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44
제44화
“축제?”
“네. 축제를 통해 영지민들을 위로하시고, 화합도 다지시고요.”
“아주 좋은 의견인데?”
그래, 다 같이 고생했으니 축제 정도는 열어도 괜찮지.
두 번의 영지전 끝에 찾아온 평화였다.
또 앞으로 5년 동안은 무사태평한 시기다.
게임으로 치면 RPG 장르가 심시티 같은 시뮬레이션 장르로 바뀌는 시점이라고 할까?
온전히 영지 개발에 몰빵해야 한다.
하지만 난 영지를 지휘관들에게 맡기고 홀로 기사 수행을 떠나야 한다.
전국에 널린 던전들도 돌아다니며 포인트도 모아야 하고, 숨어 있는 인재들도 발굴해야 하고.
또 곁가지로 돌아다니면서 얻을 수 있는 각종 이스터 에그들도 있고.
5년은 길고 긴 시간.
영지에 머물러 있기엔 할 일이 너무 많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럼 5년 후엔?
제국의 황제가 병으로 쓰러져 생사가 불투명하게 된다.
그 후에 이어지는 황태자와 2황자, 3황자가 벌이는 후계자 싸움의 길고 긴 내전.
어찌 보면 이건 당연한 스토리였다.
게임이라는 건 플레이어의 재미를 위해 끊임없이 이벤트가 계속되어야 하니까.
매일매일이 비슷하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나올 수 있는 이벤트가 뭐 있겠나?
하여튼 세상이 복잡해진다.
만일 5년 후의 엔딩을 거상으로 잡는다면 전쟁 특수를 노린 상단을 창설해야 한다.
백작 작위를 받고 싶으면 영지병을 최대한 늘리며 내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려야 하고.
잠깐! 영지병을 100여 명만 남겼잖아?
맞다. 앞으로 정예병을 키우며 병력을 늘리긴 해야겠지만 지금부터 그렇게 하려면 운영비가 너무 많이 든다.
일단은 재정부터 튼튼히 하고 난 후에 병사를 키워야 한다.
우선은 축제부터 잘 치르기로 했다.
“그런데 영주님, 축제를 열려면 돈이 좀…….”
주저하는 걸 보면 꽤 많은 돈이 필요한 것 같았다.
“얼마나?”
“못해도 수백 골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하. 하하.”
수천 골드도 아니고 수백 골드를 가지고 저리 주저하다니.
축제를 위해 과감히 2천 골드를 내놓았다.
이건 남은 2만 골드의 10분의 1에 달하는 거금.
“헉, 이렇게나 많이 주시는 건가요?”
“그만큼 축제를 풍부하게, 그리고 크게, 아주 크게 열어라.”
나중에 보니 큰돈을 써서 그런지 축제의 규모도, 내용도 다양해졌다.
청춘 남녀들이 짝을 찾을 수 있게 댄스 대회도 열도록 했다.
대회라고 해서 경연만 있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춤도 추고, 짝에게 춤도 신청하고 뭐 그런 식으로 진행하게 했다.
축제에선 어텀과 마리안의 결혼식도 치러졌다.
노총각인 어텀은 연신 싱글벙글하면서 날 찾아와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축제가 시작되고 음식 잔치, 술잔치가 벌어졌다.
이 자리에서 레아가 가장 먼저 나에게 다가와 고마움을 표했다.
뚝뚝.
“레아, 좋은 날 왜 울어요?”
“아버지의 빚을 다 갚아 주셨죠? 큰돈인데 약속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흑흑.”
레아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죠.”
“영주님.”
“네.”
“…사랑해요.”
여자에게 받는 고백.
처음이었다.
현실에서도 경험한 적 없는 걸 받아 보다니.
그런데 놀라운 건 이게 끝이 아니었다.
“결혼하고 싶어요. 제가… 싫지는 않으시죠?”
사랑 고백에다 프러포즈까지.
“당연히 싫지 않아요. 하지만 결혼은 기사 수행을 마친 후에 와서 다시 얘기하죠.”
내가 머리에 총 맞은 게 아니고서야 레아가 싫을 리가 있나.
당장 빅토리아 시X릿 모델로 세워도 될 여인인데!
하지만 기사 수행부터 해야 했다. 엔딩을 위해서든,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든.
“레아 양, 혹시 아버님 빚을 갚아 준 저에 대한 고마움을 사랑과 혼동하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레아는 단호했다.
그래, 본인이 저렇게 아니라고 하는 데야 믿어야지.
레아의 상태를 살펴봤는데, 아버지의 일과 프러포즈가 해결되어서인지 그녀의 정신력은 D까지 올라와 있었다.
지휘관 성장 주문서를 한 장 쓰지도 않고 FF에서 D라는 놀라운 성장이었다.
플레이할 때도 이렇게 빚을 갚아 줬다면 레아의 정신력은 급속한 성장을 했을 터였다.
‘지휘관 성장 주문서를 쓰면 금방 C가 되겠는데?’
그래서 가지고 있던 지휘관 성장 주문서 중급을 사용했다.
샤아아아.
나에게만 보이는 노란 물결이 레아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레아의 정신력이 C가 되었습니다.] [생사의 분기 해결보상:포인트 10점, 50퍼센트 상점 할인권]
‘오호, 상점 할인권을 또!’
너무 기뻐서 또다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번쩍 들 뻔했다.
더군다나 모아 둔 포인트 36점에 이번 것까지 합치면 46점.
그렇기에 포인트 92점짜리 상품까지도 살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난 비싼 게 아니라 싼 걸 찾았다.
‘싼 걸 사서 비싼 특성으로 만든다.’
목표로 삼은 건 몽크의 피로 회복도 있지만 이자벨의 위장, 치명적인 일격, 피의 서약도 있고, 실버훈의 행운 룰렛도 있었다.
군주 병과 때문에 지휘관들의 능력을 어느 정도는 가지지만 그렇다고 내 특성도 아니며, 그 특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자벨의 경우는 내 지휘관도 아니고.
‘문제는 내가 쳐다보면서 정밀 분석으로 특성을 변형시킬 동안 가만히 있어 줘야 할 텐데…….’
몽크도 문제지만 이자벨은 더 문제였다.
무슨 핑계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게 할 것인지…….
“아!”
무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초상화라면…….”
그림을 그릴 동안에 모델은 움직일 수 없다.
‘그래, 그 방법이 좋겠어.’
그런데 화가를 구하는 게 문제였다.
‘화가는… 아인스탑에서 구하자.’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보내야 했는데 윈터, 섬머가 다녀왔기에 이번에는 어텀을 보냈다.
***
축제는 총 4박 5일 동안 열렸다.
처음에 하루를 생각했던 지휘관들은 ‘이렇게나 길게요?’ 하면서 놀라워했다.
“돈이 2천 골드나 들어가는데 고작 하루?”
꽤나 긴 기간이었는데, 이 정도는 해야 넓은 영지에 사는 영지민들이 찾아와서 헛걸음하지 않을 테니까.
첫날은 가볍게 진행했는데 축제라기보다는 큰 시장이 열린 것처럼 보였다.
이틀째부턴 행사가 있었으며, 4일째는 어텀과 마리안의 결혼식과 댄스파티가 열렸다.
늦장가를 가는 어텀은 결혼식 내내 싱글벙글했는데 이 모습이 곧 내 모습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신부가 셋이… 아니, 둘이려나?’
이자벨은 진짜로 나와 결혼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댄스 타임에는 레아, 아나이스, 이자벨과 돌아가며 춤을 췄다.
세 여인이 내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아무도 춤을 신청하지 않아 내가 맡아서 추어야만 했다.
나도 그렇지만 세 여인도 춤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고, 축제 전에 도든에게 간단히 강의를 들었지만 나도 그렇고, 세 여인도 능숙하진 못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내 영지이고, 난 영주며, 세 여인은 약혼녀들인데.
실수 좀 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닌데.
축제는 돈을 들인 만큼 풍성했고, 영지민들은 환호했다.
축제 장소는 두 군데였는데 베르게르 성과 페넬로프 성이었다.
영지도 커지고, 두 성의 거리가 너무 멀기에 영지민들을 한곳으로 모을 수 없어 아예 두 곳에서 열도록 했다.
베르게르 성은 윈터, 섬머가 주도해서 준비했으며, 페넬로프 성은 레이몬드와 제이미가 준비하도록 했다.
이전에 영지에서 축제가 열린 적이 있는지 노인들에게 수소문해서 알아보도록 했는데 다들 고개를 내저었다.
‘하! 노인들이 모른다고 할 정도면 못해도 50년 이상은 축제가 열린 적이 없다는 거겠지?’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불쌍했다.
‘앞으론 자주 열도록 해 봐야지.’
돈이 많이 드니까 매년은 힘들지만, 몇 년에 한 번씩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아! 내가 떠난 후엔 축제를 열기 힘들겠군.’
축제 마지막 날에는 기대했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영지민들이 영주를 칭송하고 있습니다.] [군주의 효과가 올라갔습니다.]상태창을 열어서 확인하니 군주의 효과가 20퍼센트로 늘어났다.
‘하하, 돈 쓴 값을 하네?’
뭘 받아 본 경험이 워낙 없는 영지민들이라 그런지 감동도 잘하고, 칭송도 잘하고.
덕분에 나도 이런 떡고물을 얻고.
축제는 잘 마무리를 지었고, 때가 봄이라 농사를 시작할 때였는데 영지민들의 의욕도 꽤나 올라가 여러모로 잘 열었다고 자화자찬했다.
***
상점에서 특성을 구매했다.
한 개가 아니라 2개를 샀다.
할인권을 쓰지는 않았다.
특성 최저가가 포인트 10점이며, 최저가 특성 2개에 할인권을 쓰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구매한 건 청소 특성과 정리 정돈 특성.
이걸로 보유 한도 9개가 꽉 차 버렸다.
산 후에 써 봤는데 확실히 특성을 쓰니 청소 후에 반짝반짝 빛이 나고, 정리 정돈 후에 너무 깔끔해서 옷장을 본 시녀들이 화들짝 놀랐다.
“여, 영주님, 여기 누가 정리한 건가요?”
“내가 했지.”
“어머! 진짜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응. 못 믿겠어?”
“왜, 왜 영주님이……. 그런데 이렇게 깔끔하신 분인지 몰랐습니다. 그동안 지저분했었죠?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피식.
“그래.”
아니라는 말을 해 봤자 이미 충격을 먹은 시녀들에겐 전혀 효과가 없을 거다.
축제가 끝날 즈음에 섬머를 불러서 5천 골드를 영지 재정을 위해 쓰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반다이크 영주님껜 죄송한 말이지만 영지가 이렇게 풍족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당연히 감사해야지.
내가 영주가 된 이후로는 영지 운영비를 넘치게 주고 있으니까.
죽어라 벌어서 영지에 쏟아붓고 있었다.
섬머에게 돈을 주고 남은 건 1만 5천 골드.
여기서 2천 골드로 성장 물약과 성형 물약을 사서 마셨다.
몇 달이 지나서 내 키는 190센티미터가량이 되었고, 체중은 90킬로그램이 넘었다.
얼굴은 젊은 처자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 정도?
한편 아인스탑에 갔던 어텀이 화가를 구해 데려왔다.
난 실버훈과 말콤을 골라 가장 먼저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지휘관들 중에 신분이나 나이가 가장 높으니까.
다음은 레아, 아나이스, 이자벨 순서가 될 테고, 그 후엔 지휘관들이 될 거다.
화가에겐 초상화 하나당 10골드씩 주기로 했다.
“초상화를 그려 성안에 전시할 거다.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위인들로 기록하겠다.”
“흐윽, 감사합니다.”
다들 감격해했는데 일부는 눈물까지 흘릴 정도였다.
하지만 영지전에서 적으로 만나 포로가 되었다가 지휘관이 된 이들은 머쓱해했고, 윈터와 어텀 등은 그들까지 초상화를 남기는 걸 반대했다.
“흠흠, 난 당장보다 미래를 보고 있다. 그리고 받아들인 후에 차별할 거면 아예 휘하에 두지도 않았을 거다.”
쓰윽.
세 사람에게 주머니를 하나씩 내밀었다.
“이건 뭔가요?”
섬머가 대표로 물었다.
“세 사람에게 보답을 해야지. 영지전 승리의 가장 큰 공로자들이잖아? 세 사람이 우리 영지의 버팀목들이었고.”
주머니 안에는 100골드씩 담겨 있었다.