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67)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67화
파괴룡 비나사
“크하하하! 어떤가, 주인! 마음에는 드는가?”
망치를 어깨에 짊어진 땅딸보, 드미르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 그의 뒤에는 엘드린과 아린, 그리고 김진아가 서 있었다.
“주인을 생각하며 만든 디자인일세! 하하, 주인 하면 용, 용 하면 주인 아니겠는가?!”
“500년 원수였던 거대마룡의 최후는 아직도 가슴 속에 생생하답니다, 주인님.”
드미르와 엘드린.
그리고 그들의 원수 거대마룡(巨大魔龍) 드루건.
“대단하네.”
뒷짐을 진 채, 공방 ‘드엘’의 풍광을 눈에 담은 나는 찐으로 감탄했다.
‘망치를 들어봤기에 알아.’
저 조각이.
저 설계가.
얼마나 어려운지.
본래 알면 알수록 더 감동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물론, 저렇게 미친 존재감의 디자인이면 일반 사람들도 그 감흥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만, 내가 느끼는 건 또 달랐다.
“이건…… 굉장한 작품이야, 드미르.”
내가 감동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누구도 보지 않는 저 작은 비늘 한 뼘에도 노력과 정성을 다했구나……. 아아, 장인의 숨결이 느껴져.”
무엇보다.
저것을 만들면서 나를 떠올렸다는 게 더욱 큰 감동 포인트였다.
저 예술 작품이 ‘내 것’이라는 것도 심장을 쿵쿵 뛰게 했다.
저런 것에 가치를 매기면,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 아닐까?
“하하, 천년한철에 아다만티움과 오리할콘을 소량 섞었다네. 황동색 초금속의 빛깔은 용의 모습을 조금 더 생생하게 만들어주지.”
“크으.”
“게다가 저길 보게.”
드미르가 망치로 포탈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두 용 사이에 절묘하게 설치되어 있는 하나의 단(壇)이 보였다.
차갑고 오연한 달빛처럼.
영롱하고 투명한 빛깔의 제단이었다.
“기억나는가? 옛날, 드루건에게 금제를 걸었던 그 제단을?”
“……기억하지.”
드미르의 연금술과 엘드린의 주문 의식을 절묘하게 합쳐 축조했던 제단.
그들은 그곳에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용에게 파괴의 금제(禁制)를 걸었었다.
“주인이 요구했던 보안 문제를 주문 의식으로 해결했네. 이 작품을 관람하는 대중들은 버프를 받는다고 좋아하겠지만, 사실 엘드린의 주문 의식은 인과율이거든.”
인과율(因果律).
모든 힘에는 반드시 모종의 대가가 따른다는 우주의 법칙.
“이 작품을 보고 힘을 받아 갈수록, 인과율이 쌓이는 개념일세.”
“아.”
내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손님들이 오면 올수록 제단을 지키는 힘이 더 강해진다는 말이지?
누구 생각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똑똑했다.
이 정도면 거의 인과율을 비틀어버린 수준 아니던가.
“그런 게 돼?”
내가 묻자.
“어렵고 복잡하지만, 가능은 하더라고요. 제가 살면서 배웠던 모든 노하우를 녹였답니다.”
엘드린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 외 수많은 의식이 들어갔어요. 기존에 걸려 있던 경보나 쿨링 등의 온도 조절은 기본이고 엘로이즈 아린께 요청해서 공간 마법도 걸어두었죠.”
“……공간 마법이면.”
“저 건물에 들어가면 보이는 것보다 내부가 훨씬 넓답니다.”
“아.”
옆에서 배시시 웃는 아린이 유난히 귀여워 보였다.
참고로.
쉬는 동안 모든 소환수들은 드미르나 엘드린처럼 무릉도원에 풀어놓은 상태였다.
그들도 인격체.
기력이 다할 때까지 알아서 자율 훈련을 하라는 뜻에서였다.
내가 쉰다고 소환수들까지 쉬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다들.”
환상적인 광경의 예술 작품을 보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장관!
“다들 고생했어. 진심으로.”
“하하, 주인! 고생이랄 게 뭐 있겠는가!”
드미르가 양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댄 후, 허리를 틀어 웃어 재꼈다.
“사실 말일세! 난 요즘 너무 행복하다네! 과거 바위 일족들에겐 미안하지만, 살아 있을 때보다 사후의 삶이 더 활력이 돋을 정도야!”
“사후의 삶이라.”
어감이 이상하지만.
좋다면 다행이었다.
“하하, 이제 도시만 마무리 지으면 되겠군.”
스윽!
드미르가 잠깐 내려놓았던 지팡이를 다시 어깨 위로 올렸다.
“좀만 기다려 주게. 여기가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몰입해서 도시 건설에 힘쓸 수 있을걸세.”
오늘만큼은.
드미르가 그 누구보다도 든든해 보였다.
* * *
다음 날.
“흐아암.”
침대가 선사하는 보드라운 감촉을 애써 무시하며, 내가 기지개를 켰다.
“……오늘도.”
반복되는 하루.
일어나서 씻고, 등산한다.
가서 가진 에너지를 모두 알에 털어놓고, 하산한다.
그다음은 무한 휴식.
어차피 기력을 다 뽑아내기에 할 수 있는 여력도 없다.
그저 쉬는 것뿐.
‘문제는.’
이제 좀 물린다는 거다.
원래 사람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일하고 있을 때는 한없이 쉬고 싶다가도.
쉬는 시간이 일정 기간 올라오면 또 일의 욕구가 올라온다고.
지금 내 상태가 딱 그랬다.
‘훈련하고 싶다. 훈련하고 싶다. 훈련하고 싶다. 세지고 싶다, 세지고 싶어.’
벌써 휴식 100일 차.
나는 온몸이 쑤셨다.
근육통으로 쑤시는 게 아니라, 좀이 쑤시는 거였다.
“후.”
하지만, 훈련할 수 없다.
노인이 강경하게 나오기도 했지만.
‘약속이니까.’
나는 어르신을 믿었다.
노인의 말마따나 내가 강해지는 게 ‘한’을 푸는 거라면, 다 이유가 있어서 쉬게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실제로.
점점 달라지는 게 느껴지긴 했다.
‘기운이 뭔가 좀 더 정순해진 느낌이야.’
기(氣)란 천지 만물의 근원이다.
하늘과 땅, 생명과 원소 등, 우주 삼라만상을 포함한 모든 요소의 근원.
나는 그것을 태청이라는 심법을 통해, 입과 코를 통해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선천진기를 제외한 자연의 기운을 나의 그릇에 담는 것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자연의 것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혈도(穴道).
육체 내부에 기가 흐르는 통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여러 불순물이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그 불순물의 농도가 낮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운’ 특유의 탁한 게 아닌, 청량하면서도 깨끗한 것들이 쌓이는 기분이었다.
감각이 알려줬다.
같은 기력 100짜리 독섬을 쓰더라도.
기존의 독섬보다, 지금의 독섬이 훨씬 더 강할 거라는 것을.
– 휴식도 곧 훈련이다.
왜 노인이 그런 말을 했는지, 점점 알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어쨌든.
오늘 하루도 무사히 휴식하기 위해, 나는 정비했다.
양치하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까앙! 까앙!
아침부터 기분 좋은 드워프들의 망치 소리를 들으며 옥상에 나서자.
후우웅!
따스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스슷! 파바바밧!
나는 현란한 스텝으로 그림자를 밟아 산을 올랐다.
절대 이런 건 훈련이 아니다.
그저, 알에 밥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등산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산 정상에, 커다란 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템 : 파괴룡 ‘비나사’의 알.] [등급 : SSS] [종류 : 알]오오, 아름다워라.
묵빛과 하얀빛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흐른다.
서로가 뒤엉키고 섞이며, 일그러지고 변화한다.
전율이 흐르는 광채.
춤을 추는 혼돈!
“그건 그거고.”
도대체 언제까지 처먹을 거냐?
녀석은 진짜 밥도둑, 아니… 기운 도둑 그 자체다.
아무리 먹이고 먹여도 도대체 활성화가 안 된다.
[설명 : 전설 속 파괴룡이 낳은 알입니다.] [효과1 : 일정 기운 이상 머금었을 경우, 활성화됩니다.] [효과2 : 활성화가 되면 용족, ‘비나사’가 탄생합니다.] [효과3 : 비나사는 탄생 후, 처음 본 존재를 부모로 인식합니다.]녀석이 태어나려면 활성화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매번 기운을 넣을 때면.
[기운을 머금습니다.] [아직 기운이 부족합니다.]이런 상태창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제 곧 느낀다.
직감이 말한다.
거의 다 찼다고, 얼마 있으면 깨어날 거라고.
알 내부에서도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내 가슴을 흔든다.
후웅!
내가 손짓하자, 후두두둑! 허공에서 무언가가 생성됐다.
“교수님!”
엘로이즈 아린이었다.
처음엔 뼈로 등장했던 아린이 금세 기존의 모습을 갖추었다.
여리여리한, 하얀 피부의 소녀로.
“헤헷, 교수님이 시키신 대로 제가 서고를 이리저리 뒤적여 봤거든요?”
투욱!
바닥에 착지한 아린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그녀에게는 ‘파괴룡’이 어떤 존재인지 더 자세히 알아보라 명을 해둔 상태였다.
고대 마법의 추종자인 그녀가 [서고를 뒤적인다]라는 행위가 뜻하는 바는 단순하다.
바로 ‘고대 마법’(SSS급)에게 물어본다는 소리.
물론, 그 어마어마한 존재가 직접 나타나서 가르쳐 주는 건 아니다.
그저 그에 맞는 서고의 정보가 자연스럽게 아린에게로 흐르게 된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지, 신기했지만.
– 교수님. 인간은 절대 우주를 담을 수 없어요. 이해할 방법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어요. 마치 개미가 용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아린의 말에 따르면, 그냥 가능한 거란다.
인간이 살아서 숨 쉬고 생각하고 성장하는 것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되는 것.
“그래서, 좀 나왔어?”
“예.”
아린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괴룡은 용족 중에서도 최상위 포식자래요. 태어날 때부터 성좌급 힘을 가지고 있으며, 성장하기에 따라 어마무시하게 성장할 수 있기에, 그 한계가 없을 수 있다 했어요. 그야말로 우주의 기형아 같은 느낌?”
“……그래? 엄청나네.”
감탄했다.
대단할 것 같은 이름이긴 했다만, 용족 중 최강이라니.
그게 나를 따른다는 거지?
괜히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대신 단점도 존재해요.”
“단점?”
“성장하는 것 자체가 힘들대요. 첫째는 그 성장을 위한 경험의 요구치가 무진장 많기 때문이며, 둘째는 워낙 위험한 존재이기에 주변 성좌나 용족들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고 했어요.”
“…….”
“파괴룡을 잘못 길들이거나 폭주시키면 세계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거든요.”
으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사실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힘센 놈을 길들일 수 있다는 건 좋지만, 그것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또한, 내가 감당할 수 없다면?
그건 길들이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된다.
‘내가 봤던 용족은…….’
총 둘이다.
거대마룡 드루건과 탐욕룡 아란발론.
그 둘 다 욕심이 그득했으며, 생명체를 파괴하고 싶어 안달이 난 족속들이었지.
‘그렇다면.’
파괴룡, 비나사.
너는 어떠할 것인가.
저벅, 저벅.
알 앞으로 천천히 걸어간 내가 양손을 그 위에 올렸다.
‘어차피.’
기운을 머금은 이상, 너는 곧 태어난다.
어차피 멈출 수 없는 거다.
내 소중한 SSS급 존재를, 혹여 모를 위험함 때문에 묻어두거나 파괴한다?
그게 자기 아이를 버리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너는.’
내가 속으로 다짐했다.
‘무조건 착하고 바람직하게 키워주마.’
우우우웅!
몸 안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막대한 기력이 알을 향해 유유히 흐르기 시작했고.
이내.
그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더니,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배고프다는 듯, 엄청난 속도로 내 기력을 탐하는 알.
‘지금까지와 달라.’
내가 놀라 힘을 주었다.
기존 99일과는 차원이 다른 흡입력이었다.
마치, 생명을 피우기 위해.
저 드높이 도약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힘을 비축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기운을 머금습니다.] [일정 기운에 도달합니다.] [활성화를 시작합니다.]쿠구구구…….
파괴룡의 알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안에서부터, 갈라지는 소리가 허공을 강하게 떨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