘분명…… 금서의 마법을 통해 영원히 봉인시켰던 자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앤드루.
자신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역겨운 엘로이즈의 가주.
그녀는 순간 구역질이 남을 느꼈다.
아, 아아.
그런가.
이것은 악몽인가?
아니면 과거의 반복인가?
“일단 제압해라!”
“마고르! 심상치 않으니까 최선을 다해!”
“걱정하지 말게나!”
콰가가가가!
장로급 마법사들이 펼치는 마법이 아린을 향해 쏘아졌다.
과거였다면 맞는 순간 소멸을 각오해야 했을 만큼 강력한 마법들이었다.
하지만.
스윽.
지팡이도 없었다.
그저 손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멈칫!
쏘아지던 마력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무, 무슨?”
“뭐지? 마력이 왜 통제를 거부하는가!”
그리고.
[‘리버스’(SS급)를 작동합니다.]아린이 손을 내림과 동시에.
콰가가가!
쏘아지던 마력들이 그대로 시전자에게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미친?”
“제기랄, 막아!”
당황한 마법사들이 황급히 실드를 펼쳐보았지만.
본인들이 성심껏 준비한 마법들을 곧바로 막아내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그야말로 압도적인 마력 차.
그것도 상대가 장로에 가주까지 있다는 걸 고려하면.
미친 수준의 격차였다.
악몽이든, 반복이든.
변하는 건 없었다.
– ……못난 년.
– 가문의 수치.
– 쪽팔리게 하지 말고, 그냥 죽은 듯 살아. 나는 너 같은 막내 둔 적 없으니까.
아린에게 그들은 가족보다 못한 존재.
엘로이즈 가문뿐만 아니라, 이들은 다 똑같은 존재들이었다.
오직 실력이 권력이며, 실력을 갖춰야만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역겨운 가문.
이 빌어먹을 마도 세계에는.
제2의 아린, 제3의 아린이 즐비했다.
“다들 힘을 합하라! 마, 마물이다!”
“아니다! 이건 금서다! 서고의 지박령이 결국, 금서의 마법을 건든 게야!”
“사살하라! 가문의 마법사들은 전부 튀어나와 엘로이즈 아린을 격살하라!”
관중들이 도망가고.
마법사들이 몰려들었다.
“…….”
아린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자신이 마탑주의 힘을 가졌다지만.
저렇게 많은 마법사가 모여들면 힘들어진다.
‘물론.’
금서의 마법을 쓰면 해결된다.
저벅.
걸음을 지속하던 아린이 손을 뻗었다.
그곳에서 새하얀 기운이 세 갈래로 분출되었다.
[‘마력 폭파’(SS급)가 작동합니다.] [‘마력 폭파’(SS급)가 작동합니다.] [‘마력 폭파’(SS급)가 작동합니다.]분출된 기운들은 하나하나 뻗어 나가, 마법사들의 심장에 박혔다.
하나같이 장로급 마법사들이었다.
[해당 존재의 마력을 봉인합니다.] [봉인이 풀릴 때까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끄, 끄아아악!”
“이, 이게 무슨……! 마법을 봉인하는 마법이라고?”
“어찌 불 하나 피우지 못하던 저 아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법을 쓴단 말인가!”
안다.
이 마법을 쓰면.
자신은 일주일 후에 죽는다는 걸.
심장에 축적된 모든 마나가 그녀의 몸을 집어삼킨다는 걸.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미 죽은 몸인데.
‘이미 죽은 몸?’
마법사들이 쏘아대는 다양한 마법 세계 속에서.
“끄으.”
엘로이즈 아린이 관자놀이를 부여잡은 건 그때였다.
사실.
아까부터 눈에 밟히는 존재가 있었다.
입가에 피를 흘리며,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는 자를 보는데 왜.
찌릿!
왜, 심장이 아픈 걸까?
왜, 마치 바늘 수십 개로 연달아 쑤시기라도 하듯 욱신거리는 걸까?
도대체 왜?
그 순간.
– 나는 네 담당 교수다, 아린.
– 이 넓은 세상에서 하필 우리 둘이 이곳에 앉아 있는 것도 사실 엄청난 우연이거든.
– 먹어라. 그리하면 내가 도와주겠다.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듯 들어왔다.
뭐지?
우연?
담당 교수?
왜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도는 걸까.
왜.
또륵.
눈물이 흐르는 걸까.
이건.
분명 죽기 전에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인데.
“죽여라!”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난사해!”
“아린, 저 여자는 더 이상 엘로이즈가 아니다! 오르첸 가문의 사악한 사술로 만들어진 괴물일 뿐이다!”
악의 가득한 마법사들의 외침 속에서.
“…….”
아린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기억과 기억이 맞물려 혼란스럽게 뒤섞였다.
숨을 쉴 때마다 헛구역질이 났고, 이마에서부터 뒷목까지 두통이 몰려왔다.
호흡이 곤란했다.
‘다 꺼져라.’
후웅!
아린이 신경질적으로 팔을 뿌리쳤다.
동시에.
화르르륵!
온 공간에 등장한 고온의 불줄기가 바닥을 향해 내리꽂기 시작했다.
파이어 샤워.
바닥에 떨어진 고온의 불은 바위를 녹여 용암을 만들어냈다.
“이…… 무슨!”
“워터, 패트릭의 마법사들은 워터 실드를 펼치게! 불을 막아!”
막긴.
뭘 막아.
콰가가가가!
아린이 본능적으로 손을 떨치자, 땅이 뒤집히고 대기가 비틀렸다.
“크으으윽!”
장로급 마법사들이 지팡이를 들어 힘겹게 막아냈다.
완전히 개화한 엘로이즈 아린의 힘은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아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파.
신기하게 아파.
불에 타는 것보다도.
죽음을 무릅쓰고 저들과 싸우는 것보다도.
심장이 너무나 아파.
“쿨럭!”
폐가 뚫린 채, 피를 쏟아내는 저 남자의 모습을 보면 말이야.
어째서?
어째서 가슴이 이렇게 아픈 거야?
“…….”
아린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왜.
왜 어렸을 적 트라우마보다 더 괴로운 느낌이지?
‘아니, 그전에.’
그는 누구지?
그 순간.
또다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흐음?
– 네 이름은 앞으로 뼈다귀5, 뼈오다.
– 어어, 세상에? 마법을 쓰는 뼈다귀라니……!
– 뼈오! 기력 다 써도 좋으니까 파이어 볼 갈겨!
– 그렇지! 아~주 잘한다! 뼈오! 방금 완벽했어! 칭찬해!
‘주동훈.’
주인의 이름.
아무 기억 없는 자신을 위해 계속 신경 쓰고 훈련을 시켜줬던 사람.
자신을 아꼈던 사람.
이상한 풀숲에서 무기를 쥐어보며 휘둘러 보라고 하던 주인의 모습부터.
웬 돼지 형상의 괴물 앞에서 각성하더니, 본인에게 지팡이를 쥐여주던 모습.
그 후, 겪었던 수많은 여정, 전투, 시련까지.
‘뭐지?’
마탑주의 기억은 뭐고.
뼈오라는 스켈레톤의 기억은 또 무엇인가.
아린은 혼란스러웠다.
기억과 기억이 뒤섞여.
뼈오가 서고에 들어가 책을 읽었고.
아린이 주인의 소환에 응했다.
말도 안 되는 혼잡한 기억 사이에 또 새로운 기억이 밀려들어 왔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린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엘로이즈의 행사가 있던 그 날 밤.
주인을 본 기억이 있었다.
아무 가능성 없는, 낙제생인 자신에게 상담해 주겠다고 한 신임 교수.
배고프고 돈 없는 자신을.
겁이 나 쳐내는 자신을 끈질기게 보살폈던 한 후원자.
‘아아아.’
그래.
교수님이 주인이고.
주인이 교수님이었다.
무언가.
흩어져 있던 퍼즐이 하나둘 맞추어 가는 느낌.
아린은 깨질 듯 아팠던 두통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안 돼.”
그 순간, 아린의 심장이 울컥 아파져 왔다.
기억이 물밀듯 계속해서 흘러들어왔다.
들어온 기억들이 천천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사내.
“안 돼……!”
무심코 외침이 튀어나왔다.
마침내 그녀는 모든 정황을 깨달았다.
그날 밤.
터벅터벅 걷던 골목에서 교수님이 왜, 어떤 마음으로 다가왔는지부터.
서고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비밀 장소였던 밀실을 알았는지까지.
왜, 자신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건지 아린은 그제야 깨달았다.
“나를 위해……. 과거의 나를 위해.”
아린의 시선이 다시 주인, 아니, 교수님을 향했다.
피를 흘리며, 생기가 점차 사라져가는 교수님의 모습.
“아, 안 돼요! 죽으면 안 돼요, 교수님!”
아린이 교수님을 향해 달려갔다.
안 된다.
주인은…….
아니, 교수님은.
고작 기억 속의 자신을 구하고자,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다 꺼져라!”
콰가가가가!
그녀가 미친 듯이 마력을 폭발시켰다.
기억 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마법을 꺼내어 저항했다.
하지만, 장로급 마법사를 주축으로 뭉친 집단의 힘은 위대했다.
마력과 마력을 연결해 무한한 마력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강력한 마법을 쏟아냈다.
아무리 마탑주였던 아린이라 할지라도, 촘촘하게 연결된 마법을 뚫어내는 건 쉽지 않았다.
“안 돼!”
결국, 아린은 공격을 포기했다.
쏘아지는 마법 일부가 교수님에게 향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
“공격하지 마! 멈춰!”
다급함에 외쳐도.
저들이 멈출 리 없다는 걸 아린은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교수님!”
그렇기에 교수님 곁으로 이동한 채, 있는 힘껏 실드를 펼쳤다.
더불어.
금서에 있는 마법들의 목록을 떠올리고 있을 찰나.
흠칫!
그녀의 심장에 어떠한 기운이 잡혔다.
굉장히 막강한.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기운.
4대 마탑주인 그녀에게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존재는 딱 하나였다.
또 다른 마탑주.
‘구스펠하임.’
콰아아아앙!
허공에서 어떤 존재가 엄청난 속도로 유성처럼 내리박혔다.
“…….”
아린이 미간을 구겼다.
기다란 나무 지팡이를 바닥에 꽂고 있는 노인은 그녀가 과거에 상대해봤던 인물.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마탑에 해가 될 존재로구나.”
구스펠하임이 뿜어내는 기운이 상황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꿀꺽!
아린이 침을 삼켰다.
그리고 씹어내듯 중얼거렸다.
“교수님을…… 건들지 마라. 구스펠하임.”
엘로이즈 아린의 반말.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시 죽기 싫으면.”
그 말에.
마탑의 마법사들이 입을 벌리고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