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203
제203화
“같이 돌아갈 거냐고.”
“당연하잖아?”
“우리 갈 데 없는데?”
벙찐 표정으로 대답하는 걸 보니 둘 다 시간의 틈에 오래 있으면서 현실 감각이 한참 떨어진 거 같았다.
“니들 알비온 제국으로 안 가는 거야?”
“아!”
“아차!”
둘 다 동시에 탄성을 내뱉는다. 그리고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이제 와서 어떻게 가겠냐?”
“흠흠. 그냥 놈 종족에게 돌아갈까?”
버럭.
“야! 잠적은 안 되지.”
내가 꿔준 건 어떻게 받냐고!
포로였다가 풀어준 거 하며, 시간의 틈을 알려준 것도 그렇고, 이런 은혜를 돌려받아야 한다.
더군다나 둘이서 잠적하여 사라지면 시스템은 이 둘을 대체할 새로운 소드 마스터, 새로운 대마법사를 출현시킬 게 분명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듯이 두 사람은 내가 이미 겪어본 자이니 예상 못할 새로운 자보다 나았다.
“너희에게 제안을 하지. 앞으로 5년 동안 나와 함께 하며 동료를 모아 드래곤을 잡자.”
“뭐?”
“드래곤은 왜?”
“이번에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킨 북쪽의 드래곤 타우젠트와 서쪽의 드래곤 호르킨스는 인간에 대해 상당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어. 언제든 인간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지. 그렇기에 예방 차원에서 죽이려는 거야.”
“하지만 몬스터 웨이브는 끝났잖아.”
“수백 년에 한 번씩이라며?”
둘이 바로 반박했다.
이미 뱉은 말이 있으니 내가 한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 몬스터 웨이브는 끝났지. 하지만 드래곤의 위험은 이제 시작인 거야. 몬스터 웨이브는 시작에 불과한 거라고.”
“그럼 다음은 뭔데?”
“몬스터 웨이브보다 더 강력한 거야?”
“다음 위협은… 인간에 대한 적대감.”
진짜는 내가 받은 시스템 메시지겠지만 이걸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예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몬스터 웨이브로 의도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못했어. 특히 북쪽과 서쪽. 북쪽은 내가 막았고, 서쪽은 완전히 막지 못했지만 우리로 인해 생각보다 피해가 적었잖아.”
“동쪽이랑 남쪽도 막은 거 아닌가?”
“그렇긴 한데 드래곤이라고 똑같은 게 아니야. 성향이라는 게 있어. 인간도 찢어죽일 만큼 나쁜 새끼가 있고, 욕 한 마디로 넘어갈 새끼가 있는 것처럼. 타우젠트와 호르킨스는 드래곤 중에서도 악질이야.”
“그렇다 해도 굳이 죽음을 무릅쓸 것까지는…”
“나도 드래곤은 좀 그런데…”
두 사람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끄응. 어쩔 수 없군.’
“신탁을 받았다. 두 드래곤을 없애지 못하면 내가 죽어.”
“뭐? 신탁?”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끄덕끄덕.
“그러니까…”
난 옛날부터 신탁을 받아왔으며 그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나 이번 신탁은 거부할 수 없어. 생사가 달린 거니까.”
“흠흠. 이렇게 말하니까 납득이 좀 되기는 하네. 그런데 신탁까지 내릴 정도로 꼭 두 드래곤을 죽여야 하는 거야?”
“신께서 그렇게 판단하신 거잖아. 인간이 어떻게 신을 판단해. 안 그래?”
“그럼 신께서 직접 나서서 해결하시면 될 텐데.”
“신은 그렇게 행동하질 않지. 명령을 내려서 뜻을 이루지. 여하튼 도와다오.”
“쩝. 두 드래곤의 인간에 대한 적대감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적대감이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 알 수가 없어. 대놓고 나타나 도시를 쓸어버릴 수도 있고. 여하튼 그래서 두 드래곤을 죽여야겠어. 너희들이 도와주라.”
간절한 표정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싫다고 하면 정말 나쁜 새끼들이지.
“아까처럼 인간으로 변할 때에… 아니, 인간에서 드래곤으로 변할 때에 쓱싹?”
질문하는 말리오가 얄미웠다.
‘지금 날 놀리는 건가? 지능적인 디스?’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 그런 거에 기대서 두 드래곤을 죽이는 계획을 짤 수도 없고. 무엇보다 두 드래곤은 인간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서 대화를 하려고 하지도 않을 거야.”
“알았다. 그럼 우리가 이제부터 할 일은?”
“오호, 도와준다는 거지?”
“그래.”
“나도 돕겠다. 받은 건 갚아야지.”
씨익.
말리오와 지그먼트의 대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먼저 할 일이 있다. 그건 바로… 통일!”
그동안 이런 저런 일로 많이 미뤄졌는데 더는 미룰 수 없었다.
퀘스트를 끝내고 세 아내와 세 아들의 안전을 찾는 것도 급하지만 지금 통일을 해두지 않고 퀘스트부터 한다면 엔딩과 함께 내가 사라져 통일은 영 물 건너갈 수 있었다.
‘내가 사라진 후에 남겨진 세 아들이 서로 경쟁하며 다투면 몰락할 수도 있지.’
때문에 일단 통일하여 세 아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퀘스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으음. 그리고 나선?”
“장비를 맞춰야지.”
소위 템빨이 필요했다.
두 드래곤을 잡기 위한 템빨!
***
통일은 금방이었다.
먼저 3만 명의 병사를 뽑아 내가 앞장서서 북 알비온 제국으로 향했으며, 유제프에게는 항복하라고 했다.
항복의 대가는 북 알비온 제국의 북쪽 변방에 작은 소국을 세울 수 있게 해주는 것.
이 제안을 거절하면 현재 북 알비온 제국의 수도에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마음은 유제프를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통일에 시간을 쏟기엔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때문에 변방에 소국을 하나 주어 유제프와 그를 따르는 이들의 목숨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한 것.
나로선 큰 자비를 베푼 거였다.
전령에게 보내는 편지의 말미에 이렇게 쓰기까지 했다.
전령을 보냈는데 바로 답이 돌아왔다.
유제프 입장에서 이런 식이라도 혈통을 이어간다면 언젠가 기회가 올 수 있다고 여긴 것.
유제프가 떠날 때에 그를 따르는 이들의 숫자는 족히 수만 명에 달했다.
예상보다 많은 숫자였는데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제국이었기에 충성을 받치는 이들도 꽤나 많았다.
또 충성까지는 아니라도 이런저런 이해관계에 얽혀 있던 자들은 내 밑으로 들어오길 두려워했다.
저들이 제안을 받아들이자 뒤므리에에게 연락하여 1만의 병사와 필요한 만큼의 기술자와 관리를 이끌고 오라고 했다.
수도 알비온에 도착하니 유제프는 추종자들과 함께 이미 떠난 상태였다.
뒤므리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며 남 알비온 제국의 버나드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항복을 권유하는 전령을 보냈다.
편지의 내용도 북 알비온 제국에 보낸 것과 거의 대동소이했다.
정통성만 따진다면 유제프보다 버나드가 더 앞서기에 오히려 고집을 부릴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전령이 도착하자 버나드는 순순히 따르겠다고 답했다.
이미 나에게 몇 번이나 대항하면서 기가 죽을 만큼 죽었고, 싸워봤자 상대가 되지 못함을 잘 알아서였다.
남 알비온 제국에게 내어준 변방의 위치는 북 알비온 제국에게 내어준 땅 바로 옆이었다.
이유는 서로 싸우라고.
이제는 왕국이 된 두 제국이 서로 반목하며 경쟁하도록 하여 서로의 힘을 빼는 게 목적이었다.
내 의도는 머리가 아주 나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거였다.
그럼에도 북 알비온도, 남 알비온도 이를 따지며 거부하지 못했다.
솔직히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버나드를 따르는 이들도 수만 명이나 되었는데 유제프보다도 더 숫자가 많았다.
아무래도 정통성에서 앞서는 게 버나드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비온 제국이 이 꼴이 난 게 유제프 때문이라 여기고 있어서 버나드에게 충성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버나드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에이츠에게 연락하여 1만의 병사와 기술자, 관리를 이끌고 남 알비온 제국의 수도인 크리드으로 출발하게 했다.
물론 나도 북 알비온 제국에서 출발했고.
남 알비온의 수도인 크리드에 도착하여 정리하고 어쩌고 하니 시간은 퀘스트를 받은 이후로 1년이 지나 있었다.
‘끄응. 이제 드래곤 잡기까지 4년 남았네.’
지난 1년간 말리오와 지그먼트가 한 일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
또 말리오는 유제프에게 날 따르기로 했으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권유의 편지를 썼으며, 지그먼트는 버나드에게 같은 내용을 써서 보냈다.
두 사람의 편지가 유제프와 버나드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었을지는 짐작하지 못하지만 아마 마지막 저항의지까지 꺾어버린 건 아닐까?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는 마지막 희망일 수 있었으니까.
두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내 곁에서 놀기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거 같지만 이런 영향력을 생각하면 실질적으로는 아주 큰일을 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밥값을 잘해줘서 고맙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하니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 칭찬을 새삼스럽게 해줬다.
온전히 기분 좋으라고.
“흠흠. 그러면 부탁 좀 해도 될까?”
내 딴에는 예의상 한 소리였는데 말리오가 부탁이라는 말을 쓰니 속으로 좀 긴장이 되었다.
“유제프도 살려주고, 그를 따르는 이들도 살려줬는데 또 뭘 해줘야 해?”
넘겨짚어서 먼저 말을 했는데 말리오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런 게 아니라 개인적인 부탁이다.”
갸우뚱.
“개인적인? 뭔데?”
“흠흠. 드래곤을 잡고 나서 말이다. 물론 성공한 후의 일이겠지만 성공하고 나서 나도 정착이라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옆에 있던 지그먼트도 끼어들었다.
‘나한테 말하기 전에 둘이 상의한 게 있구만.’
“그래서?”
“흠흠. 작위랑 영지가 필요하단 말이지.”
“공작이나 후작은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말리오는 소드 마스터고, 나도 대마법사 소리를 들을 수준이니 백작 정도는 충분하지 않을까?”
당연히 충분하지.
백작이 아니라 최하 후작, 아니면 공작 작위는 주어야 한다.
“흐흐. 그러니까 백작 작위랑 영지를 달라는 거지? 얼마든지!”
사실 두 사람에게 작위랑 영지를 줘야겠다는 생각은 진즉부터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작위랑 영지이 필요한 건 후손을 생각해서겠지? 두 사람 결혼할 정혼자는 있어?”
“아직은…”
“현재는…”
여자가 두 사람에겐 약점 같은 거였다.
“지금은 없다는 거군. 하지만 하긴 할 거지?”
끄덕끄덕.
둘 다 고개를 끄덕인다.
“후우, 육체는 젊더라도 정신연령은 노인네인데 어떤 아가씨가 시집을 오려고 할까?”
발끈.
“야! 우리만 늙었어? 늙은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맞아. 시간의 틈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해!”
두 사람의 어이없는 공격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흐흐. 난 이미 기혼자의 몸으로, 자식까지 있는 상태에서 시간의 틈에 들어간 거였어. 이게 결혼도 못한 미혼인 니들이랑 어떻게 같냐?”
발끈.
“…결혼은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할 거다.”
“맞아. 그러니까 신경 끄셔.”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알아서 한다면야 할 말은 없지. 그런데 드래곤부터 잡고 결혼을 하던지 말던지 해라. 작위랑 영지는 미리 줄게.”
미리 주려는 이유는 동기부여 같은 거였다.
남북 알비온 제국을 점령하면서 남는 게 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