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7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78화
배지민 (1)
배지민의 얼굴에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담겼다.
기껏 고민해서 선택했더니, 이제 와 상황이 달라졌다니…….
이걸 뭐라 해야 할까.
조금 신선하면서도,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본래 자신을 원하는 자는 많았다.
온갖 대형 길드에서 러브콜을 보냈고, 세계 빅4 중 하나라는 천마신교 역시 자신에게 높은 직급을 주겠다 했었다.
마왕군?
거기도 지원만 하면 합격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거다.
22살.
즉, 2년 만에 S급 헌터를 달성한 잠재력.
세상은 그녀의 가치를 알았고, 그녀 역시 그러했다.
그런데.
“…….”
이렇게 쉽게 자신을 튕겨낸다고?
“그럼……. 아까는 됐고, 이제는 안된다는 거예요?”
“당연하죠.”
“왜요?”
배지민의 물음에 되레 그가 물었다.
“그쪽도 아까는 안 된다더니, 지금은 제자가 되고 싶다며요?”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는 주동훈의 말에 배지민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정황만 보면 그렇다.
아까는 정중하게 거절해 놓고, 이제 와서 제자가 되고 싶다니.
살짝 속물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어딘가에 소속되기 싫어서 그랬던 건데.’
절대 아린이 싫어서.
별천지를 얕봐서가 아니었다.
얕봤으면 어찌 그를 롤모델로 삼았을까!
“참 웃기는 일이죠.”
주동훈이 말을 이었다.
“아직 랭커도 아닌 햇병아리가 어깨만 높아져서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별천지에 입단하려 한다니, 어후, 이거 김진아 씨가 들었으면, 바로 블랙리스트 걸라고 난리 칠 상황인데요?”
“그, 그건……!”
배지민은 황당했다.
아니, 먼저 제안한 건 아린인데.
왜 나한테 그렇게까지 말해?!
“심지어 웬만한 랭커들도 들어오고 싶어서 각만 잡고 있는 집단인데 말이에요.”
따악!
주동훈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냥 딱 말할게요.”
“…….”
“인정합니다. 당신의 능력은 엄청나요. 좋은 스승만 만난다면, 날개를 펴고 훨훨 날 테고, 어쩌면 랭커 위 하이퍼 랭커까지도 노릴 수 있겠죠.”
“……!”
배지민의 눈이 커졌다.
하이퍼 랭커.
랭킹 1~10위의 랭커를 말한다.
물론 목표야 당연히 그 위를 바라보고 있지만.
어찌 아직 1,000위조차 되지 않는 자신을 만나자마자 알아볼 수 있는 걸까?
그게 과연 현 세계 랭킹 4위의 안목인 걸까?
그의 호평에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지만.
‘좋은 스승을 만난다면.’
그 문구가 신경이 쓰였다.
그 말은 지금처럼 혼자 한다면 정체될 수도 있다는 말일까?
‘으음.’
배지민이 미간을 찌푸렸다.
본래라면 개소리로 치부했을 거다.
하지만, 주동훈의 신위를 이미 목격해 버렸다.
그 말도 안 되는 ‘독연’(毒煙)을 애처럼 잠재워 버린 그 위력을…….
“우리가 뭐, 봉사하는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우리 아린이의 제자가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
세 가지 조건…….
사실, 아린이 아무리 원한다고 하더라도 주동훈의 허락을 받는 게 맞다.
아린은 그가 부리는 스켈레톤이니까.
꿀꺽.
배지민이 침을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해보세요.”
“조건 하나.”
그가 손가락 하나를 들며 미소 지었다.
“이 시련 내에서 시키는 것은 무조건 할 것.”
“…….”
첫째부터 좀 빡센데?
“둘.”
그는 대답도 듣지 않고 계속 조건을 말했다.
“10만 포인트짜리,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서를 상점마다 내놓을 것.”
“예?”
배지민이 이번엔 좀 말도 안 된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거 상점에서 파는 것 중 제일 비싼 아이템 아니야?
“셋째.”
하지만, 주동훈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본인의 할 말을 계속했다.
“별천지 종속 계약.”
“……종속이요?”
배지민은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게 뭐 그런 건가?
22살 나이 어린 초짜 상대로 등쳐먹는 사기 집단?
“그게 무슨! 안 해요, 안 해!”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무슨 노예계약도 아니고.
역시 사람은 다 똑같다.
인간 혐오.
자신을 등쳐먹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들의 집단!
“그래요? 그럼, 빠이!”
스슷!
별 미련 없다는 듯 사라지는 주동훈의 자리를.
으드득!
안색을 굳힌 배지민이 이를 씹으며 노려봤다.
* * *
“교수님.”
다시 결계 안으로 돌아온 아린이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막 대한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상처가 많은 아이인데.”
“막 대하긴 뭘.”
사실, 이미 다 계산된 거다.
조건 1.
시련 내에서 시키는 것 무조건하기?
어차피 제대로 성장하려면 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 받아들이는 시련과 나만의 시련은 좀 다르거든.
조건 2.
10만 포인트짜리 아이템?
그것 때문에 이 시련에 들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게 있으면 내 만술(萬術)의 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배지민도 아린이한테 도움받을 텐데, 나도 배지민 도움 좀 받을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강해질 거면 대가를 지불해야지.
사실,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서’ 자체가 고대 마법이다.
어차피 아린이가 고대 마법 스킬 대다수를 쓸 수 있는데, 이게 뭐가 필요하냐고?
그게 아니다.
아린이 말했었다.
자신이 못 쓰는 고대 마법이 아직 방대하다고.
정확히는 고대 마법을 못 쓰는 게 아니라, 기력 최대치에 한하여 쓸 수 있는 걸 골라 쓰는 느낌이지만.
‘어쨌든.’
진정한 고대 마법(SSS급)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주문서라면, 나에게 확실한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조건 3.
종속 계약.
원래 내가 종속을 제안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배지민은 좀 위험하다.
무려 그 잠재 능력이 은하급이라지 않은가.
진짜 은하급이 되어서 우리 다 죽이면 어떡해?
내가 하는 행동이 배지민을 등쳐먹는 거라고, 무섭다고 욕하면 안 된다.
그저 배지민의 재능이 무서운 거다.
암.
확실히 키워줄 거면 그 제약을 걸어둬야지.
예전 델라일라가 나에게 걸었던 금제와 비슷한 거다.
“금제요?”
내 말을 듣던 아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응, 네 고대 마법으로. 언령 계약 같은 거 안 돼? 요컨대……. 별천지를 배신할 경우, 모든 힘을 토해 놓는다?”
“가능은 한데…….”
우리 아린이.
착해서 마음이 복잡한가 보다.
“쉽게 생각해, 쉽게.”
내가 웃었다.
“별천지만 배신 안 하면, 만사 오케이잖아? 제대로 가르치고, 거기에 더해 트라우마도 고쳐주고.”
“그렇죠. 하긴, 교수님을 배신하면 제가 먼저 가만 안 있을 거긴 해요.”
“그럼 뭐가 문제야?”
“문제없네요?”
“그치?”
뭐,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다면.
배지민이 내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
근데 뭐.
그걸 못 받아들이면, 나도 어쩔 수 없다.
미안하지만, 내 목표도 세계 랭킹 1위이고.
굳이 조건 없이 경쟁자를 키울 이유는 없거든.
* * *
머엉.
아무것도 없이 사라진 자리.
배지민이 벙찐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 그래요? 그럼, 빠이!
‘뭐? 빠이?’
그녀는 분명 보았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뒤 돌아 사라지는 주동훈의 뒷모습을.
단호박도 그런 단호박이 없었다.
‘참.’
배지민이 혼자 입술을 삐쭉였다.
최강 단체의 수장이라더니, 과연.
저런 냉정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걸까?
‘흥.’
다 필요 없다.
지금껏 혼자서도 잘해왔고, 원래도 혼자 클 생각 아니었던가.
그가 그의 길을 갔다면,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내가 마법사라고?’
천만에.
꾸욱!
배지민이 검을 꾹 쥐었다.
‘검으로도 충분히 잘 성장했어.’
그런 그녀의 맞은편에는.
– 키이? 키이이이이!
주동훈이 사라지자, 슬그머니 눈치를 보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독연이 보였다.
저게 다시 제대로 피어오르면, 이번 시련에 탈락할 것은 자명할 터.
‘그래도.’
배지민이 눈을 빛냈다.
‘최선을 다한다.’
타앗!
배지민이 땅을 박찼다.
본능적으로 안다.
아무리 주동훈이 건드려 살짝 약해진 독연이라 해도.
지금의 내성으로 저것과 맞닿았다간, 포인트를 쌓기도 전에 녹아버릴 거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튀는 것.
“흐아아압!”
배지민이 기합과 함께 힘차게 도주했다.
* * *
배지민.
그녀는 도주하면서도 독 복용을 멈추지 않았다.
일반 사람이었다면, 독을 섭취하는 순간 열이 오르고 호흡이 달려 뛰질 못했겠지만.
우웅!
그녀는 본능적으로 기를 운용했다.
독을 한곳으로 몰아넣고, 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온전하게 충당했다.
쿠과가가가가!
뒤에는 포식자가 사라진 걸 눈치챈 독연이 다시 활개 칠 준비를 하는 중.
‘딱.’
그녀는 아쉬웠다.
‘딱 2주만 더 있었다면…….’
만독불침은 몰라도 천독불침은 달성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이 목숨 한번 걸어, 저기 뛰어든 채 포인트를 받아낼 수 있었을 텐데.
‘버텨보자.’
아드득!
배지민이 보랏빛으로 축 늘어져 있는 곰팡이의 생식기를 뜯었다.
[독 보너스가 있습니다.] [‘보라 버섯’은 2급 맹독입니다.] [시련 포인트를 300 획득합니다.]“허윽!”
호흡이 점점 달려왔다.
오는 중에 2급 맹독 3개를 연달아 먹었다.
이대로라면 안 된다.
‘결정을 내려야 하나?’
사실, 원래였다면 진즉 100,000의 포인트를 써 템을 구매했을 거다.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서.
동시에, 저 독연에 뛰어들며 그걸 찢었겠지.
하지만.
그녀가 그러지 못하는 것.
‘약간의 가능성…….’
똑똑한 그녀의 본능이 말했다.
저기서 주문서 하나를 찢는 것보다, 그냥 주동훈의 조건을 받아들이라고.
그게 네게 한 수백 배 이상의 이득을 가져다줄 거라고.
그 본능 때문에 이성이 아무리 말해도, 주문서를 구매하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후욱, 후욱!”
땀이 온몸을 적셨다.
독이 제대로 해독이 안 되는지, 모공에서 진물이 샜으며.
근육이 자꾸 풀려,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비척거리며 계속 달리기를 반복할 찰나.
“상점 안 써요?”
스르릇!
지켜보던 심사위원, 아린이 나타났다.
“주문서라도 찢어봐요. 힘겹게 포인트 모아놓고, 쓸 건 쓰고 탈락해야죠.”
“허억, 허억!”
아린에겐 미안하지만.
대답할 힘이 없었다.
소리를 내는 순간 호흡의 균형이 깨질 것 같은 느낌.
밸런스가 무너지면 그대로 끝이다.
“뭐, 근데 제가 책을 많이 읽다 보니까, 세상에 속을 용기도 한 번쯤은 필요하더라고요.”
……속을 용기?
배지민이 미간을 좁혔다.
“어차피 세상이 기구하지 않았나요?”
기구했다.
사실 이러한 재능이라도 없었다면, 진즉 삶을 포기했을 정도로 힘들었다.
“어차피 앞으로도 기구할 텐데, 사람 하나 믿어서 기구해지나, 안 믿어서 기구해지나 똑같은 거 아닌가요?”
“…….”
두 번이나 거절했는데도.
계속 눈앞에 나타나 말을 걸어주는 아린.
“어차피 기구해질 거면, 질러보는 거예요. 그러다가 아니면, 퉤- 하고 떠나면 되는 거고. 잘 맞으면 아 이런 신세계도 있었구나 하는 거고. 기구한 삶을 청산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속을 용기도 한번 가져 봐요. 세상에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없는 거니까.“
왜.
도대체 왜 나한테 이렇게 하는 거지?
배지민은 부담스러웠다.
“똑똑하니까 알겠죠? 그 인터넷이란 걸 검색이란 걸 할 줄 안다면, 교수님이 어떤 사람인지도 뻔히 알 거고요.”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다.
다만, 모나진 않다고 생각했다.
원래 세상이란 게, 남 잘되는 꼴을 못 봐서.
조금의 흠집도 크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거든.
주동훈은 잡음이 없었으니, 적어도 신뢰할 만한 사람이긴 할 거다.
“저도 한때는 지친 적이 있었죠. 이 세상에.”
배지민과는 전혀 다른 이유였다.
재능이 없기에.
무능했기에 가문과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마음을 닫은 채, 책만 읽었었지요. 아마 교수님이 계속해서 보살피려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제 기억 속에는 책만 읽던 저로 남아 있었을 거예요. 예, 비극이죠.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의 비극.”
“후욱, 후욱.”
배지민이 호흡을 뱉어냈다.
옆에서 하는 아린의 말이 은근히 귀에 꽂혔다.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았다.
‘저 스켈레톤은 진심이구나.’
자신에게 진심이었으며, 교수님이라는 자에게 진심이었다.
이렇게 대단한 마법사에게.
저런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동훈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알 것만 같았다.
또 얼마나 신뢰할 사람인지도.
‘그래서.’
사실, 믿고 싶긴 했다.
지금껏 주문서를 사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거다.
“후윽, 후욱! ……그럼.”
터벅!
배지민이 뛰던 발걸음을 멈췄다.
– 키아아아아아아아아!
벌써 엄청난 크기로 불어난 독연이 바로 등 뒤까지 따라붙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발을 더 이상 떼지 않았다.
“그럼 그 조건만 받아들이면 되는 거예요?”
그냥.
모르겠다.
진짜.
딱 한 번만 믿어볼까?
“오, 생각이 바뀌었나요?”
생각.
바뀌었다기보다는.
그래, 원래 제자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끄덕.
고개를 살짝 숙이는 배지민의 앞에.
스스슷!
“후후.”
주동훈이 그림자를 밟으며 등장한 것은 그때였다.
“그래, 잘 생각했어요. 별천지 입단을 축하합니다.”
동시에.
– 키아아아아?
달려들던 독연이 화들짝 놀라 허리를 세웠다.
마치 [네가 왜 또 여기서 나와?] 하는 감정이 가득 찬 포효.
“독연아?”
주동훈이 입을 열었다.
– 키아아아?
“가만히 쭈그리고 있어 봐. 잡아 먹히기 싫으면.”
– 키아아아!
꼬리 내린 개처럼 다시 퍼진 연기를 뭉치는 독연.
배지민은 그 광경을 넋 놓고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