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77)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77화
독무 vs 독연
새하얀 홀.
“무슨!”
여유롭게 관전하던 델라일라가 벌떡 일어섰다.
경악한 그녀의 눈이 이지러졌다.
독연(毒煙).
우주를 떠돌다 발견한 독무(毒霧)와 가장 비슷한 존재.
고유 능력의 규율상, 분명 한 달 후에 깨어났어야 하는 괴물일진대 어찌 벌써?!
“어떻게 된 겁니까?”
스슷!
급하게 달려온 마검사 뤼카도 물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이건 아니다.
아무리 자신이 방관자의 역할을 고집하고 있다 하더라도.
저렇게 빨리 피어오르면, 참가자들에게 큰 의미가 없다.
독의 내성을 쌓을 충분한 시간을 주지도 못했고, 아직 시련의 의미조차 모르는 자들도 태반이다.
‘이대로라면.’
끝이다.
아직 멀리 도망친 자도 없는 마당에, 독연이 날뛰기 시작하면 전부 다 탈락할 거다.
솔직히 말해서.
과거, 주동훈도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었기에 혼자 독무를 상대할 수 있었던 거지.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독무가 풀렸다?
그럼 그 주동훈도 끝이었을 거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자칫하다 테마1 때부터 시련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
“심사위원들과 함께 출동하겠습니다!”
뤼카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저희가 어떻게든 막아내면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아뇨, 잠깐만요.”
델라일라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왜 걱정을 하는 거지?
지금 저기 배지민 곁에 있는 존재가 누군데.
아아.
“생각해 보니, 걱정할 필요가 없겠는데요?”
주동훈.
하필 그자가 있는 곳에서 나타나다니.
원래 사람이 너무 놀라면,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곤 할 때가 있다.
옆에서 뤼카랑 떠들고 있느라, 저 앞에 주동훈이 나가 있다는 사실을 까먹은 거다.
게다가.
이미 독연 자체가 이 세계의 규율을 어기고 있기에, 심사위원의 개입은 정당화된다.
그러하니.
‘독연도 참…….’
불쌍할 따름이겠구나.
“앉으세요, 뤼카.”
“예?”
“앉아요. 그냥 우리. 화면이나 지켜봐요. 저기. 주동훈이 있잖아요.”
“아아.”
뤼카가 반쯤 뽑혔던 칼을 도로 집어넣었다.
“맞네요, 참. 하하하.”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아아, 편했다.
너무도 편했다.
주동훈이 심사위원이니, 모든 재앙급 돌발상황이 그저 해프닝에 불과하구나!
잠깐이나마 뛰었던 델라일라와 뤼카의 심장이 다시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 * *
[경고! 경고! 경고!] [중앙 지역에 ‘독연’(毒煙)이 등장합니다.]– 키아아아아아아아!
온갖 원념과 한이 응어리진 흉악한 괴물.
그런 독연의 모습은 끔찍하면서도 기괴했다.
쿠과가가가가가!
바닥을 다 가르면서 피어오르는 짙은 녹색의 독 연기.
얼마나 지독한지, 갈라진 바닥이 흐물흐물해지며 녹을 정도였다.
[‘독연’(毒煙)은 독의 연기.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독의 기운을 품고 있는 괴물입니다.] [참가자들은 지금부터 일주일이라는 기간, 이 괴물을 피해 생존해야만 합니다.] [성공 시 테마2 진출!] [실패 시 죽음!] [참가자들의 무운을 빕니다.]“흐업!”
배지민은 당황했다.
정보권의 내용과 다르게 너무 빨리 독연이 튀어나와서가 아니다.
그저, 독연이라는 존재의 위압감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무슨 저딴…….’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 안에 속해 있는 것.
어설픈 독이 아니다.
마치 독과 독이 만나 서로 뭉쳐 어떻게 하면 생물체를 쉽게 조질 수 있을지 연구한 후, 그에 맞추어 진화한 독이다.
그런 독을.
제대로 된 내성도 없는 자신이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아이고, 얘는 또 왜 나왔담…….”
아린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녀는 대충 파악했다.
저 독연이 왜 난리 치고 있는 건지.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교수님.’
교수님이 지닌 독무(毒霧)가 녀석을 자극했다.
독은 서로를 위해 뭉치기도 하지만, 배척하기도 한다.
또한 그 군집은 영역을 지키려 한다.
독무가 교수님의 가슴 속을 자신의 영역으로 선포한 것처럼.
여기 독연도, 중앙 구역이 자신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있겠지.
그런 둘이 근접하자 폭주한 거다.
‘둘째는…….’
예상외로 배지민이였다.
육망성의 축복을 받은 자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다.
온갖 우주의 기운이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육망성의 축복이 아닌, 육망성의 저주라 부른단다.
그 기구한 운명은 너무도 강력해서 가끔은 누군가의 기술이나 규율을 무마시키기도 한다.
‘델라일라의 규율보다, 육망성의 축복이 더 센 거겠지.’
배지민에게 시련을 주고 싶어 하는 그 우주의 의지가 독연을 더 자극하지 않았을까?
아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나저나 어쩌지?’
이대로라면 배지민이 탈락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개입하기에도 애매했다.
고대 마법으로 잠깐 막아놓을 수는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배지민이 무사할 거라고는 장담 못 한다.
“으음.”
아린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포효하는 독연을 보고 있을 때.
“우리 아린이.”
교수님의 담담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거기까지 했으면 됐어.”
스슷!
그림자를 밟아 등장한 주동훈이 빙긋 웃었다.
“교수님…….”
“여기서부터는 내가 처리할게.”
그런 교수님의 가슴에서도.
– 키아아아아아아아!
지기 싫다는 듯 엄청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독무(毒霧)의 소리였다.
* * *
배지민은 현 상황을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린이 튀어나온 것? 독연이 갑자기 등장한 것?
다 좋다.
근데 이젠 주동훈까지?
“…….”
그녀는 말없이 주동훈을 쳐다봤다.
편안한 후드를 입고 여유롭게 팔짱 낀 채 나선 그의 넓은 뒷모습.
이 세상 헌터라면 모를 수 없는 존재다.
‘스켈레톤 마스터.’
쿠과가가가가!
땅이 흔들리고, 고막이 터질 듯 굉음이 재차 울려대는 데도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
‘아.’
배지민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분이 자신의 롤모델.
자신의 목표.
왜일까?
너무나도 압도적인 광경을 보면 주눅이 들어야 하는데.
그녀는 기뻤다.
자신의 목표가 강해서.
저 목표만 넘어서면 자신 또한 저만큼, 아니, 저 이상으로 강해질 수 있다는 말 아니던가!
“어?”
그때.
배지민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왜냐면 주동훈의 앞으로 독연이 벼락처럼 짓쳐들어왔기 때문.
“조, 조심……!”
배지민이 외치려 하는 순간이었다.
– 키아아아아아아아!
부우욱, 부욱!
주동훈의 가슴 속에서 녹색 안개가 사방으로 뿜어지기 시작했다.
“어딜 이런 허접한 독으로.”
주동훈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독무야.”
– 키아아아아아!
그의 물음에 안개가 생물체처럼 대답한다.
“요 녀석에게 진정한 독이 뭔지 함 보여줘라.”
쿠과가가가!
독무(毒霧)가 다시 만난 고향이 반갑다는 듯 소용돌이쳤다.
끔찍한 극독을 곳곳이 피워내며, 독연의 기세를 품었다.
몰아내는 게 아니라 감싸 안는 광경.
놀랍게도 독무(毒霧)가 독연(毒煙)을 잡아먹고 있었다.
“어딜 우주를 떠돌던 허접한 독 따위가, 만독불침지체 안에서 한동안 태청심법과 몸을 섞었던 우리 독무(毒霧)한테 까불까.”
“으아아, 역시 우리 교수님!”
지켜보던 아린이 엄지를 척 세웠다.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던 배지민이 눈을 더욱 크게 떴다.
아니.
이상한 게 너무 많다.
천재인 그녀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기괴했다.
그 위대한 아린이 귀여운 표정으로 스켈레톤 마스터에게 엄지를 들어 올리는 것까진 좋다.
‘그런데.’
저 사람.
어떻게 저 강력한 독연을 저렇게 단숨에 쭈구리처럼 만들 수 있는 거지?
– 키에에? 키에에에에에!
오히려 기겁하며 물러나는 독연을 보니, 확실하다.
이건 붙어보기도 전에 승부가 난 거다.
독무가 굶주린 밀림의 포식자라면, 독연은 그저 겁많은 피식자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저 독 안개 같은 걸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주동훈은 뭘까?
애초에 이명이 스켈레톤 마스터 아니었나?
무슨 스켈레톤들도 말도 안 나올 만큼 강하고, 거기에 본인도 세면서…….
저런 독까지 다루는 건.
‘괴물이 아니라, 사기 아냐?’
롤모델이 세서 좋다고 했어도, 사기면 문제가 된다.
자신이 아예 넘어설 수 없는 사람이란 소리일 수 있으니까.
쿠과가가가!
“이제 그만.”
주동훈, 그가 읊조리자.
– 키아아아아아아아아!
독무가 승자의 포효를 내지르며, 그의 가슴 속으로 복귀했다.
마치 이곳보다 저 가슴 속이 더 포근하고 따듯하다는 듯이…….
심지어 독연의 독까지 일부 가지고 복귀했다.
마치 이런 느낌이다.
약탈자가 남의 집에 침범해서 스윽 훑은 후, 쓸 만한 귀중품만 가지고 튄 느낌?
“잘했어, 잘했어.”
그런 약탈자를 주인이란 자가 웃으며 칭찬한다.
‘이게 뭐야.’
짙푸르던 독연의 색이 분명히 옅어져 있었다.
분명히 강했지만, 예전만큼 압도적인 그런 기세는 없었다.
그저 꼬리 내린 똥강아지처럼, 구석에 박혀서 고개조차 못 들고 있었다.
“그래.”
그런 독연을 내버려 두고 주동훈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얘기는 좀 됐어요?”
“아…….”
배지민이 입을 슬쩍 벌렸다.
쿵쿵.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사실 별생각 없었는데, 일단 그는 자신의 롤모델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준비된 상태에서 만나도 떨렸을진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얘기는 좀 됐냐, 물으니.
‘으어어.’
비교적 어린 그녀라.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후.”
주동훈이 허공을 바라보며 호흡을 뱉어냈다.
“여기도 참 추억이네요. 포인트는 좀 많이 모았나요?”
“포인트요?”
배지민이 한쪽 시야에 떠 있는 글자를 흘깃 바라봤다.
[보유하신 시련 포인트입니다.] [시련 포인트 : 120,500]제법 많이 모았다.
아직 상점을 이용하진 않았지만, 가장 비싸다는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서’를 살 수 있을 정도의 양.
“예, 포인트. 아아, 예전에 내가 여기서 얼마 모았더라……. 대충 한 210만 정도였나?”
룰루.
휘파람을 불며 스쳐 지나가듯 말하는 주동훈.
‘에?’
배지민이 입을 떡 벌렸다.
210만?
21만도 아니고 210만?
그게 말이 되나?
주동훈이 시련 수석이란 말은 들었다.
근데, 그 수석 점수가 저따위로 말이 안 되는 점수인지는 꿈에도 몰랐다.
‘이건.’
그녀의 마음이 쏠리기 시작했다.
‘자존심 부릴 때가 아닌 거 같은데?’
인간 혐오 때문에 혼자 하기로 했다.
그게 그녀의 신조였다.
하지만 그 신조?
성인식이 끝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신조다.
신조 따위.
210만 치 강함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거다.
“어때요? 우리 아린이가 그쪽을 제자로 들이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아까 잠깐 듣기로는 거절하셨다고.”
“잠시만요.”
배지민이 입술을 떨었다.
* * *
‘넘어왔네.’
내가 빙긋 웃었다.
배지민의 눈빛을 보는 순간 알았다.
강함에 대한 욕망이 강한 자다.
그것도 압도적인 강함.
어릴 적 트라우마?
그것 때문에 사람을 못 만난다고?
‘웃기는 소리지.’
길가에 몬스터가 나오는 이 험악한 세상 속에서 그런 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트라우마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하세라도 성좌가 되지 않았던가.
힐끗.
왼쪽을 바라보니, 아린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교수님 최고……!]를 외치고 있었다.
그래, 그래.
우리 아린이가 가지고 싶다는데.
이 교수님이 가지게 해줘야지.
물론, 그렇다고 배지민에게 굽히고 들어갈 생각은 없다.
“더 생각할 게 남았나요? 저는 독연도 처리했으니, 바빠서……. 이만.”
스슷!
그림자를 밟아, 사라지려고 할 찰나.
“자, 잠깐만요!”
배지민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잡았다.
“그……. 제자로 들어가는 거 말이에요.”
“아, 그거…….”
“들어가면 별천지에 소속되는 건가요?”
“그렇겠죠?”
“그럼, 당신이랑도 계속 교류가 있는 거겠네요?”
“뭐, 아린이를 통한다면 가끔 볼 수도 있겠죠. 별천지도 합동 훈련 같은 거 하니까.”
“으음…….”
눈을 질끈 감은 채, 고민하는 배지민.
그녀가 떨리는 손을 멈추려는 듯, 주먹에 힘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이내.
“할게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예, 뭘요?”
내가 짐짓 모르는 채 물었고.
“할게요, 아린 님 제자!”
“아아.”
후후.
이거 봐라.
다 넘어왔네.
역시, 압도적인 힘 앞에는 장사 없다니까.
그런데.
“그 제자.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요.”
쉽게 받아줄 순 없지.
“……예?”
배지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때 분명 먼저 제의를…….”
“그땐 그때고요. 이번엔 그쪽이 제의한 거니, 상황이 달라졌잖아요?”
배지민, 이 녀석아.
네가 천재든, 육망성의 축복이든, 나발이든.
감히 아린이를 퇴짜 놓은 대가는 치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