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28
제28화
“그대가 나를 따르겠다고 하면 모카비 자작가에 속한 이들은 죽이지 않고 몸값을 받고 풀어 주겠다. 어떻냐?”
“…진실을 말하신다고 신께 맹세하실 수 있습니까?”
“그럼!”
어차피 죽이지 않고 몸값을 받을 계획이었다고.
“그럼… 따르겠습니다.”
[레이몬드 파크가 당신의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현재 당신에게 속한 지휘관은 7명입니다.] [포인트 1점을 얻었습니다.]나중에 레이몬드가 날 배신하고 모카비 가문을 따를 걱정은 없느냐고?
없다.
레이몬드는 강직하기에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킨다.
그의 성정을 잘 알기에 난 주저 없이 레이몬드도 풀어 주도록 지시했다.
윈터는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영주님, 너무 쉽게 믿으시는 것 같습니다.”
“내 기사로 삼기로 했으면 믿음도 같이 주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조금만 기다려라. 그대 가문도 기사 작위를 승계받을 수 있도록 할 테니.”
“…감사합니다.”
그냥 두어도 윈터는 배신하지 않는다.
날 떠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맨 처음에 날 따른 기사인데 그냥 두려니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게임에서는 무시하고 그냥 뒀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살고 있는 지금은…….
윈터의 양쪽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호감도가 올랐다는 메시지도 들려왔다.
한편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주위에 있는 이들도 다 듣고 있었다.
제이미도, 레이몬드도 메시지는 뜨지 않았지만 나에 대한 호감이 조금은 올랐겠지.
다음은 중요 직책을 맡고 있는 이들 차례였다.
영지를 운영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인력들.
현대로 치면 공무원 같은 존재들이었다.
저들이 없다고 영지가 당장 망하거나 굴러가지 못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있으면 영지 운영이 수월해진다는 건 당연한 일.
그렇지만 고인물인 나조차도 플레이할 때 한 번도 다 내 편으로 만든 적은 없었다.
그 때문에 어느 정도는 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들의 숫자는 20여 명이나 되었는데, 저들이 나오자 레이몬드가 앞으로 나섰다.
“영주님, 저들은 제가 설득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기꺼이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수많은 플레이를 했지만 이처럼 레이몬드가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레이몬드가 적극적으로 설득하는데 제이미도 중간중간 나서서 동조하는 말을 했다.
제이미까지 나서는 것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
두 기사의 설득에 모두가 나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했다.
‘으음, 게임에서는 3분의 1 정도는 끝까지 버티며 싫다고 해서 결국 죽였었는데…….’
저들을 다 믿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의심 없이 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설득한 두 기사의 체면도 있고, 저들이 잘못하면 두 기사가 어느 정도 책임도 질 테니까.
***
승리한 날 저녁에 승전 축제가 열렸다.
다들 기분이 좋았고, 경계를 서는 자들을 제외하곤 모두 참석하여 거한 술판이 벌어졌다.
나 또한 이날만큼은 몸이 약하다고 해서 피할 수 없기에 몇 잔의 술은 마셔야 했다.
“영주님.”
내 옆으로 다가온 건 윈터였다.
“왜 부르나?”
“정말 건강해지셨습니다. 요즘은 각혈도 안 하시고, 기침도 안 하시고, 혈색도 좋아지시고, 키도 커지시고, 몸도 이렇게…….”
버둥버둥.
술이 많이 취했는지 얼굴이 시뻘건 윈터는 양팔을 펼쳐 보이며 내가 살쪘다는 걸 표현했다.
“말투도 영주님처럼 늠름하시고요.”
이 사람이 왜 갑자기 폭풍 칭찬이지?
취한 건 알겠지만 무슨 다른 속내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나에 대한 호감도는 계속 상승 중이기에 나쁜 의도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짧은 시간인데 정말 보기 좋습니다.”
“고맙다.”
다소 딱딱할 수 있지만 이 정도 선에서 대답을 하기로 했다.
윈터 다음으로 지휘관들이 하나씩 와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후에 만날 지휘관들은 내가 얼마나 볼품없고, 약하고, 당장 쓰러질 것 같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내 모든 걸 본 이들이었기에 최근의 내 변화가 극적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나 각혈하는 것까지 본 윈터는 더 그랬다.
좋은 날이기에 하나씩 응대를 해 주고 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자벨이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또 이겼네요?”
화들짝.
“어, 언제 옆에…….”
기척이라도 좀 낼 것이지.
위장 스킬이라도 쓰고 온 건가?
“놀라셨어요?”
놀란 거 봤잖아. 장난해?
“전혀 의식을 못했습니다.”
“축하드려요. 이제 아버지보다 더 높아지겠네요?”
“그, 글쎄요.”
“부러워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고생을 다 보답받는 것 같겠어요. 몸도 건강해지고, 영지전도 이기고.”
“흠흠, 쉽게 받으면 좋겠는데 매번 어렵네요. 빅자이언트도, 영지전도.”
쉽지만은 않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내가 잘되니까 약속을 깨려나?’
이자벨의 표정을 살피니 복잡한 심경 때문인지 밝지가 않았다.
“흠흠, 이제 베르게르 성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요?”
“왜요?”
“모카비 자작에겐 친척이 있는데,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영지를 가진 모어슨 자작입니다. 내 예측이지만 그는 복수를 위해 영지전을 걸어올 것 같아요.”
“그럼 전쟁을 또 하나요?”
질문하는데 내 느낌이겠지만 얼굴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내가 잘되는 게 싫은데 고난이 아직 안 끝났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지나?
“아마도요.”
“그냥 여기 있고 싶은데요?”
“저기… 여기서 당신이 할 일은 없는데…….”
“기도할게요.”
“네?”
이건 무슨 논리이고, 태세 전환인가?
날 죽이려고 찾아왔으면서 기도? 기이~ 도?
“신께 당신의 승리를 기도할게요. 제가 수녀원에 있었잖아요. 당신보단 제가 신께 더 응답을 잘 받을 것 같은데요?”
“아하하, 그럼 부탁합니다.”
누가 들어도 어색한 웃음.
수녀원에서 자객 훈련이나 받았을 텐데 뭔 개소리냐고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오늘만큼은 밤새 마시고 놀 각오를 했고, 영주인 나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계속 앉아 있어야 했지만 아직은 떨어지는 체력 때문에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게 힘들었다.
성을 점령하기 직전까지 초긴장이었다가 풀어져서 그런지 더 피로하기도 했고.
‘이럴 땐 몽크가 부럽네.’
몽크의 피로 회복 특성.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싸움을 해도 하루 24시간 내내 저급 힐링 포션을 마시고 있는 효과를 가진다.
저급 던전을 돌 때는 힐링 포션 따위는 살 필요도 없게 해 주는 사기성 짙은 특성.
플레이어에겐 허락되지 않은 특성이었다.
술기운도 있고, 몽크를 지그시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정밀 분석이 작용했다.
파앗!
몽크의 몸이 반투명해지고, 그의 가슴을 중심으로 피로 회복 특성을 구성하는 수백 개 기의 꼬불거리는 황금빛 관이 보였다.
‘으음, 이거 위대한 소화력이랑 많이 비슷하네?’
위대한 소화력 특성도 가슴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수백 개의 꼬불거리는 관이 뻗어 나갔으며 황금색이었다.
‘정밀 분석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부분까지도 분석이 가능하며 분석한 걸 수정, 보완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러면 위대한 소화력을 고쳐서 피로 회복 특성으로 바꿀 수도 있는 걸까?’
특성의 보유 한도는 최대 9개.
여유가 더 있긴 하지만 앞으로 얻고 싶은 건 9개 이상이라 9개를 채운 후에는 슬롯을 구입할 계획이었다.
‘또는 현재 가진 것 중에서 필요성이 적은 걸 정밀 분석을 써서 다른 거로 바꾸든가. 굳이 따진다면 위대한 소화력?’
그런데 위대한 소화력도 좋은 특성이기에 이걸 버리거나 바꾸는 건 주저되었다.
‘그럼 계략 특성을 고치면 어떨까?’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계략 특성도 좋은 것이긴 하지만, 전쟁을 매일 할 것도 아니니 차라리 내 개인의 피로를 풀어 주는 게 더 좋을 수 있었다.
‘으음, 일단 영지전이 모두 끝날 때까지 고민해 보자. 그러고 나서도 바꿔야겠다고 여겨지면 계략을 피로 회복으로 바꾸자.’
당장은 영지전이 한 번 더 남아 있었다.
다음 날은 밤새 논 것 때문에 모두가 피곤하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이틀째가 되어선 새로 지휘관이 된 레이몬드를 불렀다.
“그대가 오비엥 백작님과 모어슨 자작에게 편지를 써 주었으면 한다.”
이자벨에게도 말했지만, 모어슨은 페넬로프 가문의 또 다른 귀족이었다.
영지도 바로 옆.
올해 내가 치러야 한다고 했던 두 번째 영지전의 주인공이 바로 모어슨이었다.
모카비는 사기를 치며 명분도 없는 영지전을 걸었다.
이렇게 따지면 모어슨도 명분이 없어야 마땅한데,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여기질 않는다.
특히 귀족들은 더했다.
친척인 모카비의 복수를 위해 일으킨 전쟁을 정당하다 여기기에 모어슨은 당당하게 영지전을 선포한다.
만일 이번에도 이기고 모어슨의 영지까지 먹는다면?
베르게르에 이어서 모카비와 모어슨이 다스리는 지역까지.
영토만 보아서는 정말 엄청나게 넓어진다.
이 꼴을 오비엥 백작이 두고 볼 리가 없을 거다.
“제가 어떻게 써야 할지…….”
“걱정 마라. 내용은 내가 다 말해 줄 테니. 다만 형식적인 인사말이나 예의 바른 어법 정도는 그대가 알아서 맞추도록 하라.”
이런 쪽은 내가 아직 약하니까.
“네.”
“편지의 내용은 영지전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정당성에 관한 것이다.”
“흠흠, 모어슨 자작님은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영지전을 거실 텐데요?”
“그렇게 된다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상대방의 반응이 어떨지 짐작은 되지만 편지는 보내야 한다.
형식적인 거라도 이렇게 하는 게 정당성을 조금이라도 내 쪽으로 가져오는 거니까.
“영지전에 대한 준비는 어찌하시렵니까?”
질문을 받고 대답을 위해 생각을 좀 하는데 페온이 나섰다.
“모어슨 자작에게 고용되어 일했던 용병의 말로는 그쪽 병력은 최대 만 명 정도라고 하더군요. 물론 긁어모으면 더 늘어나긴 하겠지만요.”
꽤 정확한 수치였다.
물론 전쟁이 터지면 남자란 남자는 다 모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만 명이 아니라 2만 명이나 3만 명까지도 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고인물인 나는 알고 있었다.
모어슨은 만 명으로 충분하다 여길 거라는 거.
병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재정에 부담을 준다.
또 영지의 생산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며, 먹이기 위해 필요한 식량도 늘어난다.
“아마 적에게 마법사는 없을 거예요. 모어슨 자작님은 마법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소문이 났거든요.”
조용히만 있던 마고가 웬일인지 말을 보탰다.
그동안 꾸준히 잘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정보를 주는 건가?
그런데 이 정보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거였다.
또 그동안 잘해 준 것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란데?
“그대들… 계속 도와줄 건가?”
이번 질문은 좀 주저되었다.
이미 한 번 참전했는데 또 해 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플레이할 때 용병들이 두 번이나 일해 준 적이 없었다.
돈 받고 전쟁터에 나가는 게 용병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짐작에는 이 캐릭터를 어렵게 하려는 수작 같았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모카비와의 전투가 빨리, 그리고 쉽게 끝나 버렸기에 시간도, 체력도 여유가 있는 상태였다.
“해 주기만 한다면 돈은 이번과 똑같이 주겠다.”
“흠흠, 그래야죠. 그러니까 저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