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79)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79화
배지민 (2)
다시 조용해진 공간.
– 키이이이이……!
바닥에 대가리를 박은 채, 어떻게든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독연(毒煙) 아래에서.
투웅!
배지민은 바닥을 튕기는 아린의 지팡이를 긴장한 채 바라봤다.
“금방 끝날 거예요.”
우우웅!
그런 아린의 몸 주변을 신묘한 기운이 휘감기 시작했다.
“단순한 언령 마법일 뿐이거든요.”
동시에, 배지민의 시야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엘로이즈 아린’이 그대에게 금제를 가하고자 합니다.] [집단 ‘별천지’를 배신할 시, 그로부터 얻은 모든 보상 및 대가가 소멸됩니다.] [여기서 ‘배신’이란, 대상에게 위해를 가할 마음을 먹은 것에 더해 행동에 옮겼을 때 적용됩니다.] [단, ‘별천지’가 먼저 그대에게 위해를 가할 시, 이 금제는 무효가 됩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꿀꺽.
‘이게 맞나?’
그녀가 침을 삼키자, 아린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해해요. 부담스러울 수 있겠죠. 근데 또 단순하게 생각하면 별거 아니에요. 서로 배신만 안 하면 끝. 설마 배신할 거예요?”
“으음.”
배지민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언령 마법은 별문제가 없다.
상대가 먼저 자신한테 위해를 가하면 무효가 된다는 특약도 있으니.
다만.
‘난 아린 님보다 주동훈한테 배우고 싶은데…….’
사실, 이게 제일 고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주동훈과 자신의 상성이 더 좋았다.
세간에 퍼진바, 그는 거의 모든 기술을 출중하게 다룬다고 한다.
창과 활, 방패, 검 등등을 상황에 맞추어 바꿔가며 다루는 그를 보고 웨폰 마스터(Weapon Master)라 부르는 자도 적지 않으니…….
‘나도 자신 있거든.’
굳이 마왕이나 천마가 아닌, 주동훈을 롤모델로 둔 이유도.
그의 전투 스타일에 있었다.
자신과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힐끗!
배지민이 슬쩍 아린 뒤 주동훈의 모습을 스쳐봤다.
팔짱 낀 채, 무덤덤하게 서 있는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글렀네.’
직감으로 알았다.
그는 현재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
정확히는 제자를 키우는 데 관심이 없다.
‘더 성장할 여지가 많다는 거겠지.’
요컨대, 자신이 제자를 만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성장에 목말라서.
더 강해지고 싶어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 할애하는 시간보다, 자신에게 쓰는 시간을 더 많이 두고 싶은 거다.
‘뭐.’
어차피.
이미 선택은 했다.
주동훈이 좋았지만, 아린 님도 엄청나다.
둘 중 누가 가르침을 내려도 엎드려 절해야 할 만큼 엄청난 기연이니까.
“동의할게요.”
[금제가 작동합니다.] [언령은 약속의 힘. 고대 마법이 이 약속을 보증합니다.]언령 마법이 발현되자.
“자.”
덤덤하게 있던 주동훈이 팔짱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배지민이라고?”
갑작스러운 목소리 톤 변화에 그녀가 잠깐 움찔하다가.
“예? 옙!”
즉각적으로 답했다.
“이제 아린의 제자니까, 말 놓을게?”
“예, 말 편히 하십시오.”
“그럼.”
스윽.
주동훈이 손을……. 아니, 손바닥을 내밀었다.
“줘야지?”
약속했던 것.
“아.”
맞다.
고개를 끄덕인 배지민이 즉각적으로 아린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서’를 구매했다.
잠깐의 조작 후 신묘한 빛과 함께 생기는 말려있는 주문서.
이걸 진짜 줘야 하나…….
싶은 생각에 손끝이 살짝 떨렸지만, 분명 이것보다 더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직감이 들었다.
그녀에게 직감이란 곧 확신.
“여기요.”
그녀가 내민 것을 냉큼 받은 주동훈이 잠깐 확인 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 이제.”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긴.’
독연(毒煙).
엄청난 독기가 꿈틀거리고 있는 곳.
“저기부터 들어가.”
“……예?”
배지민이 잘 못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뭐? 저길 들어가라고?
지금 이 상태로?
그럼 몇 초 견디지도 못하고 온몸이 녹아버릴 텐데?
게다가 정 위급할 때 쓰려고 했던 아이템도 방금 빼앗아 가지 않았던가!
“저기를요?”
“잊었어? 첫 번째 조건. 시키는 대로 다 한다.”
주동훈이 다시 팔짱을 꼈다.
“흠, 고작 이거 가지고 머뭇거리는 건가? 빡센 독은 내가 다 흡수한 데다가, 예전에 난 이것보다 더한 곳에서도 주문서 같은 거 안 쓰고 버텨냈는데. 물론 어느 정도 내성은 있었다지만.”
배지민이 이마에 땀을 삐질 흘렸다.
혹시 ‘고작’이라는 뜻의 의미를 모르냐 묻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과 말투를 보아하니…….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한 방 더.
“흐음, 재능은 있는데, 용기는 없는 과인가?”
그가 엄지와 검지로 턱을 쓸며, 배지민을 평가했다.
질겅!
그녀가 입술을 씹었다.
뭔가.
자존심이 상한다.
묘한 자극이 된다는 말이 더 맞겠다.
적어도 자신의 목표인 그에게만은 혹평을 받기 싫은 마음.
솔직히.
저기 들어간다는 생각 자체는 했었다.
근데 그걸 진짜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미친놈이다.
‘어떤 녀석이 주동훈 보고 운으로 세계 최강이 되었대?’
세간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그가 ‘운’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고.
고유 능력을 타고나서 저렇게 올라갈 수 있었던 거라고.
‘아니.’
배지민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그냥.’
그가 미친놈이었기에 세계 최강이었던 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롤모델.
그를 따라가고자 하려면, 자신도 미쳐야 했다.
“배지민?”
“……예?”
“아직까지 고민 중?”
“드, 들어갈 거예요.”
배지민이 허둥지둥 답했지만.
그 눈빛만큼은 독기에 가득 차 있었다.
‘그가 했던 과정이라면, 나도 견딜 수 있어.’
더군다나 한껏 수그러든 독연(毒煙)이지 않은가!
그녀는 오랜만에 피가 끓는 기분을 느꼈다.
‘게다가.’
지금 이 상황.
아린의 제자인 줄 알았는데, 마치 주동훈이 자신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오히려 그녀가 바라던 바 아니던가?
“후.”
각오의 호흡을 한껏 내뱉은 배지민의 귓속으로.
“기억해라.”
유난히 즐거워 보이는 주동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독이 있으면, 웃으면서 뛰어가는 거야.”
예.
스윽!
발걸음을 옮겼다.
웅크린 채 숨죽이고 있는 독 연기의 품속으로.
* * *
“괜찮지?”
내가 아린에게 물었다.
“예? 뭐가요?”
아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답해온다.
“네 제자잖아.”
이는 일종의 예의였다.
아무리 아린이 자신의 수하라 한들, 그녀의 제자를 내 입맛대로 다루는 게 불편할 수 있으니까.
“에이.”
아린이 오른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솔직히 저도 알거든요?”
“뭘 알아?”
“배지민이요.”
아린의 시선이 독연 속으로 기어들어 간 배지민을 향했다.
“저 애가 저보단 교수님한테 어울리는 사람이란 걸요. 원래 그렇죠. 육망성의 축복이란 게 만술(萬術)과 밀접한 재능이니까.”
맞지.
사실 이런 생각을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다.
저 육망성인가 뭔가 하는 거.
왜 내가 아니라 쟤한테 갔을까.
저 능력만 있었으면, 지금처럼 만 개의 술(術)을 다 핥으며 가지 않아도 되는데.
그저 하나만 배워도 만술(萬術)이 아닌 억술(億術)도 가능한 사기 능력인데.
“근데 교수님은 지금 제자를 받을 처지가 아니잖아요?”
아아.
그런 거였나.
“그래서 그냥 교수님이 완전히 꿈을 펼치실 때까지 제가 맡고 있으려고요. 솔직히 저 정도 잠재력을 고작 마법만 가르친다는 게 우주적 낭비거든요.”
맞지.
고대 마법이라 해봐야 성좌급인데, 배지민의 잠재급은 무려 은하란다.
성운급도 아닌 은하급.
“…….”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히든카드긴 했다.
줍줍 하고 나니,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
‘그러하니.’
나 역시 저 멀리서 비명조차 없이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배지민을 바라봤다.
‘강해져라.’
어차피 시련은 한 인간당 여섯 테마밖에 활용 못 한다.
이미 시작한 거.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최고의 결과를 얻게 해줄게.
저기서 얻는 포인트?
그거 얻는 만큼 시련 끝나고 개연성으로 환산된다.
아마 내 도움이 있었기에, 나처럼 신살(神殺)급 정수까지는 받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제법 쏠쏠할걸?
* * *
독연.
델라일라가 타 세계에 존재하는 독 폐기물을 모아 응축시켜놓은 괴물.
– 키아아아아아아아!
천지를 진동시킬 만한 괴성이 배지민의 고막을 때렸다.
감히.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피조물을 독극물로 녹여버리겠다는 듯, 흉포하게 울부짖었다.
신기했다.
입이 있는 것도, 성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 저런 포효를 지르는 걸까?
‘그저 감각이야.’
저 독에 당한 끔찍한 원념들.
그것들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기운에 본능적인 공포감이 생기는 거다.
“끄으으으…….”
푸드득! 파드득!
이미 배지민은 몸의 통제력을 잃어버렸다.
도중에 포기하고 나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됐다.
토네이도 속에 빠져 버린 자동차처럼, 그저 독연에 몸을 맡긴 채 버티는 것뿐.
그래.
이건 그녀에게 재앙이었다.
[독 보너스가 있습니다.] [‘노블레스’는 1급 맹독입니다.] [시련 포인트를 500 획득합니다.] [독 보너스가 있습니다.] [‘세인트 포이즌’은 1급 맹독입니다.] [시련 포인트를 500 획득합니다.]…….
[독 보너스가 있습니다.] [‘독각화망의 독샘’은 1급 맹독입니다.] [시련 포인트를 500 획득합니다.] [독 보너스가 있습니다.] [‘학령초’는 1급 맹독입니다.] [시련 포인트를 500 획득합니다.]…….
하나만 먹어도 숨이 막혔던 1급 맹독들이 시야에 무수하게 나열된다.
“꺼어어…….”
잠깐 입을 벌렸다가, 또 금세 닫는다.
여기서 입을 열어버리면, 내부로 독이 더 빠르게 침범한다.
‘제기랄.’
이게 맞나?
본능적인 기운으로 독을 밀어내도, 더 많은 독이 내부로 침투했다.
솔직히.
이미 온몸이 녹아내려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상황이었다.
‘음?’
그러고 보니, 그러네.
어떻게 이런 곳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거지?
눈을 감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온 신경이 독에 침투된 상태라, 어떤 상황인지 알지도 못한다.
다만.
‘어?’
그녀의 예민한 감각에 잡혔다.
등에 닿아 있는 따스한 손바닥.
동시에 걷어지는 귀 주변 독들.
“대답하지 말고 들어라.”
‘아.’
배지민이 속으로 경악했다.
주동훈의 목소리.
설마.
지금 이 독연 속에, 들어와 있는 거야?
들어와서 자신 고막에 있는 독을 걷어낸 후, 자유롭게 말까지 할 수 있는 거야?
‘하긴.’
저 독연보다 끔찍한 독 괴물을 가슴 속에 품고 사는 사람인데.
그래.
그는 진정한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
배지민은 그 경지가 부러웠다.
“본래는 심사위원이 도와주면 안 된다. 그만큼 네 개연성이 깎일 거고, 보상도 줄어들겠지. 하지만.”
배지민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개연성이고 보상이고 나발이고.
그저.
빨리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본격적으로 뛰기 전에 걸음마 정도는 가르쳐 줘도 되겠지.”
우우우웅!
따스한 기운이 배지민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우선, 기억해라.”
배지민은 눈을 감은 채, 그 목소리에 집중했다.
“모든 독을 네 기운으로 직접 통제하려 하면 안 돼. 독은 독으로 다스리는 거다. 방금 들어온 ‘노블레스’라는 독 있지?”
“…….”
“그 독이 원래는 군자산(君子散)이라 불리는 놈인데, 그놈이 신선폐(神仙廢), 그러니까 세인트 포이즌이라는 독과 만나면 말이야.”
“끄르르륵.”
“이게 오히려 영약이 되거든? 지금부터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보여줄 테니까, 한번 보고 익혀라. 할 수 있지?”
콰가가강!
몸속에서 이는 강한 독풍(毒風)에.
배지민이 입술을 꽉 깨문 채, 집중했다.
‘예.’
해보겠습니다.
아니, 할 수 있습니다.
‘나도.’
주동훈처럼.
가슴 속에 이런 것 한번 품어 볼 수 있는 거잖아?
배지민이 결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속을 컨트롤하는 주동훈의 기운을 느끼며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