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76)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76화
육망성의 축복 (4)
신묘한 홀.
시련의 중앙 센터 격 역할을 하는 델라일라의 공간에서.
“으음.”
누군가가 침음을 흘렸다.
불과 조금 전 낭패를 당할 뻔한 자, 마검사 뤼카였다.
그는 현재, 홀로그램을 통해 배지민의 화면을 보는 중.
“델라일라 님……. 저래도 되는 겁니까?”
“뭐가요?”
“아린 말입니다. 심사위원이 발각당한 게 아니라, 직접 모습을 드러낸 거지 않습니까.”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어투였다.
“글쎄요.”
그녀가 빙긋 웃었다.
분명히 설정해 둔 규율이 깨질 법한 일이었음에도, 델라일라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저는 던전을 제공할 뿐이죠. 만약 아린이 심사위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배지민의 개연성은 깎일 거예요. 도움받는 만큼 유리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그만큼 높은 보상을 가져가지 못한다는 말도 되거든요.”
게다가.
무려 주동훈이 하는 행사다.
델라일라는 주동훈이 시련을 접으라 하면 접을 각오도 되어 있었다.
‘이미.’
냉광철인가 뭔가 하는 빌어먹을 놈 때문에 망할 뻔한 시련을 구해준 그 아니던가.
“그나저나.”
델라일라가 홀을 가리켰다.
예쁜 동양인 여성, 배지민.
“참 대단하지 않아요?”
“뭐가 말입니까?”
“제가 눈여겨보고 있던 두 참가자 중 하나였거든요. 그걸 어떻게 알고 콕 집어낸 건지…….”
“……아.”
눈을 크게 뜬 뤼카가 주변을 둘러봤다.
수많은 홀 가운데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두 화면.
하나는 배지민의 화면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쉿 이터, 변승태의 화면이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한국인.
“특히 배지민의 행보는 역대 참가자 중 유난히 독보적이었죠.”
델라일라가 즐거워 보이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물론 주동훈은 예외라,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하여튼,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걸까요?”
“확실히……. 한국에 인재가 많은 것 같습니다.”
“후후, 더 지켜보자고요.”
엘로이즈 아린.
한때 마도 세계의 정점, 마탑주였던 자.
그녀가 왜 일부로 모습을 드러낸 건지.
또한 그것으로 여기서 무엇을 얻어나가려는 건지.
델라일라는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
‘지구의 평균 무력이 세진다.’
그것 하나만 충족하면, 그녀는 사실……. 뭐든 상관없었다.
* * *
배지민은 당황했다.
생뚱맞아도 너무 생뚱맞지 않은가.
시련에 참여해서, 세 빌런을 처리했더니 갑자기 나타나는 게 ‘아린’이라고?
“……엘로이즈 아린?”
그녀가 저도 모르게 모기만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린이 누구던가.
세계 랭킹 5위.
옥스포드의 현자(Oxford’s Sage) 소피아 실버스톤을 마법으로 찍어누른 존재.
주동훈의 소환수이기에 하이퍼 랭커에 등록되어 있진 않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마법사다.
심지어 최근에는 옥스포드보다 훨씬 큰 마탑도 설립했다지.
즉, 그녀는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 중 하나를 마주한 셈이다.
“안녕하세요?”
빙긋 웃은 아린이 편하게 인사했다.
주동훈을 제외하곤 살짝 사무적인 경향이 강한 그녀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배지민을 제자로 점찍어두었기에, 편하게 대하고자 했다.
“……진짜. 아린이세요?”
스윽.
배지민이 저도 모르게 검을 들며 물었다.
자신의 기척으로 알아차릴 수 없었던 존재.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온 게 호의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배지민의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갔다.
‘일단.’
아린이 참가자일 리는 없고.
주동훈과 델라일라가 모종의 관계가 있을 테니, 그럼 답은 하나다.
‘심사위원이겠네.’
동시에.
조금 전 읽었던, 정보권의 네 번째 문항이 떠올랐다.
#4. 특전이 존재한다.
참가자들은 본인들을 멀리서 지켜보는 심사위원들을 찾아낼 수 있다.
찾으면, ‘상점’을 ‘미리’ 이용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장으로 유추했었다.
하지만, 이토록 직접적으로 나타날 줄이야.
왜?
자신한테 원하는 게 뭐여서 이렇게 등장한 걸까?
“예, 맞아요. 진짜 아린이에요. 절 아시나 봐요?”
“모를 수가 있을까요?”
이 세계에 살면서.
특히 헌터가.
그녀를 모른다고 하면 말이 안 된다.
‘근데.’
신기했다.
본래 배지민은 인간 혐오가 있다.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불편한 감정부터 생긴다.
그렇기에 집단에도 들지 않고, 혼자 활동해 왔던 건데.
‘이상해.’
아린에게는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인간이 아니라 스켈레톤이라 그런 걸까?
그렇다기엔, 외형이나 눈빛이 너무도 인간이다.
배지민이 경계심과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아린을 보고 있을 찰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아린이 입을 열었다.
“전 그쪽이 마음에 들어요.”
“……예?”
당황한 배지민이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황당한 고백.
“그래서 도와주고 싶은데. 혹시 제 제자 할래요?”
* * *
제자.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그 뒤를 따르는 사람.
“…….”
배지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자요?”
아린의 제자?
좋다.
다 좋다.
실력이야 두말할 거 없고, 일단 교수 능력도 탁월하다.
별마전에서 아린의 제자였던 구 마탑의 교수들이 훨씬 높은 랭킹의 장로들을 꺾은 거로 이미 그 능력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헌터들이 그녀와 말 한번 섞고 싶어서 난리인데, 직속 제자라니…….
강해지고 싶은 배지민에겐 둘도 없는 기회가 맞다.
다만.
“제가요?”
“예.”
“저는 검수인데요?”
마법의 ‘마’ 자도 모르는 자신에게 마법을 가르친단 말인가?
“모르는 소리예요.”
아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쪽은 그 누구보다 강대한 마법사가 될 잠재력이 있어요. 다만, 이끌어주는 자가 없어서 몰랐을 뿐.”
“……예?”
배지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법사라.
사실, 안다.
그녀는 검을 들어도 창을 들어도 활을 들어도 잘 다룬다.
만약 누군가가 마법을 가르쳐 줬다면, 그마저도 잘했을 거다.
배지민은 자신이 있었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 마법을 독학으로 배우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배우지 않은 것일 뿐.
‘하지만.’
역시 혼자가 편하다.
인간은 다 똑같으니까.
– 대단한 능력이구나. 이쪽으로 와! 가족처럼 대해줄게.
– 응? 그 정도도 못 해줘? 왜? 난 우리가 가족이라 생각했는데. 원래 가족끼리는 대가 같은 거 없이 해줄 수 있는 거야. 그런 게 정이라고.
자신을 정말 가족처럼 생각한 게 아니다.
그저 재능을 탐냈을 뿐.
그 재능으로 돈을 벌고 싶었던 것일 뿐.
– 혼자이십니까?
– 에이, 요즘 누가 위험하게 던전을 혼자 다닌답니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에요. 함께 하고, 함께 나누면 어려운 길도 더 쉽게 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정말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 흐흐흐.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참 딱하네.
– 너, 그거 알아? 여긴 CCTV도 경찰도 없어. 객기 부리지 말고 어디 한번 꿇어 봐. 혹시 알아? 예쁘게 행동하면 목숨만큼은 살려 줄지?
– 킬킬킬킬!
욕심으로 움직이는 존재.
자신의 쾌락과 득을 위해 타인의 아픔쯤은 살짝 눈감을 수 있는 존재.
거짓말 안 하고.
그녀에게 다가오는 자들은 다 하나같이 이런 쓰레기들이었다.
그리고.
아린이라고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제자?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제안은 감사하나, 거절하겠습니다.”
배지민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소속될 생각이었다면, 천마신교 측에서 스카우트했을 때 받았을 거다.
별천지라고 예외는 없다.
“다만.”
고개를 든 배지민이 눈을 빛냈다.
“심사위원님. 특전에 따라 상점은 이용해야겠죠?”
* * *
키득키득.
“아, 교수니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아린이 빽 소리쳤다.
“제발 좀 그만 놀려요!”
배지민에게 접근했다가 제대로 빠꾸 먹은 그녀.
그 광경을 결계 속에서 지켜보던 내가 웃어버리자, 부끄러운지 저렇게 반응하는 거다.
“거절에 더해서 상점 셔틀이 되어버린 소감이 어때?”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이해는 해요.”
후.
호흡을 뱉어낸 아린은 생각했다.
‘한’을 풂으로써 뒤바뀐 자신의 기억.
어렸을 적 그 힘들었던 순간에 찾아와 줬던 자신만의 천사.
아린은 담당 교수라 하며 찾아온 그 천사에게 이렇게 대했었다.
– 당신 같은 사람이 지금껏 한둘이었는 줄 알아요?
– 신임 교수라고요? 저를 어떻게 갱생시켜서 한 자리라도 꿰찰 생각이신가요? 아니면, 패트릭 그 자식이 시켰어요? 괜히 희망 줘놓고 쪽이라도 주라고?
– 제발 그냥 괜히 실낱같은 희망 주지 말고……. 가던 길 가주세요. 부탁할게요.
도와주려 했던 자를 면전에 대고 쫓아냈었다.
그때의 자신에 비하면 저 배지민이라는 아이는 얼마나 정중하던가?
어쩌면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제안을 [감사하다]고까지 표현했다.
“교수님도 그랬었죠.”
아린이 중얼거렸다.
“아팠던 저를 위해서, 시간을 두고 가만히 지켜봐 줬어요. 배고픈 저를 위해 맛있는 음식까지 내어줬었어요.”
아린은 그때 먹었던 치킨을 지금도 잊지 못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눈을 빛냈다.
상점 셔틀?
오히려 잘 됐다.
그녀에게 모습을 드러낸 채로 계속 지켜봐도 무관하다는 말이니.
“기다릴 거예요.”
배지민이 진심을 알고.
마음을 열 때까지.
만약 마음을 안 열면?
그때 가서 포기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린이 주먹을 꽉 쥐었다.
‘걔는 뭐…….’
날아 들어온 복을 발로 뻥 차 날린 꼴인 거지.
사실.
아린이 아쉬울 건 없었다.
* * *
시간은 계속 흘렀다.
배지민은 정석적으로 독을 먹어 시련 포인트를 쌓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에 대한 내성이 생겼고.
그 이후에는.
[독 보너스가 있습니다.] [‘크레이지 포이즌’은 1급 맹독입니다.] [시련 포인트를 500 획득합니다.]그 끔찍하던 1급 맹독까지 처리해 낼 수 있게 되었다.
“후우우…….”
따끔하게 부어오른 식도 사이로 독기가 빠져나갔다.
그녀가 하는 호흡법.
누군가 알려준 게 아니다.
그저 이렇게 하면 효율적일 것 같은데? 생각해서 그렇게 호흡하고 있는 것일 뿐.
독을 몰아내는 방법 역시 누구에게 배운 게 아니다.
“후, 후우우!”
그녀는 본능대로 기운을 끌어모아, 호흡으로 뱉어냈다.
“대단하네요.”
흠칫!
배지민이 몸을 떨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한 목소리.
아린이었다.
그녀는 심사위원이자, 상점으로서 간혹가다 모습을 나타낸 채 그녀를 지켜보는 중.
“벌써부터 1급 맹독까지 처리할 수 있다니……. 이건 교수님도 놀라시겠는데요?”
“…….”
배지민은 가만히 할 거 하면서도 아린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들을 때마다 기억해서 문장 하나하나를 분석했으며,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했는지 생각했다.
아린은 위대한 자.
말 한마디에도 현기가 느껴진다.
‘일단.’
배지민이 습관적으로 입술을 오물거렸다.
교수님이라는 자가 주동훈일 확률이 100%.
[벌써]라는 표현을 쓴 것 보니, 주동훈도 독 섭취로 수석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그럼 더 먹자.’
몸이 쑤시듯 아프고, 아직도 고약한 냄새가 코안에 남아 있었지만.
꾸준히 먹어야 한다.
그 독연(毒煙)이라는 놈이 나오기 전까지, 최대한 내성을 기르고 포인트를 모아야 한다.
* * *
셋째 날.
배지민은 신기한 사실을 깨달았다.
열대우림의 중앙 구역으로 갈수록 더더욱 빡센 맹독이 나타날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
그 말은.
독들이 중앙에 있는 ‘독연’(毒煙)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말이다.
저벅, 저벅.
그녀는 계속해서 중앙 구역으로 나아갔다.
원래는 자주 마주쳤던 참가자 무리도, 중앙에 가까울수록 줄어들었다.
독연 근처.
공기부터가 찐득하고 맵기에, 잘 모르는 헌터들도 이곳까진 오지 않는다.
배지민도 정보권이 없었다면 절대 오지 않았겠지.
마치 피톤치드가 방산되어 주위 미생물을 죽이고 벌레들을 쫓아내는 것처럼.
끔찍한 독연의 기운이 사람을 본능적으로 기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배지민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독을 더 먹기 위해서.
그리고 추후 만나게 될 독연(毒煙)을 가까이에서 느껴보기 위해서.
* * *
일주일째.
배지민은 결국 중앙 구역에 도달했다.
여기 잠들어있는 괴물이 깨어나려면 아직 2주 정도 남은 상황.
“아아.”
도착한 배지민은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온 공기에 독향이 너무 가득할뿐더러.
– 키이이이이이……!
저 멀리, 무저갱 속에서부터 울려 올라오는 듯한 공포스러운 기운에 호흡이 턱 막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무슨…….’
저건 독이 아니었다.
정보권의 표현대로 하나의 괴물이었다.
배지민은 문득 자신이 잘못 선택했다는 걸 깨달았다.
독연(毒煙) 근처로 가, 히든을 노릴 게 아니라.
최대한 멀어져 생존을 모색해야 했다.
만약 저런 것에 노출된다면?
100% 끝이다.
저건.
사람이 견뎌낼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만약 상대하려면, 적어도 천독불침(千毒不侵)의 경지까지는 올라야 비벼볼 만하겠지.
그러려면, 이 정도 독 섭취량으로는 턱도 없다.
더 많이 먹고, 더 빨리 찾아야 했다.
‘이런.’
당황한 표정을 지은 배지민이 등을 돌려 자리를 박찰 찰나였다.
쿠르르르릉!
땅이 흔들렸다.
열대 숲으로 이루어진 세상 자체가 뒤흔들렸다.
“뭐, 뭐야?”
당황한 그녀의 시야에 뜬 메시지.
[중앙 지역에 ‘독연’(毒煙)이 등장합니다.]엥?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