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46)
제련 다음은
숲 지대에서 흘러나오는 기척에 다그나르가 급히 말했다.
“제기랄, 엘프야! 아이고! 우린 이제 끝났구나! 경계 지역에 엘프가 나왔다? 그건 100% 무리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라네.”
그가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잔말 말고 준비해요! 상대는 한 명이니까.”
이미 뼈삼이의 ‘시야 확보’를 통해 확인했다.
이 근처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우리 둘을 제외하곤 단 한 명.
“그게 정말인가?”
다그나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맞구나! 그러고 보니…… 자네! 저번에 일신의 힘으로 엘프 무리를 다 처리하지 않았나? 이거 살았구나, 살았어!”
“쫌, 조용히 해봐요.”
내가 입가를 씰룩였다.
보통 상대 같았으면, 여유 좀 부렸겠으나.
“주군, 심상치 않은 자입니다.”
태양창이 경계하는 것만 봐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옆에 노인도 없는 상태.
심리적으로 불안했다.
스슷!
그때였다.
잎사귀 밟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낼 찰나.
“태양아!”
“예, 주군!”
[‘태양창’이 스킬, 태양연격(太陽連擊)(Lv.4)을 사용합니다.]파바바밧!
태양이가 신속하게 창을 찔러 넣었다.
섬광이 전류 튀기듯 번쩍이며 쏘아졌다.
상대가 누구든.
일단은 선공이 유리하기에, 제압할 수 있을 때 제압해 놓아야 한다.
만약 오해라면?
그건 그 이후에 풀어내면 된다.
하지만.
오해는 내가 하는 거였다.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착각.
퍼어억!
무언가 강렬한 힘이 태양이를 쳐냈다.
“흐읍!”
태양이가 외마디 호흡과 함께 뒤로 물러섰다.
상상 이상의 힘에 당황한 것 같았다.
“음…….”
나는 신음을 흘렸다.
동시에 뼈사를 전방에, 뼈일이와 뼈삼이도 전투에 참여시켰다.
이미 싸움은 시작됐다.
상대가 강하건 말건.
뭐라도 해야 했다.
그러할 찰나.
“잠시만요.”
상대가 손을 들었다.
“……?”
나는 그제야 상대의 모습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었다.
긴 머릿결에 푸른색 눈.
소름 끼치도록 새하얀 피부.
그리고 여느 엘프처럼 긴 귀.
“공격을 멈추세요. 싸우려고 온 게 아니니.”
뭐야, 엘프가 말을 거네?
“저는 지금까지 이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네?”
나는 당황했다.
이 엘프는 뭐지?
내가 누군 줄 알고 여기서 기다려?
“세외(世外)의 존재여. 우리는 당신이 누군 줄 알고 있어요. 갑자기 나타난 당신의 존재로 인해 두 일족 간의 균형이 깨졌죠.”
엘프의 눈빛은 신비로웠다.
동시에 강했다.
마치, 의장 볼카누스를 보는 것처럼 저릿저릿했다.
“당신은 분명 드워프들에게 선물을 줬죠. 하지만 돌아온 건 그들의 배신이었어요. 배신당했는데도 가만히 있을 건가요?”
“…….”
그러니까.
드워프들이 등을 돌렸으니.
이제 엘프 진영 쪽으로 와라.
이런 말인가?
“가, 간악한 속임수일세! 자네, 설마 저 엘프에 말에 혹하는 건 아니겠지?”
다그나르가 외쳤다.
그러자 엘프의 시선이 다그나르를 향했다.
“아둔한 생각이로군요. 눈앞의 적을 견제할 수만 있다면, 마룡과도 손잡을 수 있다는 게 제 신념이자 철학이에요.”
적의 적은 친구.
쉽게 말하면, 너희도 버림받았으니 우릴 이용할 테면 이용하란 뜻이다.
“저 보게! 얼마나 사악한 종족이면, 500년 전 마룡까지 입에 담는단 말인가? 속지 말게!”
“제 이름은 세르핀. 굳이 그대들을 속여서 얻을 실익이 없답니다.”
“……!”
세르핀?
그게 누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둑한 밤, 그녀의 등 뒤를 비추는 달빛이 굉장히 밝아 보인다는 거였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발악하던 땅딸보가 갑자기 침묵했기 때문이었다.
“다그나르 씨?”
“…….”
내 부름에도 다그나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왜 말이 없나 살펴봤더니, 온몸이 굳은 것 같았다.
얼굴 근육은 경직되어 있었고, 허벅지는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다그나르 씨. 왜 그러세요?”
“세, 세르핀……?”
“네?”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우린 죽었네. 끝났어. 다 끝났다고. 내 삶도, 자네의 삶도. 아아, 젠장할. 내 귀신이 되어서도 의장을 저주할 거라네…….”
“왜요, 그니까 도대체 왜. 세르핀이 누군데요?”
내 물음에 다그나르가 침을 꼴깍 삼켰다.
눈앞, 세르핀 역시.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푸른 눈으로 쳐다보며, 기다릴 뿐이었다.
“세르핀은…….”
이윽고, 다그나르의 입술이 떨렸다.
“엘프들의 여왕, 하이엘프 퀸의 이름일세.”
“네?”
뭐라고?
하이엘프 퀸?
나는 두통이 일었다.
그러니까, 저 눈앞의 엘프 여자가.
의장 볼카누스와 삐까 뜬다는 그런 존재란 거지?
그런 존재를 내가 겁 없이 선공한 거였고?
‘아이고 두(頭)야.’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그러니까.”
잠시 후.
나는 세르핀을 바라보며 입술을 열었다.
“그쪽은 의장과의 약조 때문에, 이 전쟁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말씀인 거죠?”
“정확해요.”
“그리고 그쪽은 제가 드워프들에게 무기를 만들어준 거만큼, 똑같이 엘프들에게도 만들어주는 걸 바라는 거고요. 그게 아니면 절 죽일 거고?”
“뭐, 죽인다고 한 적은 없지만…….”
그녀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대는 세외의 존재. 그대와 접촉하는 건, 간접 개입의 영역이니까요.”
“후우, 무섭네요.”
나는 일단 진정했다.
솔직히 속마음은 오히려 긍정적이었다.
의장에게 쫓겨난 마당에 어찌해야 하나 답이 없었는데.
엘프 종족의 대가리가 먼저 손을 내민 상황 아니던가.
‘분명 엘프 종족과의 호감도는 25야.’
세르핀의 눈빛에는 분명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확실한 건.
의장이나, 하이엘프 퀸이나.
한계를 넘어선 절대자들은 호감도 시스템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기회네.’
줄어든 엘프들의 호감도를 다시 끌어올릴 기회.
“알겠어요. 알겠는데요. 일단, 제가 뭘 할 수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할 것 같은데요?”
솔직히.
기대도 됐다.
엘프 측에서도 분명 무언가 만들 수 있는 기구가 있을 텐데.
그게 우리 뼈육이의 숙련도를 또 얼마나 올려줄지 설렜다.
“……그럼 이동해 보시겠어요?”
세라핀의 물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그나르는…….’
옆을 보니, 걱정할 필요 없을 듯했다.
아무리 엘프가 미워도.
의미 없는 죽음만큼은 피하고 싶겠지.
혹시 아는가?
저 드워프의 존재가 종족 갈등 해소의 실마리가 될지?
세상일은 모르는 거다.
* * *
세르핀이 안내한 지역은 외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저건 누구지?”
“바위 일족의 냄새가 나.”
“고약하다. 드워프도 있잖아?”
전투력 없는 엘프들이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지만.
세르핀의 존재 때문인지, 그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했다.
물을 뜨거나, 식물을 관리하는 등의 잡일을 할 뿐.
“여긴 어디죠?”
나는 세르핀에게 물었다.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는 양과 염소가 가득했고.
거미와 누에가 가득했다.
‘이거 설마…….’
양, 염소, 거미, 누에.
이 네 가지의 공통점은 단 하나.
‘방직?’
방직의 기초 재료인 실을 구성하는 것들이었다.
“저희 숲의 일족들은 바위 일족과 다르게 금속을 다루지 못해요. 단, 실을 뽑고 천을 짜낼 수는 있죠. 그걸로 의류를 만들 수도 있고요.”
세르핀이 나를 바라보았다.
“세외의 존재여. 그대는 무언갈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멀리서 마법을 통해 확인했지만, 그대가 천둥 망치를 제작하는 모습엔, 종족을 떠나 감동을 얻었답니다.”
“그……래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여기 이걸 받으세요.”
세르핀이 무언가를 건넸다.
‘이건…….’
하나의 도면이었다.
마치 과거 토니르가 건넸을 때와 비슷한 느낌의 도면.
[아이템 : 엘리시스의 망토] [등급 : A] [종류 : 도면] [설명 : ‘엘리시스의 망토’를 제조하기 위한 설계도입니다.] [효과1 : ‘엘리시스의 망토’ 제작 가능.] [효과2 : ‘중급 실’ 50개, ‘중급 천’ 100개, ‘상급 실’ 2개, ‘상급 천’ 2개 필요.] [효과3 : 제작 난이도가 복잡한 만큼, 뛰어난 성능을 자랑합니다.]“부디 그대가 깨 놓은 균형을 다시 맞춰주세요.”
“…….”
아아.
진짜야?
제련에 이어서 방직 숙련도까지 올릴 수 있게 해준다고?
거기다 또 다른 A급 도면까지?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긴 한데.’
사실,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던전이 이렇게 내 편의대로 흘러가 준다고?
그것도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한다는 매개체 던전이?
“일단,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볼게요.”
우선, 지금은 선택지가 없다.
세르핀은 이세계의 절대자 중 하나라니까.
혹여 기소율이 도우러 온다 해도.
일초지적(一招之敵)도 안 되겠지.
내 답에 세르핀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다.
숨도 못 쉬고 눈치만 보던 다그나르의 입이 그제야 열렸다.
“에휴, 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도통 모르겠네. 내 생에 숲 지대 한복판에 들어와 엘프들을 돕고 있다니. 하이엘프 퀸이나 의장이나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맞는 말이다.
나도 이 퀘스트가 도통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정말 여왕의 말대로 저들의 망토를 만들어줄 텐가?”
“살고 싶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말은 이렇게 했다지만.
사실 내 목표는 저 두 종족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
일단, 내가 틀어놓은 균형을 맞추긴 해야 했다.
“난 절대 못 하네! 아무리 의장이 싫다지만! 종족을 배신할 수 없어! 아무리 은인인 자네라 하더라도 이건 아닌 것 같네!”
“으음.”
세르핀 앞에서나 그렇게 말할 것이지.
나는 대충 주변에 소지품들을 정리했다.
확실히 엘프보다는 드워프가 고집이 좀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렇다고 날 위해 목소리를 냈던 다그나르에게 실망감을 줄 순 없다.
“바위 일족을 배신하는 게 아닙니다.”
정확히는 의장이 날 배신했지만.
“그럼 뭔가?”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적을 명확히 이해해야죠.”
“그래서?”
“편하게 생각하세요. 생각해 보면 엄청난 성과 아닙니까? 적진 한복판에 아무런 위험 없이 잠입했는데?”
“그건 궤변일세.”
다그나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가 하는 건 적을 염탐하는 게 아니야. 명백히 적을 돕는 거지. 현재 자네의 제작 기술은 과거 선조의 경지에 올라와 있을 정도네. 자네가 만들 의류는 엘프의 몸을 보호하고 드워프의 망치를 막아내겠지.”
“아니죠, 아니죠.”
내가 고개를 저었다.
한 번 더 강조하는 거지만.
내가 이곳에서 깨야 할 최종 임무는 갈등을 해결하는 거지, 뼈육이의 숙련도를 쌓는 게 아니다.
‘그리고 갈등을 해결하려면?’
그 갈등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아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역사를 묻는 거다.
두 종족의 역사.
물론, 한 종족의 일방적인 역사가 아닌 유적에 기반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
“다그나르 씨. 혹시 500년 전 마룡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아십니까?”
“마룡?”
다그나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동공이 커졌다.
“자, 자네…… 설마?!”
“네?”
“아아, 역시 자네! 다 생각이 있었구만? 크으, 내 자네를 잠깐이나마 의심했다니, 정말 미안하네.”
“……?”
“맞네! 우리 드워프들이 가장 알고 싶었던 곳! 마룡의 봉인지가 이곳 숲 지대에 있었어! 세르핀이 시킨 일을 하면서 눈을 돌리는 동안 그곳을 조사해 보면 되겠군?”
그, 그런 거야?
“그곳엔…… 우리의 선조. 위대한 드미르의 유물이 남아 있네. 그 유물을 찾는 게, 우리 드워프의 숙명이자, 전쟁의 이유였어! 으하하, 자넨 정말 천재일세! 난 믿고 있었다고!”
……진짜로?
이거.
무언가 얻어걸린 기분이긴 한데.
일단 넘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