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45)
축객령
어떤 존재의 이야기를 해보자.
의장 볼카누스.
그는 무려 오백 년간 바위 일족의 최정점으로 군림해온 드워프다.
과거 최고의 대장장이였던 ‘위대한 드미르’가 죽은 이후, 볼카누스는 단 한 번도 의장직을 놓치지 않았다.
– 당연하지. 그가 가장 강하니까.
– 암, 원래 전시에는 가장 강한 자가 의회를 이끌어야 하는 법이라고.
– 위대한 볼카누스!
– 볼카누스가 없었으면, 우리 일족은 이미 멸족이었어!
전쟁은 바위 일족의 ‘장인 정신’을 잡아먹었다.
엘프들의 화살에 피를 흘리고 살이 찢길수록, ‘힘’을 갈구했다.
그 ‘힘’의 최고봉에 선 자.
그게 바로 볼카누스였다.
– 바위 일족이여! 무기를 만들지 마라!
의장직에 오른 직후.
그가 했던 연설이었다.
– 도구를 버리고 무기를 들어라! 왜 모루를 치고 앉아 있는가! 정 칠 게 없으면 차라리 엘프를 잡아다 두들겨라! 정 무기를 만들고 싶으면, 엘프의 뼈를 가져다 만들어라!
본래 엘프와 드워프는 형제와 같은 종족이었다.
서로 돕고 돕는 공생(共生)의 관계.
엘프들은 손재주가 없다.
그들이 만들어 봐야 풀떼기나 나무만 엮을 줄 알지, 철과 같은 금속을 다루진 못한다.
때문에 드워프들에게 무기를 공수받아야 더 강력한 전투력을 가질 수 있었다.
– 억울하지 않은가? 답답하지 않은가? 우리가 왜 엘프의 노예를 자처해야 하는가! 열심히 만들어 놓은 것들 다 빼앗기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힘이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력이다! 그게 없다면, 꿈꿀 권리가 없다! 희망을 노래할 자격이 없다!
사실, 과거의 그들이 힘을 합쳤던 이유는 따로 존재했다.
숲.
그리고 바위 지대를 지배했던 용.
거대마룡(巨大魔龍) 드루건.
세계의 모든 종족을 벌벌 떨게 했던 존재.
그 포악한 용을 견제하기 위해서 두 종족은 힘을 합쳤었다.
엘프는 무력을.
드워프는 무기를.
두 종족은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 우리는 이미 용을 죽였다. 드미르와 엘드린의 합작으로 지하 무저갱 속에 틀어박았지!
전설의 대장장이 ‘위대한 드미르’.
그리고 전설의 하이엘프 월광(月光) 엘드린.
본래 500년 전까지만 해도.
그 둘이 숲과 바위 일족을 대표하는 절대자였다.
두 영웅은 일족의 힘을 하나로 모아, 용을 바닥에 묻고 장렬히 전사했다.
– 한데, 지금에 와서 무엇한다고 무기를 만들고 있는가! 저 사악한 엘프들을 보아라. 그들은 우리가 만들어준 활로 우리의 심장을 꿰뚫는 배신의 종족이다! 결국, 공동의 적이 없다고 곧바로 칼을 빼 드는 살해에 미친 종족이다!
볼카누스의 명령은 단순했다.
엘프를 멸살시켜라!
그전까지 어떠한 제작 활동도 행하지 말지어다!
사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명일지도 모른다.
– 왜, 우리의 장점을 살리지 않는 거지?
– 맞아! 어차피 엘프는 활을 주 무기로 다루는데! 활만 안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 그러네? 그럼 무기를 뺏길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몇몇 드워프들이 합리적인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볼카누스의 고집은 대단했다.
– 시끄럽다. 전선에 인원이 얼마나 모자란 줄 아느냐?
– 게다가 포로로 잡힌 대장장이는? 너희는 네 가족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무기를 만들지 않을 자신이 있더냐?
논리치고는 살짝 빈약하긴 했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 다 필요 없고. 아니꼬우면 덤벼라. 너희가 이기면 의장직을 내려놓겠다!
그야말로 폭군.
그리하여 500년이라는 기간 동안.
볼카누스의 독재가 지속됐다.
그리고 지금.
이곳 상원 회의실에.
그 독재의 산물이 강림했다.
저벅, 저벅.
천천히 걸어오는 땅딸보의 걸음엔 형용할 수 없는 거력(巨力)이 담겨 있었다.
처음 노인을 만났을 때처럼, 존재 자체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의장을 뵙습니다.”
“의장을 뵙습니다.”
탁자에 앉아 있던 드워프들이 모두 일어나 경례를 표했다.
다그나르와 나 역시 머뭇거리며 일어섰다.
“흐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이 혀를 끌끌 찼다.
“확실히 세상은 넓고 재미있도다. 살아생전 다른 세계를 노닐 수만 있었다면, 참 즐거웠을 텐데.”
입맛을 다시는 게, 한번 붙어보고 싶은 것 같았다.
물론, 생자(生者)와 망자(忘者)가 직접 마주할 일은 없겠지만.
“자네가…….”
의장, 볼카누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한 것은 그때였다.
그의 우락부락한 근육이 꿈틀거렸다.
“이번에 우리 일족에게 무기를 선물했다는 그 요주의 이종족인가?”
요주?
라는 말이 좀 거슬렸지만.
사실, 맞는 말이긴 하지.
“그렇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무언가 느낌이 싸했다.
픽, 웃고 있는 볼카누스였지만.
분명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명백한 적의(敵意)를 담은 눈빛.
‘뭐지?’
분명 드워프와의 호감도는 75에 달한다.
거기에 난 저들에게 은을 줬으면 줬지, 해를 끼치진 않았다.
“그나저나 자네.”
볼카누스의 목소리가 싸늘했다.
“광산은 누구 허락을 받고 쓴 겐가?”
“…….”
회의실에는 정적이 감돌았고.
공기는 심해 속에 들어선 것처럼 답답해졌다.
동경의 눈빛으로 의장을 바라보던 다그나르도.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의장이 강하고 말고를 떠나서.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
“실례지만,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제가 드워프 일족에게 해 끼친 거라도 있는 겁니까?”
“물론일세.”
볼카누스가 즉답했다.
“광산을 폐(閉)하고 무기를 만들지 않는다. 그게 내 500년간의 기조였다네.”
아아, 그거였나?
다그나르가 도통 이해가 안 간다고 했었던 말.
무려 500년이나 쌓인 꼰대력의 결정체.
볼카누스는 내가 무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 기조가 자네의 경솔한 행동으로 흔들리려 하는 중인데, 어찌 부르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
“무려 400년 동안의 노력이었네. 100년 전, 그제야 블랙스미스 기술을 역사 속으로 지워낼 수 있었는데, 자네가 다시 드워프들의 창작 욕구를 일깨우고 있으니. 나는 몹시 화가 난다네.”
“…….”
어이가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이곳 일대의 손님일 뿐이고.
이곳의 주인은 볼카누스다.
그의 입장에서 난 본인이 정화해 놓은 물을 어지럽히는 미꾸라지일 뿐.
“죄송합니다.”
나는 일단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뭐가 어찌 됐든, 이 퀘스트의 끝은 두 일족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
갈등을 해결하기도 전에, 갈등을 쌓을 순 없었다.
“악의는 없었습니다. 낭비되고 있는 광산이 있기에, 활용하고 싶었고. 무기 역시 드워프들이 만들어달라 했기에, 만들어줬을 뿐입니다. 자세한 내막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다 떠나서.
눈앞의 존재가 너무 강하다.
사실, 강한 자의 말이 곧 정의 아니겠는가?
“허허.”
노인이 옆에서 털털 웃었다.
“우리 제자가 무모한 줄로만 알았더니, 누군가에게 굽힐 줄도 아는구나.”
‘굽힌 건 아니고 피해 가는 거죠. 뭐, 똥이 무서워서 피한답니까?’
“저 정도면 꽤나 무서운 똥이지.”
‘뭐, 그건 그렇죠.’
“그나저나 어쩔 셈이냐? 저놈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 같은데?”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아서라, 이번은 저번 태양창 때와 같이 네 정신 속이 아니다. 이곳은 실존하는 세계. 잘못하다간 뒈질 수도 있어. 네 녀석이 뒈지면 만술도 끝장이다. 알겠느냐?”
내 걱정이 아닌.
만술 걱정만 하는 것 같아 좀 속상하긴 한데.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왜?”
‘저들의 눈빛을 보세요.’
나는 눈짓으로 회의에 참여한 인원들을 가리켰다.
입을 꾹 담은 그들이었지만, 나는 분명 느낄 수 있었다.
“허어, 불만족스러워하는군.”
‘네, 바로 그거예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의원들은.
아니, 다그나르와 같은 모든 바위 일족들은.
분명 볼카누스의 독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있었다.
힘이 너무 강하기에 참고 있을 뿐.
‘볼카누스가 아무리 독재자라 해도, 절 함부로 죽일 순 없을 거예요. 굳이 기름 옆 도화선에 불을 지필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독재자는 막강해 보여도, 항상 혁명을 두려워하며 사는 법이죠.’
볼카누스는 힘이 세다.
그냥 센 게 아니다.
모든 드워프와 엘프가 힘을 합쳐도 못 이길 만큼 세단다.
그 말은 지금도 당장 모든 드워프들을 없앨 수 있다는 말.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했다.
‘같은 종족이니까.’
아무리 세다 해도.
반항하는 자들을 다 처단해 버리면, 그 위에 군림하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드워프는 은혜를 아는 종족이라 했다.
볼카누스야 본인이 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니, 저렇게 나오는 거지만.
나머지 드워프들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로서는 굳이 귀찮은 짓을 할 필요 없었다.
“흠.”
볼카누스가 날 직시했다.
“미안하지만, 자네는 우리 일족의 은인이 될 수 없을 것 같네. 마음 같아서는 내 자네를 당장에라도 찢어발기고 싶지만, 악의는 없었으니 넘어가 주겠네, 다만.”
그는 고집불통이었다.
타 의원들의 의견을 물으려,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당장 이곳 도시, 타이탄을 떠나주게.”
명백한 축객령.
그게 볼카누스가 나를 소집한 이유였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옆에 있던 다그나르가 외친 것은 그때였다.
“주동훈은 분명 우리 드워프의 은인입니다! 우리가 의장의 명을 어긴 것도 아니고! 타 종족이 호의로 무기를 만들었을 뿐인데 문전박대라니요!”
“말이 안 된다고?”
볼카누스의 시선이 옮겨졌다.
다그나르가 ‘헉’하고 숨을 삼켰다.
엄청난 힘이 그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나름 예를 갖춰서 점잖게 말하니, 우습게 보이는가?”
“커헉!”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간단하지.”
콰앙!
볼카누스가 힘 있게 탁자를 내려쳤다.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하는 그만의 행동이었다.
“너도 같이 떠나거라.”
켁.
졸지에.
다그나르도 함께 쫓겨났다.
* * *
어둑한 밤.
바위 지대와 숲 지대 경계선으로 쫓겨난 나와 다그나르가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참나. 어이없는 의장 새끼. 위대한 볼카누스는 개뿔. 힘만 무식하게 세면 뭐하나? 그러니까 아직도 전쟁을 못 끝내고 있는 거 아니겠나! 쯧쯧.”
“황당하긴 하네요.”
말 한마디 했다고.
종족을 부정당하다니.
나야, 원래 타 종족이었다 쳐도.
다그나르가 참 안쓰러웠다.
‘게다가.’
사실, 나 역시 많이 아쉬운 상태였다.
퀘스트도 퀘스트지만…….
광산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재료들이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뼈육이 숙련도 올려야 하는데.’
“그나저나.”
나는 투덜거리는 다그나르를 멈춰 세웠다.
“왜 그러는가.”
“이제 우리 어떡하죠? 갈 곳이라도 있나요?”
이 세상은 딱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엘프 지대, 아니면 드워프 지대.
곳곳에 타 종족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내 물음에 다그나르가 답했다.
“내가 그걸 어찌 알겠나. 전투할 때 빼고는 바위 지대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인데.”
“……그러시군요.”
“하아, 빌어먹을 의장. 내가 그놈의 고집으로 얼마나 잘 싸우는지 지켜보겠…….”
궁시렁궁시렁.
다시 의장을 향한 끊임없는 저주가 시작되려 할 찰나였다.
“잠시만요.”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내 감각에 어떠한 기척이 잡혔기 때문.
‘적어도 수준급 이상.’
방향은 숲 지대.
만약 엘프가 등장한 거라면 위험하다.
그들과의 호감도는 고작 25.
“젠장, 전투 준비해요!”
나는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