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94)
독의 위엄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시련 포인트 300의 증가.
달콤한 대가를 얻었으니.
이제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왔다.
“끄으음.”
혀가 점점 부어오르고 식도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목에서는 들끓는 소리가 났고.
마치 높은 도수의 술을 마시는 것처럼 화끈해졌다.
“끌끌, 너무 겁먹지 말거라. 보아하니, 그렇게까지 심한 맹독은 아닌 것 같은데……. 나 때는 쇳덩이를 녹일 정도로 강한 산성 독도 웃으면서 마셨느니라.”
등 뒤에 노인의 손이 닿았다.
유령이면서도, 굉장히 따듯하게 느껴지는 촉감.
“자, 알려준 구결을 외거라.”
배 아래에서 기운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법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다스릴 줄 알아야 비로소 제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태청(太靑)의 맑은 기운을 믿거라. 그것을 믿고 네 녀석의 몸 안에서 천방지축 날뛰는 독을 몰아내거라.”
독을 몰아내는 것.
처음 해보는 일이다.
노인을 만난 이후로, 독에 중독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 몸속의 기운은 든든했다.
왜 걱정하냐고, 고작 이딴 거 먹고 두려워하는 거냐고.
기세 좋게 나아가 독과 부딪혔다.
“오호라.”
노인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그동안 열심히 운용했나 보구나. 애송이 주제에 생각보다 부드럽고 쉽게 움직이고 있어.”
“자거나…… 밥 먹거나…… 훈련할 때 빼고는 쉬지 않고 해왔습니다.”
내가 끓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더냐? 하긴, 그래 보이긴 한다. 과거 내 발전 속도에는 못 미치지만…… 노력의 흔적이 보여. 거의 내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인데…….”
“아닙니다, 어르신.”
“…….”
“도와주십시오. 저는 하루라도 빨리 시간을 앞당기고 싶습니다.”
나는 고통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시련 포인트…….’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많이 모을수록 긍정적일 것은 분명할 터.
나는 최대한 빨리 그것을 모으고 싶었다.
‘기회는 올 때 잡아야지.’
하필 독을 먹으면 보너스를 주고.
그에 맞추어, 나에게 독을 몰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그러한 기회.
게다가.
[독 보너스가 있습니다.] [‘데스 데빌’은 2급 맹독입니다.] [시련 포인트를 300 획득합니다.]나는 아까 전에 올라왔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2급 맹독.’
맹독에 급수가 메겨진다는 말은.
그보다 더 상위 맹독도 있을 거라는 말 아니겠는가?
‘상위 맹독 보너스는 얼마일까?’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역시.
나는 변태인가 보다.
아파 죽겠는데도, 나에게 조금이나마 더 이득이 온다면, 그게 기쁘고 설렌다.
그렇기에.
나에겐 분명 만독불침지체를 달성했다는 노인의 노하우가 필요했다.
“쯧쯧, 조급한 건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여전하구나. 그래, 어디 계속 움직여 보거라.”
툴툴거리며 혀를 찼지만.
그 목소리에서는 분명 뿌듯함이 느껴졌다.
만술(萬術)을 세게 최강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내 진심이 닿았을까?
“기억하거라. 내 움직임을. 하늘 위의 하늘을 보여줄 터이니.”
등에서 노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 손길을 통해 내 기운을 자극해 방향을 제시했다.
“침범하려는 독과 무작정 싸우면 안 되느니라.”
자신감 있게 치솟던 기운이 잠깐 멈칫했다.
그리더니, 곧 노인의 통제를 따르기 시작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교감.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거 내 기운인데?’
마치 내 새끼가 내 말을 안 듣고 다른 부모 말을 듣는 느낌.
아, 다른 부모까지는 아니고 할아버지 정도인가?
하여튼, 기운은 노인의 손길에 순응했다.
“독이란 요컨대, 네 집에 침투한 강도와 같다. 네 몸에 칼을 꽂고, 네 집을 무자비하게 부숴 버릴 강도 말이다.”
어느덧 식도에 도착한 내 기운들이 세밀하게 나누어졌다.
하나, 둘, 셋…….
나누어진 기운들이 독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 강도를 잡겠다고 두들겨 패고, 폭탄을 터뜨리고, 난장판을 피우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 강도를 제압하는 건 둘째치고, 일단은 네 집이 무너지지 않겠느냐?”
아아.
나는 노인의 말뜻을 단박에 이해했다.
독과 직접 맞서지 마라.
맞서지 말고 포용하라.
“독은 먹을 만큼 먹고, 나머지는 배출하거라. 어차피 내성을 기르는 데는 극소량만 있으면 충분할 터이니.”
푸쉬이이…….
동시에 내 피부 위로 푸른 액체가 보글거리며 나오다가 허공으로 산화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느껴지던 고통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따끔거리던 목도 부드러워졌고.
부풀어 올랐던 혀도 다시 가라앉았다.
‘데스 데빌’의 완벽한 패배.
“이거 좋은데요?”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좋아.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는 거지?
그래, 그까짓 거 나도 해주마.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
이렇게 하나하나 이뤄가다 보면 어느덧 나도 노인과 같은 위치에 올라설 수 있겠지?
그것을 생각하자 왜인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 * *
어둠이 지고,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새벽 동틀 녘부터, 나는 본격적인 탐험 준비를 시작했다.
올레나, 제임스, 카푸가 일어나기 전.
스켈레톤들은 이미 저 멀리 채집을 보낸 상태.
내 전력의 대다수이긴 하지만.
‘어차피 위급할 땐, 다시 소환하면 되니까.’
세상 어느 곳에 있더라도, 스킬만 사용하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녀석들이다.
그렇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하암.”
준비하고 있자, 올레나가 눈을 비비며 작게 하품하며 나왔다.
“와, 정말……. 지금까지 혼자 밤새우신 거예요?”
“아뇨, 적당히 잤습니다.”
“어디서요? 야밤에 나가신 후, 비트 쪽으로 다시 오셨던 기억이 없는데…….”
“나무 기둥 쪽에서요. 수하들이 경계서고 있는데 어찌 혼자 편히 자겠습니까.”
“허어, 역시…….”
올레나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괜히 저희만 편하게 잔 것 같아서. 좀 죄송스럽네요.”
“별말씀을.”
나는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힐끗, 좌측 상단을 바라봤다.
[보유하신 시련 포인트입니다.] [시련 포인트 : 630]시련 포인트라는 게 등장한 이후로.
메시지에는 현 상태가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나는 그걸 일부러, 위쪽에 켜 두었다.
‘630이라…….’
사실, 저들이 미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수면을 포기한 만큼 얻은 것도 많거든.
‘점수를 올렸단 사실은…….’
굳이 말하지 말자.
저들이 독을 해제할 수 있을지 모를뿐더러.
아직까지 저들은 완전한 내 편이 아니다.
최소 몇 달간 함께 마음을 맞춘 것도 아니고.
그저 안부 인사를 나눴다는 이유로 팀이 된 인원들.
나는 조금 더 신중하기로 했다.
“여어, 훈. 고맙다. 거참, 맨바닥에서 자본 건 또 오랜만이라 몸이 찌뿌둥하구만?”
시간이 흐르자, 제임스도 기어 나왔고.
“…….”
시커먼 얼굴의 카푸 역시 기지개를 켰다.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다들 잘 주무셨나요? 우선 밤새 안전했으니, 당분간 거점은 이곳으로 하겠습니다.”
“음? 여기 계속 머무른다고?”
제임스는 어리둥절한 낯빛이었다.
“그것보다는 다른 곳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게 낫지 않나? 다른 헌터들이 뭐 하고 있는지 정보도 얻어야 하고, 또 이곳의 출구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잖아?”
“제임스의 말도 맞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
“예, 뭐. 별다른 건 아니고. 아침에 제가 보냈던 스켈레톤들이 절 찾아오려면 제가 이곳에 있어야 하거든요.”
소환술로 부르는 건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그들이 채집해 놓은 식량들까지 소환할 수는 없기에.
“아, 그렇구만……? 그럼 인정이지. 일단, 이곳에서 시련 포인트부터 든든하게 쌓고 움직이자는 말이지?”
제임스가 머리를 긁적이자, 내가 웃었다.
“예, 그렇다고 가만히 식도락만 즐기진 않을 거예요. 일단은 주변부터. 천천히 돌면서 이곳 던전의 비밀을 파헤쳐 보자구요.”
“괜찮네요.”
“나도 동감이야.”
올레나와 카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먹을 게 도착할 때까지, 각자 정찰은 계속하겠습니다. 너무 먼 거리로 떨어지지 마시고, 무슨 일이 있으면 즉각 소리쳐 주세요.”
그렇게 시작된 반복.
시간이 흐르고, 또다시 밤이 되었다.
태양이와 엘드린은 기대 이상으로 식량을 수급해다 주었다.
땅이 얼마나 광활한 건지, 채집해 올 때마다 다른 종류들.
그 덕에 시련 포인트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주인님.”
그리고 모두가 잠든 야밤.
엘드린이 다가왔다.
“일단 오늘 구한 건, 이 정도입니다.”
후두두둑!
품에서 떨어지는 가지각색의 독버섯들.
무려 40종류가 넘어 보였다.
“헐, 이렇게 많이?”
“내일은 더 구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역이 굉장히 광활한 데다가, 환경도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생물이 자라기 딱 좋은 숲이거든요.”
“그래?”
밤에는 독을 먹고 몰아내는 연습을 했다.
[독 보너스가 있습니다.] [‘크레이지 포이즌’은 1급 맹독입니다.] [시련 포인트를 500 획득합니다.]…….
[독 보너스가 있습니다.] [‘다크 엔젤’은 3급 맹독입니다.] [시련 포인트를 100 획득합니다.]독의 종류는 다양했다.
일반 독부터, 먹자마자 반응 오는 1급 맹독까지.
포인트는 대충 이렇게 계산되는 듯했다.
[일반 음식 – 10포인트] [일반 독 – 50포인트] [3급 맹독 – 100포인트] [2급 맹독 – 300포인트] [1급 맹독 – 500포인트]그렇기에 나는.
기하급수적으로 포인트를 쌓을 수 있었다.
다시 하루가 흘렀다.
하루가, 또 하루가.
계속해서.
우리는 밥을 먹고, 탐험했으며.
야밤에는 독을 섭취했다.
나는 포식자였다.
그야말로 포인트 포식자.
그렇게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크으.”
나는 상태창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보유하신 시련 포인트입니다.] [시련 포인트 : 24,630]말도 안 되는 수치의 포인트였다.
애벌레부터 흰개미, 굼벵이 등등 혐오 생물까지 먹어댄 팀원들의 평균 포인트가 2,560인 걸 참작하면.
‘대박이지…….’
그게 바로 독의 위엄이었다.
‘그나저나.’
포인트를 쌓는 건 좋다.
근데 아직도 이 던전의 진짜 뜻이 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밝혀진 게 없다.
‘슬슬, 움직여야 하나?’
해가 진 야밤.
오늘도 엘드린이 열심히 공수해 온 독을 받아들이려 할 때였다.
“이놈아. 잠깐 멈춰보거라.”
노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멈칫.
독을 내려둔 나 역시 노인을 마주 바라봤다.
“쉿! 티 내지 말고. 그냥 가만히 듣기만 하거라.”
노인이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댔다.
반응하지 말고, 태연한 척 연기하라는 뜻.
나는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었다.
그러자 노인이 입을 열었다.
“주변에 누군가 네 녀석을 지켜보고 있다. 네 태청심법 수준으로는 절대 발견되지 않을 정도의 실력자야.”
“……!”
순간 팔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런 기척이 없었고, 부하들 역시 열심히 경계하고 있을 텐데.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고?
도대체 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