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21)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21화
우리 정산할 게 남아 있잖아
잠깐의 소란이 있었다.
“미안하구나.”
기운을 진정시킨 실피드가 조용히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옅게 심호흡하며 어느 날의 회상을 천천히 지워냈다.
“그때의 기억에 잠깐 흥분해 버렸어. 그래, 중요한 건 그녀의 한을 풀어 영혼을 불러내는 것인데.”
“……아까 괴수라 말씀하셨죠?”
“맞아.”
실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구역에는 심원의 수정을 지키는 괴수가 살아. 노아스 그놈과 비슷한 기운을 가져서 우리는 토룡(土龍)이라 부르지.”
토룡(土龍)이면…….
지렁이?
실피드는 잠깐 동안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호흡을 기다랗게 흘렸다.
“그래, 유이사는 거기서 목숨을 잃었어.”
“……!”
“이 내가…… 내 손으로…… 그 빌어먹을 놈을 반쯤 죽여놓긴 했지만, 그것으론 역부족이었던 거지.”
그녀가 감정을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결국 토룡의 발톱이 유이사의 복부를 짓눌렀고, 그 날카로운 이빨이 목을 꿰뚫었어…….”
사랑하는 존재를 눈앞에서 잃어야 했던 그 슬픔.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토룡이라는 존재에 대한 분노.
그 감정들이 복잡스럽게 섞여, 이 일대를 물들이고 있었다.
토룡(土龍).
실피드는 분명 그 토룡을 찢어발기고 싶을 거다.
하지만, 불가능하겠지.
정령은 중앙 깊은 곳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만약 유이사에게 한이 있다면 둘 중 하나일 거야.”
실피드가 입술을 질끈 씹으며 말했다.
“제일 가능성 있는 것은, 4대 정령왕 전부와 계약을 하지 못한 것.”
나도 여기에 힘이 가장 실렸다.
한국으로 따지면, 중고등학교 미친 듯이 공부해서 마침내 수능 1등이라는 결실을 맛보기 하루 전날에 사고로 죽은 꼴 아니던가.
‘어후.’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아니면, 토룡에 대한 복수.”
그것도 가능성 있다.
원래 자기 목숨을 앗아간 존재가 철천지원수지 뭐…….
“그럼 답은 나왔네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가 원하는 답.
“제가 갈게요.”
그 중앙 구역 깊은 곳인가 뭔가.
그곳에 내가 가서 토룡을 잡으면 끝 아냐?
어차피 ‘심원의 수정’(SSS급)을 얻으려면 그곳에 가야 하기도 한다.
우리 드미르.
성좌 만들어줘야지.
내 사랑스러운 수하들.
소중한 무기도 쥐여줘야 하고.
“정말 그래주겠느냐……?”
“물론이죠.”
“하지만, 위험하다. 너는 정령사도 아니지 않느냐. 설마 맨몸으로 토룡을 상대하려는 것이냐?”
“아까 보셨잖아요. 실레스틴이랑 어느 정도 비슷하게 싸우는 거.”
“……으음, 토룡은 만만치 않은 상대야.”
“그러겠죠. 그럼. 중앙 구역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실피드의 경고를 아예 무시하고 질문하자.
“…….”
잠깐의 공백 후.
그녀는 영 내키지 않음과 고마움이 공존하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안내는 실레스틴이 해줄 수 있다만…… 거리가 제법 될 거야. 정령계는 광활하거든. 특히 중앙 구역은 더더욱 그렇지.”
“아, 그래요?”
내가 고개를 돌렸다.
동생 수아와 언니 제아.
두 자매가 아직도 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씩.
내가 웃었다.
“그럼 있잖아요.”
“응?”
“혹시 저 둘에게 안내받아도 될까요? 목적지까지요.”
“문제 될 건 없겠지. 그리만 해주면 되겠느냐?”
“예.”
“좋다.”
실피드가 두 실레스틴에게 입을 뻐끔거리며 목짓 했다.
그들이 무릎을 꿇으며 복명했다.
– 명 받들겠습니다!
– 책임지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굿.
딱이네.
수아라고 했나?
우리 아직 정산할 게 남아 있지?
아아.
아직도 아까 실레스틴한테 맞은 곳이 욱신거리네?
* * *
바람궁에서 빠져나온 후, 중앙 구역으로 가는 오솔길.
딸꾹!
언니, 제아가 딸꾹질했다.
“어, 어어…….”
수아의 입에서도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이게 아닌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비릿한 눈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남자의 눈동자는 마치 맹수와도 같았다.
그것도 먹이를 눈앞에 둔 굶주린 맹수.
“자, 잠깐만요. 저기요.”
수아가 양손을 뻗으며 다급하게 남자를 저지했다.
“잠깐만, 대화! 그래, 대화해요, 우리!”
눈빛을 거칠게 흔들며 말하는 수아.
하지만, 남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화르륵!
오히려 그 말에 반응하듯, 한 손에 몽둥이까지 꺼내 들었다.
그것도 환하게 미소 지으며.
수아는 진심으로 사람의 미소가 저렇게 무서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대화라. 그래, 대화. 좋지요. 비폭력 대화는 타인과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니까.”
문제는.
수아가 처음부터 대화로 풀려 하지 않았다는 거지만.
“시, 실레스틴!”
– 계, 계약자여.
수아의 최상급 정령이 땀을 삐질 흘렸다.
“마, 막아줘. 설마 지켜만 보고 있을 건 아니지?”
– 그, 그게…… 정령왕께서 이미 이자를 건드는 게 자신을 건드는 것과 똑같다 하셔서…….
그래.
아무리 계약했다 하더라도 최상급 정령이 어찌 정령왕의 명을 거역할까?
– 어쩔 수 없다, 계약자여. 부디 원만하게 합의 보기를 바란다…….
“시, 실레스틴! 네가 어떻게?!”
믿었던 자신의 정령에게 발등이 찍힌 수아가 절규했다.
그러고는 재빨리 남자를 쳐다봤다.
정령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정령사가 무슨 힘이 있을까.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후웅, 후우웅!
하지만.
몽둥이가 잘 드는지 휘두르며 몸을 푸는 남자.
“그, 그게 아까는…….”
“걱정하지 마. 네 언니를 봐서 적당히 죽일 테니까요.”
“가, 감사합…… 예?”
지금 뭐라고?
죽인다고?
적당히?
죽이면 죽이는 거지, 적당히 죽이는 건 뭔데?
그 순간.
쐐애애액!
수아는 엄청난 속도로 자신의 복부를 향해 날아오는 몽둥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단단해 보이는 붉은 몽둥이가 배에 묵직하게 닿는 순간.
퍼어어어어어어억!
마치 거대한 마차와 부딪힌 것 같은 충격이 온몸을 관통했다.
엄청난 통증에 숨이 턱 막혀왔고, 얼굴 전역에 핏줄이 섰다.
그러고는.
“끄, 끄아아아아아아악!”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단언컨대 살면서 이런 통증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실레스틴이 어떻게든 방어해 줬으니까.
“에이, 뭐야. 아직 한 방인데?”
악마.
남자는 악마였다.
“아까 내가 몇 대 맞았더라? 대충 셈해도 수백 대는 맞은 것 같은데……. 난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 돌려주는 사람이라.”
“흐이이익!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예! 예! 제가 다 잘못했어요!”
“그래? 그럼 맞으세요.”
쐐애애액!
다시 한번 남자의 몽둥이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 * *
“끄흑, 끄흐윽, 흐어어엉!”
수아가 꺼이꺼이 울었다.
이미 온몸은 울퉁불퉁 피멍이 들어 있었으며, 온몸이 땀과 눈물로 가득했다.
살면서 이렇게 비참하게 맞아본 적이 있던가?
무엇보다.
‘억울해.’
억울했다.
자신의 행동이 이렇게까지 맞아야 하는 일이던가?
그저 처음엔 자신들이 힘겹게 찜해놓은 ‘바람 폭포’에 저 사람이 와서 짜증 났었다.
그러던 순간.
저자가 금지어, 「유이사」를 입에 담았고, 실레스틴이 흥분하길래 처단하려 했었다.
솔직히 정당방위지 않은가.
저 남자는 바람 구역 전체에 피해를 주려 했던 거니까.
“흐어엉, 허어어엉!”
그래서 서럽게 울었다.
그녀도 알았다.
지금 이렇게 처맞고도 살아 있는 게, 저 남자가 그나마 자비를 베풀어서라는 것을.
“쯧, 고작 이 정도로 아파서 운다고? 인자약이네 인자약.”
“…….”
“참말로. 어르신 마사지의 10%도 안 했는데, 울고불고.”
어르신 마시지?
그건 또 뭔데?
저쪽 세계는 마사지를 무슨 구타로 하는 세상인가?
몽둥이가 사람의 피와 기운이 흐르는 통로를 정확히 가격하는데, 그 아픔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얼마나 아프냐면.
아직도 전력으로 전신에 돌주먹이 박히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
“흐어어엉.”
서럽게 울고 있는 수아에게 남자가 다가왔다.
그러고는 속삭였다.
“……언니 때문에 이 정도로 끝내는 거야. 언니 아니었으면 이미 뒈졌어. 알지?”
“…….”
“못 알아들었어? 흠, 덜 맞았나?”
헉.
도리도리!
수아가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서 더 맞으면 진짜 죽는다.
맞아서 죽는 게 아니라, 본인이 혀를 깨물고 죽을 수도 있다.
그 고통을 더 느낄 바에 삶을 포기하고 말지.
“뭐? 고개를 흔드네? 못 알아들었다는 말이지?”
아니!
맞을 만큼 맞았다고!
“어, 언니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어 눈물이 쏙 들어간 수아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언니 덕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빌자.
빌고 시키는 대로 다 하자.
그게 수아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 *
처참한 꼴로 무릎을 꿇고 있는 수아.
나는 그녀의 앞 바위에 여유롭게 걸터앉았다.
불쌍하다는 생각?
절대 안 들었다.
내가 약했다면, 혹은 그 순간 정령왕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처맞다가 죽는 건 나였을 테니까.
‘오히려 많이 봐준 거지.’
만약, 내 주변에 김진아나 아린, 혹은 다른 수하들이 있었다?
그럼 이 정도로 안 끝났을 거다.
애초에 그녀는 눈물조차 흘리지도 못했겠지.
그전에 목이 떨어져 나갔을 테니까.
“자, 설명하세요.”
어쨌든.
나는 의외로 쿨한 성격이다.
이번 거로 그녀와의 악감정은 털어버리기로 하고 이제는 뼈구의 각성에 집중해야겠지.
중요한 건 그거니까.
“……예, 예?”
수아가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그 옆에서 제아도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아.
뭘 설명하라는지, 말을 안 했구나.
“이 정령계에 대해서 설명해 봐요. 원소마다 어떤 정령이 있고, 구역은 어떻게 나누어져 있는지. 등등 아는 대로. 말해주세요.”
“제,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제아가 나섰다.
“먼저 구역부터 설명할게요. 중앙 구역을 기준으로 사 등분 해서, 동쪽엔 불, 서쪽엔 땅, 남쪽엔 물, 북쪽에 이곳. 바람 구역이 있어요.”
그녀는 약 1시간 동안.
정령계 구역부터 정령의 종류, 대립 관계 등등.
이곳에 대한 그녀의 지식을 아는 선에서 조리 있게 잘 풀어놓았다.
그 중, 정령의 종류에 대해서만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불]1. 불의 정령왕, 샐리온.
2. 불의 최상급 정령, 샐레아나.
3. 불의 상급 정령, 샐라임.
4. 불의 중급 정령, 샐리스트.
5. 불의 하급 정령, 샐러맨더.
[물]1. 물의 정령왕, 엘라임.
2. 물의 최상급 정령, 엘레스트라.
3. 물의 상급 정령, 엔다이론.
4. 물의 중급 정령, 운다인.
5. 물의 하급 정령, 운디네.
[바람]1.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
2. 바람의 최상급 정령, 실레스틴.
3. 바람의 상급 정령, 실라이론.
4. 바람의 중급 정령, 실라페.
5. 바람의 하급 정령, 실프.
[땅]1. 땅의 정령왕, 노아스.
2. 땅의 최상급 정령, 노에아넨.
3. 땅의 상급 정령, 노에스.
4. 땅의 중급 정령, 노임.
5. 땅의 하급 정령, 노움.
각자 속성만 다를 뿐, 대충 힘은 등급별로 비슷한 수준이라 했다.
또한 불과 물은 사이가 좋지 않고.
바람과 땅 역시 사이가 좋지 않단다.
순간 떠오르는 두 존재.
[수(水)의 정수가 시끄럽다고 합니다.] [화(火)의 정수가 너나 시끄럽다고 합니다.]하긴.
상극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세상사 다 똑같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대부분의 설명은 들을 만큼 들었고.
이제 궁금한 것은 딱 하나다.
“계약은?”
“예?”
한참 설명하던 제아가 말을 끊고 나를 쳐다봤다.
“정령과 계약. 그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정령.
그거 나도 키워보고 싶은데.
내가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