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55)
엘드린과 드미르 (4)
“일주일 동안 모든 걸 다 끝내야 해요.”
엘드린이 말했다.
“저희가 각성한 이후로, 금제 구슬의 효력이 사라지고 있거든요.”
그녀가 뒤를 힐끔 바라봤다.
그곳에는 [끄아아아!]거리는 용이 봉인 당한 채 발광하고 있었다.
옆에서 드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알다시피 용은 끔찍하게 강하다네. 금제가 풀리는 순간, 모든 게 끝일 거야.”
“위, 위대한 선조시여.”
다그나르가 조심스레 손을 든 것은 그때였다.
드미르가 스켈레톤의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면 일주일 후, 세상이 멸망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으잉? 그랬다면 내가 뭐하러 봉인을 풀고 요 앞에 나타났겠나.”
그의 낯빛에서 ‘내 종족이 원래 이렇게 멍청했나?’라는 감정이 살짝 떠오른 것 같았지만.
이내 표정이 사라졌다.
엘드린도 옆에 있는 마당에.
제 얼굴에 침 뱉는 거라 생각했겠지.
“그, 그럼 아닙니까?”
“쩝,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않겠나? 다만 확실한 건, 그렇지 않게끔 노력해야 한다는 거겠지.”
드미르가 이번엔 나를 쳐다봤다.
“자네.”
“예?”
“시간이 없네. 자네는 알 거야. 우리가 각성한 것도 잠깐이라는 걸.”
“네, 알고 있어요.”
시스템이 말해줘서 알고 있었다.
“시간은 딱 일주일. 그 이후엔 우리 힘도 다시 흩어질 거라네. 영혼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겠지. 그에 맞춰 용의 금제도 풀릴 테고.”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하나요?”
“그전에 용을 죽여야 하네.”
드미르가 망치를 꽉 쥐었다.
“거대마룡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지만, 세계 역시 세계를 지배한다 할 수 있지 않겠나.”
“그게 무슨 소리죠?”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일까.
“이곳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모름지기 숲의 일족과 바위 일족일세. 용이 강한 만큼 우리 세계도 그에 비등할 정도로 강하다는 말이지.”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박에 이해한 것이다.
“화합(和合). 모든 종족의 힘을 하나로 합칠 생각이시군요. 숲의 일족과 바위 일족이 합쳐져야 하나의 세계와 다름없어지니까.”
“정답일세.”
맞다.
본래 이 매개체 던전, ‘숲과 바위’의 목적은 단 하나.
종족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
“모든 종족이 힘을 합쳐, 용의 금제가 풀리기 전에 합공할 생각일세.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다시피.”
드미르가 자신의 몸을 한번 쓱 훑었다.
뼈다귀로만 이루어진 게 신기하다는 듯이.
“몸이 이러한 상태라 말이지.”
하긴.
나라 해도 갑자기 선조가 뼈다귀 모습으로 살아 돌아왔다 하면, 못 믿을 거다.
“만약, 자네가 우릴 도와 용을 처리해 주기만 한다면…….”
쿠웅!
드미르가 망치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스윽.
지켜보던 엘드린 역시 앞으로 한걸음 다가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종족의 원한을 갚아준 대가로, 이 영혼이 다할 때까지 자네를 따르겠네.”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숲과 달빛의 이름을 걸고 약속해요.”
두 뼈다귀가 진지한 표정으로 날 응시했다.
동시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띠링!] [스테이지 : 숲과 바위] [난이도 : 측정 불가] [임무가 피날레에 닿았습니다.] [종족 간의 화합을 이끌어내 일족의 영원한 숙적 ‘거대마룡’을 처치해야 합니다.] [두 영혼의 ‘한’을 달래, ‘뼈다귀3’과 ‘뼈다귀6’의 진정한 각성을 이뤄내세요.]진정한 각성!
역시나.
태양이를 얻었을 때와 비슷한 과정이었다.
기한은 일주일.
내 입술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래, 기다리고 있었다.
“좋습니다.”
* * *
종족의 화합.
그러기 위해서는 두 종족을 설득해야 한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려 500년 동안 쌓여왔던 감정의 골이 어찌 일주일 만에 접히겠는가.
“엘프들은 제가 다스릴 수 있어요.”
진정한 하이엘프 퀸, 엘드린.
그녀는 숲의 일족의 생태를 잘 알았다.
“엘프들은 여왕의 말에 거역할 수 없거든요. 제 외형이 어떻든, 아이들은 즉시 제 존재를 알아볼 거랍니다. 그럼 먼저 움직여 볼게요.”
엘드린이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숲을 향해 걸어갔다.
무언가 종족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제스처였다.
옆에서 드미르가 툴툴댔다.
“흥, 여왕 말에만 따르는 종족이라니. 아무렴 지성을 가진 종족은 개인의 자유가 있어야지. 우리 바위 일족처럼 말이야.”
화합에 앞서.
드워프가 걸림돌이 될 것 같다는 내 판단에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무슨 여왕개미를 따르는 개미들도 아니고 말이야.”
“하하, 바위 일족도 뭐. 크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나는 씩 웃었다.
“드미르의 실력만 있으면 말이에요.”
“그런가?”
“네, 우리도 슬슬 이동할까요?”
엘드린을 제외한 우리는 다시 타이탄으로 향했다.
의장 볼카누스의 명으로 입장하기 까다로웠지만 상관없었다.
그 의장.
이제는 저 봉인지 밑에 박혀 있으니까.
타이탄 정문을 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허허, 자네. 벌써 잊었는가? 여기 주동훈은 우리의 은인일세. 아, 일단 들여보내 주게! 의장이 허락했다니까? 자, 여기 받게. 내 성의일세. 어허! 자네 그렇게 융통성 없는 드워프였나?”
다그나르가 가볍게 해결했다.
그의 말재주를 통해 어찌어찌 입장한 우리는 그다음, 바로 광산으로 향했다.
광산의 광석들은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나는 기분 좋게 숨을 들이켰다.
“으음, 역시 좋구나. 이 냄새.”
나는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광물 더미를 바라봤다.
앞으로 못 볼 줄 알았는데, 잘 있었구나?
“태양아.”
이제 이걸로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네, 주군. 부르셨습니까.”
소환된 태양이가 고개를 숙였다.
“지금부터 뼈다귀들을 데리고 모든 동네방네 퍼뜨려라. 나 주동훈이 돌아왔다고. 저번에 약속했던 대로 무기를 만들어주겠노라고.”
“명 받들겠습니다.”
내 경험상 드워프들은 굉장히 단순하고 화끈한 종족이다.
거기다가 무언갈 만들 줄 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호감을 보인다.
[바위 일족 : 75] [숲의 일족 : 25]‘우선 호감도부터 100으로 올린다.’
결과적으로 처음에 드워프를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엘프 전체 종족이 엘드린 하나로 전부 통제될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그냥 무작정 드워프만 케어하면 되는 거니까.
‘자, 그럼 이제.’
나는 드미르를 바라보았다.
무작정 망치질하는 것만 남았는데…….
“아, 맞다. 그전에.”
나는 문득 하나를 떠올렸다.
“드미르.”
“왜 부르는가.”
“혹시, 가방 하나만 만들어줄 수 있나요?”
“가방?”
“네, 드미르가 예전에 보급형으로 배포했다던 가방 기억나세요?”
“흐음.”
드미르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재료도 충분하고 만들어줄 수야 있네만…….”
“……?”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쓸 순 없네. 지금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다 구슬에 담긴 힘 덕분이라……. 자칫하다간 금제가 생각보다 더 빨리 깨어질 수 있거든.”
“아아.”
아쉬웠다.
지금 드미르만 이용하면, 내 뼈다귀들 무기랑 내 거까지 풀세트로 맞출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하긴, 그게 되면 사기긴 하겠지.
“그렇다고 아예 못 만드는 건 아니고, 적당 수준까지는 무한정 만들 수 있네. 가방과 같은 연금술이 가미된 아티팩트가 힘들다는 말이야.”
“그렇군요.”
쉽게 말하면 S급 아이템을 못 만든다는 거겠지.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자네.”
옆에서 다그나르가 다가왔다.
척.
그가 가방을 내밀었다.
“다그나르?”
“자네, 이 가방에 정말로 진심이었구만?”
오오.
이거 진짜야?
진짜 주는 거야?
내 두 눈이 휘둥그레지자, 다그나르가 흐뭇하게 웃었다.
“이게 뭐라고 아끼겠나. 자네는 내 목숨을 벌써 세 번 이상이나 구한 은인인데. 게다가 자네는 종족 전체를 구원하려 하는 영웅 아닌가!”
“우와, 감사합니다.”
난 튕기지 않고 받았다.
다그나르 말에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암, 난 드워프 종족의 은인이다.
그것도 쫌 커다란 은인.
“흐흐.”
나는 눈을 반짝이며 가방을 들어 올렸다.
[아이템 : 드미르의 보급형 백팩] [등급 : S] [종류 : 가방] [설명 : 전설의 대장장이 ‘드미르’가 종족의 편의를 위해 보급한 가방입니다. 보급용치고는 엄청난 성능을 자랑합니다.] [효과1 : S급 수준의 아공간이 제공됩니다. 많은 물품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효과2 : 아공간 내 신선도가 유지됩니다.]지구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류의 아티팩트였다.
뭐, 나중에 뼈육이를 드미르로 각성시킨다면……. 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만들 수 있을 테지만.
‘나중에 클리어하기 전에 재료들 싹 다 담아갈 테다.’
사실 가방이 필요한 목적은 딱 하나.
이곳에 넘쳐나는 제련과 방직 재료들을 담기 위해서였다.
“자! 그럼.”
나는 손뼉을 쳤다.
삐걱!
드미르가 뼈 소리를 내며 날 바라보았다.
“본격적으로 두들겨 볼까요?”
“뭐부터 만들면 되겠나.”
“그냥 할 줄 아는 거 전부요. 무리 없는 거로.”
“그냥 제작만 하면 되는 건가? 그것만으로 화합이 된다는 말인가?”
드미르가 못 믿겠다는 듯, 반신반의한 말투로 물었다.
“두고 보자고요.”
“그럼…… 믿어보겠네.”
까앙! 까앙!
그렇게 망치질이 시작됐다.
* * *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
태양이가 퍼뜨린 소문은 금세 바위 지역 일대를 울렸다.
“주동훈! 주동훈이 왔다 했나?”
“의장이 쫓아냈다더니! 다시 돌아온 건가?”
“의장이 허가했다고 하더군!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별말 없는 거 보면 맞는 것 같은데?”
“오오, 그렇단 말인가!”
드워프들이 금세 광산으로 몰려들었다.
이게 바로 호감도의 힘.
거기에 본래부터 드워프들은 날 원했다.
각 마을에 이렇다 할 대장장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허! 이보게! 왜 이제 왔나! 저번에 내 거 만들어준다더니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는가?”
“내 것도! 내 것도!”
“비키게! 저번 순번은 분명 나였네! 수리가 급하단 말일세!”
처음엔 하나둘 올라오더니.
이제는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센스있는 태양이가 ‘의장이 허락했다!’라는 워딩까지 해준 바람에, 드워프들은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하하, 다들 줄들 서세요.”
나는 그들을 웃으며 환대했다.
“그때 주신 도면보다 더욱 엄청난 걸 만들어 드릴 테니까.”
“오오, 정말인가?”
내 말에 드워프들이 다시 한번 술렁거렸다.
아니, 솔직히 말해 뭐해.
저 모습을 보면 감탄밖에 안 나오는걸.
까아앙! 까아앙!
청아한 쇳소리가 광산 전체를 가득 메웠다.
정교하고도 우직한 망치질은 과거 뼈육이의 그것과 달랐다.
교본.
아니, 교본 그 이상의 모습을 보는 느낌.
까앙! 까앙!
[완성도 100%] [‘특제 강철 망치’(B급)를 획득합니다.]툭!
[완성도 100%] [‘영혼 담긴 보급형 망치’(A급)를 획득합니다.]투욱! 투욱!
[완성도 100%] [‘특제 강철 망치’(B급)를 획득합니다.]망치질 몇 번에 아이템이 우수수 떨어졌다.
거의 공장 수준이었다.
“미, 미쳤어! 이, 이건…… 신이네! 블랙스미스의 신!”
“이건 사술 아닌가?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가!”
“저, 전설이다! 전설이야!”
[호감도가 5 오릅니다.] [바위 일족이 당신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좋아!’
역시 드워프는 단순했다.
무언갈 만들어주는 것만으로 호감도가 충분히 올랐다.
까앙! 까앙!
시간은 계속 흘렀다.
“으허허. 고맙네.”
“이 정도면 엘프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어!”
이틀이 되던 날.
이곳에 온 절반이 새삥 망치를 얻었다.
시간은 또 흘렀다.
[호감도가 5 오릅니다.] [바위 일족이 당신을 존경합니다.]사흘 차.
이곳에 온 모두가 망치를 얻었다.
하지만, 드미르는 멈추지 않았다.
망치뿐만 아니라 각종 생활형 도구들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호감도가 5 오릅니다.] [바위 일족이 당신을 신뢰합니다.]그리고 나흘 차.
어떤 드워프가 말했다.
“자네. 생긴 게 왜 이리 잘생겨 보이지?”
“……예?”
“자네, 우리 딸 어떤가! 자네라면 종족을 초월한 사랑도 허가할 수 있을 것 같네만. 으하하하!”
아니, 드워프 아저씨.
그건 쫌…….
[호감도가 5 오릅니다.] [바위 일족이 당신을 사랑합니다.]“암, 자네 말이 다 맞지!”
“자네 말이라면 엘프가 사실 바위 일족이었다 해도 믿을 것 같네.”
“진짜요?”
“암, 진짜지!”
[호감도가 5 오릅니다.] [호감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바위 일족이 당신을 완전히 믿고 의지합니다.]그렇게 닷새가 되던 날.
나는 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