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95)
의문의 존재
“그러고 보니, 이곳. 참 이상한 공간이긴 했지…….”
“…….”
나는 말 없이 노인의 말을 들었다.
휘잉!
시원한 밤공기가 뺨을 스쳤다.
그래.
이렇게 평범한 공간에서.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거지?
“이 녀석아.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저 존재. 네게 호기심만 있을 뿐, 적의가 있어 보이진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습니까? 그래도 좀 찜찜한데요.’
“끌끌, 적의가 있었다면, 이미 네 녀석의 가녀린 목은 숭덩 썰려 나갔겠지.”
삐질.
나는 땀을 흘렸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럼 어떡해야 합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그냥 할 거 하면 되는 거지. 어차피 쟤는 네 힘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존재야. 불가항력의 존재 앞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도다.”
뒷짐 진 노인의 형상이 굉장히 태평해 보인다.
이 영감탱이.
오늘따라 왜 이리 얄밉지?
‘하긴.’
노인이 아니었으면,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텐데.
나는 그냥 긴장 풀기로 했다.
노인 말마따나.
어찌할 방도가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까딱.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공간이라는 건 또 무슨 말입니까?’
분명, 노인이 흘러가듯 말했다.
이곳, 참 이상한 공간이라고.
“여기 말이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곳이라 했지?”
‘예.’
던전 메이커, 델라일라(Delilah)가 만든 던전.
그녀의 이명만 봐도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흠, 공간을 끝없이 압축해서 가해지는 중력에서 벗어난다라……. 그것을 통해 시간의 자유를 얻는 방식이라니. 허어, 꽤나 참신하고 신통한 방법이로다.”
“……?”
나는 고개를 더욱더 깊이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도통 알 수 없는 말이었다.
“큼, 이 정도 말했으면, 바로 알아먹어야 하는데……. 역시 비천재(非天才)와 함께하는 대화는 고달프구나.”
노인이 장난스레 턱을 쓸었다.
‘그걸 아시면 좀 쉽고 편하게 설명해 주십쇼. 놀리지만 마시고.’
내가 속으로 툴툴거리자, 노인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던전 말이다. 본래 네 세계에 있는 공간보다 중력을 약하게 받는다.”
‘중력을요?’
“그래. 던전 속 세상을 끝없이 축소해 놓고. 그 안에 네 놈과 지원자들을 작게 만들어 담아 놓는 것으로. 온 세계의 중력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만들었어.’
‘……그래서요?’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뭐 어쨌단 거지?
“쯧, 아직도 모르겠느냐?”
‘작아지면, 시간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말하거라.”
‘네, 전혀.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흐흠, 그으래?”
노인의 입꼬리 골이 더욱 깊어진다.
마치 즐겁다는 듯.
아아.
그런 건가?
나는 노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노인은 즐기고 있는 거다.
알려주는 재미를 느끼고 있는 거다.
요즘 들어, 내가 혼자서도 잘하니 영향력이 살짝 사라진 느낌이었다가.
다시 알려줄 게 생기니, 어깨가 으쓱한 그러한 기분.
“녀석아, 잠자리가 날갯짓을 1초에 몇 번 하는 줄 아느냐?”
“…….”
잠자리?
글쎄.
1초에 한 20에서 30번 정도 하지 않으려나?
“종류와 크기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초당 30회에서 초당 100회 움직이는 놈들까지 다양 하느니라. 그렇다면…… 그 녀석들은 왜 인간보다 빠른 줄 아느냐?”
‘작아서요?’
골똘히 고민하던 내가 속으로 답했다.
‘시간이 크기에 따라 다르게 움직인다면, 확실히 작은놈들이 큰 놈보다 빨랐던 것 같습니다.’
예전 만화 영화에서도 본 적 있다.
자기보다 큰 거인들이 [우어어어~]거리면서 천천히 움직이지 않던가.
그게 만약 진짜 몸이 커서 그런 거라면?
아아.
어르신께서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말을 하고 싶으신 건가?
“끌끌, 이제야 좀 알아먹은 눈치로구나.”
노인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자리는 그저 평범하게, 우리와 같이 날갯짓을 하는 것뿐이었다. 1초에 한 두어 번. 열심히 휘둘렀겠지. 단, 그것은 잠자리의 시간일 뿐. 우리의 시간이 아니지 않더냐.”
‘잠자리의 1초는 우리의 1초보다 훨씬 천천히 흐르는 거로군요.’
“그래, 그 원리이니라.”
노인의 말에 따르면.
이곳 던전의 시간은 지구보다 훨씬 느리게 흐른다.
아마 이곳에서 몇 달을 보내도, 지구에선 고작 하루 흐른 것일 수도 있을 터.
나는 문득 예전에 봤던 SF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렸다.
‘거기서도 그랬지.’
블랙홀에 가까이 붙은 행성에 잠깐 들어갔다 나온 것만으로.
지구는 50년 이상이 흘러버렸다.
중력이 강할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그렇다면 중력이 약해지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지 않겠는가?
오, 이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신박한 발상이긴 한데.
‘근데 왜?’
왜 델라일라는 이곳의 시간을 느리게 만들었을까?
마치, 시간이 아까운 것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헌터들을 성장시키고 싶어 하는 것처럼.
“…….”
그녀에겐 헌터들의 수준을 높여야 할 어떠한 사명이라도 있는 걸까?
‘아?’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날 지켜보고 있다는 그 누군가.
그 누군가의 정체.
‘일단은 절대 참가자는 아니다.’
참가자 중 랭커는 없을 터.
엘드린의 주문 의식으로 만든 알람 트랩까지 뚫고 들어올 정도면 무조건 랭커 이상일 텐데.
‘설마.’
나는 마검사 뤼카의 말을 떠올렸다.
– 먼저 내 소개부터 하지.
– 나는 이번 시련의 선임 심사위원을 맡은 뤼카라 한다.
– 이명은 마검사. 세계 랭킹 25위지.
분명 그가 말했다.
‘선임 심사위원’이라고.
‘선임’이라는 말은 다른 심사위원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 아니던가!
‘어르신.’
나는 속으로 노인을 불렀다.
“갑자기 왜 그러냐, 이놈아?”
‘아까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존재 말입니다.’
“아, 걔?”
‘예, 걔요. 걔 어딨습니까, 지금?’
“으음, 아직도 네 옆에서 계속 갸웃거리고 있는데.”
‘제 옆, 정확히 어디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눈을 감았다.
‘만약 그 존재가 정말 심사위원이라면.’
내가 찾아내도, 굳이 나에게 손해 될 게 없다.
그 존재의 목적은 날 해하는 게 아닌 평가하는 것일 테니.
“으음, 네 시선을 기준으로 좌측 55도로 3보(步) 정도 되는 위치이니라.”
‘감사합니다, 어르신.’
우우웅!
나는 태청심법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노인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태평하게 다가갔다.
“후우, 밤공기 좋다.”
마치, 야밤에 마실 나온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여기 맞아요?’
“그래, 바로 네 녀석 오른쪽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허허, 쟤도 대단하구나. 걸리지 않을 거라고 거의 100% 확신하는 자의 움직임인데?”
‘흐음. 확실한 거 맞죠? 저 놀리는 거 아니고?’
“예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승을 못 믿어서야 되겠느냐?”
‘좋습니다.’
나는 엘드린에게 조용히 신호를 보냈다.
어르신이 말한 그곳을 향해 은밀히 연사를 날리라고.
이런 건 머뭇거리면 안 된다.
머뭇거리는 순간, 들키기 때문.
슈슈슉!
이윽고 엘드린의 화살 세례가 쏟아짐과 동시에.
후우웅!
근처에 있던 태양이 또한 스킬, 태양연격을 가했다.
나이스!
거기에.
나 또한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낸 회심의 일격을 내 우측을 향해 찔러넣을 찰나.
“으아앗?!”
웬 앳된 여성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꽈당!
하는 소리와 함께 드러난 랭커의 정체.
그녀의 표정은 이미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뭐, 뭐야! 갑자기?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황당하다는 듯 소리치는 그녀.
“흐.”
나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그전에. 그쪽에 누군지부터 밝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곳에 떨어진 지, 약 일주일.
나는 처음으로 또 다른 심사위원을 찾을 수 있었다.
* * *
신묘한 홀.
원형으로 이루어진 공간에는 수많은 홀로그램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 안에는 여러 헌터들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촬영되는 중.
“…….”
그 거대한 홀 한가운데에는 어떠한 존재가 입을 다문 채 묵묵히 서 있었다.
어찌 보면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두건을 쓴 채, 서 있는 그녀의 이름은 바로.
델라일라(Delilah).
세상에 신기루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존재.
스스슷!
그녀의 뒤로 또 다른 누군가가 등장했다.
건장한 체격의 남성.
적안의 마검사, 뤼카였다.
“델라일라시여.”
“오셨습니까, 뤼카.”
“그게, 심사위원 중 하나가 벌써 발각되었습니다.”
“……저도 방금 확인했어요.”
스윽!
그녀가 손을 올려 홀로그램 중 하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주동훈과 어떠한 소녀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뇌명이로군요.”
뇌명(雷鳴) 플로아.
독일 출신의 랭커로, 무려 84위다.
“말이 안 됩니다. 고작 비랭커가 어찌 심사위원을 벌써…….”
뤼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심사위원도 그냥 심사위원인가?
「델라일라의 시련」 속 심사위원이 되려면 최소 랭킹 100위 안에는 들어야 한다.
다른 세 자릿수 대 랭커와는 ‘급’이 다른 진짜 랭커라는 뜻.
“저기 보세요. 주동훈, 저자. 시련 포인트도 벌써 2만을 넘겼답니다.”
“……고작 일주일 만에 말입니까?”
뤼카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예, 이번 신입은 확실히 느낌이 있네요.”
그녀가 부드럽게 웃었다.
무언가 즐거워 보이는 표정.
“저래도 되는 겁니까? 저 때만 해도 1위 점수대가 한 달 동안 만 포인트 대였는데…….”
“안 될 건 없겠지요.”
델라일라가 눈을 깜빡였다.
“저는 던전을 제공할 뿐이에요. 참여자들은 던전 내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높은 보상을 얻어가면 되는 것. 참여자들이 더 수준 높은 보상을 얻어가면 우리야 좋은 거 아니겠어요?”
“…….”
뤼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또한 델라일라의 수혜를 받은 자 중 하나이기에.
뤼카는 알고 있었다.
델라일라가 던전에 관여하는 걸 끔찍이 싫어한다는 걸.
던전은 상대적이라.
난이도가 높을수록, 또한 거기서 참여자가 달성한 성과에 비례해 자체적으로 높은 보상을 생성한다.
그녀가 관여하는 것이라고는.
‘최대한 던전을 어렵게 만드는 것.’
뤼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내건 시련에서 매년 랭커가 탄생하는 것도.
그녀가 계속해서 던전을 어렵게 구성하기 때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왜요, 질투 납니까? 저 아이가 이곳에서 많은 걸 얻어나가 그대보다 높은 랭킹에 등록될까 봐?”
“아, 아닙니다.”
뤼카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야 선임 심사위원 보상만 받으면 될 뿐. 그 이상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다른 참여자들과의 격차가 너무 벌어질까 봐 그러시는 건가요?”
“그것보다는 뇌명 저 아이가 실수했을까 봐…….”
“그럴 걱정 없다는 건, 마검사가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요…….”
델라일라는 심사위원들에게 금제를 걸어두었다.
참여자들을 괴롭히는 건 허용해도.
절대 도울 수 없게끔.
도우려는 의지를 가지는 순간, 곧바로 자격 박탈이었다.
“하지만, 본래 심사위원의 등장은 한 달 후여야만 했습니다……. 그때부터 시련 포인트의 사용처가 드러나야 하는 거였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뤼카.”
“…….”
“세상에 했어야만 하는 건 없답니다. 잊지 마세요. 우리는 그저 지켜만 볼 뿐이라는 걸. 저자가 플로아를 찾은 것은 오롯이 저자의 권리입니다. 그게 운이 좋았든, 실력이 좋았든 말이죠. 마검사는 그저 심사위원 역할에만 충실해 주시면 되는 겁니다. 아셨죠?”
“……명심하겠습니다.”
꾸벅!
뤼카가 고개를 숙였다.
랭킹 5위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그러고는.
스슷!
흐릿해지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