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96)
뇌명, 플로아
아가사창(我歌査唱).
내가 부를 노래를 사돈이 부른다는 뜻으로.
내가 할 말을 상대가 먼저 함을 이르는 말이다.
또 다른 말로는 적반하장.
지금 상황이 딱 그랬다.
“하아, 하. 젠장. 제기랄.”
눈앞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 계속해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는 앳된 소녀.
도대체 왜.
본인이 몰래 쳐다보는 실례를 범해놓고, 혼자 저렇게 성을 내고 있는 걸까?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내가…… 천하의 이 뇌명이 고작 참가자한테 은신을 간파당한다고? 그게 말이 돼?”
뭐, 이해는 한다.
랭커 달고 꽤나 어깨 좀 으쓱이면서 다녔을 텐데.
자기보다 하수라 생각하는 자에게 간파당했을 때의 충격이 크긴 하겠지.
물론, 내가 개 사기 스킬 그 자체인 ‘만술 노인’을 옆에 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좀 달라졌을 것 같기도 한데.
‘또 그건 아니려나?’
모르겠다.
가끔 노인을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전성기의 노인을 이곳 세상에 풀어놓으면 과연 랭킹 몇 위를 할까?
‘무조건 20위는 넘는다.’
나도 느낌이라는 게 있는 헌터로서.
장대웅이랑 노인을 비교하면.
노인 쪽에 한 손 들어주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 이상은 나도 장담을 할 수 없다.
장대웅의 말에 따르면, 그 랭커 간의 격차가 엄청나다고 했으니…….
만나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 아닐까?
“하, 씨발……. 분명 원소 상태로 흩어져 있었는데. 어이! 당신!”
“……?”
벌떡 일어난 소녀가 나에게 삿대질한다.
“빨리 말하라니까? 도대체 날 어떻게 발견한 거야? 이 기술은 같은 랭커라 해도 파악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기술이란 말이야.”
“글쎄.”
나는 반말로 픽 웃었다.
상대가 아무리 랭커라 해도.
예를 밥 말아 처먹은 자에게 존대해 줄 이유는 없었다.
‘물론.’
외국인이라 별 타격 없겠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왜 날 지켜봤는지, 그리고 네가 누구인지부터 들어야겠는데.”
“이런…….”
아드득!
하얀 피부의 소녀가 분한 듯 이를 갈았다.
“좋아, 규칙은 지켜야 하니까. 설명해 주마.”
파즈즈즛!
소녀의 신형에 전류가 튀긴 것은 그때였다.
X카츄 백만 볼트를 보듯, 살벌하게 튀기던 전류는 이내 파직! 소리와 함께 폭발했고.
파즛!
사라졌던 그녀의 신형이 허공에 다시 등장했다.
감탄이 나오는 이동 기술.
“나는 랭킹 84위 뇌명(雷鳴) 플로아. 심사위원 중 하나야. 들어는 봤지?”
“……?”
나는 살짝 놀랐다.
뇌명 플로아.
그런 거물급 랭커를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랭커 관련해서, 내 머릿속은 거의 백과사전과 같아서.
뇌리 한쪽에 그녀에 대한 정보가 스쳤다.
[랭킹 84위, 뇌명(雷鳴) 플로아]– 23살, 여.
– 독일 출신.
– 고유능력 번개를 다루는 랭커.
– 파괴력만 따지면 앞선 랭커들을 앞지를 정도지만, 그 유지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음.
– 원소를 다루는 고유능력이라 상성을 많이 탐.
“후우, 어쨌든. 난 밝혔으니까. 어서 날 발견할 수 있었던 방법을 말해!”
“그냥, 보이던데?”
“뭐?”
“그냥 살짝 보여서. 깜짝 놀라서, 공격한 것뿐이야.”
노인이 알려줬다고 말할 수 없는 나는 그냥 껄렁하게 답했다.
“……그게 뭐야. 그냥 얻어걸린 거였다고?”
소녀가 허탈한 듯,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냥 얻어걸린 거에, 페널티를 먹어야 한다니…….”
아.
그 순간, 나는 또 하나 추측할 수 있었다.
저 심사위원이라는 랭커들은 참가자들에 발각당하는 순간, 일종의 페널티를 먹는다.
그러면 좀 이해가 된다.
아까부터 저렇게 죽상으로 한숨을 푹푹 쉬어대는 게.
“어쨌든.”
이내, 그녀가 고개를 털었다.
“할 건 해야겠지. 델라일라께서 설정하신 규칙에 따라 심사위원을 발견한 자들에겐 특전이 주어지게 돼.”
“특전?”
“뭐, 내 생각엔 특전이라 할 것도 없는 단순한 특혜이긴 한데. 본래 한 달 후에 시련 포인트 상점이 개방되거든?”
“……?”
시련 포인트 상점?
아.
시련 포인트의 사용처가 그 상점이었나?
“그냥 거기 내용물을 미리 확인할 수 있고, 또 딱 한 번에 한해서 이용할 수도 있다는 단순한 혜택이야. 그래도 영광인 줄 알라고.”
“영광? 왜?”
“네가 최초거든. 일주일 안에 심사위원을 발견한 건.”
“…….”
영광이 아니라.
그쪽이 수치사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뒷말은 삼켰다.
상대는 두 자릿수대 랭커.
자극해 봐야 앞으로의 삶에 좋을 게 없었다.
“자.”
플로아가 허공에서 짝짝! 손뼉을 쳤다.
“어쨌든, 피차 얼굴 마주해서 기분 좋을 일은 없을 것 같으니, 빨리 일이나 해보자고.”
촤르륵!
이내 허공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심사위원 ‘플로아’가 ‘상점’을 개방합니다.] [해당 상점의 화폐 단위는 ‘시련 포인트’입니다.] [모든 상품은 인당 1개씩. 구매 제한이 걸려 있습니다.] [목록 – 10/10] [1. A급 해독제 – 1,000포인트] [2. S급 해독제 – 3,000포인트] [3. 테마1 합격권 – 5,000포인트] [4. 테마1 정보권 – 10,000포인트] [5. 테마2 정보권 – 10,000포인트] [6. 엘릭서 – 10,000포인트] [7. A급 랜덤 박스 – 10,000포인트] [8. S급 랜덤 박스 – 30,000포인트] [9. 세계수의 뿌리 – 50,000포인트] [10.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서 – 100,000포인트]“……?”
나는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이게 다 뭐야?
또 왜 이리 비싸?
“자, 쭉 살펴봐.”
플로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일주일인데 얼마나 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독제 몇 개 사려면 사가든가. 아까 보니까 독버섯 꼴딱꼴딱 잘 먹더만.”
“…….”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상점 창을 바라보며 고심할 뿐.
내가 가진 시련 포인트는 총 24,630.
그래도 몇 개 주워 담을 수 있는 수치긴 했다.
“테마1 합격권……? 이건 뭐야?”
지켜보던 중, 내가 3번 칸을 보고 중얼거리자 플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긴, 말 그대로지. 5,000포인트면 바로 합격하고, 테마2에 도전할 수 있어. 차라리 그 방법도 나쁘지 않지. 괜히 이곳에 남아 있다가 눈먼 칼에 뒈지는 것보단 확실하게 통과를 보장받는 방법이니까.”
“……흠, 그건 별로 끌리지 않네.”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이곳이 바로 천혜의 독 천지니까.
나는 이곳에서 최대한 뻐겨, 먹을 수 있는 모든 독을 섭취할 예정이다.
‘게다가.’
이미 상점에 저런 물품들이 있는 걸 봤는데.
당연히 다 사봐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세계수의 뿌리, 그리고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서.’
무려 둘이 합쳐 15만 포인트짜리의 괴랄한 상품들.
나는 그게 궁금했다.
비싼 값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거든.
“우선, 정보를 살게.”
“뭐, 정보?”
플로아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정보는 10,000포인트인데. 벌써 그만큼이나 모은 거야?”
아무래도 저 심사위원은.
내가 몇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나 보다.
“온종일 독버섯만 퍼마시더니 진짜 많이 모았나 보네……. 와, 그래도 의외인데? 일주일 만에 10,000포인트라고? 진짜 역대급 기록이잖아?”
자꾸만 혼자 중얼중얼.
“그래서. 테마1 정보 살 거야? 테마2 정보 살 거야? 테마1은 좀 아까울걸? 5,000포인트면 바로 합격인데 뭐한다고 정보를 사? 나라면 그냥 합격권을 사겠어!”
“그럴 필요 없어. 둘 다 살 거니까.”
“엥?”
정보의 중요성이란 말해 입 아프다.
어차피 저 상점의 모든 아이템을 사기로 마음먹은 나에게.
테마1이든, 테마2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지금 뭐라고?”
“두 개 다 산다고.”
나는 손가락으로 4번과 5번을 가리켰다.
[4. 테마1 정보권 – 10,000포인트] [5. 테마2 정보권 – 10,000포인트]두 아이템이 반짝거린다.
“어…… 진짜 되네? 지, 진짜?”
플로아가 이내 입을 떡 벌렸다.
“20,000포인트 이상을 모은 거야? 정말로? 일주일 만에?”
“…….”
나는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빨리 일 처리 해주기를 기다릴 뿐.
그리고 이내.
[‘테마1 정보권’(S급)을 구매합니다.] [‘테마2 정보권’(S급)을 구매합니다.] [20,0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남은 시련 포인트는 4,630입니다.]내 손바닥 위로 두 개의 편지 봉투가 생성됐다.
세련된 검은색 용지에 빨간 인장으로 봉인된, 고풍스러운 디자인이었다.
“와, 씨. 이거 대박인데. 이거 역대급인데. 도대체 비랭커가 어떻게?”
굉장히 궁금해 보이는 표정으로 종알대는 플로아였지만.
파즈즛!
이내 곧 신형을 감췄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또 다른 규칙이 있나 보다.
* * *
“흠, 네 녀석이랑 다닌 이후 재밌는 일의 연속이구나. 사는 게 심심치가 않아. 그래, 바로 열어볼 테냐?”
“당연히 바로 열어봐야지요.”
나는 씩 웃으며, 나무 구석으로 향했다.
우우웅!
동시에 손바닥으로 태청심법의 ‘기’를 끌어올렸다.
‘기’는 응집시켜 에너지를 태우면, 미량의 ‘빛’을 생성할 수 있다.
나는 그걸로 편지지를 가리켰다.
“어르신 덕분에 얻은 정보인데, 함께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어서 열어보자꾸나. 소환 해제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놈아.”
노인도 어지간히 궁금했는지, 계속해서 날 보챘다.
귀여우셔.
찌익!
나는 먼저 테마1 정보권의 봉투를 찢었다.
[‘테마1 정보권’(S급)을 개봉합니다.]들어 있는 용지는 한 장.
그곳에는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1. 시련이 시작되고 나서 30일이 흐르는 순간, 지역 ‘중앙’에서 ‘독무’(毒霧)가 등장한다.
독무는 독의 안개,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독의 기운을 품고 있는 끔찍한 괴물.
참가자들은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그 괴물을 피해 생존해야만 한다.
#2. 참가자들이 합격하는 방법은 총 셋.
하나, 지역 곳곳에 위치한 상점을 통해 ‘테마1 합격권’을 구매한다.
둘, ‘독무’(毒霧) 등장 후, 일주일간 생존한다.
셋, 모든 참가자를 죽이고 혼자 살아남는다.
#3. 상점은 시련이 시작된 후 30일 후에 등장한다.
상점의 화폐 단위는 ‘시련 포인트’이며, 참가자들은 ‘시련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 각종 음식을 구해 먹어야 한다.
PS. ‘독’의 경우 ‘독 보너스’가 존재한다.
#4. 특전이 존재한다.
참가자들은 본인들을 멀리서 지켜보는 심사위원들을 찾아낼 수 있다.
찾으면, ‘상점’을 ‘미리’ 이용할 수 있다.
#5 이 정보권을 얻는 방법은 둘.
하나, 발견한 심사위원을 통해 ‘시련 포인트’로 구매한다.
둘, 심사위원들이 구역 곳곳에 숨겨놓은 정보권을 찾는다.
내가 혀를 찼다.
“이거 굳이 안 사도 되는 거였네요. 심사위원들이 이곳저곳 뿌려놓은 것 같은데.”
“좋게 생각하거라. 정보는 언제 얻었냐에 따라 또 그 가치가 천차만별 아니더냐.”
“그건 맞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테마1은 어느덧 파악할 수 있었다.
“독무라는 걸 피해내야 하나 본데요…….”
“허허, 독무라니…….”
동시에 나와 눈이 마주치는 노인.
나는 노인의 눈에서 어떠한 감정을 읽어냈다.
[이게 웬 떡이냐]라는 감정을.“아무리 생각해 봐도, 네 녀석의 능력은 재능도 노력도 아닌 것 같구나.”
“예……?”
“네 녀석의 진정한 능력은 바로 운이다, 운. 보아라. 이곳에 모든 독을 포함한 기운이 날 잡숴달라는 듯 쫓아온다는데,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이더냐. 아아, 라떼도 그런 일이 있었더라면, 더 높은 경지에 빠르게 도전할 수 있었을 텐데.”
“…….”
“어서, 그 델라일라인가 하는 존재한테 절이나 하여라. 깊은 예를 담아서.”
“……저 독 안개에 들어가라고요?”
“들어가야지. 말하지 않았더냐. 독은 발견하면, 웃는 거라고.”
아무래도.
저 독무는 그 정도 급의 독이 아닐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드는데.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나는 옆에 있는 두 번째 봉투를 바라봤다.
테마2의 정보권.
당연히 저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